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을 넘어_이케다 SGI 회장과 마음의 유대
모든 것을 움직이는 확신의 기원을
1992년_이탈리아 밀라노
일찍이 이케다 SGI 회장은 이탈리아의 동지에게 보낸 시에 이렇게 썼다.
“우리의 묘법(妙法) 르네상스는
세계 모든 민족에게
평등하게
생명 존엄의
존귀한 정신의 연대를 넓히는
‘민중 르네상스’!”
“오,
우리 이탈리아의 벗이여!
긍지 드높게 귀국이 창조한
세계 최고의 종합예술
오페라처럼
인간의 교향곡을
명지휘하면서
‘우정’과 ‘조화’의
무너지지 않는 낙원의 무대를
만들어라!”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서민 명배우’가 많이 활약한 곳이다.
1992년 7월 이탈리아에서 머문 이케다 SGI 회장은 11년 만에 아름다운 밀라노를 방문했다.
7월 3일에는 이탈리아SGI의 밀라노 회관을 처음 방문해 ‘북이탈리아 대표간부회’에 참석했다.
오후 2시가 되기 전이었다.
SGI 회장이 차로 밀라노회관에 도착하자 회관에서 SGI 회장이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멤버들이 힘차게 박수를 쳤다.
오른손으로 삼색기를 흔들며 차에서 내린 SGI 회장이 미래부 곁으로 갔다. 미래부 대표로 한 소녀가 SGI 회장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건넸다.
그리고 대표간부회가 열리는 회관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모두가 오르내리는 계단에는 백합, 난, 장미, 달리아 등 산뜻한 꽃들로 꾸며져 있었다.
밀라노 롬바르디아주의 클라우디아 가르덴치 남동방면 부인부장은 회상한다.
“회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꽃으로 장식하기 위해 많은 멤버가 힘썼습니다. 계단을 오르던 이케다 선생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꽃 한송이 한송이를 칭찬하듯 지긋이 감상하셨습니다. 저는 정말로 기뻤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준비에 힘쓴 멤버의 노력까지도 알아주시는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실제로 이때 SGI 회장은 곁에 있던 사람에게 “계단을 장식해 주신 분은 누구신가요?” 하고 물으며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SGI 회장은 대표간부회의 참석자로 근행 창제를 마친 뒤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가족’이므로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예정된 스피치를 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묻고 싶은 것을 물으며 서로 이야기하는 ‘질문회’로 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모두 놀랐다. 그리고 기뻐했다. 찬동하는 박수가 커다랗게 터져 나왔다. ‘질문회라니!’ 아무도 예기치 못한 전개였다.
하나 둘 손을 들었고 잇달아 멤버들이 질문했다. 한 부인부 멤버가 물었다.
“부인부에서 자주 이야기합니다만, 제목은 ‘부르는 자세’와 ‘부르는 양’ 어느 쪽이 중요한가요. ‘질’과 ‘양’이라고 할까요?”
SGI 회장이 대답했다.
“10만리라(이탈리아의 통화〈通貨〉) 지폐는 1만리라 지폐보다도 질이 높습니다. 10만리라 지폐가 당연히 더 좋습니다. 진지하고 확신 있는 창제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10만리라 지폐를 많이 가진다면 제일 좋겠지요. ‘질’도 ‘양’도 둘 다 중요합니다.”
누구라도 실감 할 수 있는 알기 쉬운 비유에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SGI 회장은 이어서 말했다.
“또 불법(佛法)에서는 감응(感應)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전화의 감도가 좋으면 작은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고 속삭여도 통합니다. 이와 달리 외치는 듯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여보세요~!’ 해도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원이 통하는 데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이가 ‘엄마~’하고 부모에게 안기는 듯한 마음으로 부딪쳐야 합니다.”
◇
베네토 동쪽방면에서 부인부장을 맡은 마틸데 몬테레온은 이때 SGI 회장에게 질문했다. 당시 지부부인부장이었다. 몬테레온이 물었다.
“조금 전 SGI 회장과 함께 창제하며 내 꿈을 이루겠다는 의욕과 용기가 펑펑 솟아 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늘 이런 기분으로 창제하고 용기 있게 살 수 있을까요?”
당시 몬테레온은 직장에서 인간관계 등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SGI 회장은 유머를 섞으며 대답했다.
“남성보다 여성 쪽이 훨씬 용기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질문은 이쪽에서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와 하고 웃음이 터졌다.
“비록 한 번일지라도 제목은 전 우주에 통합니다. 하물며 ‘마음’ ‘일념’을 담은 제목은 일체를 움직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한다’는 똑같은 말이라도 진심이 담겨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다릅니다.”
“어쨌든 ‘내 몸이 묘법의 당체다’ 하고 깊이 확신하는 제목, ‘나는 부처의 사자(使者)로서 묘법을 넓히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일념을 정한 제목이 본존님께 닿지 않을 리 없습니다. 우주에 닿지 않을 리 없습니다. 반드시 ‘자유자재’의 경애가 됩니다.”
몬테레온 씨가 말한다.
“당시 저는 늘 어려운 과제나 문제는 피하고 뒤로 미뤄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나서는 한 순간 한 순간을 더욱 환희차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 뒤 남편이 중병에 걸려 자신도 심하게 낙심한 적이 있었지만 이때 SGI 회장 스피치를 다시 읽으며 자신을 일떠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였고 고난은 인생의 양분으로 바뀌었다.
몬테레온은 지난해부터 파도바시 도서관에서 근무한다. 오랫동안 바라던 도서관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이뤘다.
“저희 방면에서는 지금 리더가 솔선해서 홍교를 크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딸도 청년부 멤버에게 도움을 받아 신심을 시작했습니다. SGI가 많은 시민에게 이해받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에서 모범을 보이는 존재로 빛나겠습니다.”
함께 나아가자! 우리의 이상(理想)을 향해
◇
1992년의 질문회는 참석한 대부분의 벗에게 잊지 못할 원점이 되었다.
피에르파올로 무초론 부장년부장이 감개를 담아 말했다.
“질문회에는 몇백명 정도의 사람이 모였지만 마치 10명 정도가 모여 대화하는 듯한 친밀감으로 넘쳤습니다. ‘SGI의 회합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할 때 늘 저는 선생님이 열어주셨던 그때의 질문회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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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7월 3일 이케다 SGI 회장은 북이탈리아대표간부회에 참석했다.
가족처럼 편안한 대화로 열린 ‘질문회’를 마치고, 밀라노회관에 있는 정원으로 나오자 비발디의 경쾌한 멜로디가 SGI 회장을 맞았다.
음악계에서 활약하는 벗들이 협주곡을 연주했다.
SGI 회장은 벗의 진심에 깊이 감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천상의 음악’ ‘마음의 음악’ ‘행복한 음악’ ‘영원한 음악’을 연주해 주세요.”
연주자의 한 사람이던 자코모 벨루티(부지부장)는 “이케다 선생님의 격려는 제 인생과 음악생활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하고 회상한다.
당시에는 밀라노 국영방송 교향악단 소속이었다. 그뒤 토리노의 악단으로 옮겼고, 지금까지 일본에서 하는 공연에 두 번 참석하며 학회 본부도 방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집을 광포의 장소로 제공하며 부인 마리나와 즐겁게 학회활동을 위해 달린다.
“질문회가 있고 나서 그토록 바라던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아들은 지금 색소폰과 작곡 공부에 힘쓰며 신심도 이어 받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병에 걸렸지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정말로 행복합니다.
많은 사람이 음악을 듣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계속 연주하겠습니다!”
◇
질문회 바로 전날인 7월 2일, 이케다 SGI회장은 밀라노 시내에서 열린 이탈리아 대표자회의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 싸우는 건강한 여러분과 만나 매우 기쁩니다.
이탈리아 그리고 밀라노는 정말 경이적으로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가 놀라며 찬탄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그 활약을 상찬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복운’과 ‘가치’의 인생을 구축하시기를 거듭 기원합니다.”
당시 북이탈리아총합방면장 프랑토 마루살디는 이때 SGI 회장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긴장한 탓인지 마루살디 일행의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그것을 알아챈 SGI 회장이 모두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유머를 섞어 말하자 간담의 분위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SGI 회장은 바로 앞에 앉은 마루살디에게 “제게 묻고 싶은 것이 있나요?” 하고 물었다.
마루살디는 당시 활동 테마인 ‘인간과 이상(理想)의 르네상스’를 떠올리며 SGI 회장에게 질문했다.
첫째,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데 걸맞은 올바른 이념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둘째,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꿋꿋이 사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SGI 회장은 질문을 귀 기울여 들은 뒤 약 30분에 걸쳐 대답했다.
마루살디가 술회한다.
“첫 번째 질문에 선생님은 ‘올바른 이상이 진정 무엇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자각하는 길은 눈앞에 놓인 과제에 도전하고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일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할 때는 은사 도다 선생님과 함께 고투했던 나날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 최고의 나날이었다는 듯이….
저는 이상과 신념을 관철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도 자신의 인생을 변혁하는 양식으로 삼는 일,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스승과 동지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깊이 배웠습니다.”
다음날 SGI 회장은 화지(和紙, 일본 고유의 종이)에 와카를 적어 마루살디에게 보냈다.
‘이탈리아 동지의 기둥이 되어라. 당당하고 두려움 없이 날마다 즐겁게.’
마루살디는 이때 받은 격려를 가슴에 품고 광포의 길을 똑바로 걸었다.
지금은 이탈리아SGI 부이사장 그리고 SGI 관련 서적 발간 등을 진행하는 크레아콤멜초 출판사 대표책임자로 중책을 맡고 있다. 마루살디는 말한다.
“지금 광선유포의 중요한 때를 맡았습니다. 제자인 우리가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삼대(三代) 회장이 성업을 완성하여 이케다 선생님이 심은 씨앗을 거목으로 키워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고 일어설 때입니다.
가치 있는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한없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광포를 위해 스승과 함께 또 동지와 함께 꿋꿋이 살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저희에게 해주신 것처럼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을 철저하게 지원하며 격려하고 소중히 여겨 발전과 승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습니다!”
◇
7월 4일, SGI회장이 밀라노에서 일본으로 돌아갈 날이 찾아왔다.
회장은 숙고를 출발해 공항으로 가던 중 셈피오네공원에 갔다.
여기에는 19세기 전반에 개선문으로 건설한 ‘평화의 문’이 있다. 그리고 여러 행사의 운영을 뒤에서 지원한 행사 요원 벗들이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존귀한 멤버와 기념촬영을 한 SGI 회장은 외쳤다.
“인생에서 승리하는 개선문을 서로 함께 나아갑시다.”
“아무쪼록 행복하세요! 건강하고 명랑하게 밝은 인생을!”
그리고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라치에(이탈리아어로 ‘감사합니다’)!” 하고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했다.
이때 행사요원으로서 SGI 회장과 동행한 마로우 데레티(유럽 부장년부장)는 “날씨는 흐렸지만 걱정했던 비도 내리지 않고 환희 속에서 기념촬영을 마쳤습니다.” 하고 회상했다.
그 후 SGI 회장은 다시 차에 올라 공항으로 갔다.
그렇게 이탈리아 벗의 가슴에 소중한 역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데레티는 지금 리무진 서비스 회사를 운영한다. 경기 불황 중에도 경영은 순조롭다.
학회에서 훈도 받은 대로 생활하고 있다고 웃는 얼굴로 말한다.
SGI 회장이 방문한 지 22년. 밀라노 광포의 전진은 눈부시다.
밀라노를 포함하고 있는 롬바르디아주 멤버는 1992년 당시 약 1200명 이었지만, 지금은 약 7700명으로 6배 넘게 발전했다.
‘현대세계의 인권’전(展)이나 ‘핵무기 폐기를 향한 도전’전 등, 사회공헌의 활동도 펼쳤다.
지역에서도 SGI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올 해에는 인간주의의 굉장한 거점이 될 ‘밀라노이케다평화문화회관’이 완성될 예정이다.
드디어 개막한 ‘세계광포신시대’ 그 선봉을 밀라노 그리고 이탈리아의 벗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