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독립운동가들 이야기
아들아
아빠가 이번에 네게 해줄 이야기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에 대해 한번 얘기해 볼까 싶다.
프랭크 W, 스코필드 박사
프랭크 W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1889~1970) 박사.
한국명은 석호필(石虎弼). 영국 태생 캐나다인 선교사이자 의학자
그는 1919년 3월 1일, 3.1운동을 지원하고 기록하여 알렸으며..3.1운동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자행된 수원 제암리에서의 학살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세계에 폭로하여
알리면서 일제에 맞서 우리를 도왔던 분이란다.
평소에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3.1운동 정신을 알리고자 애쓰셨던
분으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고, 사후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선생은 미국인 선교사이자 교육자,
한글학자이면서 역사가이기도 했지. 가장 적극적으로 우리의 편이 되어 일제와 싸운
투사이기도 했단다.
최초의 서양인 한글학자로서 한글의 체계를 세우고, 사민필지라는 한글교과서를 펴내고
주시경 선생같은 한글학자들을 양성하여 한글보급에 공헌했으며,
우리의 역사를 정리하여 일제의 침략에 맞서는 수단으로 삼고, 교육하고 알려서
우리의 자산으로 삼아 일제와 싸우는 수단으로 삼게 하였지.
또한 그는 1906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파견을 건의하여 실행하도록 지원하고
스스로는 고종황제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 행정부에 전달하여 일제의 침략 부당성과
미국의 지원을 호소하였는데..미국 정부가 외면했었다.
당연히 일본에 미운털이 박혀서 1910년 국외로 추방 당했지만, 미국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며 계속 일본 제국주의와 맞섰고..
광복 후 1949년 8월, 80이 훌쩍 넘은 노구를 이끌고 한국으로 돌아와 일주일 후
돌아가셨고, 그의 소원대로 한국 땅, 서울 양화진의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묘비(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묘역)
그의 묘지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
선구자이자 한국의 친구.
'나는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아니라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
어니스트 T, 베델 선생
어니스트 베델(Ernest Thomas Bethell,1872~1909). 한국명 배설(裴說).
영국 태생의 언론인. 그는 뭐랄까. 펜을 든 가장 열렬한 푸른 눈의 항일투사?
그는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지자 영국 언론의 특파원으로 이 땅을 처음 찾았지.
그런데..그는 어느 순간 강력한 항일언론인으로 변신했어.
이때는 일제가 통감부를 설치하고 대한제국의 주권을 사실상 강탈하였으며
언론을 통제하며 강력하게 억누르던 시기..그런데 그는 그 영향력에 벗어나 있었고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인이 아닌 영국인이었으니까.
대한매일신보 편집국의 모습
베델은 국한문혼용과 순국문으로 된 대한매일신보,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하여
편집장이 되고, 양기탁 같은 애국지사들과 함께 항일전선의 선봉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대한의 백성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의 의식을 깨웠단다.
제국주의 일본에게 그는 눈에 가시였지. 가장 껄끄러웠어.
일본은 난감했지. 하필이면 우방인 영국인이 왜 자기가 아니라 한국을 편드는가.
일본은 그들의 침략행보에 걸림돌이 된 영국인을 우리나라에서 몰아내고,
또 그의 신문들을 폐간시키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집요했지.
영국과 외교적 마찰도 있었고..그 중심에 베델이 있었지.
베델은 흔들림 없었지만..일본과의 투쟁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너무 상해서인지
몸이 버텨내지 못했단다.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고..
한국인들은 든든했던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겼지.
그는 죽어서 한국 땅..서울 마포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그의 유언은 이러했단다.
"나는 죽지만 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민족을 구원하라."
그리고 대한민국은 1968년 그의 영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프레데릭 아서 매켄지
프레데릭 아서 매켄지(Fredrick Arthur Mckenzie.1869∼1931).
캐나다 태생의 언론인이자 저술가이며 아빠가 이 공간에서 여러번 언급했으니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그도 역시 1904년 러일전쟁 때 영국의 '데일리 메일'의 특파원으로 한국을
방문했었지. 종군기자로서 말이다.
그리고 1906년 이때는 일본의 한국 강점과정과
당시 불타 오르던 의병전쟁을 비중있게 다루게 된다.
프레데릭 매켄지의 의병사진 (대한제국의 비극 中)
아들아, 이 취재 과정에서 그는 마침내 경기도 양평의 지평 어디쯤에서 마침내
의병들과 마주하게 되고..그 역사적인 사진과 인터뷰가 행해졌단다.
그 인터뷰 내용은 이미 여러번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프레데릭 아서 매켄지는 '대한제국의 비극(Tragedy of Korea)'과
자유를 향한 대한제국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을 저술하였고..
이를 통해 그가 목격한 대한제국의 망국사와 대한제국의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의병과 민중들의 눈물겨운 투쟁, 3.1운동의 전개 그리고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전 세계에 알리고..우리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했어.
그리고..대한민국은 2014년 3월 1일, 3.1절 기념식 때 그의 공로를 기억하며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단다.
아들아, 네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오늘은 여기까지.
아직은..더 알려줘야 할 분들이 남아있거든. 어떠냐. 놀랍지 않느냐?
아름다운 산하(山河).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심성의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 온 역사와 문화..
아마도 그분들은 이런 것들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아.
그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푸른 눈의 한국인이 되어 우리와 함께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