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애틀의 백 년 된 치킨집 이야기
2017 경제신춘문예 대상 수상작
박 지 영
그 가게 앞에는 주인공인 휴대폰보다 항상 조연들이 넘쳐났다. 그 조연들도 월마다 자주 바뀐다. 라면, 각티슈, 세제와 같은 생필품에서부터 장바구니가 장착되어 헬스용으로 분류하기 애매한 노란 자전거가 진열된 달도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에는 ‘백년통신’이란 이름의 휴대폰 대리점이 있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를 개발하기 전부터 대대손손 휴대폰을 팔아 온 뼈대 있는 집안임을 자랑하는 듯한 그 상호가 우습기도 하면서 묘하게 신뢰가 갔다. 그 가게를 지날 때면 나는 일 년 전에 구입한 내 휴대폰을, 벌써 늙다리로 취급되는 듯한 더 커지고 더 얇아진 휴대폰 신기종은 애써 외면하고 사장님이 준비한 이 달의 사은품만 본다. 백년통신은 백 년 전부터 우리 동네에서 휴대폰을 판 건 물론 아니다. 개업 1주년 기념 사은행사도 못 하고 문을 닫은 ‘시애틀’이란 미용실 뒤를 이은 가게였다.
재작년 봄, 미용실을 오픈하기에는 딱 좋은 계절이었다. ‘시애틀’이란 간판을 보고 미용실 상호로는 조금 생뚱맞다 싶었지만, 나는 미용실 안이 궁금했다. 몇 해 전 본 영화 ‘만추’에서 멋진 남녀 주인공이 안개 자욱한 시애틀에서 오랜 이별의 키스를 나눈 장면을 본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그 시애틀을 꼭 가보아야지, 라고 말이다. 반드시 안개 자욱한 날에 바바리 깃 세우고 말이다.
한 달 전 동창회 가면서 파마하고 온 티 안 내려고 자연스러운 웨이브 파마를 했을 때 생각보다 너무 빨리 풀려 버려 속상했는데, 마침 잘됐다. 시애틀을 가기 위한 명분도 마련되었다. 미용실 안은 유리 틈 사이로 조금 보여준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아늑했다. 적당한 탄성으로 편안함을 주는 패브릭 소파, 고급스러운 색감의 천들을 잘 배치한 퀼트 방석 그리고 정수기 옆에는 다양한 차들과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이나 종이컵이 아닌, 주인의 안목이 잘 드러나는 우아한 커피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미용실에서만큼은 공주 또는 여왕 대접받고 싶은 여자 마음을 잘 읽는 원장의 교묘한 상술인가 생각하다 원장이 내어 오는 홍차 한 잔에 내가 괜한 오해를 한 거라고 또 근거 없는 판단을 해버렸다. 그렇게 간접체험 한 시애틀은 다양한 차 향기 못지않게 실력 있는 원장의 솜씨로 날 실망시키지 않았고, 나는 고무신 갈아 신은 군대 애인 흉내 내며 단골 미용실을 바꿔버렸다. 원장은 돈 많이 벌어서 늙으면 딸과 함께 제주도 내려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제주도 살게 되면 나 초대해 줄 거냐 물었고 원장은 당연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우리는 기분 좋은 공약(空約)을 서로에게 건네긴 했지만, 나는 그 원장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그렇게 시애틀에 익숙해진 어느 날, 전업주부로 보이기 싫은 모임이 있는 날이라 머리손질 하러 시애틀로 가는데 멀리서 봐도 예사 풍경이 아니다. 공사 트럭 한 대가 서 있고 자재들이 인도까지 침범했다. 내가 좋아했던 시애틀 가구와 소품들을 빨간 덧칠된 장갑 낀 아저씨들이 무심하다 싶을 만큼 조심성 없이 트럭으로 던지고 있었다. 파마 할 때면 꼭 무릎에 놓고 책을 보던 쿠션에 수 놓여진 어린왕자의 얼굴도 얼룩덜룩했다. 작은 테이블이나 소품용 조화는 아직 쓸 만한데 아까웠다. 아저씨 그거 버릴 거면 제가 가져가면 안 돼요?, 라고 평소 오지랖이면 물어볼 만도 한데, 아저씨들의 거칠고 빠른 손놀림 속에 기죽어서 아무 말도 못했다. 단골을 바꾼 배신행위는 나도 종종 하면서 이번 시애틀 원장의 예고 없음이 그리 서운할 수가 없었다. 구경할 만큼 기분 좋은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는 얼른 자리를 뜨지 못하고 트럭에 실려 가는 시애틀을 보고 있다가 발길 멈추고 구경하는 아줌마들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어젯밤 옆집 아줌마가 미용실 갔는데 원장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술 냄새 풍기며 불콰한 얼굴로 미용실로 와서 원장에게 욕지거리 하며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남편은 부인이 미용실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아 오래 전부터 가게를 그만두라고 했는데 원장은 계속 미루다 더 이상 이기지 못하고 접은 것 같다는 추측성 얘기였다. 제주도, 그 꿈 때문이었을까? 나는 서둘러 시애틀을 벗어났다. 시애틀이란 이름과 달리 도회적이지 않고 들풀 같았던 원장의 하얀 손이 선명했다.
나는 더 이상 가짜 시애틀조차 갈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초고속광대역 LTE급 속도로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휴대폰 대리점이 그 뒤를 이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들내미가 엄마와 함께 가게에 있는 걸 지나다 몇 번 보기도 했다. 그런데 터가 안 좋은 걸까? 가게 이름에 걸맞게 백 년은 아니어도 최소 십 년은 할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가게 돌잔치도 못 하고 접은 것이다. 일 년 만에 또 인테리어 공사차량이 보인다. 매장 안에는 역시나 주연인 휴대폰은 귀하신 몸 감추고 조연인 사은품들만 매장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사장님 아기의 불자동차도 보인다.
미용실, 휴대폰 대리점, 이번에는 또 뭘까? 시애틀, 백년통신, 그 다음은 어떤 간판을 가진 가게가 들어설까? 인테리어 업자의 트럭은 시애틀 원장의 제주도 꿈도, 아들 대학 보낼 만큼 오래 하고 싶었던 젊은 부부의 백 년의 꿈도 모두 실어갔다. 이번에는 어떤 꿈을 입주시킬까? 그렇게 보름 정도 분주하게 공사하고 들어선 가게는 그리 신선하지 않은 업종, 치킨집이었다. 간판에는 수컷 암컷 닭 한 쌍이 그려져 있었다. 가게 이름은 ‘토종치킨’이었다.
토종닭은 산중턱 백숙집에서나 가능할 법한테 토종치킨이라니. 영원히 손익분기점이 오지 않을 토종닭을 재료로 쓸 리도 없을 텐데 생뚱맞다 싶었다. 아니면 일반 닭을 재료로 하되, 수라간 상궁들의 요리법을 물려받아 전통 있는 우리나라 토종의 맛을 낸다는 걸까?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맛도 궁금하고 간판의 사연도 궁금해 나는 오픈이 기다려졌다. 게다가 1주일 동안 3,000원 할인 오픈행사에다 매장으로 가지러 가면 2,000원 중복할인까지 된다고 했다. 나는 돈 쓰는 거 알면서도 돈 버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하며 가장 비싼 치킨을 주문했다. 15평 남짓한 가게에는 속된 말로 ‘오픈 빨’인지 모르겠지만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주문전화는 쉴 새 없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주문전화를 받고 있었고, 아내 분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닭을 튀기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주문내용과 주소를 재차 확인하고 주문전화를 끊은 뒤 사장님은 나를 보고는 “어서 오세요”라며 입꼬리만 올라가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장님은 치킨집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겼다. 적응 못한 인턴사원 같아 보였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털 뽑힌 닭들, 몸에 좋다는 올리브유 기름통들과 상관없다는 듯한 짙은 밤색의 콤비 자켓을 입고 있었다. 사장님이 내가 주문한 닭을 포장박스에 담느라고 움직이는데 콤비 위 깃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자세히 보니 누구나 알 만한 우리나라 대기업 배지였다.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사장님은 대기업에서 이름만 명예로운 명예퇴직을 하고 치킨집을 오픈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퇴직했던 시기와 비슷한 시기였다. 사장님은 직장 시절 회사 다닐 때 꽂아 두었던 배지를 빼는 걸 몇 달이 지나도록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발길 돌리지 않은 김유신의 말(馬)처럼 청춘을 함께 한 배지를 오늘도 착용하고 치킨집으로 출근한 것일까?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다 작년 말 이름 좋은 희망퇴직을 하였다. 본인이 희망하여 그리 불리는지, 아니면 앞으로 희망 있는 삶을 살라고 희망퇴직이라 불리는지 알 수는 없다. 회사에서 멋진 이름을 붙여 주어 고마워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그렇게 꿈보다 해몽 좋은 희망퇴직을 하였다.
어느 날, 해가 중천인데 작은 박스 하나 들고 오는 남편의 낯빛, 퇴근 때 보는 처음 보는 햇빛이 익숙지 않아 눈이 부셔서일까?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남편은 퇴직 후 애써 담담한 척하며 세계여행이다 창업이다 견적 뽑느라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분주했다. EBS 세계 테마기행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부터 시작하더니 TV홈쇼핑의 여행상품 열혈 시청자가 되기도 했다. 집에는 온통 여행사 안내책자와 여행 파워 블로거들의 글들이 인쇄되어 수북이 쌓였다. 그 위로는 장년층 취업지원센터, 시니어 일자리센터 등의 브로셔들도 함께 있었다. 곧 여행갈 거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친구들과의 여행 계획에도 빠지고 늘 다니던 문화센터 퀼트교실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문화센터는 한 학기 지나고 다음 학기 강좌 안내 책자가 집으로 배달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창업과 여행의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 남편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온 책자를 뒤적인다. 문화센터 책자는 내 앞으로 배달되는 터라 남편은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웬일일까 생각하는데 남편이 단소나 배워볼까? 한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만 바쁜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취미라고는 거래처 접대 때문에 필요했던 골프뿐인 남편이 새로운 취미를 가지면 좋겠다 싶어 반가웠다. 남편도 나의 지지가 반가웠는지 다음 학기에 단소교실 신청할까, 라며 본격적으로 강좌내용을 훑어보더니 “어? 단소를 사야 되네? 그런데 단소가 30만 원이나 하네.”라며 강좌 안내 책자를 다음 페이지로 휙 넘겨 버린다.
나는 그때 알았다. 희망퇴직이 어떤 건지를. 몇 달째 창업과 세계여행 견적만 뽑고 있을 때만 해도 몰랐다. 생전 보지 않던 홈쇼핑을 보고 있을 때만 해도 몰랐다. 아무리 퇴직을 하였지만 대기업 부장으로 퇴직한 남편에게 30만 원은 취미생활하기에 무리가 되는 돈이 아니다. 아직도 문화센터 안내책자를 덮지도, 강좌를 신청하지도 못하고 보고 있는 남편은 해에 눈부셔 하며 퇴근하던 그날, 애써 담담한 그때 낯빛과 같다.
다음 주 나와 친구 몇몇은 요즘 안 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눈썹과 아이라인 문신을 위해 피부관리실 예약을 해두었다. 한 친구는 십 년 전에 했는데 희미해져서 다시 하는 거였고, 나는 시술이 아프다는 말에 무서워서 십 년을 망설이다 이번에 큰 결심 한 거였다. 동안(童顔)에 관심 많은 친구 지인 소개로 시술 후 3년간 A/S보장을 약속받고 남들보다 싼 가격인 30만 원에 하기로 했다.
나는 잠시 볼일 보러 간다며 이번 시술을 주도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워서 못 하겠다며 말이다. 그리고 문화센터에 전화해서 단소 구입방법을 물어 보았다. 길거리 옷가게 유리에 내 얼굴이 비친다. 머리카락처럼 눈썹도 빠지는지 희미해진 눈썹 위로 단소 부는 남편이 어른거린다. 나는 단소를 사고 가게를 나오며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보! 더 늙어 작은 단소 구멍이 안 보이기 전에, 마른기침으로 호흡 끊기기 전에 두 팔뚝의 힘으로 단소 들고 아름다운 사랑 노래 들려주기 바래요.’라고.
오늘도 꿈을 실어 나르는 인테리어 아저씨의 트럭이 동네에 왔다. 오늘은 또 어떤 피지 못한 꿈을 실어가고 새로운 꿈을 싣고 온 것일까? 백 년 뒤에도 시애틀의 백 년 된 치킨집에 주문전화를 걸면 배지 단 콤비 입은 사장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난 희망 퇴직한 남편에게 ‘희망단소’를 선물하고 토종 치킨 한 마리 안주 삼아 맥주 한잔 하자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