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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9 : 15 - 16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계 19 :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날카로운 검이 나오는 것은 그의 말씀의 능력을 나타낸다.
그의 말씀은 심판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다.
그는 두려운 말씀으로 만국을 치실 것이다. 또 그는 친히 쇠지팡이로 저희를 다스리실 것이다. 그를 대항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실 것이다. 그는 포도주 틀을 밟듯이 그 원수들을 진멸하실 것이다.
15. 하늘 군대의 전쟁 -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본 절에는 그리스도께서 대적자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이 세 가지로 진술되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심판의 모습 역시 오직 그리스도만이 대적자들과의 전투에 참여함을 암시한다.
1)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본문은 사 11: 3-5을 반영하는 것으로 계 1: 16과 병행된다.
* 사 11: 3-5 –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 계 1: 16 -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 즉 말씀에 대해서 혹자는 구원과 평강을 가져다주는 복음으로 이해하여 복음이 전파되어 대적자들이 회개함으로써 그들이 정복되는 것으로 이해하나(Swete) 본 장 어디에서도 대적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타당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인 말씀은 대적자들을 심판하시는 도구이다.
더욱이 말씀을 통한 심판은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니골라당이 회개치 않을 경우 반드시 말씀으로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신 바 있다.
* 계 2: 12, 16 –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 입의 검
사 11: 4에 입술의 기운, 입의 막대기라고 했고 계 19: 21에 입의 검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 사 11: 4-5 –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 살후 2: 8 -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즉 심판의 권세다.
(2) 말씀의 검
* 히 4: 12-13 –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2) 철장으로 다스리며
(1) 친히 다스리신다.
(2) 철장으로 다스리신다.
그리스도의 강력한 능력과 확고한 심판.
* 시 2: 9 -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본문은 시 2: 9의 반영으로 본서 2: 27. 12: 5에서 병행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짐승과 그의 추종자들은 물론 온 세상을 지배하시는 절대적 권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철장으로 다스리심'은 백마를 탄자의 강력한 능력과 확고한 심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만국을 확실하게 심판하실 수 있는 절대적 권력을 소유하고 계심을 말한다.
3)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본문은 사 63: 1-6을 반영한다.
* 사 63: 1-6 – 1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본문에 나타난 포도 수확의 모습은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 대적자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을 나타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짐승을 비롯한 모든 대적자를 완전히 파멸시키심을 시사한다.
(1) 심판하는 권세
* 계 14: 17-20 –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 욜 3: 12-13 – 12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지만 들포도를 맺힘으로 변질된 성민을 심판하는 역사이다.
* 사 5: 1-7 –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 욜 3: 13 -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계 19 : 16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
그의 옷과 다리에는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그는 분명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 17: 14).
그는 모든 왕을 다스리시는 크신 왕이시요 모든 주인의 참 주인이시다.
16. 하늘 군대의 이름 -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 옷과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 이름이 넓적다리에 쓰여 있다(Charles).
Ⓑ 말을 탄 자의 다리까지 내려오는 웃옷에 기록되어 있다(Mounce).
Ⓒ 웃옷과 다리에 쓰여 있다(Morris).
Ⓓ 다리까지 내려온 웃옷에 의해서 가려지기 쉬운 허벅다리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Ladd, Johnson, Beasley-Murray, Lohmeyer, Swete).
네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이것은계 17: 3절의 짐승의 몸에 기록된 참람된 이름들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짐승의 몸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대적하는 이름이 기록된 반면에 그리스도의 몸에는 하나님의 칭호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칭호가 기록되어 있다.
* 딤전 6: 15 -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2)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사용되었다.
* 신 10: 17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칭호로 진술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칭호로 나타난 것이다.(에녹 1서 9: 4)
종말에 대적자들을 파멸시키고 온 세상을 지배하시며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권력을 시사한다.
3) 하늘에 있는 군대.
(1) 여러 견해
①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다.
래드[G. E. Ladd] : 성도를 가리키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하늘의 천사들의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 인자가 재림할 때 그의 천사들이 수행할 것이다.[막 8: 38. 눅 9: 26. 살전 3: 13. 살후 1: 7] 하늘 군대의 희고 깨끗한 옷은 그들이 메시아의 승리에 동참함을 의미한다. [래드, 요한계시록, p.331]
바클레이[W. Barclay] : 마태복음 26장 53절에 근거하여, 하늘의 군대는 천군을 말한다. [바클레이, 계시록 하, p.310]
② 영화롭게 된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일행이다.
벵겔[J. A. Bengel] :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인 성도들을 상징한다. [계 17: 14] [벵겔, 요한계시록, p.221]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존슨[A. F. Johnson] : 그리스도를 따르는 승리자이다. 부활하여 휴거된 자들이거나[살전 4: 16,17], 순교자의 일행을 말한다. [존슨, 요한계시록, p.515]
* 살전 4: 16-17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③ 예수 그리스도를 수행하는 천사장과 천사들의 무리와 성도들이다.
마운스[R. H. Mounce] : 하늘 군대는 천사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통례이다. 17장 14절의 병행절은 순교자들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마운스, 요한계시록, p.409]
팀 라하이[Tim Lahaye] : 하늘에 있는 군대는 천사들과 구약시대 성도들, 교회와 환난 시대 성도들로 되어 있다. [팀 라하이, 요한계시록 해설, p.472]
(2) 저자의 견해
하늘의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의 무리로 본다.
① 성도들은 어린 양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 계 19: 7-8 –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본문의 성도들은 어린 양의 신부로써 혼인 잔치에 초청 받은 자이다. 따라서 하늘에 있는 군대는 성도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어린 양으로서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을 동행하도록 한다.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 살전 4: 14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리스도는 심판을 위하여하늘 군대인 천사들로 수행케 하신다.
* 계 19: 14 -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② 주님이 강림하실 때에는천사가 수행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으로 입증된다.
* 마 13: 30, 39-42 –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 마 24: 31 -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마 25: 31 -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사도 바울의 증거로 입증된다.
* 살전 4: 16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사도 요한의 증거로 입증된다.
* 계 14: 18 -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③ 희고 깨끗한 옷은 천사의 성결의 옷이다.
성도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다. - 계 19: 8.
천사들은 흰 옷을 입고 있다.
* 마 28: 2-3 –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 막 16: 5 -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 눅 24: 4 -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 요 20: 12 -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 행 1: 10 -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따라서 희고 깨끗한 옷은 천사들의 옷임을 증명한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 ( 박 조준 목사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은 성경의 모든 예언서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구절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계신 분이라면 누구나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그 날,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처음으로 오실 때와 정말 대조적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오실 때는 정말 겸손한 모습으로 말구유 위에 오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시고 배척을 받으셨으며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그런 겸손한 모습이 아닌 “권능과 무한한 영광”으로 오시게 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0절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영광스런 재림의 중간 부분을 말해주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앞의 사건이나 뒤의 사건이나 어디에 연결시켜도 좋습니다.
환상을 본 후 요한은 그가 “그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경배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라는 말이 확실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보아서 그가 요한에게 환상을 보여준 천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숭배하는 실수를 범하려 했기 때문에 곧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라.” 부활 때에는 모든 성도들이 천사들과 같이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을 보면 성도들은 천사들과 같은 종이며 같이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명령을 듣게 됩니다.
여기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명령은 이 말씀과 문맥으로 볼 때 다른 피조물에게는 경배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일관된 원리를 보여주는 많은 예 중의 하나입니다. 요한계시록 끝부분에 가서 나온 이 장면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출애굽기 20장의 첫 번 계명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관성 있는 사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은 인간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신약성경에는 열 번이나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지만 한 번도 예수님께서 그들을 나무라신 일이 없습니다.
예언서에 대한 구절 중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이다”라는 구절이야말로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여기서 “하나님의 종으로 네 형제 된 자”라는 것은 ‘예수의 증거를 잡은 자, 나눈 자’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든 천사이든 하나님의 종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예수님의 증거를 위해 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 나온 ‘예언의 영’을 ‘예수의 증거’라고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언이란 것은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윤리적인 원리를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요사이 소위 ‘은혜받은 자’라는 분에게 찾아가서 물어 보는 일들이 있는 모양인데 이것은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아가서 묻는 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역학(易學)을 공부하는 분, 관상학이나 골상학을 공부한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웃지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순전히 사람의 본능 중에 호기심이나, 불안, 초조에서부터 생기는 것을 이용하는데 틀림없이 절반은 맞는다고 합니다. 제가 실제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요즘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 임신 27주 된 태아가 아들인가 딸인가를 알 수 있고, 양수 검사를 하면 그 전에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을 때는 알고 싶기는 하고 해서 많은 임산부들이 점쟁이를 찾아갔었습니다. 소위 용하다고 하는 점쟁이를 찾아온 임산부에게 점쟁이는 무조건 “댁은 아들을 낳을 것이요”하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임산부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찾아온 날을 다 적은 노트 밑에는 “딸”이라고 적어 놓는다고 합니다. 그 임산부는 기뻐서 집에 돌아가 해산을 했는데 정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 분은 용한 분이라”고 인정을 하고 소문을 냅니다. 그런데 다른 임산부는 분명히 점치는 사람이 아들을 낳는다고 말했는데 낳고 보니 딸입니다. 화가 나서 그 점치는 사람을 찾아가서 항의를 합니다. “여보시오, 당신이 저더러 아들을 낳는다고 분명히 말했지요?” “예, 그랬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요, 저는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았어요. 당신이 나에게 사기친 것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며 앙칼지게 달라 붙습니다. 이때 점치는 사람은 느긋하게 노트를 꺼냅니다. “댁에서 언제 저희 철학관에 다녀가셨지요?” “8월 21일이요.” “그렇습니까? 존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다녀간 분이 많으셔서 제가 다 기억하지 못해서요.”“김말분이에요.” 노트를 한참 뒤적이다가 8월 21일 다녀간 김말분이란 이름 밑에 적은 “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 보시오. 딸이라고 분명히 적었지요. 댁에서 너무 섭섭해 하실까봐 아들이라고 말씀드린 것뿐 점괘는 분명히 딸로 나와 있었습니다”라고 합니다. 남아 선호 사상에서부터 빚어지는 웃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은혜자라고 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소위 예언을 듣는 것이나 점쟁이를 찾아가서 점괘를 받는 것이나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은혜자라는 사람들 중에 역학을 공부해서 써먹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잘못된 호기심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언이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첫 번 예언의 말씀부터 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사람들에게 내리신 말씀이 예언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세히 해석할 때 생기는 오류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예언의 목적과 의도는 결국 그리스도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언서를 미래에 대한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신약성경을 통해 볼 때 이 예언서가 우리에게 주시는 것 중 가장 큰 유익은 사도의 직분 다음가는 축복이며 특별한 교훈입니다. 사실 예언은 실제로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방법이며, 하나님의 뜻이란 인간들이 자신을 낮추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예언서나 예언의 가르침이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간접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나타내 보여야만 합니다. 성경의 예언서 연구에서 명확히 제시된 성경의 가르침이나 “예수의 증거”를 나타내 보이는 사건 외에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 말초적인 것들에 관심을 쏟게 될 때 불명예스러운 일들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설교나 가르침을 듣게 되면 누구든지 그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었습니까? 27절에 그 대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공부할 때 우리 마음이 “속에서 뜨겁게 되는 것”은 이 계시록이 모든 예언서의 핵심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성경이 위대한 걸작품이라는 사실은 그 독특한 단순성에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이 말씀은 역사적인 장엄한 순간으로 돌입하는 서두를 아주 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과 거기 속한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계획의 중심이 되어 왔습니다. 이 알기 쉬운 표현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많은 예언들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주님께서 오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재림이야말로 성경에서 가장 큰 사건인 만큼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예언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그래야 본문 말씀을 읽을 때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럽게 재림하십니다. 본문 11절을 보세요.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했습니다.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다”는 말은 웅장한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하늘이 열린 것을 본 두 번째 사건입니다. 첫 번째는 계시록 4장 1절에서 그가 교회의 대표자로서 하늘에 초대되어 올라가서 환난의 때의 사건들을 바라보았을 때입니다. 19장에서는 환난기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심으로 다시금 하늘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사람을 데려가지 않고 하늘에서 직접 흰 말을 탄 분과 많은 군대와 함께 보내신 것입니다. 이 말탄 사람은 6장 2절에 나타나는 말탄 자, 다시 말해서 적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말탄 사람은 “불꽃같은 눈”을 가졌다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분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흰 말이란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첫 번째 오셨을 때와는 너무 좋은 대조가 됩니다. 이 땅에 우리 주님이 계시는 동안에 그분은 스가랴서 9장 9절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천한 짐승을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분이 다시 오실 때는 겸손한 모습은 간 데 없고 그의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흰 말을 타시고 영광 중에 오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무슨 말이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열왕기하 2장 11절과 6장 13~17절 말씀에 보면 불말과 불병거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왕하 2:11). “기도하며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 6:17)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께 이 땅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서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원하신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충성되고 진실하다”는 표현은 인간들을 애매하게 속이던 적그리스도와 사단과 좋은 대조가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신에 대한 예언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천년 전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바로 어제 주신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런 약속들을 다 이루어 주시기까지 주님의 신실하심이 다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지만 그때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신실하심을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참 길이시지만, 마귀는 거짓 길이므로 하나님이 아니라 지옥으로 이끌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역사의 중심이 되시며 모든 세대의 주관자이십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이후로는 전쟁만을 일삼아 왔습니다. 대부분의 전쟁은 불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전쟁은 한 가지뿐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자기 앞에 세우고 그를 반대하던 자들을 대적하시고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있는 공의로운 심판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와 같이 의로운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거룩하신 성품뿐만 아니라 ‘불꽃같은 눈’으로 알 수 있는데 그분이 진리에 따라 심판하실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땅에 내려질 심판 중에 가장 훌륭한 것도 그들이 인간인 탓에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계시며 의롭게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눈이 모든 사람과 민족의 진심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2절 상반절에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큰 권능을 가지고 온 세계를 지배하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관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인간의 머리에 쓰여진 권위를 상징합니다. 왕들도 관을 쓰고 교황들도 삼중관을 씁니다. 적그리스도의 왕국도 왕관으로 표시되었으며 환난기의 열왕들도 왕관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가장 높으신 임금으로 모든 권세를 주님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본문 11절과 12절은 영광스럽게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세 가지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천사로, 심판관으로, 임금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12절 하반절에 보니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이름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자기들 나름대로 추측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은 그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이름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유한한 마음으로는 그분의 성품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분 외에 누구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13절에 보니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신 날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시며 얻은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기 위하여 갈보리산 위에서 뿌리신 보혈에 젖은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했는데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최초의 신약성경 기자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로고스(λόγος)’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말 뜻 그대로 하나님의 표현 방법을 의미합니다. 말이 우리의 생각의 표현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표현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도 인간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공부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봅시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는 천사들과 구약 시대 성도들, 신약 시대 교회와 환난 시대의 성도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군대의 복장입니다. 그들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습니다. 군인들은 전쟁에 나갈 때 작업복 종류의 복장을 하기 마련인데 그것은 위장을 하여 적에게 나타나지 않으려는 뜻도 있지만 전장이란 곳이 지저분하기 때문에 밝은 옷을 입으면 곧 더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하늘 군대의 총사령관은 일찍이 있었던 전쟁사 중에 유일하게 자기의 군대를 흰색 옷으로 입힌 것입니다. 왜요? 그리스도의 군대는 직접 전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우리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전쟁을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절에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라고 했습니다. “이한 검”이란 것은 여기서는 성령의 검을 뜻하는 것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고 보겠습니다. 하늘의 군대를 이끌고 나타나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은 그의 적인 마귀와 거짓 선지자, 그리고 적그리스도와 그들이 속인 수많은 사람들을 완전히 전멸시키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워 의로우신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은 16절에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는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이름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전사가 전장에 나갈 때는 그 다리에 칼을 찹니다. 이 세상을 지으신 그 모습이 인간들 중의 지휘자의 모든 나라의 군대를 이끌게 됩니다. 검 대신 그의 자리에 쓰인 것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그분의 이름이었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께서 모든 왕의 왕이 되고, 만주 위에 뛰어나신 주가 되시는 날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서 9장 6절에 이사야는 이렇게 에언한 바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이 광경을 생각만 해도 우리는 감격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날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은 충성스럽게 감당합시다. 금의환향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고생과 억울함을 참는 부인처럼 신랑 예수 구름 타고 오실 때를 기다리며 바로 살아가십시다.
영광의 날이 다가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