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전부다.
아모스와 함께 연구하던 초기의 좋은 추억 하나는 그가 수시로 웃긴 행동을 잘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대학생 시절의 철학 교수를 완벽하게 흉내내면서 과장된 독일 억양으로 히브리어를 웅얼댔다.
" '프리맷 오브 디 이즈 Primat fo the Is'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되네"
그 교수가 정확히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나로서는(그리고 분명 아모스도) 확실치 않았지만,
아모스가 이 농담을 쓰는 때는 정해져 있었다.
우리 머리가 현재 우리가 쓸 수 있는 정보와 우리에게 없는 정보를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다룰 때마다
그는 (그리고 결국엔 나도) 이 오래된 문구를 기억해냈다.
연상 체계는 원래 활성화된 생각들로만 구성되도록 설계되었다.
기억에서(무의식적으로라도) 끄집어내지 않은 정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스템1은 현재 활성화된 생각들을 모아서 가능한 한 최고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지만,
없는 정보를 이용하지는 않는다(이용할 수도 없다.)
시스템1이 제 기능을 했는가의 척도는 그것이 지어낸 이야기의 논리적 일관성이다.
이야기의 기반이 되는 재료의 양과 질은 대체로 무관하다.
흔한 일이지만 정보가 아주 적을 때는 시스템1이 속단을 내린다.
이런 문장을 보자, '민디크가 좋은 지도자가 될까? 그 여자는 똑똑하고 강인하고 . . . .'.
여기까지만 보고도 곧바로 머릿속에 답이 떠오른다.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용 가능한 아주 제한된 정보를 기초로 최선의 답을 골랐지만,
어쨌거나 성급한 결론이다.
그 뒤에 '타락했다'거나 '잔인하다'라는 말이 오면 어쩌겠는가?
민디크를 지도자감으로 생각한 짧은 순간에 우리가 하지 '않은' 것에 주목해보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평가하기 전에 무엇부터 알아야 하는가?' 이런 자문은 하지 않았다.
시스템1은 첫 번째 형용사를 듣고 저절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똑똑하면 좋지, 똑똑하고 강인하면 더 좋고,
두 개의 형용사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에 시스템1은 아주 쉽고 편하게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정보(민디크는 타락했다)가 나타나면 그 이야기를 수정하겠지만
당장은 다른 정보를 기다릴 이유도, 머릿속이 불편할 이유도 없다.
여기에는 첫인상을 선호하는 편향도 들어 있다.
논리적 일관성을 추구하는 시스템1과 게으른 시스템2가 결합한다는 이야기는
시스테1에서 나온 첫인상이 반영된 많은 직관적 믿음을 시스템2가 인정한다는 뜻이다.
물론 시스템2도 좀 더 체계적이고 주의 깊게 증거를 수집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점검할 것들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집을 사려는 데 정보가 없어서 작정하고 관련 정보를 찾던 때를 생각해보라,
그런데 시스템1은 좀 더 신중한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마디로 개입하지 않는 곳이 없다.
제한된 증거로 서둘러 결론은 내리는 성향은
직관적 사고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해서 이 책에도 자주 등장한다.
나는 이런 성향을 '보이는 것이 전부 WYSIATI: What you see is all there is'라는 원리로 설명한다.
시스템1은 첫인상과 직관을 불러일으키는 정보의 양과 질에 모두 심각하게 둔하다.
아모스가 스탠퍼드대학에서 대학원생 제자 둘과 함께 실시한 연구는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성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참가자들에게 일방적인 증거를 주고
, 그들 역시 그것이 일방적이라는 걸 알 때, 그 반응을 관찰한 연구다
아래는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법적 문제가 얽힌 이야기다.
9월 3일, 노동조합 현장 대표인 43세의 원고 데이비드 손턴이 스리프티 약국 168호에 나타났다.
노조의 일상적인 방문이었다. 그가 도착한 지 10분이 지나지 않아 약국 관리자가 다가와
이제는 그 층에 있는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고 했다.
정 이야기를 하려거든 휴식 시간에 뒤쪽에 있는 방에서 하라고 했다.
약국의 요구는 조합과 약국의 계약서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실제로 실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손턴이 이요구를 거부하자 약국 관리자는 요구를 수용하든지, 약국을 떠나든지,
체포되든지 알아서 선택하라고 했다.
손턴은 그에게, 자신은 이제까지 그 층에 있는 직원들과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길게는 10분까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일상적 방문 절차를 바꾸느니 차라리 체포되겠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관리자는 경찰을 불렀고, 손턴은 무단침입죄로 수갑이 채워졌다.
조서를 쓰고 잠깐 동안 유치장에 들어간 뒤에 모든 혐의가 벗겨졌다.
손턴은 스리프티 약국을 부법체포 혐의로 고소했다.
실험에 참가한 모든사람이 사건 배경을 알려주는 위 자료를 읽었다.
그리고 참가자 일부는 조합원 측, 일부는 약국 측 변호사의 상황 설명을 들었다.
조합원 측 변호사는 당연히 이 체로를 협박 시도라고 말했고,
약국 측 변호사는 약국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업무방해이며 관리자의 행동은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참가자는 배심원처럼 양쪽 주장을 모두 들었다.
양측 변호사는 위 이야기에서 추론할 수 없는 다른 유용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상황을 정확히 인지했고,
따라서 일방적 주장만 들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쪽을 옹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쪽 주장만 들은 경우, 판단은 한쪽으로 쏠렸다.
게다가 한쪽 주장만 들은 참가자는 양쪽주장을 다들은 참가자보다 판단에 더 확신을 가졌다.
이런 확신은 이용 가능한 정보로 자기가 직접 구성한 이야기가 논리적으로 일관되다고 느낄 때 나온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낼 때 중요한 것은 정보의 일관성이지, , 정보의 완성도가 아니다.
실제로 아는 게 적을 수록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일관되게 구성하기가 쉬웠던 경험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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