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와 세례
원동연 제네시오
리얼라이즈픽쳐스(주) 대표
저는 결혼과 동시에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는 천주교인인 아내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일만 되면 낮잠을 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아내를 따라서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에 안 갔다가는 아내의 잔소리는 물론 밥을 먹을 엄두도 낼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성당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완전 건성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 시간은 비몽사몽 무슨 말씀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당연히 세례를 받지 않았기에 성체를 모실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아내는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매년 채근했지만, 전 항상 “다음에, 다음에 지금 영화 만드느라고 바빠!” 하면서 차일피일 시간만 보냈습니다.
그러던 2012년 저에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인생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만들게(아니 만났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되었습니다.
전 솔직히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이 넘는 관객에게 사랑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개봉하자 정말 예상치도 못한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 각종 텔레비전, 언론, 인터넷 매체들로부터 물밀듯이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각종 강연은 물론 사회 각계의 사람들과의 미팅 요청이 밀어닥쳤습니다.
어딜가도 대우를 받고 어딜가도 찬사와 칭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두세 건의 약속은 기본인 나날들이었습니다. 당시 전 표현하기도 어려운 기쁨과 함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라는 혼란이 공존하는 아주 미묘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때 아내가 저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차분하게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할 시기에요. 어딜가도 당신을 찾고 당신이 주목받을 때 오히려 당신이 그 작은 성공에 도취되지 말고, 이런 행운을 가져다준 주님의 뜻을 헤아려야 할 때인 것 같아요.”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사실 제가 아내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닙니다만, 그 순간 만큼은 아내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맞아. 가장 바쁘고, 가장 주목받고, 가장 찬사받을 때 차분히 나를 돌아보자. 어쩌면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주님의 가장 큰 부름의 순간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제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약속, 모든 행사를 다 뒤로한 채 교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교리 공부하는 동안 사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이 시간 차분히 저를 돌아보면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주님과의 만남이었고, 비로소 천주교인이 된 저를 발견했습니다.
가장 오만하고, 가장 자만하기 쉬울 때 저를 불러주신 주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사하며, 다음 영화도 꼭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서울주보 2014년 12월 7일
http://cc.catholic.or.kr/root_file/seoul/jubo/2014년%2012월7일%20주보(PDF).pdf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