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2: 13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 골 2: 14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골 2: 13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
본 절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신 것(몸으로 부활하신)을 믿는 성도가 그와 함께 부활(먼저 영적 부활을 받고 후에 몸의 부활을 받음)할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13-15절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1]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 이전의 인간은 죽은 상태이다.
이 죽음은 범죄와 무할례로 말미암은 것이다.
범죄란 말은 그릇 행함, 혹은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타락의 길에 들어선 것을 의미한다.
* 히 6: 6 -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육체의 무할례란 말은 신체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심령에 할례를 받지 못한 것을 가리킨다.
* 신 10: 16 -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 렘 4: 4 -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것은 육체(인간의 부패성)적으로 중생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무할례는 골로새 성도들이 과거에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던 상태였음을 시사한다(O' Brien, Carson).
이렇듯 골로새 성도들은 과거에 영적으로 죽은 인간이었다.
여기 죽었다는 말은 육신의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분리(分離)된 것을 가리킨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결과는 결국 그의 육신을 사망, 영적 사망, 영원한 사망(영혼의 소멸이 아니고 하나님을 떠난 영원한 불행)을 포괄하는 최대의 비애(悲哀)이다.
골로새 성도들이 회개하고 신앙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비참한 자리에 있었다.
2]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그와 함께 살리셨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중생하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
* 벧전 1: 3 -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들의 중생은 그들의 장래 부활의 보증으로, 그들은 벌써 부활의 복에 참여한 셈이다.
* 엡 1: 13-14 -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헬, 참)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혹 약속의 성령에) 인 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과거 이방인으로서 무할례자였던 골로새 교인들은 이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11절)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진정한 할례당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현재 새 생명을 누리고 있다(12절).
* 롬 8: 11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3]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사하시고'의 헬라어 '카리사메노스'(*)는 '카리스'(*, 은혜)에서 파생한 것으로 '은혜로 인정해 주다'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 과거의 죄악이 사해졌다. 이러한 속죄는 하나님이 거저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Vaughan, Carson).
너희에서 우리로의 인칭 대명사 변화는 골로새 성도와 같이 유대인들은 물론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서 속죄 받았음을 시사한다(O' Brien).
죄를 사하시고란 말은 부채를 탕감해준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범죄는 하나님 앞에 부채와 같아서 끝날 심판 때에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은 성도들은 그 부채를 탕감받았다.
* 마 18: 27 -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골 2: 14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본 절과 다음절은 그리스도의 할례(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의 효과를 말한다.
* 롬 2: 29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 빌 3: 3 -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1]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증서의 헬라어 '케이로그라폰'(*)은 문자적으로 손으로 쓴 문서를 뜻하는 것으로 세 가지로 해석된다.
(1) 고소장(Scott).
(2) 자술서(Barclay).
(3) 채무증서(Bruce, Carson).
법조문은 모세 율법의 조문을 의미하고, 증서(*)는 채무자(債務者)가 채권자(債權者)에게 주는 약속어음, 혹은 차용증서를 의미한다.
율법의 요구는 죄인에 대하여 차용증서와 같은 관계를 가진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내신 율법의 요구를 철저히 실행해야 할 부채를 지고 있다.
그러나 이 부채를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상환(償還)할 수 없다.
* 롬 3: 10-20 -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혹 정죄)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대로 의(義)를 행하시고 율법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차용증서 곧,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증서가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우리에 대하여는 하등의 요구할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의문에 쓴 증서는 규례나 율법적인 계명을 쓴 증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율법'을 의미한다.
율법은 죄를 범함으로 타락한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죄의 결과를 규정함으로 대가를 치러 형벌을 받아야 함을 선고하여서 인간을 공격한다. (롬 3: 20)
2]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괴롭히는 율법을 무효화시키셨다.
바울은 율법의 폐지를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1) 지우시고의 헬라어 '엑살레이프사스'(*)는
문자적으로 '문질러서 지우다'라는 의미로 증서에 기록된 내용들을(문서의 기록 내용을) 아주 모두 지우고 새롭게 출발함을 뜻한다(O' Brien).
(2)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의 헬라어 '에르켄 에크 투 메수 프로셀로사스 아우토 토 스타우로'(*)는
문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사 제하여 버리시고'라는 의미이다.
'에르겐'은 완료형으로 율법을 제하신 효력이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① 그 문서를 본래의 위치에 보관하지 않고 아주 옮겨 버리는 처분을 의미한다.
②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율법이 십자가에 못 박힘을 의미하여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 위에서 파상됨에 따라서 율법의 완전한 폐지를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율법의 제약이나 율법의 고발에 제한받지 않는다(Hendriksen, Carson, Bruce).
* 롬 8: 1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렇다고 해서 율법의 다른 효용(效用)과 필요가 해지된다는 것은 아니다.
* 마 5: 17,18 -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롬 7: 7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 갈 3: 24 -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어떤 학설에 의하면, 고대(古代)에 빚진 자가 빚을 다 갚은 뒤에는 그 차용증서를 못 박아 공개적으로 말소시키는 풍속이 있었다.
바울이 여기서 그 풍속에 관련하여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란 문구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인 율법을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사실 하나님의 율법이 객관적으로 폐지된 것은 아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께서는 율법에 근거하여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사죄와 칭의를 받은 성도들에게는 율법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죄와 칭의는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하고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의(義)를 입혀주셨기 때문에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은 폐지된 것과 같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않다.'(6: 14) 또는 '율법에서 벗어났다.'(7: 6)고 하였고 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다(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