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3-06
신 사 적 인 국 민 의 식(國民意識)
박종덕목사(대전두란노교회)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도행전17:11)
우리는 지난 97년도 이후에 IMF라는 극도의 불경기 속에서도 잘도 견뎌 2001년 8월말에 IMF에게 진 빚을 모두 갚고 IMF체제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30년 걸려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우리민족은 2년 반만에 해결해 낸 민족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경기침체는 계속 이어져 2003년도에도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경제 현실입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IMF때보다도 더 어렵다고도 합니다. 하루빨리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많은 노력과 기도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런데 불황 속에서 그 나라의 풍속도를 비교한 흥미 있는 신문기사가 있어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 신문기사를 보면서 불황이 빚어내는 풍속도는 나라마다 천차만별(千差萬別)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경제(經濟)가 불황일 때의 사례를 미국과 일본의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미국과 일본의 불황일 때의 모습
먼저 불황 때의 미국(美國)은 지난 1929년 호황을 누리던 곳은 영화관(映畵館)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국민들은 살림살이가 어려워져 다른 오락거리를 즐길 여유가 없어지자 상대적으로 값이 싼 영화관을 즐겨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웃나라 일본(日本)의 경우를 보면 70년대 오일 쇼크를 맞이하자 재미를 본 곳은 서점(書店)이었다고 합니다. 출판왕국의 국민답게 일본 국민들은 불황을 이겨내는 지혜를 책에서 얻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IMF이후 계속되는 경기 불황 속에 우리사회에서는 어느 곳이 호황이었을까요? 영화관도 아니고 책방도 아니고 그것은 ‘삼겹살집’이라고 합니다. 소주 한잔은 해야겠고 쇠고기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너도나도 삼겹살집을 찾는 통에 쇠고기 값은 내리고 삼겹살 값은 오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2. 한국의 불황일 때의 모습
이런 풍속도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한 대기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회식(會食)장소로 인기 있는 곳 1위가 삼겹살집(51%), 다음이 호프집(26%)이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제일기획이라는 회사가 발표한 '라이프 스타일' 보고서에 의하면 전반적으로 술 마시는 사람이 94년 85%에서 95년 81%, 96년도에는 71%로 급감 하다가 IMF를 맞는 1997년에는 77%로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유는 속상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이런 분석을 보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불황을 영화나 책을 보며 견뎌낼 때 우리는 삼겹살로 버틴다?' 이를테면 불경기도 우리는 몸으로 때우자는 식입니다.
최근 라디오 방송인 사회자 최유라씨가 신문에 이런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남편이나 자식들이 ‘솥뚜껑운전사', ‘밥순이'니 해서 속상하다고 하소연하는 주부들이 정작 가계지출(家計支出)을 줄일 때는 신문이나 잡지구독을 제일먼저 끊는게 안타깝다는 내용의 글 이였습니다.
제가 목회(牧會)하는 대전시 서구 도마동(跳馬洞)지역만 보더라도 포장마차, 호프집, 분식집, 레스토랑, 무슨무슨 식당은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만 책방은 도무지 보이질 않습니다. 있다면 만화방은 더러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문화풍토입니다. 영화든, 책이든, 신문, 잡지든 그 무엇이든 간에 문화적인 것은 여유 있을 때나 접하는 것이란 사고방식은 누가 만들어준 것일까요? 또한 이런 우리의 척박한 문화풍토(文化風土)와 정신적 궁핍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불황을 영화를 보며 견뎌낸 국민, 책을 읽으며 견딘 국민, 소주에 삼겹살로 버틴 국민이 21세기는 문화(文化)의 세기에서 자유경쟁 할 때 지구촌의 리더는 누가 될 것이라고 보겠습니까?
3. 어려울 때의 대처 방안
이런 문제를 보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숫자가 1000만이 넘는다고 하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좋은 문화풍토를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조용히 연구(硏究)하는 기독인, 책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기독인, 신문잡지를 구독하며 가족들과 함께 정보의 공유를 만들어 가는 기독인, 말씀 속에서 ‘비젼'과 ‘소망'을 품고 대안을 만들어 가는 기독교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사야 30장 15절 말씀에는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 너희가 원치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점잔하고 의연하게 있다보면 18절 말씀처럼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삼겹살집이나 노래방가서 호들갑떨지 말고 신사답게 조용히 기다리고 인내하다보면 복이 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11절 말씀에서는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뵈레아 사람들은 더 신사적"이였다고 했는데 조용히 묵상하고,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여호와를 더욱 의지하려고 할 때 문화적인 국민, 신사적인 국민이 아니겠습니까?
공동체 이야기
비 가 개 고 난 어 느 날
어제에 이어서 아침에까지 내리던 비가 멈췄다. 어두운 하늘 밑에서, 하늘을 가릴 일이라도 혹 있을까하여 우산을 챙겨들고 시내에 나가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 일인즉슨 오랫동안 쓰지 못하던 휴대폰을 고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남들 하듯 그것을 바꿔보기 위해서이고, 더욱 하려는 일은 이곳에 오시겠다는 한 어머니를 만나 뵙기 위해서이다. 가는 길에 차를 바꾸어 타는 곳에서 부산에서 올라오고 계신 박 군의 어머니를 우연이 만났다. 박 군은 전에 이어서 몇 일을 못 보내고 두 번째로 집을 나갔다. 그런데 다음날에 경찰관에 의해서 집으로 다시 오게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어머니를 오시게 하여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게 할 요량이었다. 어머니는 사정의 부탁을 하신다. 문밖에 잠금 장치를 해서 같이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시내에 이르러, 전에 쓰던 전화기를 다시 쓰려던 나의 생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제품이 다시 나오지 않아 고칠 수 없는 옛 고물 밖에는 취급을 받지를 못했다. 그래서 다시 값이 제일 낮은, 색깔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구입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몇 일전에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를 뵈었다.
그 어머니는, 내가 알고있는 덕망이 있으신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교회에 다니고 계셨다. 목사님을 좋아하는 그분의 모습이 좋았다. 그 어머니는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사시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전에 뇌졸중을 앓아서 오른편 팔과 다리가 여의치 않으시고, 잘 듣지 못하여 보청기를 사용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그 어머니는 결국 남모르는 아픔이 있으신 분이셨다. 그분은 홀로 사시던 삶의 자리를 함께 거하게되는 공동체의 사람 사는 곳으로 들어서게 될 때의 주저함 그것을 나에게 말씀하시는 듯 했다. 그분께 마음에 허락이 되면은 헛일 삼아 우리와 같이 살아보면서 앞으로의 머무를 것에 대한 가타부타를 정하시라고 이야기를 드리고 나서 그 어머니 곁을 떠났다.
집에 들어서려는데 안에서 큰 소리가 울 밖으로 새어나온다. 이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오후에 아들로 인하여 상심된 모습으로 집에 막 들어서는 박 군의 어머니에게 그 선생님은 술에 만취가 된 채로, 대뜸 아들 단속을 잘하라고 언성 높은 소리를 마구 쏟아 붓듯 하였단다. 그리고 그 후에 나의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마을가게에 내려가 먹을거리를 사주겠다며 한 시간쯤 같이 있었단다. 아이엄마는 아이가 없는 사이에 그 아이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처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그 선생님을 대하며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인 것 같다. 그 분은 화를 내며, 내가 아이를 어떻게 라도 했다는 말이냐?고 마구 반문을 하는 목소리였다.
박 군의 어머니께서는 한번 더 우리 아들을 데리고있을 수 없겠느냐?고 통사정이시다. 밖에서는 높은 언성의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횡설수설이다. 그런 소리를 뒤로하고 밤늦게까지 그분과 나 사이에는 밀고 당겨지는 여러 말들이 오고갔다. 나는 어머니의 간곡한 말을 뿌리칠 수밖에는 없었다. 앞을 모르는 그는 경찰관의 도움으로 겨우 우리에게로 올 수 있었다. 그를 잃고 어머니나 우리는 속수무책의 일 앞에 얼마나 마음으로 고생을 하였던가? 결국 늦은 밤 시간에 어머니는 아들의 짐을 꾸려 떠나셨다. 어머니와 아들을 보내는 우리들도 침통하며 무거웠다.
하루가 길었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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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최동근
박성배
최영애
지명수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금산제원적십자사(회장:유상현)는 제원주유소에서 금산밀알의집. 새터공동체 그리고 이웃 장애인 분들과 갖는 목요일 모임을 5월 22일, 29일, 6월 5일, 12일에 각각 가졌습니다. 군북교회(한성국목사)에서 같이하여주셨습니다.
* 03년 6월 2일에 제원교회 조종국 목사님과 논산의 대둔산 수락랜드의 도움으로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목욕을 하였으며, 그 곳에 이 마을의 어른 세 분이 같이 참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한 할머니께서 맛있는 점심을 대접해주셨습니다.
* 5월 20일에 파출소의 인도로 우리에게 오신 김장환 선생님을 5월 29일에 인근의 혼자서 살고 계시는 집을 찾아서 그곳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조종국 목사님께서 수고하여주셨습니다. 02년 12월 15부터 같이 지내던 박주홍 군이 공동체를 두 번이나 나간 후 경찰의 도움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이 후로는 잃어버릴 염려가 있어 부득이 03년 5월 30일에 부산의 집으로 가게되었습니다. 1월 21일부터 생활하시던 이헌철 선생님께서 주벽이 심하여 6월 1일에 다른 곳으로 가시게 하였습니다.
* 6월 10일에 둔산대공원 엑스포남문 광장에서「사랑나눔한마당」모임이 있었는데 금산읍교회 나눔의 집 모임과 같이 참여하였습니다. 김철우 목사님께서 수고하여 주셨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성남교회안수집사회.금산읍교회(김철우외2인).김태영.추부제일교회.김기홍.세광교회.어귀녀.정무래.만나교회(전남홍외5인).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1인)
지명수.채윤기(박현실).진명구.오정교회여전도회협의회.세상을아름답게만드는사람들(3인).주식회사EG(이광형).남일중앙교회(8인).금산읍교회(김철우외1인).대덕교회.대전노회.박종만.세상을아름답게만드는사람들(3인).되살미사랑나눔봉사대(곽길동외1인).향림원.최영수외1인되살미사랑나눔봉사대(곽길동외3인).옥천동부교회.신건태.예전교회.추부나눔의집.박종덕외4인.권부남.대전일보(김세원.정진일외1인).김의곤.향림원.동산베이커리.추부제일교회.추부면사무소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