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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주류성이야기 두량이성(주산면 사산산성) 전투
하루신선 추천 0 조회 64 19.01.13 10:19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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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1.01.11 21:11

    첫댓글 전해 내려온 전설이 부흥군의 이야기 일까?
    3,4월에 보리짚이 있었을까?
    사비성의 고립된 당군을 구원하러 온 신라군의 공격 목표가 부안(주류성?) 이었을까?
    갈재가 갈령도 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갈재 넘어 순창, 장수, 남원땅이 부흥군의 수중인데 갈재를 넘어도 위험한 지역 아닌가?
    고문서에 기록된 지명들, 각산/삼천포, 고사비성/고부, 빈골양/태인, 가시혜진/고령 등은 어떤 고증을 통하여 공인되었는지......
    부흥운동은 동시다발적으로 백제의 전역에서 벌어졌고, 전투기록은 백제의 지리와 지명을 모르는 당과 왜에 의해 전해오던 것을 후대 사가들에 의해 쓰여진 기록이었기에 많은 부분 다르게 내용이 뒤섞였을 가능성이 크다.

  • 작성자 19.02.27 08:00

    삼국사기의 두량이성에 관한 "신라본기, 백제본기" 두 기록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두량이성 전투는 661년 3월 초부터 4월 19일 사이의 사건 이고, 후자의 전투는 유인궤가 웅진성에 고립되자 동쪽방면을 공격하다 패한 이후 신라에게 청병하여 신라군이 출정하였다가 패한 사건이다.
    아마도 이때까지 신라 당군은 주류성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신라 당군은 복신의 죽음으로 부흥군의 분열이 생기면서 항복한 부흥군에 의해 산악지역 부흥군의 실체(주류성)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작성자 19.02.27 08:03

    신라군이 부흥군에게 패해 도망간 곳 갈령을 지금의 정읍 칠보~순창의 쌍치 고갯길(갈재)이라 주장하는데~
    그시절 그곳에 길이 있었을지 의문이고, 그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많은 군사들이 넘어가기 힘들고, 또한 어렵게 넘어간들 순창 장수 남원 까지 백제 지역이고 또다시 지리산 백두대간을 넘어가야 신라 땅이다.

  • 작성자 19.01.15 00:33

    두량이성 공격에 실패하고 퇴각하던 신라군 "상주낭당"은 적을 각산(角山:삼천포)에서 만나 진격하여 이기고 드디어 백제의 진중으로 들어가 2000여명의 목을 베었다~~~~
    각산을 어떻게 삼천포로 고증하였나?
    그리고 삼천포는 백제영역도 아니다.
    각산은 청양 칠갑산이다.
    "빈골량, 갈령도"가 어디인지 다시 고증해야 한다.

  • 작성자 20.06.06 08:07

    두량이성은 백제부흥운동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산성이다. 사비성을 위협하던 부흥군의 전초기지 처럼 나당군을 불안하게 만든 부흥군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글에서 설명하는 두량이성은 위금암성과 2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위금암성의 부속 성으로 주장해도 전혀 틀림이 없는 산성이다. 이러한 작은 산성을 신라군이 공격목표로 삼아 전투를 치루고 기록으로 남겼을지 의문이 든다.

    위금산성과 2km 거리라면 도보로도 10분 거리, 신라군의 목적물은 당연히 주류성으로 기록되어야 옳다. 그런데 신라군이 두랑이성을 공격한 것으로 기록하였다면 두량이성은 다른 장소에 있는 산성 이어야 한다.

  • 작성자 19.02.24 12:16

    백제 중방성 고사성(古沙城) 또는 고사부리성(古沙夫里城)을 고사비성(古沙比城)으로 비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거야말로 비슷한 지명찿기 아닌가?

  • 작성자 21.01.11 21:18

    위금산성/울금바위에서 본 사산리산성이다.
    사산리산성은 위금산성과 아주 가까운 지척에 있고 어쩌면 부속 산성으로 보아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한 작은 산성을 두량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작성자 21.01.12 19:01

    본문 내용은 원문을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원문에는 고사(古沙)가 아닌 고사(古泗)로 되어있다.

    "신라왕 김춘추가 당주의 조서를 받고 장수 김흠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인궤 등을 구하게 하였다. 김흠이 고사(古沙)에 이르렀는데 복신이 요격하여 이를 파하니 흠이 갈령도(葛嶺道:갈재 즉 노령산맥)로부터 도망하여 돌아왔다. 신라는 감히 다시 출동하지 못하였다."

    위 글의 원문이다.
    <羅>王<春秋>奉詔, 遣其將<金欽>, 將兵救<仁軌>等 至<古泗>, <福信>邀擊, 敗之. <欽>自<葛嶺道>遁還, <新羅>不敢復出. 尋而<福信>殺<道琛>
    원문 한자는 至<古泗> 로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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