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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복을 사모합시다! (마 5;1-12)
2026.10.11 오전11시
미국의 유명한 “워너메이커(Wanamaker)백화점”을 세운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가 사업가로서 60주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답변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 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 권을 구입했어요.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만 구입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실천해야지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즐겁고 기쁘게 일하다 보면 성공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가와 있게 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과 정열의 복음 전도자 D. L. 무디와 동시대를 살았던 존 워너메이커.
이들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한결같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꿈을 품고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실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들의 모든 영광과 찬사를 하나님께 돌렸던 신앙의 위대한 거인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아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동안 워너메이커는 평생에 주일학교 교사로, 장로로 교회를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의 매순간을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꿈을 성취하는 것으로 채워 나갔습니다. 그의 성공은 바로 성경말씀을 실천할 때 주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곧 예수님의 산상보훈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서 앉으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로 몰려온 무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4장 25절에서 보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들이 따랐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 여러 가지 갈등과 고민을 가지고 마음이 아파하는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치료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진짜로 아파서 찾아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가 누구 길래 이런 소문이 있냐’ 하는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야말로 갈 곳 없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배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질병과 약한 것들을 고치는 모습을 보려고 몰려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몇 명이나 모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에 10,000명이 모였다면 10,000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들 들어보면 왜 그리도 사연이 많은 지. 사연 투성이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마다 각각 사연들도 다르고 많습니다.
사연들 중에는 말 못할 사연도 많아서 자신의 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연들도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사연이 없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연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리 손으로 때려도, 발로 지근지근 밟아도, 칼로 잘라내도 말도 없고,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반응도 하고, 말도 하고, 움직입니다.
사연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 나온 모든 사람들은 사연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연들을 예수님께 가져나온 것입니다.
예수님. 내 사연을 들어주세요.
예수님. 내 사연 한 번만 들어봐 주세요.
그러면서 애원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애원하는 사연을 들어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미쳐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사연을 들으시고 이들에게 일일이 답변해주었을까요?
아마도 이들에게 일일이 답변해 주시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적과 표적과 은사를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찾는 이적, 표적,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떡을 구한다고 떡을 먼저 주면 그 떡을 받고 그대로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능력을 구한다고 능력을 먼저 주면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여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욕보이는 사람으로 변질되어지는 것입니다.
돈을 구하는 사람에게 돈을 먼저 주면 그 돈으로 죄짓는데 씁니다.
술과 마약과 도박과 음란의 죄악에 빠집니다.
공짜로 얻어진 돈은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지나가다가 어쩌다가 주운 돈은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냥 써버립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을 해서 일당을 받은 사람, 월급을 받은 사람은 돈이 자신의 땀의 결실이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이적을 찾아서 온 사람, 은사를 찾아온 사람, 돈을 찾아온 사람, 자신이나 가족들의 질병을 고침 받으려고 온 사람이나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은사를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다를 수 있겠지만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견고하게 서 있지 않고 은사, 이적, 돈, 치가 앞서면 자신들이 소망하는 것들이 해결되면 다시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으로 떠납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떠납니다.
정말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버틸 힘이 없어집니다. 버팀목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으로 든든하게 신앙의 뿌리가 박힌 사람은 크고 작은 각가지 문제와 고난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신앙생활이 약간씩 흔들릴 수는 있지만 잘 견디어 냅니다. 잘 이겨냅니다.
살아 있는 나무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나무 가지가 꺾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잘 박힌 나무는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생활과 기도생활에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기차의 두 레일이 똑 같이 가야 탈선하지 않고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신앙의 열차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 생활과 기도생활의 두 레일이 똑 같이 가야 완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 앞에 앉아서 산상설교를 하시는 것입니다.
장장 5장, 6장, 7장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쉽게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복, 천국의 복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이야기 중 한 토막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나라의 복을 곰곰이 묵상해보면 아주 다양한 복이 있고, 그 복을 받는 비결도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복에는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천국을 받는 복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위로를 받는 복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하나님의 의가 가득하여 배가 불러오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자신도 긍휼을 입게 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하나님을 보게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화평케 하고, 화목을 이루어가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하나님의 자녀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딸이라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핍박과 박해를 받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은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핍박하고 박해하고 고난을 주고 시험한다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행복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핍박과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역사합니다.
똑같은 복을 주실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복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여덞 가지 복을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시는 복이 아주 다양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맞는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들에게 어떤 복이 가장 좋은 복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복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복을 받으려면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복을 받으려면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핍박과 박해를 견디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너무 배가 고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심령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야 하는데 그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채워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살려고 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네 만 예수 믿는 사람이가. 너만 예수 다 믿는 것처럼 하지 말라.’ 하면서 주변에서 조롱합니다. 비난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보니까 다 술 먹고, 담배 피우고, 할 질 다 하면서 살더라.
세상에서 온갖 비리들 속에는 꼭 예수쟁이들이 끼어 있는 거 아니가’
‘목사도 장로도 술 마시더라. 목사도, 장로도 술 잘 만 마시는데 네가 얼마나 신앙이 좋다고 그렇게 재냐’하면서 술 마셔도 된다. 담배 피워도 된다. 뭐 해도 된다. 하면서 유혹합니다.
이럴 때 단호하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간에 나는 예수님 믿는 사람답게 살란다.”하면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천국이 주어진다는 말을 바꾸면 이렇게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 어떤 시련과 핍박과 박해가 와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주어지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고, 변질하고 떠나면 천국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의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애통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할 수 있어야 되고, 애통하는 심련을 먼저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땅을 복으로 받으려고 하면 먼저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온유라고 하는 것은 본래의 성질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성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성질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스스로 성질을 죽이거나 억제하거나 다스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인 온유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교회에도 보면 자기 성질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개성과 지성이 뚜렷한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여러분, 개성과 지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개성과 지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개성은 개같은 성질이고, 지성은 지랄같은 성질이라고 합니다.
자기 성질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왜 상처를 주는 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성질도 죽이고, 개성도 죽이고, 지성도 죽이고, 참고 견디면서 다른 사람의 처지도 생각해 주고 이해해 주고 격려해 줄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면서 하나님의 땅을,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면서 점수를 주십니다.
가만히 지켜보시면서 점수를 주시다가 높은 점수를 주실 때 하나님께서 기업을 상으로, 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고, 모세가 그런 사람이었고, 사무엘이 그런 사람이었고,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고, 베드로도, 바울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셉도 본래 성질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도 본래 성질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한 방으로 사람을 때려죽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도 본래 성질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도, 베드로도, 바울도 본래부터 성질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본래의 성질을 잘 바꾸어서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모세에게, 사무엘에게, 다윗에게, 베드로에게, 바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기업으로, 땅으로 주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긍휼의 복을 받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영을, 마음을, 생각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닦아내어야 합니다.
더럽고 추한 영을 가지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청결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만 본래는 정결의 의미입니다.
손과 발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결한 영혼에게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 하는 공통적인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영이 참 맑은 사람이야. 그 사람은 영이 참 깨끗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욕심 때문에 다툼이 발생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 안에도, 직장 안에서도 항상 다툼은 일어납니다.
사람이 모여서 사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다툼과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럴 때 우리 신앙인들이 중재자가 되어서 분쟁과 다툼을 해결해 주어서 하나가 되도록, 화목하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지칭을 받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이 서로 분쟁하고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니 화목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평화와 화목과 안전을 위해서 노력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노벨상을 주십니다.
우리나라에도 고김대중 전임 대통령께서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복을 받고 싶습니까?
어떤 복이 나에게 가득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받고자 하는 복이 있다는 것은 꿈이 있다는 것이고, 삶의 목적과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망하는 그 복을 받고 싶으면 그 복을 받기 위해서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복 받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말로 복 받을 짓거리를 먼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유교의 개념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5복, 다섯 가지 복을 좋아합니다.
여러분, 5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떤 이들은 치아가 좋은 사람, 자식을 많이 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5복, 다섯 가지 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5복은 수(壽), 부(富), 강령(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5복이라 합니다.
첫째는 수(壽)인데, 오래오래 죽지 않고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즉 천수(天壽)를 다하여 살다가 죽는 것이 수(壽)입니다.
둘째는 부(富)라 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재물을 소유하여 사는 것입니다.
셋째는 강령(康寧)이라 하는데, 강(康)은 육체적 건강을 말하고, 령(寧)은 마음의 건강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넷째는 유호덕(攸好德)이라 하는데, 덕을 좋아하는 일상적 태도로서 남에게 늘 주는 연습을 하고 남을 도우려 애쓰며 건전한 마음과 평온한 분위기 조성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고종명(考終命)이라 하는데, 일생을 깨끗하고 건강하고 덕을 좋아하며 주변에 많이 베풀고 적당하게 오래 살다가 마지막 죽음에 임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복을 더 주십니다.
우리 신앙인이 고종명하여 죽어서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구원과 상급의 복을 더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의 복을 받으시고 더 구원과 상급의 복까지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먼저 복을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복을 받을 준비도 하나도 하지 않고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될 복을 우리가 받을 준비가 되지 않으면 그 복은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지만 사도가 될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도의 복을 가룟 유다가 받지 못하고, 맛디아가 받게 됩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왕이 될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라는 복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도록 준비되어진 다윗에게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의 복을 우리가 받지 못하면 다른 교회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불행한 사람, 원통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고 신뢰하고 경외하는 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준비되어진 복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다 받아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