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善惡) 초월하면서 선악을 수용하라”
<37> 이참정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답장 ①-4
[본문] 설봉(雪峰)선사가 고산(鼓山)스님의 공부 인연이 성숙하였음을 알고 하루는 홀연히 가슴을 움켜잡고 “무엇이냐?”라고 하였다. 고산스님이 후련하게 깨달아서 깨달은 마음까지 곧 없어지고 오직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고 말았다.
설봉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도리를 지었는가?”라고 하니, 고산스님은 다시 손을 흔들면서 말하였다. “화상이시여, 무슨 도리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설봉선사는 곧 그만 두었다.
[강설] 대혜선사는 또 한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 수행자의 공부가 순숙하여 깨달음이 이르러 온 것을 알아보고 그를 깨닫게 하는 선지식의 지도방편이 참으로 간결하고,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그 표현도 참으로 멋지다.
선의 정신을 말 할 때 언제나 간소(簡素)를 든다. 즉 아무런 번거로움이 없이 간단하고 소박함이다. 또 탈속(脫俗)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연스러움과 유현(幽玄)함도 빼놓을 수 없다. 선의 정신 중에 중요한 간소, 탈속, 자연, 유현, 이 모두가 다 함축되어 있는 거량이다.
얼마나 간소하고 자연스럽고 탈속한지 숨이 막힐 듯하다. 군더더기 설명은 오히려 글씨를 쓰고 덧칠을 하는 격이다. 본문을 반복해서 읽고 음미할 일이다.
모든 존재 일체 상대적으로 구성
상대적 편견 떨쳐야 온전한 진리
[본문] 몽산도명(蒙山道明)선사가 노행자(盧行者)를 따라가서 대유령에 이르렀다.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하니 노행자가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던져놓고 말하였다. “이 가사는 믿음을 표하는 것입니다. 힘으로서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가져가려면 가져가십시오”라고 하였다.
도명선사가 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곧 말하기를, “나는 법을 구하지 가사와 발우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컨대 행자는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노행자가 말하였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어떤 것이 도명상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까?” 도명상좌가 곧바로 크게 깨닫고 온 몸에서 땀이 흘렀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고 물었다. “위로부터 내려온 비밀한 말과 비밀한 뜻 밖에 또한 다시 어떤 뜻이 있습니까?”
노행자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서 말한 것은 곧 비밀한 뜻이 아닙니다. 그대가 만약 자기의 본래면목을 반조하면 비밀한 뜻이 도리어 그대 쪽에 있습니다. 내가 만약 설명한다면 곧 비밀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강설] 대혜선사가 들려주는 세 번째 사례다. 이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진 6조 혜능선사가 5조 홍인선사로부터 대중들 몰래 법을 전해 받고 밤중에 야반도주하다가 신표(信標)인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 달려온 도명선사에게 붙들려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이다. 짧은 대화지만 불교의 궁극적 본질이 다 포함되어 있다.
즉 본래면목이란 부처의 경지며 진리자체며 깨달음의 경지다. 노행자가 말한 그 경지란 선악을 초월하여 선악과는 관계가 없으며 한편 선악을 다 수용하는 경지다. 여기서 선악이란 삼라만상 모든 존재는 일체가 상대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그 본질인 실상은 상대적 차원을 수용하면서도 상대를 초월한 경지다. 일반불교는 선을 권장하고 악을 배척하지만 그것은 상대적 편견에 떨어진 치우친 견해가 되기 때문에 온전한 진리가 될 수 없다. 본래면목에 접근하지 못한 가르침이다.
불교의 궁극적 경지인 본래면목, 즉 부처의 경지란 이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도명선사는 온 몸에서 식은땀을 흘리게 되었으며 눈물로써 예배하게 되었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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