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지만 그 시절의 이야기를 읽어보아도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가사를 쓴다는 일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이 가곡의 노랫말을 새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떠오른 한 줄의 가사를 여러 번 다듬은 끝에 완성된 가사는 이러하였다.
기다림1
(1절)
그대가 손을 흔들며 떠나간 후에
눈가에 아롱지는 그 모습 그리워라
돌아올 그 날은 언제이런가
돌아보면 가슴을 에이는 그대 그림자
밤 깊어 눈 내리고 바람소리 창을 흔드는데
초롱불아래 차가운 손으로 편지를 쓰네
그대 돌아오라, 돌아오라 애타게 불러보네
그리워 사무치는 이 마음 눈물에 젖네
(2절)
세월은 흘러 꽃피고 봄은 돌아오는데
꿈길마다 정다웁던 내 님이 보고파라
돌아올 그 날은 언제이런가
돌아보면 가슴을 에이는 그대 환영뿐이네
밤 깊어 달그림자 호젓한 뜰에 꽃은 지는데
어디선가 들릴 듯 다정한 그대의 음성
그대 돌아오라, 돌아오라 기다리는 이 마음
그리워 사무치는 이 마음 눈물에 젖네
기다림2
(1절)
그대가 손을 흔들며 떠나간 후에
눈가에 아롱지는 그대 모습 그리워라
돌아올 그 날은 언제이런가
돌아보면 가슴을 에이는 그대 그림자
밤 깊어 눈 내리고 바람소리 창을 흔드는데
촛불 밝히우고 차가운 손 부비며 편지를 쓰네
그대 돌아오라, 돌아오라 애타게 부르는 이름
그리워 사무치는 이 마음 눈물에 젖네
(2절)
세월은 흘러 꽃피고 봄은 돌아오는데
꿈길마다 정다웁던 내 님이 보고파라
돌아올 그 날은 언제이런가
돌아보면 가슴을 에이는 그대 그림자
밤 깊어 달그림자 호젓한 뜰에 꽃은 지는데
어디선가 들릴 듯 다정한 그대의 음성
그대 돌아오라, 돌아오라 기다리는 이 마음
그리워 사무치는 이 마음 눈물에 젖네
그러나 「기다림」이라는 제목의 가곡은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가곡인 김지향시, 김규환곡 「기다림」 외에도 많았다. 그래서 제목을 곡 중 가사에서 따온 「그대 돌아오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 가곡은 유절가곡(有節歌曲)으로, 1절은 위의 글에서 많이 인용했지만 2절 가사는 새로 창작하였다.
또한 나는 이 곡의 가사를 쓰면서 소설 「닥터 지바고」와, 영화 속 라라와 지바고의 모습을 생각하였고, 내가 군 시절 닥터 지바고에 관한 글을 썼던 기억을 더듬어 노트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신(信),
하늘은 무슨 슬픔으로 저토록 요란하게 오열하고 있는지 비는 연일 그칠 줄 모르고, 오늘도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며 두고 온 신을 생각하고 있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내 손을 잡아끌며 서점으로 극장으로 다니며 티 없는 웃음으로 위로를 주던 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내 가슴은 뜨거운 연민과 사랑으로 미칠 것만 같았어.
「가난한 연연들」 이라는 어느 외국문학작품 속에서의 주인공 연인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어. 가슴에 품어 안은 것이라고는 비록 하잘 것 없는 채소와 몇 개의 과일 뿐이라 해도 그들은 진정한 행복과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기에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선 지순한 애정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이겠지.
“이 만큼은 그대의 몫, 이 만큼은 내 몫, 나는 당신의 귀여운 아내니까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답니다.~” 여인은 정말 티 없는 목소리로 노래했을 거야. 남자의 욕심 없는 눈은 깊고 깊은 호수의 빛깔처럼 진한 암청색이 아니었을까. 내 호수 같은 눈 속에서 당신을, 정말 이렇게 조각배에 태워 노닐게 하고 싶노라. 그는 아마 이렇게 노래했을 거야.
영화 「닥터 지바고」의 영상들도 떠오른다. 바람에 날려가던 나뭇잎들이며 지바고의 뜨거운 인간애와 절제된 사랑의 장면들, 춥고 고요한 밤 호롱불을 켜고서 글을 쓰던 모습이 인상 깊어. 온통 백설에 덮인 바리끼노의 낡은 집에서 밤을 새우며 적어가던 그의 깊숙한 시정(詩情)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그토록 깊고 온화한 눈동자는 무엇을 그토록 오래 연민하고 괴로워하고 사랑했던 것일까. 늑대의 울음소리에 동그랗던 라라의 눈과 그러는 라라를 품어주던 지바고의 손길이 애틋하게 사랑스럽다.
그들의 그러한 모습은 전혀 영화 속의 인물들 같지가 않았어. 왠지 꼭 우리 같겠지. 아, 온통 혼이 빠지도록 예술에 취하고 황홀한 바닷바람에 나를 내맡기고 싶다. 나는 그때 잠시도 그대 곁을 떠나지 않고 내 뜨거운 눈길 속에서 신을 살게 하고 싶었고, 잠든 신을 바라보며 글 줄기를 다듬고 싶은 열렬한 소망뿐이었어(1978. 6.)
나는 닥터 지바고가 온통 백설에 덮인 바리끼노의 낡은 집에서 밤을 새우며 적어가던 그의 깊숙한 시정(詩情)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그때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그 바람에 창문은 덜컹거리고, 그는 차가운 손가락을 마주 잡고 부비며 편지를 쓰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밤 깊어 눈 내리고 바람소리 창을 흔드는데/ 촛불 밝히우고 차가운 손 부비며 편지를 쓰네” 라는 가사를 쓴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부비다”라는 표현이 어법에 맞는지 미심쩍었다. 그래서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부비다”는 표현은 동사로써 “두 물체를 맞대어 문지르다. 어떤 재료에 다른 재료를 넣어 한데 버무리다. 어떤 물건이나 재료를 두 손바닥 사이에 놓고 움직여서 뭉치거나 꼬이는 상태가 되게 하다.” 는 뜻이었고, “비비다” 는 “두 물체를 맞대어 문지르다.” 는 뜻이므로 차가운 손을 덜 춥게 하기 위해서 손을 맞잡고 문지른다면 ‘부비다’가 아니라 ‘비비다’로 해야 맞았다.
그러나 한편 “차가운 손을 비비다” 라는 구절은 어쩐지 이상하였다. 그래서 나는 “차가운 손” 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지만 문맥과 어감상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촛불 밝히우고 홀로 앉아서”로 가사를 수정하였다. 그러자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었지만 앞뒤 구절과 어울리고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또한 “그리워 사무치는” 이라는 구절도, 내가 좋아하는 박경규 작곡가의 가곡 「그대 그리움」에 이미 있으므로, 이 구절도 “그리워 기다리는 이 마음”으로 수정하였고, 결국 최종적으로 완성된 가사는 이러하였다.
그대 돌아오라
(1절)
그~대가 손을 흔들며/ 떠나간 후에
눈가에 아롱지~는/ 그대 모습 그리워라
돌아올 그 날~은 언제~이런가
돌아보면 가슴을 에~이는 그대 그림자
밤 깊어 눈 내리고/ 바람소리 창을 흔드는~데
촛불 밝히우고/ 홀로 앉~아서 편지를 쓰네
그대 돌아오라, 돌아오라 애타게 부르는 이름
그리워 기다리는 이~ 마음 눈물~에 젖네
(2절)
세~월은 흘러 꽃피고/ 봄은 돌아오는데
꿈길마다 정다웁~던/ 내 님이 보고파라
돌아올 그 날~은 언제~이런가
돌아보면 가슴을 에~이는 그대 그림자
밤 깊어 달그림자/ 호젓한 뜰에 꽃은 지는데
나를 부르는 듯/ 다정한 그 목소리 잠을 깨우네
그대 돌아오라, 돌아오라 애타게 부르는 이름
그리워 기다리는 이~ 마음 눈물~에 젖네
그리워 기다리는 이~ 마음 눈~물~에 젖~네
그리하여 이 가곡은 2023일 11월 13일 멜로디가 완성되었고, 2024년 1월 12일 구광일작곡가와 채보를 하였으며, 같은 해 4월 1일 피아노3단악보가 완성되었고, 같은 해 5월 10일 장충레코딩스튜디오에서 소프라노 신승아의 연주와 피아니스트 김윤경의 반주로 녹음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동심초 같은 명곡을 만들겠다던 나의 소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전혀 엉뚱한 가곡이 탄생하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https://youtu.be/XpMXQyQ15rA?si=m2TW4tcxAl_igd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