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5.1은 앞에서 언급한 지역을 포함해
토종 식물과 동물의 작물화와 가축화가 이뤄진 지역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물과 가축,
그리고 각 지역에서 작물화와 가축화를 시도한 가장 이른 시기로 알려진 연대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독자적으로 식량 생산을 시작했다고 추정되는 아홉 곳의 후보 지역 중에서,
서남아시아가 작물화(기원전 8500년경)와 가축화(기원전 8000년경) 모두에서 가장 빨랐다.
서남아시아에서 발굴되는 초기 식량 생산의 흔적들에 적용한 방사성 탄소 연대가 가장 빠르기도 하다.
중국의 연대도 서남 아시아에 버금가게 빠르지만 ,
미국 동부에서 나온 유물의 방사성 탄소 연대는 그보다 6,000년 가량 늦은 게 분명하다.
다른 후보 지역 여섯 곳 중에서 가장 이른 것으로 확인된 연대는 서남아시아의 연대에 필적하지 못하지만
극소수의 유적지만을 조사했기 때문에 그 지역들이 서남아시아보다 정말로 늦었느지, ,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늦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나머지 지역들은 2종 이상의 토종 식물이나 동물을 길들였지만,
다른 곳에서 길들인 작물과 가축에 의존해 식량을 생산한 곳이다.
그헣게 도입한 작물과 가축이 그 지역 식량 생산의 기반을 이뤘기 때문에,
그것들을 그 지역의 '원조(元祖.founder)' 작물과 가축으로 여길 수도 있을 듯하다.
원조 작물과 가축이 전해지면서 각 지역 사람들은 한곳에 정주할 수 있었고,
자기 지역으 야생식물을 채집해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가져온 식물이 우연히 뿌리를 내려 수확을 할 수 있게 되자,
나중에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재배해 토종 작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서너 지역에 전해진 작물과 가축의 원조는 서남아시아였다.
그중 하나가 유럽 서부아 중부였는데,
여기에서는 서남아시아의 작물과 가축이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3500년 사이에 전해지면서
식량 생산을 시작햇다. 그러나 적어도 한종 이상의 식물이 그곳에서 작물화되었다.
양귀비는 확실하고, 귀리와 그 밖의 작물은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야생 양귀비의 분포는 서지중해의 해안 지역을 넘어서지 않는다.
양귀비 씨는 동유럽과 서남아시아의 초기 농경 공동체 유적지에서는 나오지 않고,
서유럽의 초기 농경 유적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반면 서남아시아에서 길들인 곡물과 가축의 야생 원종이나 조상은 거의 서유럽에 없었다.
따라서 서유럽에서는 식량 생산이 독자적으로 이뤄지지 앟고,
서남아시아의 작물과 가축이 들어오면서 촉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가 서유럽 농경사회는 양귀비를 작물화했고,
그 이후 양귀비는 하나의 작물로서 동쪽으로 전해졌다.
서남아시아의 원조 작물이 도래한 뒤, 토종 식물을 작물화한 또 다른 지역으로는
인도아대륙의 인더스강 유역이 있다.
기원전 7000년에서 기원전 6000년 무렵 이곳에 처음으로 형성된 농경 공동체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일찌감치 작뭄화된 후
이란을 거쳐 인더스강 유역까지 전해진 게 분명한 밀과 보리 및 다른 작물을 재배했다.
인도 아대륙의 토종 식물과 동물을 길들인 작물과 가축,
예컨대 참깨와 혹소는 나중에야 인더스강 유역의 농경 공동체에 나타났다.
이집트에서도 식량 생산은 서남아시아의 작물이 전해지며,
기원전 6000년에서 기원전 5000년에 시작되었고,
그 이후에 돌무화과와 기름골(chufa)이라고 불리는 토종 풀을 작물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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