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식이
영각 오해균 (작곡가, 아동문학가)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고, 복도에서 무릎 꿇고 손을 드는 벌을 받고, 오늘 하루 기분이 최고로 상한 삼식이는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는 고개를 숙인 채 신작로 갓길을 걸어가는데,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저만치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와,
그만 먼지까지 잔뜩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삼식이는 입안의 침과 가래를 다 모아서, 있는 힘을 다해 차를 향해 뱉어 냈습니다.
‘에이, 이거나 먹어라.’
그런데 저만치 가던 차가 갑자기 멈추고는 운전사가 내리더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을 쏘아 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래침을 뱉은 걸 알고 날 혼내려는 건가.’
삼식이는 움찔하고 잔뜩 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석에서 반대편 조수석으로 오더니, 문을 열고 개 한 마리를 끄집어내어서 길가에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황급히 차를 몰고는 도망을 가는지 빠르게 달립니다.
시골길 신작로에 버려진 개는 한참을 쫒아가다가 안되겠다 싶은지, 그 자리에서 차를 향해 짖기만 했습니다.
“멍 멍 멍.”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오는, 본적도 없는 삼식이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야, 저리가! 난 개를 싫어한단 말이야.”
“멍 멍 멍.”
삼식이는 냅다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도 삼식이를 따라서 뛰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뛰다가 지친 삼식이가 멈추면 개도 멈추고, 뛰면 개도 뛰고.
‘정말 오늘은 너무 재수가 없는 날인가 보네.’
그런 삼식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꼬리를 흔드는 개를 자세히 바라보니 종을 알 수는 없지만 작고 예쁜 강아지였습니다.
“너도 나처럼 오늘 재수가 없구나, 주인에게 버림받고.”
삼식이는 강아지가 따라 오든 말든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집 앞에서 잠시 주춤하던 강아지는 이내 삼식이를 따라 왔습니다.
“엄마, 엄마.”
들에 나가셨는지 엄마는 대답이 없고, 집은 텅 비어 있습니다.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삼식이는 엄마를 찾아나갔습니다.
녀석도 자기 주인인 것처럼 삼식이를 쫒아옵니다.
멀리 상여집이 있는 산 아래 콩밭에 엄마가 보입니다.
“엄마, 엄마.”
콩밭에서 일을 하던 엄마가 허리를 펴고 삼식이를 바라봅니다.
“학교 갔다 왔으면 씻고, 밥 먹어야지 밭에는 왜 오니?”
핀잔을 주듯 하는 말에 의기소침해진 삼식이를 보고, 고소하다는 듯 따라온 개가 짖어댑니다.
“멍 멍 멍.”
“아니 이 개는 또 뭐니?”
“나도 몰라. 누가 저기 신작로 길에 버렸는데 나를 쫒아 왔어.”
“버렸다면 우리 집에서 키우면 되겠구나.”
“그래도 돼?”
“그럼 살아있는 개를 죽게 내 버려 둘 수는 없잖아. 네가 예쁜 이름을 지어주렴.”
“이름을?”
삼식인 무슨 이름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너도 ‘삼식이 해라’ 하고는
“삼식아!”
개를 불러 보았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멍멍 거리며 좋아합니다.
“엄마, 얘도 내 이름처럼 삼식이라고 할까? 그래야 나 학교 가면 엄마가 나 보고 싶을 때 ‘삼식아’ 하면 되지.”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혼잣말로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젠 내가 개까지 삼시세끼를 차려 줘야겠네.”
그날부터 버림받은 개 삼식이는 삼식이네 식구가 되어 온갖 재롱을 부리며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아빠가 삼식아! 하고 부르면 둘이 대답을 하고, 삼식이가 학교를 가면 개 삼식이도 따라오고, 전생에 큰 인연이 있었나 싶게 언제나 둘은 같이했습니다.
집에서 놀다가도 멀리서 학교 종소리가 들리면 신작로까지 삼식이를 마중 나오는
삼식이가 너무 귀엽고 영리하여, 둘은 시간이 흐를수록 많이 친해졌습니다.
“삼식아.”
한가하게 마루에 앉아있는 삼식이를 부릅니다.
“네 엄마.”
“너 얼기미 가지고 앞 냇가에 가서 물고기 좀 잡아 올래?”
큰 그물이 없어 작은 얼기미 체로 물가 수초에 대고 발로 첨벙첨벙 훑어 내리면
미꾸라지 송사리 등 물고기가 들어와 잡는 방법입니다. 재수가 있으면 큰 붕어도
낚이는 재미가 있어 삼식이는 얼른 대답을 했습니다.
“알았어요, 엄마!”
삼식이는 찌그러진 주전자와 체를 들고 신작로 옆 냇가로 갔습니다.
개 삼식이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꼬리를 흔들며 따라왔지요.
물에 들어간 삼식이는 아래쪽부터 잡아가면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다 잡아갔는지 물고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잔챙이 몇 마리만 건저 올려 낙담을 하고 있는데, 개 삼식이가 물에 흠뻑 젖어서 어디서 잡았는지 붕어 한 마리를 물고 삼식이 앞으로 왔습니다.
삼식이가 붕어를 받아 주전자에 넣으니, 녀석은 또 고기를 잡으러 가는지 사라졌습니다.
또, 마치 녀석이 누가 많이 잡나 내기라도 하자는 식으로 냅다 냇물로 갑니다.
녀석을 바라보니 깊은 웅덩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기회를 엿보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주시하더니 물속으로 들어가 또 한 마리를 건저 올립니다.
‘야! 녀석이 희한한 재주를 가졌네.’
삼식이도 질세라 열심히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잡으니 주전자가 거의 차게 되었습니다.
삼식이는 저녁상에 올라올 물고기 매운탕을 생각하며 집으로 왔습니다.
“엄마, 이만큼 잡았어요.”
“아니 이게 뭔 일이니? 많이도 잡았구나!”
“큰 붕어는 모두 요놈이 잡았어요.”
“요놈 삼식이는 업둥이가 아니고 복둥이구나, 이렇게 예쁘고 재주 많은
개를 왜 버렸을까.”
“그러게요.”
그렇게 한식구가 된 삼식이는 쥐도 잘 잡고, 밭에서 땅속으로 다니는 두더지며,
냇가에서 뱀도 잡고, 사람이나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모조리 잘도 잡아냅니다.
집에 온 지 40여일이 지나고, 녀석의 배가 점점 불러 오는 것이 아무래도 임신을 한 듯해 보였습니다.
암놈인 줄은 알았지만 새끼를 가졌으리란 생각은 못했는데, 작은 키에 배가 땅에 닿을 정도로 많이 불러옵니다.
아버지는 판자대기를 모아서 개집을 멋지게 만들고 앞에다 붓으로 ‘삼식이집’이라고 써 주었습니다.
“아빠 이거 내 집이야?”
“그래, 한번 들어가 볼래? 허허”
“애개개! 어떻게 들어가?”
아버지와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그럼 삼식집 하지.”
“내가 삼식이라니까.”
“하하하 네가 강아지 이름을 삼식이라 했으니 그건 네 책임이다.”
그렇게 가족들이 삼식이의 새끼를 기다리던 날.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는 길에, 전에 먼지를 일으키며 삼식이를 버리고 간 그 차가 보였습니다.
그때 개를 버린 아저씨와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소녀랑 둘이서 차에서 내려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꼬마야, 이곳에서 혹시 돌아다니는 개 한 마리 못 봤니?”
“몰라요.”
“그럼 이 동네에 낯선 개 키우는 집 없니?”
“없어요.”
“아빠 빨리 우리 뽀삐 찾아내! 내가 얼마나 예뻐한 건데 같다 버려.”
삼식이는 자기가 키우고 있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있는 정 없는 정 다 들어가며 키우고 있어, 돌려주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아빠가 집에 가서 더 예쁜 강아지 사줄 테니 그만 가자.”
칭얼대는 소녀를 어르고 달래더니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삼식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휴, 또다시 오면 어떡하지,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게 되는데.’
삼식이는 삼식이를 주인이 찾는다는 이야기를 엄마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주인이 찾으면 돌려 줘야 하지만 버릴 땐 언제고, 또 찾는다니 이유를 모르겠구나.”
“그 아저씨 딸 같은 꼬마가 개 찾아내라고 난리를 피던 걸요. 새로 사준다고 달래서 데리고 갔어요, 아마 다시는 안 오겠지요?”
“그러게 말이다.”
그날 밤, 삼식이는 누가 삼식이를 데리고 갈까봐 깊은 잠을 들지도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고민을 하였습니다.
삼식이 전에 이름이 뽀삐였다니, 뽀삐야, 뽀삐야 하고 다니면 자기 찾는 걸 알고
달려 갈 텐데, 제발 다시는 이 마을에 오지 말기를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부처님, 보살님, 조상님 내가 삼식이를 잘 키울 테니, 다시는 그 사람들이 개를 찾으러 오지 않게 꼭 도와주세요, 아셨지요?’
기도에 응답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방에서는 삼식이가 잠이 들고, 새로 만든 개집에서도 삼식이가 쌔근쌔근 잠을 잡니다.
영각 오해균 (影覺 吳海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