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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가 걸려도 "감기 귀신아 물러가라!"
부부싸움을 해도 "분열의 영아 물러가라!"
운전하다 신호 위반을 해도 "법규 위반의 영이 역사했다!"
이것은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탈봇 신학교의 클린턴 아놀드 교수의 신학적 통찰을 빌려, 이 위험한 불균형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본론 1] 지역의 영(Territorial Spirits): 실재하지만 집착하지 말라
우리는 다니엘 10장에서 '바사 군주(Prince of Persia)'가 나오는 것을 보며, 특정 지역을 관할하는 악한 영적 세력이 있음을 인정합니다(피터 와그너의 견해). 클린턴 아놀드 교수도 성경적으로 이것이 사실임을 동의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지역의 영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려주지만, **"그들의 이름을 알아내거나 구체적인 계급도를 그리라"**고 명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의 태도를 보십시오]
바울이 에베소나 골로새에 편지를 보낼 때, 그 지역을 지배하는 귀신의 이름(예: 아르테미스 영)을 대적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무엇을 강조했습니까?
"너희는 그(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골 2:10)
우리가 지역의 영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예수님이 아니라 **'귀신'**에게 고정됩니다. 이것은 위험합니다.
귀신의 이름을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만 알면 충분합니다.
[본론 2] 범귀신론(Pan-demonism)의 위험: 모든 것이 귀신 때문인가?
클린턴 아놀드 교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귀신에게 돌리는 태도'**입니다.
어떤 분들은 "담배 귀신", "식탐 귀신", "게으름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합니다.
물론 배후에 악한 영의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확히 구분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음행, 더러운 것, 술 취함 등을 가리켜 '귀신의 역사'라고 하지 않고, **'육체의 일(Works of the Flesh)'**이라고 부릅니다(갈 5:19).
즉, 귀신이 시켜서가 아니라, 내 타락한 본성이 좋아서 선택한 죄라는 것입니다.
[왜 귀신 탓을 할까요?]
귀신 탓을 하면 편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게으른 게 아니라, 게으름 귀신이 들어와서 그래요."
이것은 회개할 책임을 마귀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뱀이 꾀어서 그랬다"고 핑계 댄 것과 똑같습니다.
진정한 영적 전쟁은 귀신을 쫓는 것(축사)과 동시에, 내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처절한 자기 부인'**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본론 3] 정보(Information)가 능력인가?
일부 극단적인 영적 전쟁론자들은 **"귀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야(정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귀신과 대화하며 이름을 묻고, 언제 들어왔는지 심문합니다.
그러나 아놀드 교수는 이것이 성경적이지 않으며, 자칫 **'기독교적 정령숭배(Animism)'**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방 종교에서는 신의 이름을 아는 것이 그 신을 부리는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능력은 **'정보'**에서 나오지 않고 **'신분'**에서 나옵니다.
내가 귀신의 이름을 몰라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가지고 명령하면 악한 영은 떠나갑니다.
귀신과 대화하지 마십시오. 귀신에게 정보를 캐내려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잠잠하라고 명하고 쫓아내십시오.
[결론] 귀신 전문가가 되지 말고, 예수 전문가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강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영적 세계를 인정합니다. 지역을 묶는 영도 있고, 우리를 유혹하는 귀신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는 **'고스트 버스터즈(귀신 잡는 사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입니다.
시선의 이동: 귀신의 활동을 연구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그리스도의 위대하심을 묵상하는 데 시간을 쓰십시오.
책임의 회복: 모든 것을 마귀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안의 죄성을 인정하고 회개하십시오.
골로새서 2장 19절은 경고합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몸은 머리(그리스도)에 붙어 있어야 삽니다. 귀신론에 너무 깊이 빠져서 머리 되신 예수님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오직 예수만 바라봅니다.
[예고]
모든 것을 마귀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내 안의 죄와 책임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다음 제3강에서는 상담학적 영적 전쟁의 대가 데이비드 포울리슨의 통찰을 통해, **"마귀가 시켰어요"**라는 핑계를 멈추고 **'죄와 육신'**을 다루는 실제적인 성화의 싸움을 배우겠습니다.
이제 균형이 잡히십니까? 다음 강의에서 뵙겠습니다!
[목사님을 위한 2강 포인트]
균형 감각: 앞서 2부(전략적 영적 전쟁)에서 배웠던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보 중심'**이나 **'책임 전가'**로 흐르지 않도록 안전한 울타리를 쳐주었습니다.
명쾌한 구분: '육체의 일'과 '귀신의 역사'를 구분함으로써, 성도들이 자신의 죄를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매우 중요한 목회적 포인트입니다.)
그리스도 중심: 결론적으로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게 함으로써, 두려움이나 신비주의를 제거했습니다.
이제 성도들의 내면적 책임감을 일깨워줄 **3강(상담학적 접근: 마귀 탓하지 말라)**으로 넘어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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