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는 일생에서 가장 값지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가슴에 담은 그런 명절이었다. 경동대학 임영선 교수의 주선으로 캄보디아 국방부의 초청을 받은 경기도여성단체협의회 이금자 회장을 비롯한 도·시·군 회장단과 포천시 무역업자 박영호 사장 외 4명이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하의 날씨인 우리나라와 달리 캄보디아의 계절은 여름이었기에 일행은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여름옷을 갈아입고 직항로가 개설되지 않아 태국, 베트남을 경유해 어렵게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캄보디아는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1.7배에 이르는 넓은 땅에 인구는 고작 120만명이고 루비, 석유, 기타자원이 풍부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인적자원이 없어 개방을 못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이기홍 대령이 고국에서 찾아온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장을 푼 프놈펜 시내의 호텔은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장급 여관수준이었다. 이틑날 흙먼지 날리며 2시간을 달려 프놈펜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수백명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구호물자를 기다리며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깡마른 얼굴에 흰색상의, 검정색 치마로 된 교복을 입은 채 웃음을 잃은 모습이 우리의 6·25 직후를 연상케 해 한동안 말을 잃게 했다. 준비해간 학용품을 나눠주고는 조를 나눠 현지 의사 4명과 NGO회장의 지시대로 우리 일행은 가지고간 의약품을 진열하고 4곳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영양실조로 아기들의 배가 임산부처럼 부풀어 있었고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데다 온몸이 피부병으로 진물러 있는 등 현실은 처참했다.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들이 눈으로 표현하는 고통은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의료혜택에서 소외돼 있던 이들에게 뜻밖에 찾아온 이방인들은 구세주였다. 열 세살의 나이에 엄마가 된 환자나 여든 할머니까지 모두들 먼저 진료를 받으려고 아우성을 치는바람에 이들을 정돈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길게 줄선 환자들을 돌보고 찾은 곳은 ‘킬링필드’로 유명한 학살현장 위령탑이 있는 곳이었다. 86개의 구덩이에 한꺼번에 양민들을 몰아넣고 무참히 죽였다는 곳이 전국에 309개소로 무려 170여만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우리는 구덩이 곳곳에 장작더미처럼 쌓여있는 인골들을 보며 흙속에 하얗게 드러나 보이는 뼈들을 밟고 다니는 고문아닌 고문을 경험했다. 수만개의 유골들이 슬픈 모습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양 우릴 내려다보고 있는 위령탑은 차마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식인이면 죽였고 글을 알면 죽였기에 문맹자들이 많다는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찾은 곳은 프놈펜시 고등학교 자리에 마련된 고문현장 전시장이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함을 본 후에는 누구도 저녁식사를 할 수 없었다. 그 다음날에는 국군 사령부로 초청돼 별자리 장성 30여명의 환대를 받았다. 사령관은 환영사를 통해 태권도가 자국 군인들에게 유일한 무술이라며 한국의 이기홍 대령의 태권도 지도에 긍지를 느끼고 있던중에 찾아와 봉사를 아끼지 않는 여협 회장단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박용호 사장 일행은 준비해간 컴퓨터 30대를 전달했고 포천 김영자회장은 운동화 300켤레와 옷을 전달했다. 식이 끝난 후에는 태권도 수료를 마치고 퇴소하는 체육관을 견학했는데 100여명의 군인들이 ‘화랑태권도’라는 선명한 한글이 새겨진 흰 도복을 입고 사범의 구령에 맞춰 ‘태권’하며 경례를 할 때에는 주체할 수 없는 벅찬 감동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넓은 도장에 깔린 매트는 충청대학에서 보내준 것으로 군내무반에 매트를 깔아주었더니 병사들이 울더라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요소요소에 숨은 봉사자들이 우리의 조국을 빛내고 있음을 경험했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인도차이나까지 돌아 흐른다는 메콩강물이 마르지 않음은 억울하게 숨져간 영령들과 남아있는 가족들의 눈물인 듯 보였다. 우리 돈 만원이면 그 나라의 두 아이가 한달을 산다는데…. 우리나라도 한때는 외국의 원조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더불어 사는 훈훈한 사회를 만드는데 경기도여협이 더욱 앞장서자는데 뜻을 모은 여행의 결과는 너무나도 값진 것이었다. 지현숙 사단법인 대한어머니회 경기도연합회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