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진실에 가슴 따스한 영화, [도희야]
애정은 반드시 그 주체의 완벽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당하고 폭력적인 세상에서 다치기 쉬운 선의를 갖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영악함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를 보고 난 이후의 느낌을 한 줄로 요약하면,
불쾌한 진실에 가슴 따스한 영화라는 것이다.
도희는 영악하고 영남은 도희의 영악함에 방조적이다.
그것은 폭력적인 세상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책이다.
영화 [도희야]는 오락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적 자극이 보이는 멜로물은 더더욱 아니다.
복수극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하고
한국사회의 구조적 폭력이나 소수자의 소외를 위한 영화라고 하기에도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도희야]는 분명 요즘 한국영화에서 판치는
헐리우드식이나 홍콩느와르식 폭력을 동반한 그런 대중영화들하고는
분명 다른, 그 뭔가가 있는 영화이다.
도희는 최소한 세 가지의 중대한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
그 아이는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자신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소녀이다.
물론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는가를 생각하면 이해되어지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의 위험성은 별개인 것이다.
도희는 팜므파탈적인 요소가 있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폭력에 무한 노출되어 있는 모습은 가슴 아프지만
그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그 아버지를 완벽하게 유혹(?)해서 더이상 벗어날 수 없는 범죄자로 만들어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섬뜩함을 가져다준다.
영남은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어른이고,
보다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
그녀는 동성애자이고 따라서 성소수자이다.
도희를 향한 그녀의 감정에 성적 욕망은 결여되어있다고 보여지지만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녀와 도희의 목욕 씬, 해변 씬 등에서 어떤 성적 욕망의 존재를 느낄 수도 있다.
게다가 그녀를 향한 도희의 감정이나 행동도 정상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물론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도희의 마음이
위험으로부터 도피처, 처음 느껴보는 행복한 안식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중학생 여자아이의 마음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나 소수자의 소외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복남살인사건]이나 [소녀]와 닮아 있다.
하지만 [김복남살인사건]과 [소녀]가 무고한 피해자들의 복수극이라면
이 영화는 그렇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김복남살인사건]에서 피해자 김복남의 복수행위는
당연하다는 느낌을 넘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가정폭력을 다룬 영화로는 매우 드문 수작이다.)
하지만 [도희야]에서는 이루어지는 복수는 복수라고 말하기조차 애매하다.
영남은 애당초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도 없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도희는 무고한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할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것을
복수라고 말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도희의 아버지 용하 역시 아주 나쁜 악당이라기보다는
한국사회에서 가끔 보이는 불쾌한 한국남자이다.
그가 처단되었다고 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는 않으며,
그저 아버지 없는 도희의 앞날이 걱정될 뿐이다.
(처음 영남이 마을로 차를 몰고 올 때 비가 내리다가 갠다.
그러나 영남이 도희를 태우고 마을을 빠져 나가는 엔딩에서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영화는 잔인하지도 않고, 비관적이거나 어둡지도 않다.
도희의 말과 행동에 굉장한 비뚤어짐이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베이스는 밝다.
영남은 그렇게 살갑지는 않지만 그 속마음은 따스하다.
(그녀가 살갑지 않음은 그녀 자신이 한국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외롭고 소외된 존재들인 도희와 영남의 유대는 어딘가 위험하지만
그 유대는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고 따스하다.
(마을에서 노예처럼 부려지던 외국인 노동자와도 유대를 보이기도 하지만
왠지 일방적이며 조금은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건드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하여 심도 깊게 고찰하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유혈이 낭자하지도 않고, 놀래키지도 않으며, 전개는 다소 느리다.
하지만 묵묵히 나직하게 진행되는 플롯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주인공들의 감정선과 만나게 되며
우리는 그기서 이 영화의 지향점을 만나게 된다.
불안하면서도 따스한.....
연기가 참 좋았다.
특히 영남역의 배두나와 용하역의 송새벽이 그랬다.
도희역의 김새론도 연기는 잘했다.
특히 캐릭터가 갖고 있는 미묘하고도 위험한 그늘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일부분에서 조금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김새론의 연기력 부족이 아니라
아무래도 아역 배우가 소화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설정의 캐릭터여서 그런 것 같다.
영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만약에 이 영화에서
도희가 여느 한국영화처럼 잔인한 복수극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영남이 어촌의 불편한 진실을 단호하게 척결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결론은 짧은 재미는 있을런지 몰라도 지금과 같은 작품성은
갖지 못해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암튼 오랫만에 비슷한 스토리가 판치는 극장가에서
꽤 괜찮은 한 편의 한국영화를 본 것 같다.
첫댓글 나도 참 보고 싶었어요. 담에 이런 영화 보실때 같이 할 시간이 안되시면 그냥 저 혼자도 잘 보니가 커톡으로 알려주세요 부탁합니다. 개인적으로 배두나도 제가 좋아하는 배우고요!
예 같이 함 보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