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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도 없이 열기가 식은 물체,
거의 절대음기라 해도 된다.이보다 강한 음기운은 없으리
아무래도 화기운이 잘쓴다.
체로 쓰는 신유일주로는 스티브호킹,김일성,배우 겸 국회의원 유정현,아나운서 허수경,배우 정일우가 있다
하원갑자
2041년 4월 30일 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다. 개기일식은 달의 시직경이 태양의 시직경보다 커서 태양을 다 가릴 수 있을 때 일어난다
60년전 전두환 대통령 당선
-1.7%을 기록한 1980년보다 경제성장률이 7.2%로 크게 오르고 12월 19일에 수출 200억 불을 달성해 한국 경제는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두 차례 가스 폭발 사고가 터짐
1681년 성호이익 탄생
인현왕후가 숙종의 계비에 책봉되다.
찰스 2세가 윌리엄 펜에게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영토를 주다.
100년전 위트레흐트 동맹을 체결했고, 1581년 오렌지공 빌럼은 네덜란드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60년전 코시모 2세 : 토스카나의 대공사망
- 펠리페3세 : 스페인의 국왕 겸 포르투갈의 국왕사망
1621년 네덜란드와 에스파냐가 영구적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합의에 도달하는데 실패하자, 전쟁은 다시 재개되었다. 네덜란드는 30년 전쟁에 뛰어들어 프랑스와 함께 싸웠다.
50년전 인도에서 타지마할 건설이 시작되었다
40년전 송산 전투에서 명나라 군이 청군에게 대패하였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로부터 말루쿠 향료 제도를 빼앗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암본 사건을 일으켜 영국 동인도 회사의 영향력을 축출하고 포르투갈의 동방 거점을 하나씩 공략해 경쟁자들을 제거했다.(영국-네덜란드 전쟁, 네덜란드-포르투갈 전쟁) 1641년까지 콜롬보, 실론, 나가파트남, 타이완, 그리고 포르투갈의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인 말라카를 빼앗았고, 일본과도 데지마를 통해 교류하여 이윤을 얻는 한편, 일본에게도 난학을 통해 서구 세계의 발달된 지식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 향료 제도의 VOC에 저항하거나 독점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도 굴복시켰다.
30년전 해변에 대홍수가 몰아닥쳐 수천명이 익사하였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법을 공포하였다.
20년전 정성공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완 남부를 점령하였다.
20년후 프로이센 왕국이 세워졌다
스페인왕위계승전쟁.1701년 ~ 1714년에 걸쳐 유럽에서 발생한 국제적 전쟁. 당사자인 프랑스 왕국과 오스트리아 대공국(합스부르크 제국)이 싸우고 정작 이득은 영국이 본 전쟁
30년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1세사망하고 카를6세 즉위
오리지날 합스부르크 황가의 마지막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그의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를 통해 합스부르크 황가는 합스부르크-로트링겐 황가로 이어진다
40년후 핀란드에서 뉘스타드 조약이 체결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제국을 세웠다.(~1917년.)
경종 원년
50년후 청나라 중기의 건축서인 흠정공정주법칙례이 편찬되었다
60년후 이덕무탄생
영국에서 총선이 열렸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부르크극장을 세웠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카를 6세가 죽자 카를 6세의 후계자로서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버지가 갖고 있던 합스부르크 수장 지위와 상속령과 여러 나라의 작위를 이어받을 권리를 갖게 되었다.이로 인해 중부 유럽 일대를 중심으로, 유럽 열강 국가들이 참전한 대규모 전쟁. 이 전쟁으로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으며, 이후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게 되는 유럽 주요 국가들의 구도가 형성된다. 아울러 단일전쟁임에도, 세계로 식민지를 뻗아나가던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한 지라 이 전쟁의 연속선상에서 남아시아, 아메리카 등지에서도 전쟁이 벌어졌다. 사실상 세계적 규모의 전쟁으로서 첫 번째 사례.
1321년 단테의 신곡이 완성되다.
원영제 즉위,몽골의 역대 대칸 가운데 중국식 제위계승법에 의거해 적장자이면서 황태자를 거쳐 정식으로 즉위한 최초의 인물이다
왕고는 1321년 원 영종의 명령으로 충숙왕이 압송되자 2년 간 고려 국왕을 자칭하기까지 했다.
60년전 고려 1년에 두차례 지진발생
1261년 7월 25일에는 총사령관 알렉시오스 스트라티고풀로스가 수비군이 떠난 틈을 타서 입성에 성공하였고, 보두앵 2세를 쫓아내고 황도를 수복했다.
피렌채 단테탄생. Bargello궁전건설
40년전 루돌프 1세의 부인 게르트루데는 키부르크 가문 출신이 후사가 없어 상속자가 되어 키부르크의 영토를 모두 물려받았다
30년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최초로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왕에 올랐던 루돌프 1세의 사망
단테 젬마 도나티(Gemma Donati)와 1291년 결혼하게 된다.
20년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요청을 받은 샤를의 군대가 피렌체로 진격하고, 1301년 10월에 단테는 다른 두 명과 함께 피렌체의 특사로 교황을 설득하기 위해 로마에 파견되었다.
10년전 하인리히 7세는 가문의 세를 불리는데 취미가 들었는지 1311년 1월 밀라노에서 롬바르디아의 왕위를 차지했고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의 도시들이 그에게 굴복하였다.
20년후 브르타뉴 공국의 계승 전쟁이 시작되었다.
델리 술탄이 이븐 바투타를 원나라에 보낼 투글루크 왕조의 사절로 임명하였다.
30년후 오스만 제국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넘어 발칸 반도로 진출하였다.
원나라에서 홍건적의 난이 더욱 기세를 얻었다.
고려 제 30대 국왕 충정왕이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공민왕이 3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40년후 홍건적이 고려의 수도 개경을 공격하였다
60년후 영국 위크타일러의 난 발생.고려는 전민변정도감실시
961년 고려광종 961년 당숙 왕육의 집으로 이주한 이후 일시적으로 호족 숙청을 중단한다
폴란드 역사에 등장
10년전 오토1세 951년 그는 도움을 청한 로타리오 3세의 미망인 아델라이드의 구원 요청으로 이탈리아를 침입해 베렝가리오 2세를 독일 왕의 신하로 만들었으며, 계속 반발을 하자 961년 이탈리아를 재침공하여 베렝가리오 2세를 격파하고 962년 교황 요한 12세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제관을 받았다
60년전 후고구려 건국,루트비히 3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9년전 동프랑크 콘라두스 1세 프랑스혈통끊기고 선거로 즉위
40년전 920년 부활절에 하인리히 1세는 하인리히는 자신이 독일인 왕 루트비히와 콘라두스 1세의 합법적 후계자임을 선언했다.
30년전 슬라브 족을 최종적으로 격퇴한 뒤 하인리히는 슬라브 족에게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슬라브 족은 이교도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거절한다
20년전 오토1세하 941년에 동생 하인리히는 다시 국왕을 살해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 이 음모는 이내 발각되었고 다른 가담자들은 처벌받았지만 하인리히는 또다시 용서받았다.
20년후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이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하였다.
성종(고려)이 고려 6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30년후 - 올라프 1세가 이끄는 바이킹군이 앵글로 색슨족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일자불명 - 폴란드의 군주 볼레스와프 1세가 슬로바키아의 일부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데인 (노르만/바이킹) 군대가 잉글랜드 군대를 패배시켰다. (1차 알톤 전투, 데본 전투)
60년후 귀주대첩의 강감찬사망, 왕안석탄생
70년후 1023년 아브드 알 라흐만 5세가 다시 칼리파 지위를 찾지만 1031년 히샴 3세를 마지막으로 후우마이야 왕조는 해체되고 이베리아 반도는 수많은 타이파(طائفة, 이슬람 공국)국으로 쪼개지게 된다. 그리고 이 타이파들은 무라비트 왕조에 의해 통일된다.
서기 601년, 무왕 미륵사지 건립시공.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선교사들에게 민간의 믿음과 풍습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교 교리로 변환시키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 방식은 그리스도교가 퍼져나가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했고, 이후 가톨릭 선교의 방침이됐다. 토속 신앙에서 기념하던 축일들 역시 없애는 대신 그리스도교 축일로 대체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2월 25일에 지내는 크리스마스
중세교회는 590년 등극한 그레고리우스 1세로부터 시작한다.
아랍은 부족국가에 불과했다.
마호메트에 의해 민족화된다.
60년전 토틸라가 동고트 왕국 제 6대 국왕이 되었고 비잔틴 제국의 이탈리아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동고트 군이 이탈리아를 유린하였다
50년전 후경이 소동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내고 양나라의 황제를 자칭하였다. 이에 국호도 한(漢)으로 고쳤으며 죽은 소강의 딸 율양공주 소씨를 황후로 삼았다.
돌궐 제국이 성립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장군 나르세스가 충분한 군대와 함께 이탈리아로 파견되었다.
베이루트에 지진과 지진 해일이 덮쳐 도시의 곳곳이 파괴되고 약 3만명이 사망하였다
40년전 프랑크 왕국을 통일하였던 클로타르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네 아들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다시 분할되었다.
고담(북제)이 북제 4대 황제가 되었다.
신라가 561년에 안라국을 정벌하였다
30년전 악숨 왕국령 예멘의 총독 아브라하 이븐 사바하가 사나에 메카의 카으바에 버금가는 신전을 지었다. 이에 메카인이 그곳을 더럽히자 아브라하는 코끼리를 앞세운 6만 대군으로 카으바로 진격했으나 전염병이 돌아 퇴각하였다.50여일이 지난 후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베네벤토가 롬바르드 족이 세운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20년전 사발략가한이 동돌궐 제5대 가한이 되었다.고구려와 동맹.
양견이 그에게 대항하는 반대 세력을 제거한 뒤 9세인 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면서 북주가 멸망하였다
사산조 위기극복하나 651년 멸망
20년후 당나라의 이세민군이 하나라의 두건덕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당나라군이 정나라 황제를 칭하는 왕세충을 공격하였고, 당나라와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패한 왕세충은 두건덕에게 지원을 요청해 당나라와 싸웠다. 그러나 5월에 두건덕이 당나라에게 패하여 생포되자 곧바로 당나라에 항복했으며, 장안으로 이송되었다가 독고수덕에게 암살당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아바르족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이듬해 헤지라
30년후 슬라브족이 프랑크 왕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칠숙·석품의 난이 발발하였으나 진압되었다.이듬해 선덕즉위
40년후 즉위한 콘스탄티노스 3세가 3달만에 한국나이 30세(612년생으로, 610년 부황의 즉위(찬탈이지만 어쨌든) 후에 태어났으니 포르피로게니투스이기도 하다)에 결핵으로 요절했다(...)그리고 이복동생이자 5촌조카인 이라클로나스가 황제에 올랐다
50년후 압둘라 이븐 아미르가 이끄는 무슬림 군대가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공격하였다.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살해당하면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였다.
60년후 복신, 도침, 흑치상지 등이 왕자 부여풍을 추대하기로 하고 주류성을 거점으로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661년 알리가 하리지파에 의해 암살당하자힘의 균형은 무아위야에게 기울었으며, 그는 분열된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는 한편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 자리에 올랐다. 여기서 이슬람교는 시아파, 수니파로 분열되었다
서기 241년에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국왕)로 등극한 샤푸르 1세
작피의 역
241년 여름 5월 오의 장군 주연 등이 양양군 번성현을 포위하자, 태부 사마의가 군사들을 인솔하여 이들에게 대항했다. 오나라 장군 전종이 작피를 침범하고, 주연, 손륜의 5만 병력이 번성을 포위하고 제갈근, 보즐이 조중을 침범했다.
60년전 선비족최초 칸인 단석괴사망
50년전 공손찬 백마의종을 이끌고 황건적이 속한 30만무리 격퇴하며 세력이 성대해짐.
양인 전투에서 손견군이 동탁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고구려에서 연나부의 귀족 좌가려와 어비류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을파소가 고구려의 국상이 되었다.
볼로가세스 5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원소 기주목이 되어 계교전투에서 공손찬에 승리
40년전 조조군이 창정의 원소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이후 원소 다음해 병사하고 아들 원상은 답돈에게 의지.
30년전 한수와 마초가 조조공격.
조조가 서쪽으로 관중(關中)을 정벌
20년전 촉건국.유비가 황제
손권과 이릉대전에 대패.
10년전 제갈량 가비능과 협력.사마의와 첫대결.
20년후 첨해는 15년간 즉위하다 261년 겨울에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고대사 기록은 자주 짧은 문구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아마도 이는 첨해가 살해되었다는 암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첨해가 아들을 남기지 못한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본래 조분에게는 훗날 이사금에 오르는 유례와 기림이사금의 아버지 걸숙 등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나이가 어려서 그랬는지 조분왕이 죽자 그의 동생인 첨해가 왕위를 계승했다. 이는 신라가 건국하고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 그동안은 사위 쪽으로 왕위가 넘어가는게 보통이었다.
이런 전통을 깨고 맏사위인 우로와 둘째 사위인 미추를 건너뛰어 동생 첨해가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왕위 계승권에서 0순위였던 우로가 왜장에게 잡혀 불에 타 죽는 것이 더욱 의문을 부채질한다. 어쩌면 부당하게 왕위를 차지한 첨해가 왕위에 불안을 느끼고 그 근원인 우로를 왜인의 힘을 빌려 제거했을지도 모른다
첨해에게 아들이 없고 우로도 이미 죽은 상황에서 미추는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다. 그리하여 그는 국인들의 추대를 받아 드디어 김씨 사상 처음으로 왕관을 쓰게 되었다. 261년 12월 28일의 일이었다
30년후 271년 5월 독발수기능은 양주(涼州)를 침공하여 청산(오늘날의 감숙성 배현)에서 양주자사 견홍과 맞선다. 양주에 있던 다른 선비족들이 호응하여 견홍은 고립되고 결국 패하여 사망한다. 이후 진에서는 실권자였던 가충이 토벌대장으로 추대되지만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정벌을 미루다 딸의 혼인을 이유로 눌러앉는다.
40년후 로마 제국의 황제 프로부스의 승전을 축하하는 개선식이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서진의 농부가 위 양왕의 무덤을 도굴하여 죽서기년이 발견되다.
50년후 거질미왕이 가락국 4대 왕이 되었다.
서천왕 22년, 291년에 '가야 및 마한 12국'이 래조하였다.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악숨 왕국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사마염이 죽은 이후 팔왕의 난이 발발하였다
60년후 사마륜이 서진의 황제인 사마충의 자리를 찬탈하여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사마경을 포함한 많은 황족들이 사마륜에 맞서 거병하였는데 이 와중에 사마륜의 조카 사마옹이 그를 배신하여 사마륜과 그의 가족은 목숨을 잃는다.
BC.120년 이후. 호민관 피살 사건으로 그동안 귀족 의한 선출 임명 되는 선거 방식에서
민중들의 반기로 민중들의 중심으로 평민 출신을 지지하여 임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60년전 여태후가 죽자 궁 안에서 숙청을 피해 때를 기다리고 있던 주발-진평 등의 유방 직속 공신과 다른 유씨들이 들고 일어나 여씨 일족을 몰살했다. 이때 번쾌의 아내인 여후의 여동생 여수도 구타당해 죽고 말았다
50년전 안티오코스 4세의 셀레우코스 제국이 이집트를 공격하여 프톨레마이오스 6세를 사로잡았다.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계속해서 파라오 직을 수행하였으나 셀레우코스 제국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40년전셀레우코스 제국의 데메트리오스 1세가 반란군을 이끌던 티마르코스를 살해한 뒤 로마 원로원에 의해서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파르티아의 왕 미트리다테스 1세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메디아를 공격하였다.
30년전로마 원로원은 카르타고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누미디아를 공격한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고,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로마의 감찰관인 카토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는 카르타고를 공격하자고 하였다.
미트리다테스 5세가 폰토스의 왕이 되었다
20년전 한무제 즉위. 루시타니아인의 지도자인 비리아투스가 로마에게 뇌물을 받은 부하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이후 로마는 루시타니아인들을 상대로 승리하고 루시타니아를 로마의 속주로 편입시켜, 루시타니아 전쟁이 마무리되었다.
20년후 로마의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가 급진적인 법안을 제출하였고, 5일 이내에 원로원 의원들이 이 법안을 인정하는 선서를 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조항을 신설하자 로마 원로원은 크게 반발하였다.
케사르 탄생.
30년후 로마가 무기를 버린 이탈리아인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공표하였다.
전한에서 무고의 화 사건에 대한 조사 끝에 증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황태자 유거의 결백이 증명되었다. 무제 또한 태자의 거병이 강충의 핍박에 의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40년후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시아 속주 총독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휘하에서 군복무를 시작한다.
50년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시노프를 함락시켰다.
프라아테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전한이 흉노를 굴복시키고 서역을 손에 넣은 뒤, 서역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집정관에 당선되기 위해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끌어들여 삼두정치를 결성한다.
bc480년 - 살라미스 해전,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 1세가 테르모필라이 전투에서 사망하다.
bc840년 네팔에 고파라 왕조 수립
BC 1200년-페니키아인, 알파벳 발명
도리스인은 BC 1200년경 철기문명을 가지고 달마치아 ·알바니아 지방으로부터 미케네 문명세계의 그리스 본토로 급격하게 침입해왔다
BC 1200년대에 이르러 히타이트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파포스에 있는 아프로디테에게 바치는 신전은 BC 1200년 무렵 건설하였다
B.C 1560년경, 이집트에서 힉소스인들이 침입해 예리코는 다시 파괴되었다.
이집트 제12왕조 초기(BC 1920년경)의 다흐슈르에서 출토된 목걸이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누금세공기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BC 2280년 초대 단군왕검께서 직접 마리산에 오르시어 참성단이라 불리는 이 제천단에서 즉위 50주년을 맞아 상제님께 천제(天際)를 올렸다
BC 2700 년 - BC 2640 년 사이에 고대 중국에서 비단(silk)을 만들었다사기(史记)에 보면 황제(黄帝)는 서능씨(西陵氏)의 딸 누조(嫘祖)를 처(妻)로 맞아 혼인하였다고
고왕국(BC 2640년경에서 BC 2134 년)
용산문화와 양저문화(BC. 3000년경)
BC 3000년 나르메르 팔레트 가장오래된 상형문자
하원갑자
1861년
7월 21일 - 남북전쟁: 제1차 불런 전투.
김정호, 대동여지도 제작.인도 타고르 탄생
이탈리아 왕국 설립.
60년전 조선에서 순조원년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정순왕후가 천주교 엄금에 관해 하교를 내렸다
50년전 - 베네수엘라.파라과이가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 아메데오 아보가드로가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발표하다.
홍경래의 난 발생.
40년전 볼리바르에 의해 중남미 6개국 독립.
30년전- 브라질 제국에서 노예 무역이 금지되다.
- 찰스 다윈이 비글호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다. -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하다.
20년전아편전쟁: 영국군이 홍콩을 점령한다. 이후 1997년 반환까지 156년 동안 홍콩은 영국의 영토가 된다 - 엘살바도르가 독립을 선언하다.
- 상류 캐나다와 하류 캐나다를 통폐합해 캐나다가 탄생하다.
20년후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
1차 보어전쟁이 종결.
별기군 설치.
30년후
40년후
50년후
60년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가 대통령 이승만과의 의견 대립으로 사직하였다.
.코민테른이 이르쿠츠크에서 전한공산당대회를 열것을 요구하자 한인사회당은 묵살하고 상해에서 강행 2곳에서 분열 설립됨. 후반기 자유시참변 발생
1501년 위인들 탄생
음력 11월 25일 - 조선의 주자 훈구파 퇴계 이황.
7월 10일(음력 6월 26일) -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남명 조식
더강한 12월 2일 - 조선 11대 국왕 중종의 제 2계비 문정왕후.
60년전 장영실과 이천이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하다.
50년전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사창(社倉)이 실시되었다.
40년전 명나라 전역과 주변 조공국들의 지리를 서술한 대명일통지가 편찬되었다
- 승리왕 샤를 7세가 1461년 죽자 루이 11세는 왕위에 올라 아버지 측근세력을 일소하고 제후세력들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헨리 6세를 폐위시키고 즉위한 에드워드 4세는 랭커스터 가문을 소탕하는데 열을 올렸다
30년전 헨리 6세 : 잉글랜드, 프랑스의 왕이 죽고
에드워드 4세는 용담공 샤를의 지원을 받아 1471년 3월 동생인 글러스터 공작 리처드와 함께 런던을 탈환하고 4월 바넛 전투에서 리처드 네빌을 죽였다. 같은 날 헨리 6세의 왕비 마가렛이 외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와 함께 상륙했으나, 투크스베리에서 격파당하고 에드워드는 피살되었다. 이로써 남아 있던 랭카스터 가문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처형되었으며 그 후 헨리 6세를 죽인 에드워드 4세는 평생을 안전하게 지냈다.요크왕조가 시작된다
세조실록이 완성되었다
20년전 두보의 작품을 번역한 두시언해를 펴냈다.
시스티나 성당 건축이 완료되었다.
오스만 제국과 나폴리 왕국 사이에서 일어난 오트란토 전투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끝났다.
10년후 말레이 포루투갈 식민지 130년 시작
20년후 마젤란 함대가 필리핀 군도에 도달하였으나, 지나친 개종 시도 중 막턴 섬의 추장 라푸라푸에게 마젤란이 피살되었다. 일부도시 스페인지배.
이슬람이 로두스섬을 차지함.
1521년과 1522년에 연달아 중국대륙의 남해안지대에서 포르투갈 제국과 전쟁을 벌여서 승리한 타마오 전투와 시사오완 전투.
에르난 코르테스 지휘 하의 콘키스타도르와 원주민 연합군이 테노치티틀란 전투에서 아즈텍 군대를 물리치고 멕시코가 스페인에게 정복되었다. (아즈텍 제국의 멸망)
30년후 독일에서 개신교 제후들이 슈말칼덴 동맹을 결성하였다.
-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 사건에 대한 가톨릭교회 측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 날에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40년후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종교 회의가 결렬되었다.
오렐리아나가 아마존 강 삼각주와 하류, 중하류 일대를 탐사하였다.
오다 노부히데 후루와타리 성으로 거점을 옮긴 즈음 해서 교토로 상경하여 조정에 헌금을 하여 종오위하에 임명되어 빈고노카미(備後守)의 작위를 얻는다.
50년후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측으로부터 트리폴리를 탈환하였다.
오다 노부히데 :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사망.
신사임당사망.
60년후 류몽인, 이달, 이덕형 탄생.
사이토 요시타츠가 1561년 사망한 후 뒤를 이은 사이토 다쓰오키는 오다가 전방에서 압박해오자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나가마사에게 동맹을 제안하지만 노부나가가 선수를 쳐 여동생과 결혼해 나가마사와 노부나가는 동맹 관계를 맺게 돤다.
70년후 오다 노부나가는 무로마치 막부의 마지막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적대하게 된다.
마닐라가 완전히 스페인 지배함.
1141년
마틸다 잉글랜드의 여영주로 선출
스티븐 마틸다에게서 왕위 탈환
60년전 디라키움에서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로써 알바니아는 1100년까지 노르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가 지명 알바니아의 첫 언급임
50년전 - 노르만 군대가 시칠리아의 마지막 무슬림 거점이었던 노토를 함락, 시칠리아 정복을 완료하였다.
- 페체네그족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였으나, 알렉시오스 1세의 비잔틴 군대에게 대패하였다. (레부니온 전투)
- 런던에 큰 토네이도가 지나가 런던교가 파괴되었다.
40년전 십자군이 아나톨리아를 넘어 예루살렘 왕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킬리지 아르슬란 1세가 이끄는 셀주크 제국군에게 크게 패배하였다. - 천조제가 거란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송휘종 친정
30년전 하인리히 5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바그다드에서 무슬림이 단결하여 십자군에 빼앗긴 예루살렘을 회복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시리아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1세가 지휘하는 십자군이 부리 왕조와 모술의 아타베그의 군대가 주축이 된 셀주크 제국군과 싸웠다. (샤이자르 전투)
20년전 금나라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요나라의 중경 대정부를 함락시켰다. 천조제가 몽골로 피신하자 한인 신하 이처온과 황족 야율대석은 남경 석진부에서 천조제의 숙부 아율순을 옹립, 북요 정권을 수립한다.
노구교 전투에서 요나라 (북요) 군대가 송의 환관 동관이 이끄는 20만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코르도바에서 무라비트 왕조의 지배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모로코 산중에서 무와히드 왕조가 건국되었다.
20년후 금나라 제 4대 황제 해릉양왕이 자신의 부하에게 살해당하였다.
금나라 군대가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30년후 살라흐 앗 딘에 의하여 파티마 왕조가 멸망하였다. 이집트는 다시 수니파 국가로 돌아서게 된다.
비잔틴 제국이 달마티아의 지배권을 회복하였다
40년후 자야바르만 7세가 톤레삽 해전에서 참파를 격파하고 크메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아흐마드 알 시킬리가 이끄는 무와히드 왕조의 해군이 포르투갈 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회복하였다
50년후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가 3차십자군조직 아크레를 향해 출항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이 이탈리아로 진격하였다.
시칠리아 왕국 군대가 하인리히 6세의 독일군을 격파하고 왕비인 로제르 2세의딸 콘스탄스를 사로잡았다
60년후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슈바벤 공 필립과 내전을 치르는 오토 4세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지지하였다.쿠이텐 전투에서 칭기즈 칸이 자다란 부족의 자무카를 격파하였다.
칭기즈 칸이 타우치우트 족을 정복하고 제베를 부하로 삼았다
781년 카롤루스는 재차 로마를 방문해, 교황에게 자신의 두 아들인 피피노와 루트비히에게 축성케 하였다. 그리고 피피노와 루트비히에게 각각 롬바르드와 아키텐의 왕위를 수여하였다
이정기 781년 이보신이 숨을 거둔 뒤에는 덕종이 이보신의 아들 이유악에게 절도사 자시를 세습하지 않자, 이유악 · 양숭의 · 전열 등과 함께 산둥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정기는 자신이 관할하던 15개 주에서 얻은 막대한 부와 1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바탕으로 당군과 맞서, 강회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같은 해 숨을 거두는 바람에 낙양을 함락시키지는 못하였다.
60년전 툴루즈에서 아키텐의 공작 오도가 이끄는 가톨릭 세력 (아키텐 - 프랑크 연합군) 이 툴루즈를 공격하던 우마이야 왕조군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툴루즈 전투)
50년전 세르다냐 (피레네 동부) 의 베르베르 인들이 아키텐의 오도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프랑크 왕국, 남 프랑스 해안 일시 수복 (vs 우마이야
40년전 콘스탄티누스 5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아르타바스두스가 콘스탄티누스 5세를 내쫒고 비잔티움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로마 교황 자카리아의 지원으로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되었다.
불국사 3층 석탑과 다보탑이 제작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해에 석굴암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탈라스 전투 : 아바스 왕조군이 탈라스에서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 이후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고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가게 된다.
라벤나가 랑고바르드족에게 함락되어서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폐지되었다
20년전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사사명을 살해하고 칭제하였다.
아바스 왕조군이 카이르완을 재정복하였다
10년후 알폰소 2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인 루트비히 1세가 바르셀로나를 점령하였다.
30년후니케포루스 1세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불가르족 군대의 총공격으로 인해 괴멸당하였다.
- 미카엘 1세 랑가베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지휘하는 프랑크 왕국 군대가 타라고나를 공격하나 후우마이야 왕조의 반격으로 실패하였다
40년후 타히르 토후국이 건국되었다.
50년후 동아시아 한파시작.
모라비아 왕국(현 체코)의 군주 모이미르 1세가 바이에른의 파사우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다
58년후 이사도 내부배신으로 패망.
60년후 퐁트누아 전투에서 샤를 2세와 루트비히 2세가 이끄는 군이 로타르 1세가 이끄는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21년 가락국 취희왕 즉위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70년전 후조멸망과 동시에 351년에 전진이 건국된 이후로 부견은 유력한 왕족들 중 하나로 성장해나갔다
60년전 율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사마비가 동진 제 6대 황제가 되었다
50년전 겨울, 3만 명의 백제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이 때 고구려 왕 고국원왕이 전투 도중 전사하였다. 이후 소수림왕이 고구려 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탁발식 사망.초대 왕이 될 탁발규탄생
371년 전진은 4월, 서남쪽에 위치한 구지의 마지막 왕인 양찬이 숙부인 양무와 불화한 틈을 타서 이를 공격하여 전연을 멸망시켰다
.371년 환온은 사마혁을 폐하기 위해 사마혁의 흠집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사마혁이 워낙 신중하고 꼼꼼해서 찾지 못했다. 결국은 사마혁의 잠자리 문제를 이용했는데 '황제는 일찍부터 중풍이 있어 여인들은 총애를 못 받고 침실에서 시중들던 전씨, 맹씨 등이 다른 남자에게서 세 아들을 낳아 황제로 만들 것이다'라고 루머를 퍼뜨렸다. 저태후는 진위도 알아내지 않고 사마혁을 남색가 내지 고자로 몰았다. 같은 해 11월, 재위 7년 만에 폐위시켰다
40년전 혁련발발: 오호십육국시대 하나라의 초대 황제 탄생
30년전 후연 모용수 북위를 세운 탁발규를 초기에 지원했던게 화근이었다. 391년 탁발규의 동생 탁발고를 볼모로 삼고 군마를 요구했으나 어차피 부자승계할 생각이었던 탁발규는 요구를 거절했다
20년전 오호십육국시대 북량의 초대 군주인 단업이 저거몽손의 군대에 사로잡혀 살해당하였다. 이후 저거몽손이 스스로 양주목 장액공을 칭해 북량 2대 군주가 되었다.
후연 4대 황제 모용성이 용성 내에서 단기가 일으킨 반란으로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후 모용희가 후연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로마 라벤나로 수도이전
10년전 북량 411년 저거몽손은 남량의 주요 거점인 고장을 점령
북량은 421년에 서량을 멸망시키고 돈황 일대를 장악하였다.
10년후 431년, 혁련정이 이끄는 북하 정권은 계속 북위(北魏)에게 패배하여 쇠퇴하고 있는 상태이었지만, 세력을 키워서 서진(西秦)을 멸망시켰다.그러나 속국인 토욕혼(吐谷渾)이 북하를 배신하고서 북위에게 붙고서는 북하를 공격하였고, 혁련정이 토욕혼 군대에게 사로잡혔다. 토욕혼은 혁련정을 북위로 보내었고, 북하는 멸망하였다.
20년후 북량 멸망을 피하여 도피중
30년후 서로마 제국의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는 이탈리아로 진군, 서고트족의 왕인 테오도리크 1세의 군대에 합세하였다.
- 카탈라우눔 전투: 훈족 군대와 서로마 제국군, 서고트족, 프랑크족 연합군이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맞붙었다. 아틸라는 이 전쟁 이후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40년후 리키메르 장군의 추대로 리비우스 세베루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서고트족 군대가 셉티마니아를 재정복하고 히스파니아 지방을 공격하였다
50년후 효문제가 북위 7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프랑크 왕국이 건국되고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족의 왕이 되었다.
61년 로마황제가 되는 갈바 61년, 이베리아 반도 북동부의 총독에 임명되었다.
60년전 - 유리명왕(瑠璃明王)의 태자 도절(都切)이 죽다.
백제(百濟) - 말갈이 쳐들어왔지만 추장이 생포되다.
50년전 아르타바누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40년전동부여의 대소왕이 대무신왕이 이끄는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전사
30년전세야누스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국가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20년전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암살당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10년후 로마가 에보라쿰(요크)에 요새를 건설하였다.
로마 속주 브리타니아의 총독이 반란을 진압하였다
20년후 도미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티투스 개선문이 착공되었다
30년후마니우스 아칠리우스 글라브리오와 트라야누스가 로마 제국의 집정관이 되었다.
반초가 서역도호부의 도호가 되었다
40년후 경주 월성이 건설되었다.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원정을 떠나 트란실바니아에서 이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후
60년후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선비족 8천여명과 함께 후한의 요대현을 공격하였다. 요동태수 채풍이 이끄는 군대는 이들을 상대로 패하였다
bc300년 그리스인 피로스는 초기 로마의 강력한 적수였다. 피로스 전쟁에서 그는 로마군과 싸워 여러 전투에서 승리에페이로스(기원전 306년~302년, 기원전 297년~272년)와 마케도니아 왕국(기원전 288년~284년, 기원전 273년~272년)의 왕이 되었다
연나라 진개 고조선2000 리 영토점령
bc660년 기원전 660년 : 춘추 시대 북적의 침공으로 위나라 군주 위 의공 사망.
다윗왕이 BC1020년경 통일왕국을 이루지만
BC 1380년 경에 나일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가 개착(開鑿)되었다.
BC2000년경 미노아 문명이 크레타 섬에서발달했다
지구라트 = 높은 곳 하늘의 있는 신들과 지상을 연결한다는 건축물 B.C 2200년 ~ B.C 2100년경에 건축
대 ·소변을 배출하기 위한 시설로, BC 2400∼BC 2100년의 고대 바빌로니아의 주거지(住居址)에서 이미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고 역청(瀝靑)으로 마무리한 걸터앉는 방식의 수세식이 발견
황하유역 앙소문화(기원전 4512년 ∼ 2460년)의 채도, 이집트 네페레프레 (기원전 2460년 ~ 기원전 245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