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지부티 출항
오전 5시에 잠이 깼다. 어딘가 텅 빈 동굴에서 깨어난 느낌. 커피를 끓이며 항해 동안 읽을 전자책 몇 권을 다운 받고, 텐더를 정리한다. 머큐리 선외기 엔진을 분리한다. 물에 빠뜨리면 난리니까, 밧줄을 여기저기 잘 묶어 놓고 작업한다. 성가시지만 안전하다. 헬리야드와 전동 윈치로 텐더를 끌어 올려 정리한다. 단단히 고박하고 몇 번이고 확인한다. 헬리야드도 다시 잘 정리해 둔다. 그래도 큰 파도에 맞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좌우현 펜더들을 다시 잘 확인하고 묶는다. 홍해 항해 때 펜더를 잃어버릴 뻔한 뒤로는 한 두 번 씩 더 묶는다. 뒷좌석을 장착하고 단단히 고정한다. 어제 아산이 가져 온 배터리 연결 케이블로 3번째 배터리를 잘 고정한다. 배는 항상 파도의 흔들림과 엔진의 진동이 있으므로 볼트 류를 잘 고정해야 한다. 문제는 너무 세게 조이면 볼트가 부러져 버리는 거다. 토크 렌치가 없으니 감으로 적당히! 다.
이제 하수펌프에서 새는 물도 잡아 배 바닥이 말끔하다. 추가 배터리도 장착했다. 하나씩 수리하면서 항해한다. 어제 알았는데, 머큐리 텐더 엔진을 너무 세게 가동하면 중간에 시동이 꺼져 버린다. 3/3 일 때 꺼지고, 2/3 이하일 때는 잘 작동된다. 새로운 문제로 대두 될 수 있으므로 오만 살랄라에 가면 다시 점검해 보아야겠다. 마지막으로 배를 한 바퀴 돌며 기름통, 펜더 등이 잘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압력 밥솥에 쌀밥을 짓는다. 이상하게 요즘 배고픈지 잘 모르겠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너는 먹어야 돼 하고 지시한다. 입맛이 쓰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싼다. 다행이다. 버터와 간장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비빈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김치. 물 한잔으로 아침을 마친다. 건강을 잃으면 항해도 끝이다. 리나는 아직 비행기 안에 있겠지?
이번 목적지는 오만의 살랄라 마리나다. 물과 전기가 공급된다고 하여 가족이 가면 편리할거라 기대했었다. 인근 룰루마켓이 훌륭하다는 추천을 받았는데, 의미 없다. 그저 물과 식량만 보급하면 된다. 잠시 들러 가는 곳에 불과하다. 살랄라에서 일기예보를 보고 결정하겠지만, 몰디브도 가지 않는다. 기상이 나쁘지 않으면 그냥 스리랑카 Galle 로 직행할 생각이다. 거기서 랑카위 까지만 가면 3/5 가는 거다. 힘을 내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시애틀 사는 여동생와 강릉의 지인들에게 격려 전화를 받았다. 랑카위 쯤에서 임대균 선장과 크루 1명이 같이 올 거다
이제 오전 8시 30. 출항 준비를 마쳤다. 일주일 후에나 인터넷이 될 거다. 연락은 오직 위성전화 뿐. 가자, 강한 역풍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출항하며 출항 신호 나팔을 불자, 다른 요트의 선장들이 나와 같이 나팔을 불며 배웅한다. 지부티에서의 일주일. 내 삶에 너무 큰 슬픔, 이별을 준 잊지못할 장소다. 언젠가 지부티에 다시 올일 있을까? 바람은 12노트 클로스홀드, 곧 16노트 이상의 역풍이 불거다. 속도니 시간이니 신경쓰지말고 안전하게 만 가자
첫댓글 기상조긴이 좋을땐 살짝 오만함이 생기다가도 날씨가 나빠지면 길잃은 어린양이 된듯한 쓸쓸한기분
많이 느껴본 심정입니다.
역풍항해 잘 견디시고 살랄라에 무사안착하시길~~~
21시간 만에 회항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