보살영락경 제9권
26. 무착품[2]
[마왕 파순과 수기]
이때에 폐마(弊魔) 파순(巴旬)이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오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중생을 교화하시면서 집착 없는 법륜을 굴리시고,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일체의 미치지 못하는 이를 인도하시고, 온갖 보살들의 신통과 지혜 있는 이는 모두 물러나지 않는 경지의 수기를 얻었다.
이 성현들을 나는 의심하지 않겠지만, 이제 석제환인은 나의 부계(部界)에 있으면서 나의 부림을 받는데도 먼저 부처님께 수기를 받았다.
나도 오늘날 마음에 마군의 행[魔行]을 여의고 영화와 애욕[榮冀愛欲] 속에 있지 않거늘, 무슨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실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마군 파순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는 문득 목건련(目犍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능히 여래 앞에서 온갖 보살마하살이 수기 받는 것을 설함을 감당하겠느냐?”
이때에 목건련은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받들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능히 보살마하살의 수기 받는 법을 설함을 감당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감당하여 말하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목건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온갖 공한 법[空法]에서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染着心]을 내면서 문득 스스로 잘난 체하고 앞서 배운 이를 경멸하면,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범부의 경지에 있는 것이어서, 응당 보살이라고 칭할 수 없사오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을 수 없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른 사람이 수기 받는 것을 보고 문득 저만 잘난 체하는 마음[增上心]을 내면서
‘나는 지금 훌륭하고 높고 귀한데 이 사람은 낮고 천하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을 수 없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의 밝은 지혜[明慧]를 얻어서 세 가지 관[三觀]ㆍ공ㆍ무상ㆍ무원을 분별하여 문득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는데,
어떤 중생이 이 사람이 수기 받은 것을 보고는 문득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을 내면서
‘부처님은 어째서 먼저 이 수기를 주는가’ 하면,
이와 같은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이때에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부처님의 신족과 4무외(無畏)를 얻고,
온갖 공계(空界)에 노닐면서 법륜을 굴리고,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걸리는 바가 없고,
연설하는 법의 가르침이 모두 이로운 바가 있어서 문득 여래에게서 수기를 받았지만,
그러나 어떤 중생이 세속의 지혜를 얻어서 변재가 제일인데다 옛 일을 알고 지금 일에 밝아서 3세를 통달하였으므로 속으로 스스로 사유하길
‘내가 포람(包攬)하는 바는 어떤 일이든 꿰뚫지 않음이 없거늘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시고 이제 도리어 이 사람에게 수기를 주시는 걸까’라 한다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서 네 가지 평등[四等]이 갖추어지고,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면서 이 부처님을 좇아서 도의 마음을 발하지 않고 다시 다른 부처님을 좇아서 그 수기를 받았지만,
그러나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을 내기를
‘이 사람은 나의 무리가 아니고 나의 부하가 아닌데,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먼저 이 사람에게 수기를 주시고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실까’ 라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위없는 법륜을 굴리면서 6신통의 변화가 걸리는 바가 없고,
권도의 임기응변와 교묘한 방편으로 중생을 거두어 잡아서 이 보살마하살이 문득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다시 어떤 중생이 3독(毒)이 골고루 있어서 애착하는 마음이 다하지 못하였고,
적절히 교화하여 온갖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지도 못하였으면서도 속으로 스스로 의심하여,
‘이제 이 사람을 살펴보니 이룬 것이 있는 듯한데, 여래의 위력(威力)에 감응된 바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리하여 이 선남자에게 이런 감화가 있음을 살펴서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상념을 낸다면,
이러한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용(龍) 가운데 태어나 보살의 마음을 발하여서 뭇 행이 갖추어져 새는 바가 없으므로 문득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그러나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사람의 몸을 얻어서 온갖 근(根)이 갖추어지고 바른 법을 밝게 통달해서 6정(情)을 완전히 갖추었거늘,
여래께서는 어찌하여 나에게는 수기를 주지 않으시고 이제 도리어 다시 이 용에게 수기를 주시는가’ 하면,
이러한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하늘 몸[天身]을 얻어 보살의 마음을 발하여서 갖가지 속박과 집착을 끊어 연모하는 바가 없고,
자기의 영예로운 지위를 버리고 다섯 가지 즐거움도 멀리 여의며,
6정(情)을 막고 청정한 법을 닦으며,
세상의 여덟 가지 법을 여의어서 10악(惡)에 떨어지지 않아서 문득 여래에게 수기를 받았지만,
그런데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 이 하늘 사람을 보니 뭇 행이 충분하지 못하고, 이 형상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회복하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이 자에게는 수기를 주시고 나에게는 수기를 주시지 않는가’라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언제나 범부의 경지에 있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떤 중생이 지옥의 형상[地獄形]을 받았을 때 부처님의 신력(神力)으로 가서 그에게 수기를 주었으니, 마치 옛날에 부처님께서 저를 보내셔서 제바달다(提婆達多)에게 수기를 준 것과 같나이다.
그런데 어떤 중생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옥의 형상을 받으면 고통이 한량이 없다.
가마의 끓는 물에 태워지고 삶아지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칼산[刀山]ㆍ칼나무(劍樹)ㆍ화로의 숯불[爐炭]ㆍ쇠 바퀴[鐵輪]ㆍ불 수레[火車]ㆍ불꽃 바람[熾風]ㆍ뜨거운 구리 기둥[銅柱]ㆍ방아절구[碓臼] 지옥 속에서 받는 고통의 아프고 독함이 한량이 없으니,
이런 때를 당하여 어찌 도의 마음이 있으랴?
그런데도 여래께서는 오늘 도리어 수기를 주어서 여래의 이름을 얻게 하였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사람의 몸을 얻었건만 우리에게는 수기를 주지 않으시는가’라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의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목건련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아귀의 형상을 받으면, 선견보살(善見菩薩)의 아버지 모양, 사리불(舍利弗)의 할아버지, 선시장자(善施長者)의 어머니로 형상을 받아서 괴롭고 고달파하나이다.
배는 태산(泰山)과 같고, 목구멍은 가는 바늘 같고, 목구멍 길이는 천 길[丈]이나 되는데 천 개의 굽이가 있고, 한 굽이가 천 마디[節]나 되는데, 비록 장물[漿水]을 얻더라도 변해서 고름이나 피가 되고, 눈은 깊은 우물 같아서 천 길의 낭떠러지와 같나이다.
이처럼 받는 고통은 이루 측량할 수 없어서 주림의 불에 태워져서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지만,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의 마음으로 곧 사리불을 보내시어 저마다 수기를 주어서 도의 마음을 발하게 하시었나이다.
하지만 어떤 중생은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귀(餓鬼)의 고통과 고달픔은 한량이 없고, 주림과 추운 고통의 극심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거늘,
그런데도 이제 여래께서는 도리어 저들에게 수기를 주시고 나에게는 수기를 주시지 않으신다’고 하면,
이와 같은 무리의 선남자나 선여인은 그저 범부의 경지일 뿐이지 응당 보살이라 칭할 수 없으며, 응당 수기를 받아 여래란 명호를 얻지 못하나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여. 보살의 수기를 받고 걸림 없는 행을 잘 연설하였구나.
진실한 불자(佛子)는 욕심을 내어 수기를 받기를 바라지 않느니라.”
그때에 폐마 파순이 스스로 생각하였다.
‘아, 이것은 내가 행한 잘못이 아니던가?
이제 대목건련 존자의 말씀을 들으니, 이 말은 여러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함이로구나.’
이때에 파순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잘난 체하는 생각을 없애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는,
앞에 나아가 부처님 처소에 이러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하고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지금 어리석고 미혹하여 오래도록 삿된 소견에 처해 있으면서 참 도[眞道]를 알지 못하였나이다.
이제 석제환인은 제가 통솔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오늘 그에게 수기를 먼저 주자 저는 곧 뜻을 일으켜서 비방하는 마음을 내었나이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의 뉘우침을 받아주셔서 욕심의 근본을 소멸하고 영화에 탐착하지 않도록 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폐마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좌상에서 미륵(彌勒)보살을 보는가?”
파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이 미륵보살이 마땅히 너에게 수기를 주어서 보살의 명호를 얻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