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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알: 농사 경험을 통한 의미의 보고(요 12:24)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농사를 통해서 귀한 열매와 함께 성경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농사를 지으신 분이 아니신데 전능하신 분이라 농사에 대해서 정확하게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밀을 만드시고 밀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밀을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의 아들 가인에게 재배하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진화론자들이 온갖 노력을 다해서 밀의 재배의 진원지와 퍼져간 경로를 조사해 보니 에덴 부근 비옥한 초승달 지역으로부터 온 세상으로 밀의 재배가 확산된 것을 밝히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수렵과 농경의 역사의 잘못된 가르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으면 모든 인간의 역사가 다 이해되고 풀리는데 스스로 생겨난 인간을 거짓으로 주장하려고 하다 보니 짧은 인간의 머리의 연구는 오류만 가득합니다. 모든 사람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도와 주시 옵소서
샬롬! 날씨가 점점 더워집니다. 봄에 심은 채소도 많이 자라고 수확을 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땅에 씨를 심기만 하면 순이 돋고 자라서 열매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말씀의 씨앗이 떨어진 마음의 밭에도 반드시 결실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농사를 짓고 그리고 짐승을 키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수렵, 채취 그리고 농사와 정착의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농사도 짓고 대화도 하고 가축도 기르고 불도 피우고 토기도 굽고 청동기에서 철기를 만들 수 있었던 존재입니다. 진화론적으로 설명을 하다 보니 우리가 배우는 사회나 국사의 가르침을 배우게 되는데 이는 옳지가 아니합니다. 개나 말이나 소나 양과 염소 등은 하나님께서 가축(Live stock)으로 짐승(wild animal, beast)과 구별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 이 최초의 농부와 목축가는 밀과 양을 재배하고 길렀던 것입니다. 진화론자의 인간과 동물의 소통은 참으로 오랫동안 연구되고 또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도되고 소개되지만 짐승은 아무리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켜도 짐승으로 남습니다. 엘리제를 위하여의 주인공 여자가 자신이 키우던 사자에게 물려 죽었고 뱀을 키우는 사람들도 뱀에 잡혀 죽는 보도가 납니다. 짐승과 가축을 같이 보고서 짐승을 가축화하려고 해도 여태까지 늑대나 기러기나 사자나 호랑이를 가축화시키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수천 년이나 기회를 주었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니 이제는 포기를 할 때도 이미 지났습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습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진리이고 자연의 원리이며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백 년 이백 년 이 땅에서 살려고 별짓을 다해도 죄만 짓다가 결국은 죽습니다. 짐승의 머리를 잘라서 다른 짐승에 붙이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 사람에게도 적용을 시키는 연구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다 이 땅에서 허락된 삶을 하나님을 잘 알고 믿고 살다가 부르시면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떠나든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설렘과 기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복인 줄 믿습니다. 정말로 세상은 편리해지고 돈을 많이 가지신 믿지 않는 분들은 이 세상에서 더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죽을 것으로 생각지 않고서 80이 되어도 땅을 사고팔고 돈을 벌고 재산을 늘리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믿는 분이 이와 같이 산다면 참 걱정되는 일입니다. 인간의 수명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하나님이 못을 박았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은 분은 정신없이 나누어 주어도 남은 시간이 부족한데 더 모으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는 자는 칭의를 믿고 사는 자는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이 언제나 있어야 합니다. 그렇자면 반드시 이 잘못과 불의가 넘치는 세상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정의롭게 살아야 하고 죄로 물든 인생을 자신을 죽이면서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은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너무나 이 땅에 사는 것이 어렵게 되어야 천국에 대한 소망도 생기고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렘과 기쁨이 없고 이 세상에 소망이 여전히 젊은 때와 같이 남아 있다면 천국이 그분에게 열릴지 참으로 의문시됩니다.
오늘은 제가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아래의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게 된 과정을 소개해서 요한복음 12장 24절의 말씀을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다섯 가지 버전으로 본문을 보겠습니다. 한글과 영어로 되었는데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개역개정)
24.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공동 번역)
24.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falls to the ground and dies, it remains only a single seed. But if it dies, it produces many seeds.(NIV)
24. Verily, verily, I say unto you, Except a corn of wheat fall into the ground and die, it abideth alone: but if it die, it bringeth forth much fruit.(KJV)
24. "Truly, truly, I say to you, unless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earth and dies, it remains by itself alone; but if it dies, it bears much fruit.(NASB)
1. 감자 농사를 짓게 된 경위
아는 분이 하남에 땅을 주셔서 몇 년 전부터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올해 봄에 가까이 사시는 권사님께서 감자씨를 주셔서 다른 사람보다 일찍 심었습니다. 감자씨는 통 감자를 눈(싹이 트는 부분)이 있는 부분을 여러 부분으로 잘라서 심으면 되는데 잡초가 많이 나기 때문이 흙을 약 30-40cm 높이로 양쪽에서 끌어모아서 두덕(이랑)을 만들고 이곳에 비닐을 쒸웁니다. 그리고 비닐의 구멍을 약 40-50cm 간격으로 뚫은 후에 감자씨를 심을 수 있도록 호미나 막대로 두덕에 찔러서 홈을 내고 이곳에 감자씨를 넣고서 흙으로 덮으면 감자씨를 심은 것이 끝이 납니다. 어떤 분은 흙 속의 벌레와 두더지를 막기 위해서 농약도 같이 흙에 넣는 경우도 있고 거름도 많이 넣으나 저는 그냥 감자씨만 심었습니다. 3월 중순경에 남보다 일찍 심었는데 약 감자씨 5kg 정도를 약 3평의 땅에 조금 심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감자 농사라 참으로 어설프게 심었습니다.
2. 싹이 나고 입이 잘 자라다
감자씨를 심었으니 싹이 잘 나는가 살피는 것은 농부의 본능적인 심정이라 밭에 갈 때마다 싹이 나는지 궁금해서 잘 살펴보았습니다. 비도 올해는 봄에 잘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날씨가 밤낮으로 약간 추운 면이 있었으나 곧 싹이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줄기가 잘 자라기 시작해서 다른 사람이 감자를 심기도 전에 파릇파릇한 줄기가 두덕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3개월 동안 풀이 나는 것을 조금씩 뽑아내고 감자가 잘 자라는 것을 치켜보았습니다. 곧 몇 줄기에서는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3. 첫 번째 수확을 하다
약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에 감자씨를 주신 권사님 집을 찾아서 차를 마시는데 같이 계신 남자분이 감자를 캘 때가 되었다고 캐어 오라고 성화가 대단 합니다. 싹이 노랗게 되어서 그냥 두면 감자가 그냥 썩는다고 속히 캐어야 한다고 하고 또 나중에 캔다고 하니 아침에 캐어서 잘 말려야 한다고 하도 캐어 오라고 해서 마지 못해서 감자 밭으로 가서 줄기를 뽑으니 작은 감자가 몇 개가 딸려서 올라오는데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비닐을 걷고서 흙을 파헤치니 감자가 한 줄기에 여러 개가 맺혀있었습니다. 몇 줄기를 캐지 않아서 약 5kg을 수확을 해서 가져가니 삶아서 먹어 보자고 해서 간단하게 감자를 씻어서 냄비에 넣고 물을 붓고 소금을 적당히 넣고 부탄가스불로 끓여서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간이 잘 된 햇 감자는 그냥 그것만으로 너무나 맛이 좋아서 즐겁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감자를 심고 캐면서 작은 씨감자를 그냥 흙에 묻어둔 것 밖에 한 일이 없는데 열매가 여기저기 열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뿌리어진 복음의 씨앗은 얼마나 잘 열리겠는가 생각이 들고 땅과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의 밭과 그리고 그 열리는 열매의 위대함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4. 모든 감자를 수확을 하면서 위의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는 은총을 입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에 감자 잎이 모두가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보고서 남은 모든 감자를 수확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서 비닐을 걷고서 줄기를 모두 제거한 후에 괭이로 흙을 파헤치고 감자를 본격적으로 캐었습니다. 큰 감자도 달리고 작은 감자도 달리고 줄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도 감자가 열리고 바로 아래 깊이로도 감자가 열렸는데 참 신기하기도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확을 하고 있던 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줄기를 뽑으니 줄기가 많이 크지 않아서 감자가 달렸겠나 했는데 그냥 3월 중에 심은 감자씨가 그대로 줄기와 같이 딸려서 나왔습니다. 당연히 감자는 하나도 달리지 않고 그때 심은 감자씨의 모습 그대로 잘 보존이 된 상태로 줄기에 달려 나왔는데 달랑 작은 줄기 하나만 나고 처음 심은 그대로 원상이 보존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3개월을 흙 속에 있었는데 썩지도 않고 줄기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열매가 크게 열리고 많이 달리는 줄기는 굵기가 당상히 굵은데 이 줄기는 작고 가늘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약 100개 이상의 감자씨를 심었는데 한 개가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감자씨는 줄기에 붙어 있지도 형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줄기에 감자가 많이 달렸는데 심은 감자씨가 까맣게 변하고 껍질에 구멍이 듬성듬성 나고 감자의 속살은 모두가 사라지고 검게 변한 껍질만 남은 자신의 모든 것이 사라진 감자씨가 줄기에 붙은 것을 보았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싹을 튀우고 열매를 달리게 한 자태가 남은 앙상한 검은 껍질이 보이는 감자씨였습니다. 성경에 말하는 썩은 감자씨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대로 있으면서 열매가 없는 감자씨와 완전히 썩어서 많은 열매가 맺힌 감자씨를 동시에 작은 감자 밭에서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두 씨를 보면서 열매를 맺는 씨는 어떤 씨 인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도 복음의 열매를 맺자면 저의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날마다 죽어야 할 것이고 나눔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리고 생명도 기꺼이 바쳐야 할 것입니다.
5. 수확을 함께 나누다
권사님께 캔 감자 우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나누어 준 후에 비로소 저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집에 가져와서 껍질을 다듬고 소금과 설탕을 조금 넣고 잘 삶아서 버터를 발라서 아내와 아들과 먹으니 너무 맛이 있어서 더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없을 것이다 라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그리고 감사하게 먹었습니다. 뒷날 교회에도 많이 나누어 주고 평소에 아는 장로님께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6. 내가 썩었는지 썩지 않았는지 무엇으로 알까?
우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믿는 우리는 세상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속에서 도를 닦고 산에서 오는 사람에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그대로 있는 썩지 않은 밀알의 헛된 가르침입니다.
우선 세상에 가서 사람과 함께 살아야 됨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그대로 있는 밀알은 자신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서 그대로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태우고 희생해서 싹을 틔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싹도 없거나 약하고 당연히 열매가 열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썩은 밀알은 자신을 다 희생해서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고 열매를 맺는 밀알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몸도 생명도 다 희생했기에 썩었기에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건강한 줄기와 새로운 건실한 열매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썩는 밀알이 되셨습니다. 자신의 몸과 피와 생명을 모든 죄인을 위해서 다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이를 믿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고 재 창조되고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서 순교하신 분들도 썩은 밀알이 되신 것입니다. 한국 땅에도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재물을 관리했지만 자신의 소유가 없이 모든 것을 다 나누어주고 그리고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신 목사님들도 계십니다. 이곳에서 평안을 버리고 선교의 길을 떠나신 선교사님들도 많이 계십니다. 일생을 잘 목회를 하시고 80이 되셨는데 잘 걷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사모님과 같이 트럭을 몰고 다니시며 고물을 주어서 파시는 목사님 부부께 왜 이렇게 사십니까 물으니 왜 내가 교회의 도움을 받나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고 이제 늙으신 몸을 이끄시고 주님을 만날 기쁨에 하루하루 사시는 모습에서 썩은 밀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수천 수만의 교인이 있지만 자신의 어려운 양보다 너무나 좋은 집에 좋은 차에 많은 월급에 그리고 자신의 자녀와 가족과 친인척을 교회에 데리고 와서 교회의 돈으로 살게 하는 목사님들을 보면 그대로 있는 밀알의 모습과 함게 자신의 배를 도리어 불리는 목자로 보임은 제 눈이 비뚤어져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그리고 그들의 형편을 절대로 살펴보지 않는 목자나 장로를 보면서 이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아무리 이해를 하고자 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장로의 의무는 교회의 잘못을 바로잡는데 있는 것이지 담임목사에 맹종하는 것이 절대로 있지 아니하며 목사의 잘못을 모르거나 묵인하는 경우에 틀림없이 자신에게 해가 미치고 벌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고 올바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목사 개인에게 맡겨진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베드로를 책망한 바울같이 목사가 잘못하면 장로는 책망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지금의 대형교회의 담임이고 바울은 그 교회의 성도에게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 지나지 않았지만 베드로의 위선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하게 나무라며 창피를 주고서 바로잡았습니다. 사랑은 묵인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낭떠러지로 돌진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아는 자가 그것을 보고도 그냥 있는 것이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식이나 아내나 가족이 그렇게 곧 떨어져 죽을 곳으로 돌진하는데 그냥 보고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반드시 정말로 누가 보아도 잘못을 하는 경우에는 엄하게 심하게 나무라고 책망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바로 가게 되면 장로도 살고 잘못하는 사람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절대로 자신의 이해나 이익을 위해서 나서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목회도 모르는 목사지만 목사의 가장 큰 의무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무리를 사랑하여 예수님께서 당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고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성령을 기다리게 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배운 말씀과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크리스천으로서의 의무 등을 중심으로 성령께서 가르치시고 인도를 하시기에 그렇게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목회의 일순위 중요한 일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자신도 성령을 받지 않고 교인의 성령을 받는 것도 등한시하면 모두가 성령이 없는 교인들이 교회에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잘 받고서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은 목회를 쉽게 하면서 교인들이 성령 받는 일에 등한히 해서 분별력이 있는 교인을 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죄인에 불과했던 평범한 인간이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교회도 키우고 성전도 짓고 나서는 예수님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멀리하고 모든 교회 성장의 공적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을 해서 때가 되어도 물러날 생각이 없고 자신의 자식을 세우고 물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면 이는 정말로 성령을 소멸하고 마귀의 종이 되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우리 주변에 혹시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땅끝으로 가고 때가 되면 물러나고 때가 되면 지는 것이 썩는 것입니다.
7. 어떻게 썩을까
날마다 죽고 날마다 전하고 날마다 나누고 베풀고 필요하면 피도 흘리고 또 때가 되면 생명도 기꺼이 바치는 것이 썩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희생이 없이 절대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알의 밀알입니다. 죽을 때 자신의 것이 하나도 없는 늙은 육신의 껍질만 남는 성도가 우리 모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