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인가? 2 --- 진짜는 시련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약1:2~4)
오늘은 “진짜는, 시련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의 말씀을 나눠요.
1절을 볼까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가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나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였어요. 로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었죠.
이들이 왜 흩어졌나요? 나라가 망해서였죠. 핍박을 피해서였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위로가 필요했어요. 도움이 절실했어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해결하리라.”의 말씀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이들에게 쓰는 첫 내용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2절)였어요.
실망스러웠을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도 아쉬움이 많아 보여요.
한두 가지의 시험을 당하는 게 아니에요. 여러 가지 박해와 불이익에 시달리고 있어요.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쳐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세요.
계속 힘들게 살라는 건가요? 그 정도는 괜찮다는 건가요?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현실에선 그 정도는 감당하라는 건가요?
★도대체 무슨 유익이 있다고 기쁘게 여기라고 하나요? 3, 4절에서 답을 줘요. “이는(Because)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에는 큰 그림이 있다는 거예요. 시련이 오면 인내를 하게 되고, 이 인내를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에 없게 될 거라고 하세요.
★그러니까 여러 가지 당하는 시련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기 전에 치르는 시험이라는 거예요.
한우가 다 맛있지만, 안동이나 예천 지방의 한우가 정평이 나 있죠.
다른 지방에 비해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서 소들이 그 시련을 견디어 냈기 때문에 더 맛있다고 해요.
오징어도 기온이 일정한 바닷가에서 말린 것보다, 일교차가 큰 산골에서 말린 것이 더 맛있어요.
대관령 황태가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는 이유도 만찬가지죠.
김장철인데요. 봄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하우스배추보다 해남지역에서 한겨울에 재배한 월동배추가 당도가 높고 좋아요. 시련기를 겪었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모두 시련을 거친 것들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시련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기만 하고 두려워하기만 해요.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무엇 하나 좋은 결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야고보는 말씀해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2,3,4절)
시편 기자도 말씀해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
★그런데 사실, 고난이 있을 때는 힘들기만 하지 이 큰 그림을 깨닫기 어려워요.
요 9장에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요.
사람들은 부모의 죄이거나 그 사람의 죄 때문인 것으로 알았어요.
그 사람도 그렇게 알고 살았어요.
그런데 그는 눈을 뜨고 나서 깨달았어요. 나의 죄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는 것을요. 큰 그림을 뒤늦게 깨달아요.
저도 그런 일들이 많았어요.
고난이 올 때 내 죄 때문이라는 자책이 들어요.
어려움이 생길 때 이것 밖에 되지 못한다는 무능함에 괴로워요.
겪게 되는 괴롭고 아픈 현실 때문에 힘들기만 해요. 고난이 달갑지 않아요
그런데 그 과정을 겪으면서 주님과 가까워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겪고 나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 큰 그림을 깨닫게 돼요.
그러다보니 시련이 찾아오면 이렇게 생각해요. ‘나에게 또 시련의 과정이 필요한 때가 되었나보다. 하나님이 또 나를 좋게하시려고 단련시키려나보다.’ 생각하고,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려고만 하지 않아요.
야고보도 이런 큰 그림을 보여 주려고 흩어진 열두지파 성도들에게 말씀해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3,4절)
이것은 흩어진 열두 지파 성도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 큰 그림을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영적으로 나를 높여야 해요.
이를테면 큰 풍경, 전체 풍경을 보려면 높은 고지에 올라가야 하죠.
마을 전체를 보려면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는 것도 그렇죠.
★하나님의 큰 계획을 보려면 영적으로 나를 높여야 해요. 높은 고지에 올라가야 해요.
★어떻게 올릴 수 있나요? 다양해요. 예배, 말씀, 기도, 찬양, 섬김 등을 통해서 영적 고지를 높일 수 있어요.
특히 야고보는 기도를 강조해요.
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해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기도하라고 해요. 그래야 영적 고도가 올라가고 큰 그림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야고보서 결론인 마지막 부분에서도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5:13)며 기도에 대한 말씀을 거듭하면서 마쳐요.
기도할 때, 영적 고도를 높아져서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인내하게 되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기뻐하라는 거였어요.
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세요.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베드로도 같은 말씀을 하세요.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2,13)
★모두 한결같이 고난이 유익하다고 해요. 힘들고 괴롭지만 중요하다고 말씀해요.
그 고난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인내를 배우고, 부족함 없이 채워지는 영적 비밀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도들이 한결같이 고난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고난은 마땅하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눅9:23, 마16:24) 하셨기 때문이에요.
얼마나 중요했던지 마가도 누가도 마태도 모두 기록했어요.
★이 말씀에 따르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찾아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길을 걸어야 해요. 예외는 없어요.
정말 제대로 믿는다면 고난이 마땅해요. 말씀대로 사는데 고난이 없을 리가 없어요.
주를 위해 섬기는데 시험이 없을 리 없고, 남을 위해 내 것을 나누는데 시험이 없을 리 없어요.
제대로 믿는데 시련이 없다면 은혜만 받을 뿐 섬기지 않기 때문이에요.
머리로는 믿지만, 땀과 눈물로 신앙생활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믿음 생활이 그런 거라면 나는 믿지 않겠다.’ 할 수 있어요.
저도 그래요. ‘이렇게 힘들 할 바에야 차라리 하지 말자! 힘들게 목회하기 싫다! 쉽게 하자!’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고 쉽게 하면 은혜가 적고 역사가 적어요.
그리고 사실 엄밀히 보면, 인생사 다 힘든 거예요.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 중에 고난 없는 사람은 없어요.
시련이 없는 곳은 무덤뿐이죠.
놀고먹기만 하는 사람도 인생이 힘들다고 말해요.
육신을 입고 사는 삶 그 자체가 고난인 거예요.
시련이란, 해가 떠서 지는 것만큼이나 불가피한 거지요.
해가 뜨는 일과 지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나요?
받아 들여야 하듯, 시련도 그래요. 불가피한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어요.
★‘내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고난을 경험하느냐? 아니면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고난을 경험하느냐?’이에요.
답은 단순해요.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고결한 고난이어야 해요.
말씀을 따라가면서 당하는 고난이어야 해요.
이 고난은 가치 있을 뿐 아니라, 이 고난 후에 반드시 온전하게 된다는 약속이 있어요. 일거양득이죠. 고난은 나를 영으로도 육으로도 유익되게 하고, 이 생에도 저 생에도 유익되게 하는 일이에요.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해요.
★‘시련 없는 삶이 아니라 시련을 감당해 내는 삶을 살 수 있어야 겠구나.’로 바꾸어야 해요.
기도를 바꾸어야 해요. ★“하나님, 제게 가벼운 십자가 아니라 강한 어깨를 주옵소서.”
★이래야 진짜 그리스도인이 돼요. 찐 크리스챤이 돼요.
우리 모두, 이 생각을 하고, 이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해요.
그래서 좋은 열매를 얻게 되기를 축원 드려요.
온전해지고 부족함이 없게 되는 은총을 얻게 되길 축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