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를 먹으며
친구 성희가 생각난다
점심이나 식사를 같이 할 때 조기가 나오면, 漁頭一味라며 끝까지
맛있게 발라먹던 친구
입원실에서 본 것이 마지막 모습이다, 머리를 밀어서 송송
나오고 있는 중인데, 총무 차재희, 반야회 기쁨조 갑용이는 어디에
있나? 평소엔 얌전하기만 하였는데, 횡설수설 지난 과거에 갇힌 듯
연결이 잘 안 되는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전화기는 끊어져있고, 휴대폰은 누군가 받지만 말도
않고 듣기만 하다가 놓아버린다, 불러봐도 대답 없는 친구
지난 구정 윷놀이하는 날
일찍 오면서 자기가 만든 도자기 작은 화분에 풍란을 들고
왔었다, 그 화분은 툭하면 건들려 넘어지고 깨져 다른 화분에 옮겨
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새 잎을 잘 피워 올린다
창가에 두고 보면서 그의 건강상태를 가름해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길 바란다
첫댓글 무소식이 희소식일 같이 바라며...../ 메나리 05-10-27 09:45
메나리
문학동네 2005년 12월 신인당선작품이라네요.
따끈따끈한 작품이올습니다.
보리밥님, 며칠있으면 벌써 11월이네요.
친구 성희님이 지금의 병마를 이기고 친구들에게 짠하고 나타나
점심을 산다고 하시길 바랄래요.
무소식이 희소식을 같이 바라며.....
늘 건강하시고요.
*
12월
강성은
씹던 바람을 벽에 붙여놓고
돌아서자 겨울이다
이른 눈이 내리자
취한 구름이 엉덩이를 내놓고 다녔다
잠들 때마다 아홉 가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날 버린 애인들을 하나씩 요리했다
그런 날이면 변기 위에서 오래 양치질을 했다
아침마다 가위로 잘라내도
상처 없이 머리카락은 바닥까지 자라나 있었다
휴일에는 검은 안경을 쓴 남자가 검은 우산을 쓰고 지나갔다
동네 영화관에서 잠들었다
지루한 눈물이 반성도 없이 자꾸만 태어났다
종종 지붕 위에서 길을 잃었다
텅 빈 테라스에서 달과 체스를 두었다
흑백이었다 무성영화였다
다시 눈이 내렸다
턴테이블 위에 걸어둔 무의식이 입 안에 독을 품고
벽장에서 뛰쳐나온 앨범이 칼을 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 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
메나리
숨죽이고 있던 어둠이 미끄러져 내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음악이
남극의 해처럼 게으르게 얼음을 녹이려 애썼다
달력을 떼어 죽은 숫자들을 말아 피웠다
뿌연 햇빛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아무것도 녹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