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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1)대제사장 및 제사장들과 함께 일을 시작합니다. (2)양문부터 수리를 시작합니다. |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양을 제물로 바쳐야 하기 때문에 양문부터 복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구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재단을 쌓는 일, 신약적으로 표현하지만 예배드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의 최고 우선순위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직장생활의 성공이나 진급이 아닙니다. 사업상의 번영이 아닙니다. 건강관리를 위한 레저나 주말여행도 아닙니다. 결혼이나 생일잔치도 아닙니다. 예배가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장례식마저도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루를 앞당기든지, 아니면 하루를 뒤로 미룹니다.
심지어 교회봉사나 활동도 예배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그 어떤 직분으로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한다 하더라도 예배를 바로 드리지 못하면 모든 수고와 섬김은 헛수고입니다.
형제 자매 선교회 활동에는 잘 참석하면서도 주일 예배는 소흘히 하고 쉽게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신앙관이요, 위험한 신앙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보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들은 모두가 예배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요한복음 4:23)
예수님은 열심히 일만 하는 마르다 스타일보다는, 엎드려 예배하는 마리아 형을 칭찬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이 최초에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일까요?
구제, 선행, 선교, 봉사, 효도, 교제 … 아니올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의 첫 부분 네 가지 계명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명령입니다.
종교라는 말은 영어로 ‘Religion’입니다. 이 말은 원래 라틴어로 ‘religio’인데, “묶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곧 예배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묶이게 됩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과 묶이면 엄청난 권능과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앞에 나오는 자기 자녀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늘의 특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을 성공합니다.
특히 교회의 중직자 여러분, 언제까지 주일 예배 한번 드리고 마는 일회성 신자로 머물려하시나요?
데이비드 핀크라는 세계적인 정신위생학자도 사람이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정리해줍니다. 첫째는 일을 해야 한다. 일하지 않고 복권 당첨으로 일확천금을 얻은 사람들은 거의 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둘째는 쉬어야 한다. 적절한 쉼이 필요해요.
셋째는 사랑해야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마음에 안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합니다. 특히 이 예배는 다른 세 가지를 위한 기본이 되는, 핵심요소라고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묶여져야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은 없습니다. 예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예배를 우선하는 신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경건 생활을 우선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읍을 완전히 복구한 느헤미야는 이제 지도자를 세워야 했습니다.
자기는 바빌로니아 왕실 공직자로 휴가를 얻어 왔기에 일을 위임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의 인물됨을 무엇으로 평가하고 있습니까?
출신성분, 가정배경, 학력, 실력, 경력, 재력, 재주, 재능, 외모에 관한 설명은 한마디도 언급이 없습니다. 자기를 대신할 지도자 하나냐에 관하여 외적인 이력소개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냐 : 하나도 없다
내면적인 자질만을 소개합니다. 『진실한 신앙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피력하고 있습니다(2절).
(He was faithful man and Feared God more than most men do)
진실한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인물됨입니까?
느헤미야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내면의 중심을 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의 진실을 보십니다. 믿음을 보십니다. 신심을 보십니다. 경건성을 중시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얼마나 외모 중심, 외형 위주입니까?
요즘 강남사람들은 얼굴을 너무 뜯어고쳐서 교인관리가 어렵대요.
지금 나는 어떤 사람과 어울리기를 즐겨하고 계신가요?
혹시 교회 생활 안에서도 신앙과 관계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귐을 즐기는 유유상종으로 어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적 대화보다는 세속적 가치관에 따른 복권이나 돈 얘기가 주입니까?
19세기에 백화점을 만들어 세계적인 거부가 된 John Wanamaker는 『청교도적 경건』을 표방했습니다. 지식보다 신앙, 재능보다 믿음을 우선했습니다. 주일을 바로 지키고 신앙적으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고용했습니다. 퇴폐 이발소를 다니는 사람은 퇴출시켰습니다.
그는 심지어 백화점 사업보다 소그룹 성경공부 리더가 본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경건 생활을 우선으로 여기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큰 도우심과 엄청난 축복을 체험합니다.
우리교회를 건축한 오구건설과 관련되어 있는 호서대학은 교수 임용에 있어서 총장 인터뷰가 끝난 다음에 교목실장이 마지막 면접을 합니다. 총장이 결정을 했어도, 교목실장이 신앙 상태를 기준으로 사인을 하지 않으면 교수 채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모 대학 학장님도 신임 교수를 채용하는데 있어서 학벌이나 실력은 대동소이하기에 신앙을 우선으로 선정하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우선해야 할 일은 경건한 신앙의 생활화입니다.
이번에 Bill Hybels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영성향상 지침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첫 번째가 예배생활이요, 둘째는 매일의 경건 생활입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방바닥에 맨 먼저 닿는 부분이 발이 되지 말고, 무릎이 되게 하라.”
얼마나 고상하며 실제적입니까? 우리도 꼭 이렇게 하며 사십시다. 한번 따라서 하십시다.
직접 연습을 해보십시다.
느헤미야는 매일의 경건한 신앙생활로 하늘의 큰 특혜를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처럼 경건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우셔서 형통케 될 줄 믿습니다.
3. 헌신을 우선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제1차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5만여 명의 상세한 명단입니다.
고향 땅에 돌아온 그들은 대체로 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성벽을 먼저 재건했습니다.
그 동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자신들의 집을 지을 여유가 없었습니다(3-4절).
그런데도 자기들의 사생활보다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지키는 일을 우선으로 합니다.
개인의 주택수리보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먼저였습니다. 그들은 이만큼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였습니다.
본문 70절-72절을 보면, 여러 지도자들은 금과 은과 옷가지들을『최대한 드렸음』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상기시켜줍니다.
그들이 헌신하는 순서를 주의해서 살펴보십시다. 먼저 지도자들이 모범을 보입니다. 총독도 최대한 바칩니다. 가문의 우두머리들이 성심성의 것 기금을 내놓습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백성들까지 모두 총력 헌신을 합니다.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오백만 달러가 넘습니다. 60억이 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버는 돈을 계산하지 않으시고, 쓰는 돈을 계산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자기들의 집도 없고 생활도 안정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바치며 헌신하였던가요?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왜 헌신을 우선으로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영혼을 죄악과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요, 천국의 영원한 복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계속해서 특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이번 태신자 전도운동에 최대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야말로 최고의 헌신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헌신입니다. 엄청난 특혜 은총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일찍이 북미 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은 은혜에 감사하여 맨 먼저 예배당을 짓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짓고,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자기들이 살 집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헌신을 우선하는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20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자가 지난 20년 동안 세심하게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5%만이 실제로 헌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회사 직원 중 5%만이 충실하게 일할 뿐이라면 그 기업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헌신만이 우리가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오늘 7장의 결론은 73절입니다.
드디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각 자기 고향 땅에서 복되게 살게 되었음을 부연하여 설명하므로 스토리의 막을 내립니다. 특히 성전에서 막 노동으로 일한 사람들, 즉 막일꾼들까지도 고향 땅에서 특혜 인생을 살았음을 놓치지 않고 강조합니다.
오늘 우리도 헌신하는 만큼 금세와 내세에 백 배, 만 배의 특혜를 누릴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