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홀로 고운 창가에서 바느질이 더딘데
온갖 꽃 만발하고 꾀꼬리는 꾀꼴꾀꼴.
무단히 봄바람을 원망하는 마음 일기에
말없이 바늘 놓고 임 그리워한다네.
獨倚紗窓刺繡遲 독의사창자수지
百花叢裏囀黃鸝 백화총리전황이
無端暗結東風怨 무단암결동풍원
不語停針有所思 불어정침유소사
이생규장전은 송도의 낙타교 근처에 사는 18세의
이생과 선죽리에 사는 15, 6세의 처자 최씨의 러
브 스토리를 담고 있다, 김시습은 심유적불, 곧 마
음은 유자였고, 행적은 불자였지만, 남녀의 일을
이야기와 노래로만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생규장전」은 이생이 책을 끼고 학교에 다니다
가 우연히 최씨가 시를 읊조리는 소리를 듣는 것으
로 시작된다.
길가에 하얀 얼굴 저 사내 누구신가요?
푸른 도포 큰 띠에 수양버들이 어른어른
어찌하면 처마 위의 제비가 되어서
주렴을 슬쩍 지나 담장 너머 날아가리오?
路上誰家白面郞 노상수가백면랑
靑衿大帶映垂楊 청금대대영수양
何方可花堂中燕 히빙가화당중연
低掠珠簾斜度墻 저략주염사도장
봄을 맞은 최씨의 심정을 토로한 작품이다. 양가의
규수로서 자수를 익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봄바람이 밉다. 무단히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기 때문
이다. 바늘을 손에서 놓고 멍하니 앉아 있지도 않은
임을 그려본다. 내 임은 누구일까? 최씨의 집에는 이
름난 꽃들이 만발하고 벌과 나비는 다투어 난다.
최씨는 꽃 사이의 조그만 누각에 주렴을 반쯤 드리운
채 앉아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푸른 도포를 걸치고
큼직한 띠를 두른 잘생긴 유생이 수양버들아래 지나갈
것이다. 보고 싶다. 저 제비처럼 날개가 있다면 담장
너머로 날아가 만나고 싶다.
이러한 노래를 드은 이생의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들어갈 수 없다. 꾀를 내어 종이에 시를 써서 기와에
묶어 던졌다.
출처: 우리 한시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