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 ㅡ 하나님의 긍휼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는 자시니라"[약5:4] 다른 성경기자 역시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다"[엡2:4],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103;8]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처럼 불행과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고 사랑의 눈물을 아낌없이 쏟으시는 분이시다. 신학자 루이스 파커스트[Lewis G.Parkhust]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눈물로 표현하며, 한없이 아낌없이 쏟고 흘러나오게 하는 그 뜨거운 눈물을 통해 불쌍히 긍휼히 측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인간적 생각이나 판단으로 볼 때 눈물이나 울음은 연약하고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눈물은 실제로 인간처럼 영혼을 가진 존재 만이 울거나 눈물을 흘릴 수 있지 않은가? 더욱이 나를 위해 흘리는 눈물보다 이웃이나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얼마나 아름답고, 힘 있고, 값지고, 고귀하고, 거룩한가? 그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울 수 있고, 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특권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더러는 /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육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값으로 /드려라 하올 제 /나의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만드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金顯承. 눈물>
'눈물 - 어느 거룩하고 깊은 절망과 탄식에서 비롯된 눈물이기에
가슴에 뜨겁게 솟아 올라 두 눈에 흥근히 고이는가' <테니슨: 눈물>
췌장암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이 병상 위에서 사위어 가는 눈물로 쓴 새해 시제 詩題 가운데 흘린 "그 눈물 한방울"은 그의 말대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 처럼, 고난의 문제로 제기된 고난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만이 '숨지는 그 최후의 순간까지 지상에서의 마지막 흔적' ㅡ반석위에 새기는 영혼의 마지막 흔적, 거룩한 눈물의 얼룩"같은 것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내걸고 조선의 부흥을 꾀한 대표적인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호방한 문장과 통렬한 풍자로 우리문학의 큰 발자취를 남긴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는 눈물에 대해 말하기를, 눈물은 슬플 때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칠정<七情>이 사무칠 때 생겨나고 우러나는 것이 바로 눈물이라고 했다. 즉, 희 로 애 구 애 오 욕 [喜. 怒 .哀. 懼 .愛 .惡.慾.]의 七情 칠정이 칠색 七色 으로 나타나는 것이 눈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눈물에는 착한 눈물과 나쁜 눈물이 있다. <힛틀러>는 한 번 참던 울음을 터뜨리면 발작 하듯이 울었다. 그는 때로 [나의 투쟁]에서 눈물을 연약함이나 동정의 무기로 연출하며 배우 이상으로 잘 울었다고 한다. 이와 반해 <스타린>은 퇴근 후 혼자 있을 때 잘 울었다고 한다.
심지어 밤에 잠들기 전까지도 울음이 그치지 않으면 동료나 연주자를 불러 음악을 연주하기까지 했다.
눈물에 관한 한 위대한 지도자나 성인, 정치가들은 안습 眼濕의 정서나 공감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대성통곡이 있는가 하면, 천년누흔 千年淚痕, 닭똥같은 눈물, 일국루 一菊淚, 악어의 눈물도 있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눈물로 정결해지고 맑고 깨끗해졌는지도 모른다.
점잖은 공자님도 안희 顔回의 죽음 앞에 통곡했다. 그리고 골짜기에 외롭게 홀로 핀 난초 한 그루를 보고도 탄식하며 흐느끼듯 울었다고 한다. 석가모니도 길거리에 병들고 늙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 눈이 부어 오르도록 울었다. 그뿐인가, 임마뉘엘 수녀나 테레사 수녀 역시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상처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며 눈시울이 짓무를 정도로 울었다고 한다.
감성지능의 저자인 [대니얼 골먼] 박사에 의하면 세상의 대표적인 성인이나 리더들은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인 감성지능이 일반 사람들보다 월등히 탁월했던 것같다. 반면에 타인을 진심으로 긍휼히 여기고 측은히 생각하는 공감적 관심[empatic-concern] 까지 높고 깊은 분들이었는지 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감성면에서 단연 눈물이 많은 분들이였다.
화가 김병종이 1985년 화선지에 먹과 채색으로 그린 작품 가운데 눈물짓는 예수의 얼굴을 그린 [바보 예수] 그림이 생각난다. [바보 예수] 혹은 [울보 예수]는 김화백 외에도 작고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그와 유사한 이미지의 그림을 그리신 적이 있었다. 바보 예수든, 울보 예수든 예수님의 "사랑의 진한 그 눈물 한방울"이라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준 그림들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들의 눈물은 과연 어떤 눈물이였을까? 예수님의 울음 역시, [울보 예수]로 불러도 좋을 만큼 예수님은 그렇게 자주 많이 울었을까? 그러면 예수님의 눈물과 울음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사랑하는 나사로의 죽음과 몰락해가는 예루살렘을 보고 흘렸던 예수님의 눈물은 한 마디로 가슴으로 우는 애절한 흐느낌이였다. 특히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는,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 복음11장33, 34,35]
Jesus Wept- 이때의 울었다는 예수님의 눈물은 -소리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 즉 인간적 슬픔의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 헬라어로 [다크뤼오]로 표현하지만 실은 가슴을 찢는 듯한 애절한 통곡과 울음과 달리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동정적인 흐느끼는 눈물을 의미한다.
두번째로 예수님은 멸망해가는 예루살렘 성城을 보시면서 우셨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슬피 우셨다는 것이다. "가까이 오시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네 자식들을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리니,,," * [누가복음 19:41,42,44]
이때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과 울음 -He wept over- 의 눈물은 헬라어로 [크라리오]이다. 즉 옆에서 그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격하게 흐느끼며 우셨다는것을 의미한다. he wept over it-'그로 인하여 눈물를 흘리셨다' 여기서 전치사 over는 격해진 감정이나 사고의 원인을 나타낼 때 즐겨쓰는 전치사다. 이 영문에서 it 는 나라 즉 땅, 예루살렘 성 [the city of jerusalem]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성통곡 하시며 우신 애국적 눈물을 말한다.
세번째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하시며 우셨다. 처절하면서도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 처연해지기 까지 하는 통곡의 눈물이였다. 한 마디로 격과 차원이 다른 거룩한 울음이였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브리서 5:7 이울음은 헬라어로 [크라조]에서 유래된 것이다.
{During the day of Jesus life on earth, he offered up prayers and petitions with loud cries and tears to the one who could save him from death, and he was heard because of his reverent submission.}
다시 말해서 [크라조] -큰소리로 우는 예수의 울음은 거룩한 분노, 종교적 울음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살펴본대로 예수님의 눈물, 울음은 첫 번째는, 너무나 인간적인 따뜻하고 측은히 여기는 인간적이고 너무나 사적인, 인정적인 눈물이었다. 둘째는, 나라를 사랑하는 이른바 애국적인 울음이였다. 셋째는 거룩한 분노, 종교적인 울음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에는 우리 예수님께서 파안대소나 미소 크게 웃으셨다는 웃음에 관한 기록은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으니 필자로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과연 미소나 읏음을 잃은 -냉혈적인 성품을 가진- [HARD BOILED CHARACTER] 였을까?
끝으로 성경은 사람들의 눈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우는 것은 주로 육체적 고통 보다는 정신적 비탄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으로는 구약에서는 다윗이 단연 제일이다 *{왕하20:5;시 56:17;과 그리고 예레미야 [렘9:1,18:13: 17: 애 1:2 ,16:2:11,18]의 눈물도 매우 인상적이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단연 으뜸이다. 바울의 눈물은 [행20:19,31: 고후 2: 4] 에 있다.
사람이 땅에 사는 동안 눈물 없는 세상이 있을까마는 그것은 땅의 사람의 눈물일 뿐이다.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욥기 15:20]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함이니"*[디모데 후서 1:4]
이처럼 성경은 주님의 나라에서는 땅의 통곡이든 슬픔이든 눈물이든 그 모든 눈물은 반드시 씻겨질 것이라고 약속하며 증언하고 있다. "어린양이 우리를 생명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요한계시록 7: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으시매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 [요한계시록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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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칼럼은 5월 8일에 다시 이어집니다.
2021년 3 월 8 일
김 영 목
金 英 穆
수유제일교회 원로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