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10월초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recall election)에서 새로운 주지사(governor)로 전격 선출된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영화배우라는 지위를 십분 활용해 미국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이 강한 주(state)의 최고책임자의 자리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영화배우 등 대중의 우상(public idol)에서 정치인이나 공직(public office)에 오른 인물들은 이전에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로널드레이건(Ronald Reagan) 전 대통령(president)을 들 수 있다. 보통의 영화배우에 불과하던 레이건은 미끈한 외모와 타고난 화술을 바탕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그리고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인물이다. 레이건은 냉전(Cold War)의 와중에서 구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몰아 부쳤다. 미국민을 일치 단결시키며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적극 나서 결과적으로 소련의 와해를 이끌어 낸 장본인이 바로 레이건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건의 영화배우 인생(movie career)은 1937년에 시작되었다. 그는 총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6년 레이건은 전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압승(landslide vistory)을 거두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두번이나 역임한 레어건은 1980년 백악관에 입성한다. 운좋은 레이건은 재선에 성공하게 된다.
터프가이 총잡이로 잘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도 자신의 인기를 발판으로 미 정계에 발을 내디딘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그는 1986년 캘리포니아주 해안의 소도시 카멜(Carmel)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가 무려 72 퍼센트의 득표를 올리자 레이건 대통령도 축하 전화를 걸었다. 고작 200달러에 불과한 시장 월급을 받으며, 마치 자신의 영화속 주인공(Dirty Harry)처럼 그는 관료주의(bureaucracy)와 불법(bylaws)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임기 2년의 시장직을 마치고 영화계로 되돌아 온다. 그에게는 이 시장직 이상의 더 큰 정치적 야망이 없었다. 작은 도시에서 그가 몸소 겪었던 온갖 불합리한 행정 절차들을 자신의 손으로 정리하고 싶었으며 그 일을 이루자 더 이상의 미련없이 정치판을 떠났다.
네모난 턱(square jaw)을 가진 굵직한 바리톤 목소리의 주인공 제시 벤추라(Jesse "The Body" Ventura)도 프로 레슬러에서 정치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인물로 꼽힌다. 레슬러로 인기를 누리던 와중에서 그는 개혁당(Reform Party)의 후보로 1998년 미네소타주 주지사로 당선되었다.
이전에 벤추라는 미네소타주 브루클린 파크(Brooklyn Park)의 시장을 지낸바 있다. 벤추라는 1987년 영화 "Predator"와 그리고 "The Running Man"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벤추라는 주지사에 당선된 후 개혁당을 버리고 무소속(independent)으로 그의 주지사역을 무사히 치러냈다. 그 역시 재선(re-election)에 도전하지 않았다.
또한 1970년도 후반에서 1980년도 중반까지 TV 영화 "The Love Boat"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린 프레드 그랜디(Fred Grandy)와 "In the Line of Fire"와 "Die Hard II"에서 열연한 프레드 톰슨(Fred Thompson)이 배우로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계 입문에 성공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랜디는 1994년 아이오와(Iowa)주지사로 출마하기 전에 아이오와주 공화당출신의 의원(congressman)을 내리(consecutively) 4선이나 역임했으며 변호사 출신의 톰슨은 1994년 앨 고어(Al Gore) 가 남긴 공석 상원의원직을 차지한 인물이다. 톰슨은 이후 테네시 출신의 상원의원으로 2002년까지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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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고인이 된(late) 소니 보노(Sonny Bono)는 1960년대 팝뮤직 계에서 찬사를 한몸에 받다가 1967년 영화 "Bang Bang"과 "Good Times"에 출연했으며 1982년 "Airplane II: The Sequel"에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94년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즈(Palm Springs) 시장을 역임한 후 이곳 출신으로 공화당 하원의원직에 진출한다.
춤과 노래를 겸비한 배우인 조지 머피(George Murphy)는 4편이 브로드웨이 연극과 45편의 영화에 출연한 후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상원의원 직을 거머쥔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꾼 머피는 1965년부터 1971년까지 이 상원의원직을 수행한다. 머피는 레이건 대통령처럼 영화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의 회장을 역임했다. 이외에도 영화 연예계에서 활약하다 정계에 진출한 인물들은 수없이 많다.
영화, 연예계에서 정계로 진출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데 이중 특이한 경우를 소개해 본다. "Evita"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여배우 에바 페론(Eva Peron)은 남편 후안 페론(Juan Peron)이 1946년 집권하지 실질적인 통치자로 행세했다. 후안 페론의 3번째 부인인 이사벨(Isabel)은 1974년 대통령이 되었으나 2년후 쿠데타로 쫒겨난다. 그녀는 카바레(cabaret) 댄서 출신이었다.
화려한 치장과 관능미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나타난 이탈리아의 배우 치치올리나(Cicciolina)는 1987년 의회 선거에 당선된다. 포르노 배우(porn star) 출신인 그녀는 이후 밀라노 외곽 몬자(Monza) 시장선거에서 고배를 마신다. 영화감독 출신 프랭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는 1996년 이탈리아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외에도 이집트에서는 가수 파이다 카멜(Fayda Kamel) 이 1971년 의회의 의석을 얻는데 성공했으며, 1960-70년대 영화배우로 날렸던 터키의 파트마 기릭(Fatma Girik)은 이스탄불 지역의 중요 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덴마크의 코미디언 자콥 하가드 (Jacob Haugaard)는 성기능 장애자들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1994년 의회에 진출했으나 4년의 임기후 재선에 실패했다. 그는 현재 자신의 본업이 코미디에 복귀했다.
영어에 "정치인들은 뛰어난 연기자(Politicians are good actors)"라는 말이 있다. 탄탄한 연기력과 배우로서의 이미지와 명성을 이용해 수월하게 정계에 입문한 연예인들이라 하더라도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 살아 남기 위해선 정치꾼(politico)들 처럼 연기 이상의 연기가 필요한 것이다.
영화배우 출신 정치인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인물로 신성일씨를 들수 있다. 본명이 강신영인 신성일 씨는 무려 세 번의 도전 끝에 자신의 힘으로 금배지를 단 인물이다. 그는 전두환군사정권(military regime) 당시 최초로 정치입문을 제의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 밖에도 작고한 최무룡씨를 비롯해 김대엽, 최불암, 강부자, 정한용씨도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현직으로 활약 중이다.
제인 폰다
직업 정치인은 아니지만 여느 정치가 못지 않은 사회적인 역할을 하는 영화배우로 한국에서는 문성근씨와 명계남씨를 들수 있다. 2003년 대선(presidential election) 당시 "노사모"를 만들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그는 현재에도 *미디어 등을 통해 "막강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연예인들의 사회참여는 한국보다 훨씬 빨랐다.
왕년의 섹시스타 제인 폰다(Jane Fonda), 팝의 여왕 바바라 스트라이잰드(Barbara Streisand), 리차드 기어(Richard Gear) 등의 미국 연예인들의 사회적인 역할은 대단했다. 특히 70년대 여권신장운동(feminism)의 기수였던 제인 폰다는 월남전 반전시위의 일환으로 미국정부의 거듭된 경고를 무릅쓰고 월맹을 방문 호치민을 만나, 맹렬히 미국을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