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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 | 수혜자 | 작품명 |
시 | 강정아 (강 주) | 「홀수의 새벽」 외 50편 |
황유원 | 「당나귀와 나」 외 52편 | |
황인찬 | 「피카레스크」 외 50편 | |
소설 | 우다영 | 「해변미로」 외 6편 |
이수경 | 「자연사박물관」 외 5편 | |
희곡 | 김민수 | 「여자의 등장」 외 3편 |
평론 | 신샛별 | 「프레카리아트 페미니스트의 탄생」 외 17편 |
아동문학 | 박경임 | 동시 「입맛」 외 50편 |
박상기 | 동화 『도야의 초록리본』 |
※ 심사평
<시 부문>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는 것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창작지원금 응모작 중에서 아홉 분을 주목했다. 이분들은 당연히 우리 시의 첨단이자 최근의 성과이다. 더 많은 시인들이 최종심에 올라야만 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사람만 선택되었다. 모든 작품들이 돌올했기에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의 결과물은 익숙한 편애일지도 모르겠다. 예심 기간 동안 읽었던 시와 최종심에서 다시 읽었던 시편들에 감사도 덧붙인다. 어떤 문학상의 심사보다 더 신중했고 더 즐거웠다.
‘「피카레스크」 외 50편’ 중에서 오래 논의되었던 작품은 심사위원 모두를 매혹시킨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이다. “밤의 천사는 밤에 찾아와 / 사람의 뺨을 만지며 축복하는 천사입니다”라는 도입부가 있다. 천사/시 쓰기에 대해 방황하는 시인이 있다. 천사/시 쓰기가 “그저 형편없는 시”이거나 “시가 아닌 것 같”을지도 모른다고 회의하는 시인은 간단치 않은 시 쓰기의 호흡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흔히 그러하듯 서사의 결말은 “방금 누군가를 죽이고 왔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비극적 표정이 엔딩 크레디트이다. 그의 시는 연과 연이 서로 상관없는 것들 / 혹은 상관없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지는데, 겉으로는 상관없는 정황들이 그 저류에서는 이상한 관계를 이루며 이어지고 동시에 세계가 확장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젊은 시인들의 시가 변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라는 확신이 그의 시에 있다. 또한 발화 방식들이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기에 절제된 정신력을 온전히 보여주기도 한다. 다음 연 혹은 다음 장에서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할 수 없어서 자꾸 따라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어지는 새로운 말들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지루하지 않은 가독성과 신비를 유지한다는 데 이 시인의 장점이 있다.
‘「홀수의 새벽」 외 50편‘을 보여준 시인은 미학 교실의 순수 멤버가 아닐까. 사물과 은유 사이를 진자 운동할 때의 감수성을 정확하게 분배한다. 사물이 은유가 되는 건 누군가의 호명이나 시선이 필요할 터, 예컨대 “찢어진 낱장으로 이해해요. 눈송이 하나와, 하나의 눈송이와, 또 다른 눈송이 하나의 이야기는 폭설. 깊이는 눈부시죠”(「a의 사물함」)라고 했을 때, 눈송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손쉽게 찾아간다. 그럴 때 사물은 소란스럽지 않다. 모더니즘이 이 시인에게 최적화된 것. “모서리를 완성하기 위해 서로를 모을 것 / 서로를 도래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 사라진 사람들은 / 던지기에 알맞은 미지수였다”(「큐브의 경우」)라 했을 때 사물들 또한 주인공의 배역을 쟁취하여, 무대 위에서 스스로 발광한다. 잘 짜인 극본을 읽을 때의 감정이 솟구친다. “서쪽은 오른손에서 멀고 / 마지막 빛을 주워 서로에게 던졌을 때 / 결국 빛에 관한 이야기만 남았다 / P의 빛은 시가 될 수 있을까”(「P의 배경」)라는 구절에서 P라고 불리는 혹은 P라는 이질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완충력의 높낮이에 공감할 수 있다. 낯섦을 낯설지 않게, 불편하지 않도록 이끌고 가는 시인의 대자적 세계관이 찬찬하다.
시의 리듬이 내재율만이 아니라는 데 동의를 한다면 ‘「당나귀와 나」 외 52편‘ 전체 시편 중에서 「눈사람 신비」를 천천히 낭송하여 들려주고 싶다. 평이한 언어, 헐렁한 서사 사이에서 시의 미학은 언어와 진술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언어가 실천하고 있다. 「눈사람 신비」에서 생각과 진술 또는 생각과 몸 사이의 거리가 강약 조절되는 탄력은 낯선 행위가 아니다. “한밤중에 뜨거운 물 끼얹으면 / 좋은 생각이 나는 것 같다”라는 시작은 시인의 말처럼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 생각은 “눈사람이 자기 몸에 뜨거운 물 끼얹어 / 아래로 평등하게 고이게 된 물이 / 잘 정리된 생각인 것만 같다”라는 외연으로 바뀐다. 생각이 몸/물질을 획득하게 된 낯익은 고백이 명쾌한 논리를 얻게 되는 과정이다. 다시 되돌아가면 눈사람은 욕조 속에서의 뜨거운 물이라는 물질과 좋은 생각이라는 물질의 교집합이다. 자신을 녹여 버린 눈사람이야말로 생각의 완전함이라는 이 과정은, 물론 생각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겠지만, 생각과 몸에 대한 생생함을 받아들이는 영혼의 공감각 때문이기도 하다. 신뢰할 만한(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시적 가정이야말로 이 시인이 움켜쥔 개성이다.
열거한 시인들의 사유가 비범하다는 데 공감을 하면서 다시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 송재학 ․ 장석남 ․ 최정례
<소설 부문>
한국문학의 영토확장과 다채로운 시민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꺼번에 몰아서 읽는다는 설렘과 기대가 컸다. 등단 10년 미만이란,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글쓰기의 연령으로는 청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쓰지도 못했으면서 어느새 동어 반복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던 참이어서 잘 벼린 도끼날이 절실했다.
무엇보다 다채로웠다. 정통 추리 소설부터 판타지,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직하게 묻고 있는 진지한 목소리까지, 복잡하게 뒤엉킨 이 사회의 반영처럼 다채로운 빛깔이었다. 주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과 젠더 문제, 오랫동안 유지돼 온 강력한 구심력에서 배제되거나 밀려난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 불능의 개인들까지, 그 문제의식도 다양하였다. 한편으론 국경이 무의미해 보일 만큼 소설의 지리적 배경도 세계지도를 펼쳐놓은 듯했다. 북한, 중국, 동남아시아, 중남미, 중앙아시아, 유럽 등의 다양한 지역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다. 단지 지리적 배경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역시 현지인들로만 구성된 소설들을 읽으며 한국문학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외국을 배경으로 삼아도 인물들은 한국인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았던 우리 세대의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글로벌 시대를 들먹이지 않아도 문학은 이미 좁은 국경선을 넘어선 지 오래 돼 보였다.
본심에 오른 10편 중 최종심에서 거론된 작품들은 총 6편이었다. ‘「유럽식 독서법」 외 8편’, ‘「피아노」 외 8편’, 『토요일의 꼬리』, 『차가운 밤의 아이들』과 ’「해변 미로」 외 6편’ 그리고 ’「자연사박물관」 외 5편’이다.
’「해변 미로」 외 6편’은 오래전부터 ‘모든 게 그물처럼 이어’진 이야기 구성을 통해 판타지와 현실을 절묘하게 결합해 낸다. 특히 세밀한 장면들이 뛰어나면서도 이야기를 장악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대상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쉽지 않은 구성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예리한 렌즈를 장착한 작가의 시선과 뛰어난 문장력 역시 높이 평가되었다. 후반부에 다소 서운한 부분이 있지만 작가의 진지한 사고는 앞으로의 글쓰기에도 충분한 믿음을 주어 지원작 선정에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사박물관」 외 5편’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중요한 주제인 노동과 불안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연작형식으로 이어지는 소설집이다. 작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섬세한 눈길과 안정감 있는 전개로 철탑이나 고공밖엔 더 이상의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은 사람들의 위태로운 삶을 잘 보여준다. 지금 우리의 주소지가 번쩍이는 쇼핑몰이나 잘 가꾼 공원, 축제현장이 아니라 노조를 결성한 대가로 거액의 손해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월 70만 원의 우체국 비정규직으로 일가족이 연명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 패턴이 반복되는 것은 주의해야 할 점으로 지적되었다. ‘「유럽식 독서법」 외 8편’은 세련되고 재기발랄한 작가의 재능이 가장 돋보였다. 그러나 작품 사이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며 각각의 작품이 고르지 못한 편차가 아쉬웠다. 『토요일의 꼬리』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흥미롭고 중남미 대륙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와 문장력이 아쉬웠다. 『차가운 밤의 아이들』은 우리 현대사의 의미 있는 시공간을 반복의 서사를 통해 촘촘한 모자이크로 완성해 내고 있는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장편에선 지나치게 세밀하고도 반복되는 내레이션이 가독력을 떨어뜨리고 소설의 전진을 막고 있었다. ‘「피아노」 외 8편’은 소설적 정황은 잘 구축되어 있지만 세련되게 축약하는 능력이 아쉬웠다.
심사를 하면서 다채로운 장르와 다양한 소재, 한국문학의 지형을 확대해 나가는 현장을 목도하는 즐거움을 맘껏 누렸다. 그러나 장편소설은 응모편수도 적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가 부족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감각적이고 재기 넘치는 단편들에 비해 호흡이 길고 묵직한 서사가 눈에 띄게 부족한 현상은 점점 짧은 글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매체 탓도 크기에 앞으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유쾌하지 않은 전망을 갖게 했다. 섣부른 예단을 깨부술, 잘 벼린 ‘도끼날’은 후년의 기대로 남겨둔다.
심사위원 : 김이정․ 최인석 ․ 한창훈
<희곡 부문>
올해는 14명의 작가가 지원하였다. 응모작들마다 개성이 뚜렷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선보였다. 읽을수록 질문이 늘어난다. 원론적인 물음으로 돌아갔다. ‘희곡’은 뭔가? 뭘 할 수 있고 해야 하나? 도대체 어떤 작품을 좋다고 말할 수 있나?' 심사는 그 수많은 질문들과 마주하는 자리였다.
이 작품이 붙든 ‘문제’는 무엇인가? 그 문제를 얼마나 예리하게 포착했으며 생생하게 드러냈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극적으로 구축하여 설득력 있는 결말로 맺어 주었는가? 애초에 붙든 문제의식과 극의 전개가 엇나가지는 않았는가? 편의점 진열대처럼 상황을 나열하지는 않은가? 당위에 떠밀린 건 아닌가? 결론에서 어색한 미소나 성급한 화해로 숨을 돌리지 않았는가? 극적인 것과 극단적인 것은 구분되는가? 이 참신한 설정을 이 작품이 살려주었는가? 인물의 목소리를 얼마나 공평하게 전달했는가? 옹호하고 싶은 인물을 감싸려 다른 인물을 비열하거나 쩨쩨하게끔 폄하한 건 아닌가? 인물들은 비장한데, 보는 사람은 어리둥절하지 않을까? 대사가 장황하지 않는가? 버스에서 남의 사생활을 듣는 것 같지는 않을까? 다소 사변적이지 않나? 진정성과 감상성은 무엇이 다른가? 한계까지 밀어붙였는가? 인물의 내면을 찢어발겨 드러냈는가? 인물들이 서로에게 육박했는가? 극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을 대사로 풀고 있지는 않나? 말이 제 몫을 해야 할 자리에서 이미지로 눙치지는 않았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는 방식과는 다른, 희곡만의 대결 방식이 있지 않을까? 왜 하필 희곡인가?
읽으며 생기는 물음은, 쓰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샴쌍둥이였다. 질문과 답변을, 재차 던져진 질문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워야 한다.
끝내는 것은 완성도에 만족해서가 아니다. 마감을 더는 미룰 수 없어서다. 본심에서 4명의 작가와 남았다. 다음 과정도 만만치가 않았다. 커피와 매실 음료, 찬 물을 마시고 얼음을 씹어가며 긴 시간을 논의한 끝에 2명의 작가와 마주했다. 최종 심사 결과는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로 갈음한다.
(‘「사막 속의 흰 개미」 외 2편‘의 작가에게) 세련된 타이핑 소리가 난다. 현재를 ‘페어리 서클’처럼 바라보거나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으로 보는 것, 그러한 접근에 흥미와 찬사를 보내지만 뭔가 이 작가에게는 육성의 흔적이 없다. 이게 세련되어 보이는 이유와 관련 있다면 난감하다. 물론 우리는 육성이 다인 양 우겨온 올드한 창작극 전통에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나 원래 육성이 깔려 있었지만 그것이 합당한 이유로 제거된 (혹은 정제된) 세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어떤 자연·사회·인문학적 키워드 몇 개로 현 세계의 난맥상을 짚는 것은 (상대적으로 화려한 등단 절차를 거친 작가에게는) 이제 경계해야 될 태도처럼 보인다.
(‘「여자의 등장」 외 3편’의 작가에게) 맹렬하게 쓰고 있는 작가처럼 보인다. 다양한 소재에 관심이 펼쳐져 있고 다양한 형식으로 이를 써 보려는 듯 보인다. 흡사 몸부림이 느껴진다. 그러나 지독한 행위로 ‘섹스’ 동원, 소통되지 못하고 있는 자아로 ‘성소수자’ 소환, 결론을 강요하는 희곡관행에 대한 거부로 행해지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무작위적 편집은 자칫 굉장히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동원된 소재나 인물을 ‘대상화’하여 소비하거나 ‘사람들이 뭘 잘 몰라’하면서 작가 자신을 선민화 하는 식으로……. 그걸 막고자 이 작가를 택한다. 부디 공적인 자리에 자신의 글을 드러내 놓고 좀 더 넓은 시선으로 그 (육성의) 몸부림을 이어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비평에 대한 자의식과 비평적 문제 구성
올해의 대산창작기금 평론 부문 응모작은 총 11권이었다. 이들 중 소설 평론에 해당하는 작품은 4권이고 시 평론에 해당하는 작품은 7권이었다. 문학평론의 흐름이 시 평론으로 편중되는 이러한 현상은 최근 문예지에서 소설 평론의 지면이 줄어드는 제도적 장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시 평론이든 소설 평론이든 분량 면에서 단평 위주의 짧은 글쓰기 방식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려할 만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심사위원들은 본격적인 문학평론이 요구하는 문제 구성, 사유의 깊이, 논리적인 서술 전개 등을 기대하면서 응모작들을 살펴보았고,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들을 발견하는 즐거운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총 11권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주목한 것은 3권이었다. ‘「일상과 아름다움의 단짝단짝 레시피」외 23편’은 작품에 천착하는 세밀한 시선을 통해 젊은 비평정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현재 우리 시단의 새로운 시적 감수성에 대한 비평적 조응으로서 감각적 접근 방법과 유려한 문장이 돋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로 해설이나 시인론 위주로 씌어진 평론들에서 비평가의 문제의식이나 비판적 사유의 개진이 약하다는 문제도 발견되었다. ‘「감각적 허상을 소비하는 상상체험자들」외 24편’은 주로 최근 젊은 시인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서 문학적 감성을 포착하는 특장을 보여주었다. 이론적 측면과 작품 현상을 접목시키면서 이를 풀어내는 문학적인 표현도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역시 비평적 문제 구성이나 주제의식이 약하다는 문제와 더불어 여러 시인들을 함께 다루는 방식이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문제도 발견되었다. ‘「프레카리아트 페미니스트의 탄생」외 17편’은 주로 여성소설이나 페미니즘 소설에 논의를 집중하면서 현재 우리 문단의 이슈를 천착하는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비평에 대한 자의식과 비평적 문제의식이 뚜렷하다는 장점 못지않게 진지하고 성실하게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장점도 겸비한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으로 간혹 강한 비평적 주제의식에 따라 작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노출되는 현상은 우려할 만한 점으로 지적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위의 3권을 최종심 대상으로 놓고 다각도의 논의를 진행하면서 ‘「프레카리아트 페미니스트의 탄생」외 17편’을 대산창작기금 지원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이 응모자의 비평에 대한 자의식과 비평적 문제의식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시 한 번 동시대 문학의 흐름에 대한 예리한 측량이자 미래적 예측이 문학평론의 중요한 역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원자에게 축하를 드리고, 다음 기회로 지원이 미루어진 분들에게 신진 평론가의 패기와 열정으로 더 정진하기를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 : 권성우․ 오형엽
<아동문학 부문>
올해 아동문학 부문에 응모된 작품은 모두 여든 세 편이었다. 이 가운데 동시가 50편, 동화가 33편이었다. 응모된 작품 수로는 동시가 동화를 압도했으나, 작품의 질적 측면에서 동화가 동시에 뒤지지 않았다. 동화(청소년 소설 포함)에서는 장편들의 강세가 눈에 띄었으며,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서도 제법 반짝이는 개별 시편들이 눈에 띄었으나 한 권 분량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는 원고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아동문학 부문에 응모한 여든 세 뭉치의 원고 가운데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린 작품은 모두 아홉 작품이었다. 이를 놓고 다시 우열을 가려 최종 논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은 동시 ‘「나무도 하늘도 와서」 외 49편’과 동시 ‘「입맛」 외 49편’, 동화 『도야의 초록 리본』과 청소년 소설 『너를 읽는 순간』이었다.
먼저 동시 ‘「나무도 하늘도 와서」 외 49편’은 어린이 독자와의 소통을 염두에 두었다는 점에서 장점을 지닌 작품이었다. 평이한 언어로 어린이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를 다루고 있는 점은 좋았으나, 말법과 정서에서 새로움보다는 기시감이 먼저 감지되는 것이 흠이었다. 동시 ‘「입맛」 외 49편’ 역시 쉽고 간결한 언어를 지닌 작품 이었는 데, 그 말을 다루는 솜씨에서 시인의 개성이 엿보였다. 시적인 것을 발견해내는 안목과 다소 투박하더라도 그것을 자신만의 어법으로 말하려는 어떤 고집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자기 세계에만 갇혀있지 않고 독자에게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도야의 초록 리본』과 『너를 읽는 순간』은 공히 작가 자신이 지향한 장르적 특성을 살려 쓰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들이다. 우선 두 작품은 문장을 다루는 솜씨에서 신뢰를 주었다. 하지만 전자가 신선한 캐릭터를 살리는 지점으로 나아갔다면 후자는 인물을 개연성 있게 다루는 데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주인공의 태도나 주인공에게 호의적인 주변 인물들의 반응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작품의 결말 또한 조금 더 단단하게 마무리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에 견준다면 『도야의 초록 리본』은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인데, 자칫 식상하고 유치한 함정으로 빠질 수 있었을 이야기를 오히려 힘 있는 서사로 살려내어 끝까지 밀고 나간 점이 믿음직했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이고 세밀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가 이야기에 실감과 재미를 불어 넣었다. 동물에 대한 막연한 연민이나 동정심에 머무르지 않고,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작품 안에 잘 녹여 낸 작품이다. 동물을 다룬 동화들이 아주 없지 않았지만 『도야의 초록 리본』은 기왕의 작품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개성 있는 역작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에 심사자 세 사람은 동시 「입맛」외 49편과 동화 『도야의 초록 리본』을 수상작으로 뽑는 데 별 이견 없이 합의했다.
심사위원 : 김제곤․ 박상률 ․ 함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