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945
반야심경046
동봉
정종분正宗分(20)
온근진蘊根塵의 실체(9)
그러므로 공가운데 물질세계 색이없고
정신세계 구성하는 수상행식 마저없고
육근으로 눈귀코혀 몸과뜻이 일체없고
빛깔소리 냄새맛과 촉과법의 육진없고
是故空中無色无受想行識無眼耳鼻舌身意无色聲香味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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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성향미촉법无色聲香味觸法
함색성향미촉법含色聲香味觸法
공空에는 빛, 소리, 향기, 맛, 닿음, 법이 없지만
빛, 소리, 향기, 맛, 닿음, 법을 머금고도 있다
앞서도 쭈욱 언급해 온 이야기지만
공空에는 육근六根 육진六 육식六識이 없다
반야부 가르침은 초기대승初期大乘으로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가는 징검다리다
공관空觀은 유부有部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는
일체一切를 유有라고 설說하는 학파部다
따라서 너 나 없이 유有에 집착하기에
그 반동으로 텅 빔空을 주장하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중도 공관空觀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금강경》이나《반야심경》에서는
완벽한 텅 빔眞空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 속에 아름다운妙 충만有을 간직하고 있다
누차 얘기지만《금강경》<여리실견분 제5>
사구게四句愒에서는 말씀하신다
"만약若 제상諸相과 비상非相을
함께若 볼見수 있다면 여래를 보리라"라고
지금까지《금강경》 주석서들을 보면
"만약 제상諸相을 비상非相으로 보면"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단견斷見에 빠질 우려가 있다
산스크리트어본《금강경》과 비교하면서
지금까지의 많은 주석서들을 옹호하고 있지만
쿠마라지바 삼장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밑본으로 삼고 있는《금강경》은
쿠마라지바 삼장의 한역본漢譯夲이지
산스크리트어본語夲이 아니라는 것이다
쿠마라지바가《금강경》을 한역할 때
역자의 생각이 반영되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쿠마라지바의 한역본《금강경》이
자그만치 1600여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 동안
중국 한국 일본 등지에서 애송되어 왔다
그러면서도 그의 풀이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감히 단언斷言한다
앞의 선지식들의 주석이 잘못이라기보다
"내 해석은 이러하다"는 것이다
앞에 제시한 풀이를 다시 가져와 펼친다면
"만약若 제상諸相과 비상非相을
함께若 볼見수 있다면 여래는 드러나리라"
제상諸相(色)에서 비상非相(空)을 보듯
비상空에서 제상色을 볼 수 있을 때
색즉시공色卽是空이 가능하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 가능하다고 본다
삼장법사 쉬앤짱의《반야바라밀다심경》과
쿠마라지바 삼장의《금강반야바라밀경》은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을 모두 벗어나
한결같이 중도中道를 지향하고 있다
선현들의 이러한 가르침이 있는데
"제상을 비상으로 보면 여래를 보리라"로 풀어
단견에 빠질 우려를 가져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와같은 이유로 인하여
나는《반야심경》의 없을 무無 자 잔치에
머금을 함含 자가 살며시 깃들어 있다고 본다
이 끝없이 이어지는 없을 무無 자 잔치에는
앞서 살펴본 여섯 감관六根만이 아니라
빛色, 소리聲, 향기香, 맛味, 닿음觸, 법法도
화려하게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공空에는 여섯六 가지 티끌塵이 없다
정말 공空 속에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면
눈 귀 코 혀 몸 뜻이라는 이름씨도 필요 없고
빛 소리 향기 맛 닿음 법이란 이름도 필요 없다
나는《반야심경》을 반박하는 게 아니다
부처님 말씀의 장점은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논리학 입장에서도 오류가 없고
철학이나 논리 인문학에서도 오류가 없다
윤리나 종교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지만
정치와 경제의 논리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과학 생물학 물리학 입장에서는
그냥 깜짝감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부처님 말씀에
색色을 중심으로 한 상견常見도 문제이지만
공空만을 따르는 단견斷見도 있을 수 없다
무색성향미촉법无色聲香味觸法에서
색色은 다섯五 끄나풀蘊의 색色과 다르다
다섯 끄나풀의 색은 법法을 제외한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 포함된 것이지만
여기 여섯六 가지 티끌塵에서의 색色은
사람을 포함한 눈에 띄는 사물과 빛깔이다
따라서 색色의 감각기관은 눈이다
어떤 이들은 귀로도 사물을 보고
귀로 향기를 맡고 맛 보고 느낀다고 하는데
오감이 서로 소통할 수 있음을 허용한다 해도
빛과 사물의 일차적 감관은 눈이다
여기서 빛色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눈에 띠는 사물의 모습form이다
둘째는 사물에 깃든 빛깔color이다
셋째는 이를 확인시켜 주는 빛light이다
눈에 띄는 사물은 반드시 질량mass이 있다
질량이란 무게와 부피를 뜻한다
무게와 부피를 갖고 있다면 생김새가 있다
매우 큰 것은 우주宇宙cosmos고
아주 작은 것은 원자原子atom다
우주를 육안으로는 한 눈에 볼 수 없듯
원자도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이 불가능하다
적어도 눈에 띄는 모습은
반드시 생김새와 함께 빛깔color이 있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있고
파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가 있다
포도는 (청포도도 있지만)까만색이고
백합은 하얀 색이며
꾀꼬리는 노란 색이다
그렇다면 이들 색은 고정되어 있을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사물에는 고정된 빛깔도 모습도 없다
스펙트럼을 통해 빛깔을 알고 있겠지만
태양빛에 담긴 빛깔 때문에 식별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는
빨간 원피스, 파란 청바지, 까만 포도
하얀 백합, 노란 꾀꼬리는 보이지 않는다
모양도 보이지 않지만 빛깔도 보이지 않는다
빨갛고 파랗고 까맣고 하얗고 노란 것은
오로지 빛 때문에 식별이 가능한 것일 뿐
빛이 없다면 모습도 빛깔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습과 빛깔에 색色이 있을까
그것이 모습form으로서 색色이든
빛깔color로써의 색色이든
빛light으로서의 색色이든 없는 게 맞다
그러므로《반야심경》에서는 말씀하신다
"공空 속에는 빛色이 없다"라고
경전에서 공空이란 빛light이 없음이다
공空이란 빛깔color이 없음이다
그리고 공空이란 모습form이 없음이다
따라서《반야심경》말씀은 전혀 하자가 없다
사물에 자아自我가 있다고 한다면
빛이 전혀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모습이 있어야 하고 빛깔과 빛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빛이 없다면 빛속에 담긴 빛깔이 없고
사물이 지닌 생김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단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여
빨간 원피스 파란 청바지 까만 포도
하얀 백합 노란 꾀꼬리가 전혀 없는 것일까
그렇지가 않다
빛이 없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원피스, 청바지, 포도, 백합 등과 꾀꼬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자아는 없지만
변화하는 물체matter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반야심경》에서는 말씀하신다
"공이 색과 다르지 않아 공이 곧 색이다"라고
따라서《반야심경》의 없을 무無 자에는
반드시 숨은 뜻이 깃들어 있다
앞서 주장해 온 머금을 함含 자다
육안은 물론 최첨단 과학을 이용해서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을 볼 수 있을까
우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암흑물질 22%와 암흑에너지 74%가
빛이란 게 없으면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과연 없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질량이 없을까
다시 강조하지만 무無에는 필히 유有가 있고
공空에는 필히 색色과 수상행식이 숨겨져 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컬러color는 빛light으로 인해 아름답다/동봉]
08/15/2017
빛의 회복光復 72주년에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