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의 일대기.
조식 영정 사진 | | 남명 조식선생은 1501년 6월 26일 합천 삼가에 태어나 성리학의 대가이며 사림의 영수로서 한평생 갈고 닦아 쌓아올린 학문(學文)과 도덕(道德) 인격(人格)과 사상(思想) 철학(哲學) 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많은 영재들을 모아 가르쳤으며, 여기에서 배운 학생들이 조선시대의 문(文)과 무(武)와 정치(政治)와 학술계를 주도하는 중심인물이 되었고, 남명 사후 20년인 1592년 4월14일 임진왜란을 당하여 의령에서 왜적을 물리친 망우당 곽재우(忘優當 郭再佑(조식 외손서)),와 합천에서 의병을 창설한 창의장 래암 정인홍(來庵 鄭仁弘 영의정),과 고령에서 절충장군인 송암 김면(松菴金沔합천군수), 함양에서 충의공인 조종도 (大笑軒趙宗途 함양군수),와 초계에서 의병장 이대기(雪壑 李大期)와 전치원(濯溪 全治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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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명의 의지사들이 남명의 제자들로서 왜놈들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란을승리로 이끌어 일본정부는 남명 조식을 의병의 아버지라 해서
두려움과 미움을표했다.
또한, 학계와 정계에 명망 높은분은 덕계오건(德溪吳建홍문관전한),옥계노진
(玉溪盧鎭이조판서), 각제 하항(覺濟 河降 설중매평), 수우당 최영경
(守遇當 催永慶 희세의 인물 ),동강 김우옹(東崗 金宇翁 대사헌 조식의 외손서),
한강 정구(寒岡 鄭逑대사헌),약포 정탁(藥圃 鄭琢 좌의정),신암 이준민
(新庵 李俊民좌참찬<조식 생질>),
김효민(金孝民)등이 남명 문하에서 글을 배운 사람들이다.
남명의 죽마고우로는 일제 이항(一濟 李恒감찰장령),
동고 이준경(東皐 李俊慶 영의정),
숭덕제 이윤경(崇德濟 李潤慶 평안감사) 목계 강혼(木溪 姜渾함경감사)등과 함께 자랐으며,
20살 때 생원진사 시험에1~2등으로 합격했을 때 사귄 평생지우 대곡 성운
(大谷成運명종때 은사 승지 추증), 청송 성수침(聽松 成守琛 명종 때 은사 )과
더불어 영남의 3선배라 불리는 황강 이희안(黃江 李希顔 고령현감 판관),
송계 신계성(松溪 申季誠) 외 동주 성제원(東洲 成悌元 보은현감),
칠봉 김희삼(七奉 金希參)등 과 친하였다.
남명사상(南冥思想)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실천궁행(實踐躬行)으로
"몸소 갈고닦은 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는
실천유학(實踐孺學)을 강조했으며,
남명 철학(哲學)은:경(敬)과 아울러 의(義)를 강조한 경의협지로 "경(敬)으로써
내면을 밝혀 마음을 곧게 하고 의(義)로서 행동을 결단하여 모든
사물을처리해 나간다,는 생활철학(生活哲學)을 견지하였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당시 사회 현실과 정치적 모순에는 적극적인
비판의 자세로 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