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열반(究竟涅槃) 마침내 열반에 이르다(하늘을 보고 땅을 보아도 구름 한점 풀 한 포기 찾을 길 없다. 텅빈법계에 나만이 우뚝 서 있으니 참으로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존귀하다.
•구경(究竟)은 최상(最上)이요. 필경(泌竟)이며 구극(究極)이다. 더 높은것이 없으므로 최상이요. 마침내 도달하는 종착역이므로 필경이요. 가장 끝이므로 구극(究極)이다.
•열반(涅槃)이란 범어의 Nirvana(니르바나)를 소리로 번역한 말이다. 한문으로는 적멸(寂滅), 무위(無爲), 무작(無作), 무생(無生)이다.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생사를 초월한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진리를 몸소 체득한 경지이다. 한 오래기의 번뇌가 없으므로 죄멸이요. 더 닦을것 없으므로 무위요. 무작이다. 일어나는 번뇌가 없으므로 무생(無生)이다. 깨달음이 마지막 종착지인 구경은 곧 열반이다. 번뇌가 전혀 없음을 깨닫는 것이 곧 구경이다. 그러므로 구경(究竟)에 이르지 않고는 참 열반이 아니다 마치 등산가에게 정상(頂上)은 마침내 도달해야 하는 등산목표이듯 구경과 열반은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이다.
•구경열반(究竟涅槃)은 불교신앙, 불교수행의 목표다. 염불을 하건 좌선을 하건 경을 보건 끝에 가서 성취하고자 하는것은 구경열반인 것이다. 구경열반을 성취한 사람 곧 부처님이요. 아누다라삼약삼보리는 바로 이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다.
•구경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모든 현상이 공(空)하여 한 물건도 실다운것이 없음을 철저하게 깨달아야한다 바로 제법공상(諸法空相)을 깨닫는 것이 반야바라밀다요. 이 반야바라밀다가 아니고서는 구경열반이란 최후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반야바라밀다)는 곧 깨달음이므로 구경열반을 이루기 위해서는 깨달음이 필수적이다. 깨달음없이는 구경열반을 성취할 수 없다 깨달음을 얻으면 스스로 곧 바로 구경열반이라는 최후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만 제법실상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자력(自力)으로 피안인 열반에 이를 수 없다.
그러기에 옛 선사스님들은 깨달음에 대해서는 귀가 아프도록 말했지만 열반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깨닫고 나서 다시 별도의 열반을 구하는 것도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왜냐하면 깨달음이란 것도 하나의 과정일 뿐 따로 얻을 깨달음이 없는데 구경열반인들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깨닫고 나서 다시 열반을 구하는 것도 알고보면 꿈 깬 사람이 다시 꿈을 꾸는것
•참으로 제법(諸法)의 공(空)한 모습을 철저히 깨달았다고 하면 열반을 따로 구하지 않는다.그 깨달음 자체가 구경(究境)이요.열반이며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다.
•육조 스님이 회향스님에게 물었다.
(닦아서 증득할 바가 있느냐?)
•회향스님
(예!닦아서 증득할 바는 없지 않으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육조스님
(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모든 부처님들이 아끼고 염려해주시는 바이니 그대가 이미 그렇고 나도 역시 그렇노라)
•구경열반이란(깨달음자체)이지 달리 더 보태는 것이 아나다.
그러므로 다시 열반을 구하고저 하는 이는 열반이 따로 없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제법이 공하여 한물건도 취할 것이 없는데 층층히 공들여 탑을 쌓은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덕성선사와 그 제자 협산과의 일화(一話)를 통해보더라도 깨달음 외에 별도로 열반이 따로 없음을 알 수 있다.
•덕성선사
(석두(石頭)의 한 갈래가 그럭저럭 멸망하게 되었구나)
•협산(그렇지 않습니다)
•추석선사(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협산(저에게 본래 청산(靑山))이 있습니다)
스승인 덕성선사가 법을 이어 받을 제자가 없음을 한탄하자 그의 제자인 협산이 스스로 깨달음이 있음을 선언한 한 내용이다.청산(靑山)이란 진여(眞如)요.
본래면목(本來面目)이요.
깨달음이다.
•이청산(靑山)은 생사가 없는 본래면목이요.백운(白雲)은 태어나고 죽고하는 사대육신이다. 청산은 변함없는 한마음이요. 백운은 쉴새없이 생멸하는 번뇌망상이다.
협산이 말한 청산을 바로 생도, 사도 없는 법신을 말하는 것이다.
곧 스스로 견성(見性)큰 했음을 암시한 말이다.
•이에 덕성선사가 협산의 깨달음을 인정하고 그에게 뒷일을 부탁하게 되었고 협산이 덕성선사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떠나게 되자.덕성선사가 스스로 노를 저어 강 위 기슭까지 전승하게된다.
협산을 배에서 내려서 두 세번 고개를 돌려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자 선사가 협산을 부르면서 말했다.
(그대는 별다른 것이 있다고 여기는가?)
그리고 나서 배를 엎어버리니 협산이 미련없이 떠나갔다.
•협산이 스스로 청산(靑山)을 깨달은 것으로 족한 것이다.
비록 그 속이 텅비어 신통묘용(神通妙用)이 없다해도 그것외에 별다른 것이 없다.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닫고 나서는 다시 열반을 구하는 사람은 가까스로 헤처 나온 불난집에
스스로 다시 들어가는 사람이다.
(땅속을 헤메던 굼팽이가 허물을 벗고 한마리 매미가 되어 구성진 노래가락을 읊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