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ttp://www.everyday01.com 제로원(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꽃보다 하나님>의 줄거리:
꽃보다 남자. 드라마로 제작 되어서 방영 된 일본 만화 원작의 제목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꽃이 아무리 좋아도 그 꽃을 주는 남자 친구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꽃을 받기 위해서 남자를 찾고 사귀는 일이 실제로 너무나 보편적이라는 것이 오늘 말씀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 버렸던 일이 교회 안에서 조차 너나 할 것 없이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꽃보다 하나님
(창25:19-34)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꽃보다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꽃보다 하나님’
이 말이 굉장히 많이 적용되어서 나왔지요.
‘꽃보다 남자,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이런 식으로 많은 패러디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드라마로 방영이 되었는데 원래는 일본작가가 그린 순정만화입니다.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꽃보다 경단’이라고 하는 속담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는 속담과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금강산의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배가 고픈 상태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지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우선 배가 든든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꽃보다 경단이 그런 이야기라는 뜻이죠.
그러면 ‘꽃보다 남자’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꽃이 아름답고 좋습니다. 남자친구로부터 꽃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기쁩니까?
꽃이 아무리 아름답고 좋아도 남자친구가 있고나서 꽃이 있는 것이지, 남자를 제쳐놓고 꽃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이야기이고, 또 꽃을 얻기 위해서 남자친구를 사귈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남자친구를 만나서 사랑이 느껴지고 그 남자친구가 나를 사랑하고 그렇게 먼저 남자가 있고 난 뒤에 그 남자가 꽃을 줄 때에 아름답고 좋고 기쁜 것이지, 남자친구는 없는데 꽃을 받고 싶어서 남자친구를 찾아 헤맬 수는 없는 것이고, 남자를 사귈 때에 그런 순서로 사귀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내용이 그러면 안 되는 현상인데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주 부잣집의 잘생긴 남자가 나오는데 모든 여자들이 그 집안과 능력과 외모에 반해버립니다. 그런데 주인공 여자는 집안, 외모, 그에 따른 부수적인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 마음이 전혀 동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 남자는 오롯이 자신을 인격으로 대할 수 있는 여자에게 반하게 됩니다. 꽃보다 남자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내용 아니겠습니까?
자, 오늘 이야기가 바로 ‘꽃보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게 달려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굉장히 많은 부수적인 것들이 하나님께 따라다닙니다. 그게 다 꽃이에요.
그런데 꽃보다 하나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드디어 이삭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굉장히 짧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삭은 거의 아브라함과 야곱에게로 이어지는 가교역할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간소화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을 한지 20년이 되었는데 리브가가 아이를 못 낳고 있었어요.
이 집안은 왜 이렇게 아이가 늦는지요?
이삭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리브가의 태가 열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하고는 다르지요.
이제 리브가가 잉태했는데 쌍둥이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복 중에서 싸우는 거예요. 두 아기가 태어날 때에도 먼저 태어난 아이의 발뒤꿈치를 잡고 동생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에서와 야곱입니다.
그렇게 자라서 에서는 들판에서 사냥하는 사냥꾼이 되었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해서 집안에 머물기를 좋아해서 밭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하고 에서는 아버지 이삭에게 특별히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참 이상하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삭이 에서가 잡아오는 사냥감들로 요리를 해주는 것을 좋아해서 에서를 더 사랑했다고 합니다.(하하하)
저도 먹는 걸 좋아하지만 입맛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그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하여간 그렇게 이야기가 되어 있어요.
전체적으로 본문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에 딸려있는 부수적인 것들이라서 지나갑니다만 이상하긴 해요.
오늘 본문은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태어난 야곱과 에서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장자권을 두고 일어난 것인데, 에서가 들판에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마침 그 때에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어요. 배고픈 김에 그걸 좀 달라고 하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팥죽인지 뭔지도 모르고 본문에 보면 “그 붉은 것”을 달라고 해요.
그러니까 ‘너 무슨 음식을 만들고 있느냐? 뭘 그렇게 열심히 젓고 있느냐?’라고 물어볼 겨를도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모양이에요. 그 기회를 놓칠세라 야곱이 장자권을 주면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형제간에 이런 거래를 보면 야곱이 더 나쁜 사람 같은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 때문에 야곱이 에서를 제치고 구원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팥죽에 장자권을 팔아버렸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마지막 34절에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라고 하며 본문이 마쳐집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이 하나 있는데, 23절 하반절에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라고 합니다.
큰 자는 먼저 태어난 에서를 말하는 것이고, 어린 자는 나중에 태어난 야곱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차자가 야곱이고, 장자가 에서인데 에서가 야곱을 섬기리라는 이야기는 실질적인 내용상의 장자권이 야곱에게로 갈 것이라는 것을 리브가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 여기에서 나타나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하냐?
그렇게 하나님께서 야곱을 내용상의 장자로 선택하셨다고 한다면, 생물학적인 차원에서도 그냥 야곱을 먼저 태어나게 하셨으면, 야곱이 형의 배고픈 상황을 이용해서 장자권을 거래하는 교활하고 치사한 모습도 안 보였을 것이고, 에서가 장자권을 소홀히 여겨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파는 어리석음도 안 보였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야곱을 내용적인 장자로 선택하셨으면, 생물학적으로도 먼저 태어나게 하시면 될 일이지, 왜 그것을 뒤바꿔서 야곱은 교활한 인간이 되게 하고, 에서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본문에서 말하고자하는 장자권은 여느 다른 집안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장자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집안에서의 장자권이라고 하는 것은, 운명을 거슬러서라도 원해야 되는 가치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브라함 집안의 장자권이라는 것은, 내가 차자로 태어났을지라도 그 장자권을 얻기 위해서는 운명을 거슬러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을 만큼 가치가 있다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을 거슬러서라도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키도 작고 뚱뚱하고 얼굴도 크고 이런 사람이 배우로 성공하고 싶은데, 영화사에 가서 오디션을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자네는 안 돼. 딴 일을 알아봐’ 이럴 것 아닙니까?
운명적으로 배우를 할 수 없게 태어났다면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IQ가 80인데 대학자가 되고 싶다면, 그 운명을 거슬러서라도 대학자가 되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그 이야기예요.
차남, 삼남으로 태어났든지 사남, 오남, 육남으로 태어났든지 간에 장자권을 획득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자권의 가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일으키셨느냐?
태중에서 두 태아가 싸우게 합니다.
태중에서 왜 태아가 싸웁니까?
리브가가 깜짝 놀라서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될지 하나님께 여쭤봤더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태아가 싸운다는 이야기는 지금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는 이야기처럼 누가 먼저 태어날지를 두고 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자권을 위한 싸움이 태중에서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럼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인 장자권을 위해 태아가 싸우도록 하신 이유가 뭡니까?
이게 바로 아브라함 집안의 장자권의 가치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왜 이게 그런 이야기가 될까요?
태중에 있는 아기들은 세상의 가치에 대해서 눈뜨지 않은 자들입니다. 물론 장자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에요. 한 마디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상태처럼, 태중에 있는 아이들은 선악을 판단할 죄의 유전적 자질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세상에서 본 것이 없고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판단할 능력이 발휘되질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좋다고 인정하는 것들에 대해서 눈뜨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쉽게 말하면 돈 맛을 모르는 상태이고, 권력 맛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인기 맛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맛도 모르는 상태이고, 아무런 맛을 모르는 상태인 그런 상황에서 진심으로 원하게 되는 것이 뭐냐?
바로 장자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짜장면 먹고 짬뽕을 먹으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맛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아브라함 집안의 장자권을 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고,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쉽게 팔아버린 이유가 무엇이냐?
이 세상맛에 내 마음의 혀가 오염되어버렸기 때문이고, 이 아브라함 집안의 장자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에서와 똑같이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상황은 끊임없이 장자권을 팔고 있는 거예요. 장자권은 한 번 팔면 끝인데.
장자권이 얼마나 좋은 것이고 꽃보다 하나님인데, 거꾸로 알고 계속 장자권을 팔고 있는 거예요.
장자권의 구체적인 내용이 뭡니까?
그 당시의 장자권의 내용은 우리가 얼마든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집안을 통솔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고, 재산을 분배하게 되면 다른 자식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재산들이 주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다른 집안의 장자권과 똑같아요.
그러면 아브라함 집안의 장자권이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만 찾아오셔서 대면하십니다. 그렇게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외면하는 특권을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 집안 장자권의 핵심 내용은, 하늘 대면특권과 세상 외면특권입니다.
특권은 아무도 못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했는데도 아무 문제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집안사람이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아브라함 집안의 장자여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외면했는데도 하나도 잘못되지 않는 것, 이게 바로 외면특권이에요.
그리고 하나님 대면특권은 아무도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고 그렇게 관계를 맺으려면 죽습니다. 그런데 대면특권이란 것은 하나님을 대면해도 죽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대면특권과 세상 외면특권이 장자권의 핵심인 것이에요.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마치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의 자손인 에서가 그러한 대면특권과 외면특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는 것처럼, 분명히 아브라함의 피 인데 교회 안에서도 대면특권과 외면특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는 에서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도 야곱의 자손이 있고 에서의 자손이 있는데, 에서의 자손이라서 이방인인 에돔의 자손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세상을 대면하는 사람들이에요.
꽃보다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하나님보다 꽃입니다.
새해가 되었어요. 새해에 소원을 갖게 되고, 사람들에게도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데 이게 다 장자권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무엇이든지 크든지 작든지 내 마음에서 소원을 하게 되고 바라게 되면 이미 장자권을 판 것이에요.
하늘을 팔지 않고 세상을 소원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원래 하늘이 들어오도록 만들어진 것이고, 원래 들어가 있어야 될 하나님을 빼서 버리지 않고는 이 세상 것을 끌어들여서 마음으로 끌어안고 소원할 수가 없습니다. 다 팥죽에 파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넓게 퍼져있는 음식이 뭘까요?
짜장면은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이지만 외국에는 없어요.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의 스시, 중국음식도 다 외국에 가면 바뀌어버려요. 아마 파스타나 햄버거가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음식은 팥죽이에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팥죽.
이 팥죽이 비유적으로 뭘 말하는 겁니까?
이 세상에서 내가 굶주려하는 거예요.
에서가 굶주려서 팥죽을 먹겠다고 장자권을 팔듯이, 이 세상에서 굶주려하는 겁니다.
무엇에 굶주려 합니까?
돈에 굶주려합니까? 그게 팥죽이에요.
팥죽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다 들어오는 것이 이 세상에서 내가 굶주려하는 것들입니다.
그 안에 돈도 들어있고, 건강도 들어있고, 자식의 성공도 들어있고, 자식의 학교 성적도 들어있고… 다 굶주려있는 것 아닙니까?
이것 좀 이렇게 됐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날 알아줬으면 좋겠고, 교회 부흥, 예배당건축…
이런 것들이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다 팥죽입니다.
파스타보다 햄버거보다 더 보편적인 것이 팥죽이에요. 내가 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이 팥죽 안에 다 들어 있어요.
그러므로 이 세상의 소원을 가지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대면하려고 하는 내 마음의 소원을 접어야 합니다. 하늘을 버려야 이 땅을 소원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꽃보다 남자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다 주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선택의 주권을 갖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비롯되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내게 복을 주시기도 하고 화를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꾸 복을 달라고 구해요.
이게 꽃보다 남자라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남자에게 딸린 것들을 남자보다 먼저 좋아하고 반해버리는 것이죠.
외모조차도 남자에게 딸린 것이에요. 인격을 인격으로 대해야 되는데 왜 외모로 대하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잘 생겨서 잘난 척하고 고개를 들고 다닐 때, 모든 여자가 환호하는데 한 여자만 본척만척 합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그쪽으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도 똑같아요. 하나님께 딸린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하나님! 찾으며 난리가 났어요.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 딸린 그 어떤 것들도 마음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장자의 특권이고,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푹 빠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장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저는 생리적으로는 삼남이에요. 세 번째 아들이에요.
여러분은 몇 번째 아들이고 딸인지도 모르는데, 장자의 특권이 어떻게 나와 상관있는 줄로 알겠느냐?
하나님에게 장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을 대표할 때에 예수님이 첫 번째 부활의 열매이시고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이 장자세요. 그 장자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내가 죽은 것이라고 믿으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달려서 죽어버리면 장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고 생각할 때에 세상 외면의 특권이 일어납니다. 장자의 특권이 주어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외면하면 비로소 하나님과 대면할 특권이 주어집니다. 꽃보다 남자이고 꽃보다 하나님이십니다.
꽃보다 하나님이시도록 하는 것이 장자권이고, 그 장자권의 실현은 장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으로 그 예수님과 함께 연합해서 내가 지금 죽은 자라고 할 때에 장자권이 발동되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지요. 끊임없이 장자권을 팔아먹고 있다고.
에서와는 다르게 우리에게는 왜 끊임없이 장자권이 제공되고 있는 겁니까?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고, 십자가 사건은 영원히 우리의 삶에서 모든 순간의 지금의 사건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세상에 대해서 소원을 가지려고 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장자권으로 내게 다가옵니다. 십자가 사건을 붙잡는 것이 장자권을 붙잡는 것이고, 십자가 사건에서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는 것을 잊으면 장자권을 파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걱정하고 근심하고 세상 것을 바라고 소원하게 되면 마음으로 팥죽 한 그릇 먹고 있는 거예요.
장자권을 팔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돈 문제가 생겼어도 그 문제는 팥죽입니다. 거기에 마음이 빨려 들어가면 안 되고,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마음이 그걸 먹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장자권을 유지합니까?
먼저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꽃보다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의 장자권을 인정할 때에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돈 문제가 아무리 많아도 돈보다 하나님이에요. 자식 문제가 아무리 급해도 자식보다 하나님입니다. 꽃보다 하나님, 이게 장자권의 내용이라는 거예요.
장자권이 어떻게 내게 구체적으로 주어졌습니까?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의 장자권을 보증해주는 증서입니다.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증서예요.
그 증서가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증서는 한 번 주면 끝이지만 이 사건은 끊임없이 내 옆에 있는 거예요.
왜?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고 장자권을 먼저 기억하라고.
장자권을 기억하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아브라함에게서처럼 내가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 외면특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 대면하려고 세상을 외면하는 외면특권은 내가 세상을 외면했는데도 세상일들이 다 하나님 뜻대로 진행이 됩니다.
매 순간 장자명분의 증서로 주어지고 있는 십자가 사건을 먼저 붙잡음으로써, 새해에는 복 받지 마시고 장자특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장자특권 쥐시기를 바랍니다.
왜 먼저 붙잡습니까?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길이 그 길 뿐이니까요.
꽃보다 하나님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새해에는 지금까지처럼 장자명분을 이 세상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는 에서의 어리석음을 중단 할 수 있게 저희를 권면해 주시옵시고, 매 순간 내 앞에서 내 마음의 손길을 기다리고 계시는 장자명분의 증서이신 십자가 사건을 붙잡음으로써, 장자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