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227회). 뉴질랜드 타임즈. 13/12/201.금.
런웨이(Runway)
대장간
합창 서곡
새벽 공기를 가르는 쏴한 질주!
내리막 활주로(Runway)를 진입하는 순간, 앤디가
랜딩 기어를 넣었다. 눈앞에 찬란하게 빛나는 다이어몬드 보석 들. 끝없이
내리 펼쳐져 있었다. 앤디의 입에서 탄성이 솟았다. 히브스커스
코스트 하이에이웨이에서 걸프하버로 향하는 페니쉴러 준령, 왕가파라오아 로드. 도로 중앙을 구분하는 플러쉬 메디언(Flush Median)에 박힌
전자 야광 안내 표식들이 군기가 바짝 든 채로 도열하고 있었다. 새벽 버스 운전 시작이 대장간 합창
서곡으로 경쾌했다.
앤디가 집에서 일어난 건 새벽이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일찍 집을 나섰다. 실버데일에 있는 회사에 도착해
빈 버스를 몰고 나선 길이었다. 빈 버스로 걸프하버까지 가서 첫 손님을 실어나를 판이었다. 첫 출발지에서 히브스커스 코스트 스테이션으로 오면 2층버스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출근 손님들은 스테이션에서 2층버스로 갈아타고
오클랜드 시티로 출근하는 연계 시스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첫 시작 운전이 탄력있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표정도 생기가 넘쳤다.
앤디가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고부터 삶의 모드가 180도 달라졌다. 이제 한 달이 지난 뒤, 어느 정도 회사 일에 적응이 됐다. 오랜 세월 택시 운전하다 2년 전 버스 일을 시작했을 때도 생활에 탄력이 붙었다. 2년 여
버스 운전 경력을 가지면서 새로운 버스 회사로 발을 들여놓자 혁명 같은 변화가 따랐다. 무엇보다 일
량을 확 줄였다. 주당 60시간 일에서 40시간으로. 주 6일에서 5일로 바뀌니 딴 세상이 열렸다.
여백과
빈 공간
나이를 생각하고 몸을 다스려가며 살아야 한다는 앞선 동료들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제 몸이 내 몸이 아니라고. 과로로 몸아
망가지면 자신은 물론 가족이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성경말씀도 새겨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어제는 일찍 끝났다. 헤어컷
샵을 찾아 덥수룩한 머리를 시원스레 쳤다. 여름이라 짧은 머리가 개운했다. 런웨이(Runway), 단지 활주로로만 해석할 일도 아니었다. 꽉 차있으면 여백과 빈 공간이 없어 답답했다. 그 것이 비워지고
정리되니 생각의 속도도 시원하게 질주했다. 회사를 바꾸며 나타난 여러 변화 중 하나는 과감한 정리였다. 십 수년 째 같은 집에 살다 보니, 책들과 원고 서류들로 책장과
박스가 꽉 차있었다. 무려 한 달여에 걸쳐 시간나는대로 정리해나갔다.
용도가 지난 서류와 메모 스크랩 철을 덜어내고 재 분류했다. 종이 쓰레기 버리는 큰 빈(Bin)에 가득할 정도의 종이가 나왔다. 빼곡히 박힌 책장이 듬성듬성
공간이 생겼다.
예전에 일을 많이 한 날은 퇴근하면 허기지고 입이 유달리 당겼다. 자연스레 고기도많이 들었다. 이번에 일양을 줄이며 식생활도 과감하게
바꿔나갔다. 채식으로 바꾸며 먹는 고기 양을 줄였다. 게걸스레
빨리 먹던 식습관도 천천히 꼭꼭 씹어 삼켰다. 5kg 정도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더부룩하던 몸과 마음에도 여유공간이 생긴듯했다. 미니멀라이징 (minimalizing )의 효과가 가시화되었다. 시간나는대로 매일
한 시간 이상씩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스쿼트운동도 꾸준히 해나갔다.
매일 20번씩 한 세트로 10여차례했다. 부실해지기 쉬운 하체 근육을 탄탄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과로에
장사 없다
그제는 늦게까지 일했다. 퇴근해
저녁을 먹고, 쉴 때였다. 전화가 울렸다.
-앤디 형님, 갑자기 제 왼쪽 가슴에 압박감이 와서 숨을 못 쉬겠어요. 죽겠어요.
숨 넘어갈 듯 다급한 목소리였다.
전에 같은 회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젊은 동료였다.그는 몸을 너무 쓰는 편이었다. 온 종일, 회사 트럭 운전 시간도 길었다. 그의 아내는 몸이 약한 상태였다. 소소한 집안일까지 챙겨야 했다. 본인을 위해 쉬는 시간이 거의 없어 보였다. 앤디는 그런 그가 마음에
걸렸다. 과로에는 장사가 없었다. 111 응급 구조대로 연락해
노스쇼 병원 응급실로 가 보라고 일러주었다.
앤디가 젊었을 때는 몸도 마음도 자유로웠다. 마음만 먹으면 몸 가리지 않고 과로도 불사했다. 하고 싶은 일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서 폭 빠졌다. 할 수 있는 일도 따지지 않고 즐겁게 봉사했다. 해야 할 일은 어떤 상태에서도 효율적으로 일해 필요한 수입을 맞춰나갔다. 앤디
몸 자체가 완전 연소하는 효율 좋은 엔진이었다. 밥맛도 좋았고 숙면도 취했다. 인생 120세라치면 60세
이전은 전반기, 그 때는 그게 통했다. 오르고 또 올라가도
괜찮았다.
이제는 정상에서 내려갈 나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 내려갈 하산 길에 더 신경을 써야할 때라고. 인생 선배들이 앞서서
알려주었다. 부부관계, 자식농사, 취미 생활, 인간관계, 소일거리, 신앙 생활, 건강 유지… .
각성의
칼날
걸프하버 종착지점에 버스를 주차시켰다. 잠깐 휴식시간. 새벽기운으로 뒤덮인 걸프하버를 바라보며 스쿼트 20개, 한 세트를 마쳤다. 승객들을
태우고 골프장 옆 도로를 돌아 60~70 km/h 로 왕가파라오아 도로를 달렸다. 히브스커스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오클랜드 시내로 향할 2층버스에 승객을 연결시켜주었다. 이번에는 빈 버스로 와이에라 핫
풀까지 달렸다. 70~80km/h 속도로 핫 필드 비치도로를 질주했다.
와이에라 핫 풀 종점에서도 휴식시간. 멀리 와이헤케 아일랜드로 팔을 뻗으며 한 셋트 스쿼트를
했다. 가슴에 태평양 바다 기운이 스며들었다.
지금은 직관에 따라 살아야 할 나이가 됐다. 60 갑자 인생 한 바퀴를 돌면서는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그동안
겪은 경험과 지혜로 순간 판단이 단호해졌다. 각성의 칼날 덕분이었다.
달려야 할 앞길에 여러 가지 장애물과 잡동사니들이 놓여있다면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치워야
했다. 런웨이(Runway), 확 뚫린 도로. 달릴수 있는 도로. 생활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길이었다. 몸 속 혈관도, 마음 속 생각도,
인간관계도 막힘 없이 뚫려있을 때, 여유와 평안이 따랐다.
직관이 통하는 환경과 생활이 런웨이 자체였다. 앤디의 엔진이 탄력있게 부르렁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