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상은 하동정씨다. 자기 누이의 배경으로 원나라를 왕래하였으며, 공민왕을 모실 기회를 얻었다. 공민왕을 따라서 원나라에 들어가서 공을 세우게 되었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정지상은 여러 번 자리를 옮겨 감찰 지평에 이르렀으나 사리에는 어두운 사람이었다. 정지상이 전라도 안렴사가 되어 관내에 들어갔는데 권세가(토호)들이 시키는 바에 따라서 함부로 백성을 매질하고 노략질하면서 여러 고을을 순시하였으므로 전라도 인심이 정지상을 외면하였다. {영인}
정지상은 공녀(貢女)로 원나라에 가서 출세한 누이를 배경으로 벼슬에 나온 사람으로, 사리에 어두울 뿐만 아니라 졸렬한 사람이다. 안렴사는 지방관이 고을을 잘 다스리는지, 토호(土豪)들이 백성을 함부로 갈취(喝取)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단속하기 위해 파견된 관리인데, 오히려 토호들에게 휘둘려 앞잡이가 되어서 백성들을 매질하고 재물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지상의 인품과 토호들과 관계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예스부카는 고려 사람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순제(혜종, 기황후 남편)의 총애를 받았다. 그의 형 서신계는 육재(재상)가 되었고, 동생 서응려는 상호군이 되었으며, 부원세력에 의지하여 위세를 부렸으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들 형제를 두려워하였다. 예스부카가 강향사(어향사)로 고려에 와서는 가는 곳마다 제멋대로 횡포를 부려서 존무사와 안렴사가 모욕을 당하는 일이 많았으나 감히 황제가 보낸 강향사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영인}
예스부카는 고려에서 공남(貢男)으로 원나라에 바쳐진 사람이다. 노비(奴婢)가 되어야 할 처지에서 환관으로 출세하여 황제가 보낸 칙사(勅使)로 고려에 와서 온갖 횡포를 자행한 것이다. 자기 형을 재상으로 만들고 동생은 상호군으로 만들었다. 예스부카 사례는 당시 원나라에서 온 환관들 만행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예스부카가 전주에 이르자, 정지상이 맞이하기를 공손하게 하였으나 예스부카가 정지상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거만하였다. 접반사 홍원철이 정지상에게 부당한 뇌물을 요구했는데 정지상이 들어주지 않자 홍원철이 격노하여 예스부카에게 말하기를, 정지상이 중국 사신을 업신여깁니다.라고 하였다. 예스부카가 정지상을 포박하여 모욕을 주었다. {영인}
여기에서 정지상은 앞서 살펴본 사리에 어둡고 졸렬한 정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황제의 사신을 공손하게 맞이하면서도 자신보다 상관(上官)인 홍원철의 부당한 뇌물 요구를 거절하는 당당하고 의로운 정지상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지상이 매우 화를 내며 크게 소리를 질러 향리들에게 거짓으로 속여서 말하기를, “나라에서 이미 기씨(기철 등) 일당을 죄를 물어 죽이고, 다시는 원나라를 상국으로 섬기지 않기로 했으며, 재상 김경직을 원수로 삼아 압록강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이 사자(예스부카)를 제압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인데 너희들은 무엇을 두려워하여 나를 구하지 않는가? 내가 장차 이 고을(전주)을 강등시켜 작은 현으로 만들어버리겠다.”라고 하였다.
향리들이 소리를 지르며 쳐들어가 정지상의 결박을 풀고 밖으로 나가도록 도와주었다. 정지상이 마침내 여러 사람을 이끌고 예스부카와 홍원철 등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으며, 예스부카가 차고 있던 금패(신분증)를 빼앗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올라갈 때 공주를 지나면서 서응려(예스부카 동생)를 붙잡아 쇠몽둥이로 때리니 며칠 만에 죽었다.
정지상이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니 왕이 놀라 정지상을 순군옥에 가두고, 정동행성 원외랑 정휘를 파견해 전주 목사 최영기와 향리 등을 체포했다. 그리고 차포온을 파견하여 예스부카에게 술을 하사하면서 위로했으며 금패를 다시 돌려주었다. 원나라가 단사관 매주를 보내 정지상을 국문하였다.
왕이 기씨 일당을 주살하고 나서 정지상을 풀어주었으며 순군제공으로 삼았고, 다시 호부 시랑과 어사중승으로 임명하였다. 정지상은 관직이 판사에 이르러 죽었다. 정지상은 성격이 매우 엄하고 잔혹하여, 사형을 받은 죄인을 죽일 때면 반드시 그를 파견하였다. {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