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千字文) 80 _ 昆池碣石 鉅野洞庭
곤지갈석 거야동정
昆池碣石 鉅野洞庭
<昆 맏 곤 / 池 못 지 / 碣 돌(비석) 갈 / 石 돌 석
鉅 클 거 / 野 들 야 / 洞 마을 동, 밝을 통 / 庭 뜰 정>
못은 곤지(昆池), 산은 갈석(碣石)이고
늪은 거야(鉅野), 호수는 동정(洞庭)이다.
▶ 한자공부
昆 : 날 일日과 견줄比가 결합. 해에 견준다는 데서 ‘맏’, 해가 나란히 비추는 사물이 ‘많다’.
池 : 물 수氵와 어조사 야也(주전자). 주전자와 같이 물이 담긴 곳 ‘못’.
碣 : 돌 석石, 어찌 갈曷(날 일日, 베풀 개匃). 햇빛을 쬐는 높은 돌이라는 데서 ‘비석.우뚝 솟은 돌’.
石 : 언덕 아래 뒹굴고 있는 '돌'의 모습.
鉅 : 쇠 금金과 클 거巨. 큰 금속이라는 데서 ‘크다.강하다’.
野 : 마을 리里와 나 여予(직기織機에서 가로 실을 좌우로 보내는 부품, 여→야). 마을 사이를 오가는 ‘들’.
洞 : 물 수氵와 같을 동同(모두가 함께 말하다). 하천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동네’.
庭 : 집 엄广과 조정 정廷(계단을 오르내릴 정도의 큰 건물 → 조정). 대궐 안의 ‘뜰’.
▶ 해설
곤지(昆池) 즉 곤명 전지(昆明 滇池)는 운남성 곤명의 서남쪽에 위치한 담수호로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담수호다. 고지대에 위치하여 주변의 산수가 빼어나, 고원의 명주(高原明珠)라는 칭호가 있다. ‘전(滇)’은 운남성의 옛 이름이다.
한 무제 (漢武帝)가 장안에 곤지라는 인공 호수를 만들었는데 수군이 훈련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곳 곤명지(昆明池)를 곤지라고도 한다.
갈석(碣石) 즉 갈석산(碣石山)은 현재 중국 하북성 창려현 북쪽에 있는 산으로 발해에서 15 km 거리에 있다. 갈석(碣石)이은 ‘돌(石)로 새긴 비석(碣石)’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갈석산 동쪽에 하북성(河北省) 진황도(秦皇島) 시(市)가 있는데 이는 진시황이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시황은 천하를 평정한 후인 서기전 220년부터 215년까지 자신이 차지한 영토를 순시했는데 동쪽 끝으로 갈석산까지 왔다. 이곳까지가 진나라의 강역이었다. 그러면 갈석산 동쪽의 요동 지역은 진나라가 아닌 (고)조선에 속했음을 추정 할 수 있다.
갈석(碣石)은 북평군(北平郡) 여성현(黎城縣)에 있다고도 한다. 비석 갈(碣) 대신 높이들 게(揭)로 표기하기도 한다. 이곳은 현재 산서성(山西省) 장치시(長治市)로 태항산맥의 서쪽에 위치하였으며 팔천협(八泉峽)의 절경으로 유명하다.
거야(鉅野)는 중국 산동성 태산(太山) 동쪽에 있는 거대한 평야지대이다. 한나라 말 여포의 부하 설란(薛蘭)이 거야에 주둔하다가 조조군에게 죽었다고 한다(195년). 이 설란의 14세손이 바로 당 (唐)나라가 668년에 평양에 설치한 안동도호부 초대 책임자인 설인귀(薛仁貴)이다. "사기(史記)"「봉선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한무제 3년(기원전 132년), 황하가 범람하여 호자구(瓠子口)에서 둑이 터져 동남쪽으로 흘러 거야택(巨野澤)을
지나 사수(泗水)로 유입되어 회수(淮水)와 통했다. 이로써 양(梁)과 초(楚) 일대는 매년 재해를 입게 되어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훗날 수호지 양산박(梁山泊)의 무대가 되었다.
현재 산동성(山東省) 하택시(菏澤市) 거야현(巨野縣)과 가상현(嘉祥縣) 일대이다.
동정호(洞庭湖)는 악주(岳州)의 장강(長江) 남쪽, 팽려(彭蠡. 현재 파양호鄱陽湖의 옛 지명)의 서쪽에 있다. 이곳은 호남성과 호북성의 경계가 되는 거대한 호수로 현재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岳陽市)이며, 두보의 시 등악양루(登岳陽樓)로 유명하다.
- 登岳陽樓(등악양루) / 杜甫(두보) -
昔聞洞庭水(석문동정수) 옛날에 동정호에 대해 들었더니
今上岳陽樓(금상악양루) 오늘에서야 악양루에 오르는구나.
吳楚東南拆(오초동남탁)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남쪽에 갈라졌고
乾伸日夜浮(건곤일야부)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구나.
親朋無一字(친붕무일자) 가까운 친구의 편지도 없으니
老去有孤舟(노거유고주) 늙어감에 외로운 배 뿐이로다.
戎馬關山北(융마관산북) 싸움터 말이 관산 북쪽에 있으니
憑軒涕泗流(빙헌체사류) 난간에 의지해 눈물.콧물 흘리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