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코스(서울 찍고 ,설악산,경포대 속리산, 유성온천 5박6일) 갈거야!,
B코스(속리산 찍고, 부여, 3박4일) 갈거야!"
30센치 대자로 손바닥을 벌리라며,담임 선생님께서,손바닥을 매서운 대자로 때리며,
수확 여행을 꼭 가야한다며 욱박지르고 독려한다.
"저는 수확 여행을 갈 수 없습니다."
안 가겠다고 여러 번 애원했지만, 강요에 못이겨, B코스에 간다고 했더니,
이왕이면 전국을 도는 A코스로 가라고 하며, A코스에 체크해 버렸다.
아버지 없이 경제 능력이 없으신 ,어머니와 형들 틈에서,
겨우 형들에게 학비 타서 학교 다니는 데,
여행 경비가 등록금과 맞먹는 금액이어서,엄두가 나지않았으나,
할 수 없이 여려운 얘기를 형에게 했더니 쾌히 허락을 하여,
A코스(서울-설악산-경포대-속리산-유성)수학 여행을 했던 기억이 난다.
몇 일 전 고등학교 친구들 몇 명이서 속리산을 다녀왔다.
봉고차 안에서 학창시절 수학여행 경험담이 나오기 시작했는 데,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이야기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서울까지 비포장 도로를 12시간 달려, 늦게 도착한 서울여관 20명씩 칼 잠,
처음 보는 전차 구경하러, 담 넘어 밤샘, 새벽에 숙소에 들어 오다
선생님 방에서 나온 젊은 여자에 대한 궁금증에 수근수근....
친구 거시기 수염을 성냥불로 태웠다는 진실아닌 소문들...
설악산 비선대에서,비룡 폭포에서 한 학생이 나뭇가지 잡고 사진찍다가 빠져
사진 찍어 달라고 호소 하는... 형편 없는 두개의 도시락,
속리산 문장대,유성에서의 온천....
수학여행 경험담 이야기 하다가 어느새 법주사 입구에 도착했다.
속리산 법주사(신라 진흥왕 14년에 창건)입구에 천연 기념물,
600년 된 외줄기로 곧게 자란 남성적이고, 나무 형태는우산 모양으로 퍼진
아름다운 모습이 여성적으로 비유 되기도 한단다.
친구들과 사진 한 컷 찍고,예약된 경희식당으로 향했다.
경희씨가 요리한 한정식은 산채 나물에 굴비와 소고기 국이 합쳐진
30 가지가 넘은 반찬으로 채워져 있었다.
경희씨는 50년 간의 식당 운영에 머리가 눈송이 처럼 하얗게 변해
얼굴에 주름살은 있었지만 수학여행 당시의 그 착한 마음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음식은 무제한 리필이란다. 굴비를 리필했고, 속리산 더덕 막걸리를 리필했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너무나 한가하고, 한적한 식당가에서
전세를 낸 식당이 돼 버렸다. 네혼 불 깜박이는 부산극장이 아니라
한가한 식당 골목에서 "경희야 잘있거라"하고 우리 일행은 법주사로 발길을 돌렸다.
이 정2품 소나무는 수학여행 당시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웅장하고,
찬란한 자태는 여전하나, 한쪽 가지가 태풍의 피해를 입어 전장에서 부상당한
전상 군인 처럼 상처난 것이
안타까울 따름 이었다. 시골 조카가 과일나무 접을 잘 부치는데
아름다운 여성스런 작은 가지 하나 접을 부쳐주었으면 좋으련만....
법주사 입구에는 연꽃이 만발 해 있는 연못이 아름다웠고,
경내에 황금 입상 불상과 석련지,마애 여래의상, 팔상전,쌍사자 석등,
스님 만명의 밥을 해댔다는 철솥등,
여러 불전들,국보급 문화제 3점을 포함 수 십 종의 문화재가 지정 되어 있다고 한다.
대웅 보전에 들려 3배 씩 9배를 하고,잔돈을 준비 못해
소야에게 빌려 불전함에 헌금하여 여러가지 근심걱정이 많은 나의 소원을 빌었다.
문장대는 세조 임금이 그 위에서 정승 들과 시도 짓고,글 공부를 하였다고 하는데,
딸이 세살 때, 이 문장대를 힘들다 하지 않고,계단을 오른 기억이 새롭다.
그 딸이 불혹의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이제 고희가 한참 넘었구나.
문장대 가는 경관은 여전한데, 이제 마누라와 딸은 같이 문장대 올라 가자면
흔쾌히 따라 나설까..걱정 스럽다.
세 가족의 그때 깊은 사랑이 지금 그 때 만 할 것인가 말이다.
아무튼 법주사와 문장대 가는 길은 1000년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세조가 요양차 이곳에서 머물며, 산책했다는 계곡과 깊은 숲으로 꾸며진
세조길에서,오천이 카톡으로 보내온 윌리엄 헨리. 다비스의 시
'가던 길 멈춰 서서'란 시가 생각 난다.
'근심에 가득차, 가던 길 멈춰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얼마나 슬픈 인생일까!
나무 아래 서 있는 양이나 젖소 처럼,한가로이 오랫 동안 바라볼 틉도 없다면,
숲을 지날 때,다람쥐가 풀 숲에서 온몸 감추는 것을 바라 볼 틈도 없다면,
햇빛 눈부신 한 낮, 밤 하늘 별들 처럼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과 발,또그 발이 춤추는 맵시 바라볼 틈도 없다면,
눈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미소가 입술로 번지는 것을 기다릴 틈도 없다면,
그런 인생은 불쌍한 인생,
근심으로 가득 차 가던 길 멈춰 서서, 잠시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다면...'
시인은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 해 버리고,
어린 시절 공장 노동자로, 구걸로,부랑자로,화물차 사고로,
다리를 잃고,그런 역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고는
시를 쓰는 일이었고, 잠시 멈춰 서서, 무언가 바라 볼 틈도
돌아 볼 틈도 없이 사연 많은 인생길이었지 않았나!
나의 인생길도 꿈 많고,포부도 컸지만, 잘 풀리지 않아,
군대에서 하직하고 복잡하고 힘든 사회 화류계로,세 식구 먹여 살린다고
허둥대지 않았나! 술과 오락으로 태반을 보냈지만...
세조길 계곡물에 지친 발을 담구며 잠시 살아 온 옛 추억을 더듬는다.
세끼 발가락은 달고 달아 발톱은 거의 없어지고,
무좀으로 헤진 발바닥은 요즘 여유가 있어서 인지 자꾸 가꾸니,
군 생활 때 보다 깨끗해 진것 같다.
아쉽지만 아름답고 고풍이 서려있는 법주사를 떠나
또 나는 코로나와 온갖 공해 투성이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봉고차에서 내려 요란한 신분당선 지하철 전기차 소리에 피곤한 몸을 실은다.
친구들! 숲속에 가서, 하루라도 인생의 뒷길을 돌아보고 오시게나!
사랑해! 친구들!한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