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 사훈(社訓) 「사랑하자」 이야기
아직 칠십이 안 됐는데 나이 타령한다고 나무라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65세 이상은 노인이다 기준했으니 반취도 나이를 얘기할 수 있겠지요.
나이가 드니 정말 편안합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침이면 허름한 면바지에 티셔츠,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바람 부는 한강변 산책하며, 그저 나 편한 대로 살 수 있어서 좋습니다. 부담스런 만남 안 가져도 되고, 안하고 싶은 것 안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다시 젊어지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그 치열한 경쟁과 불꽃 튀는 도전으로 하루하루 숨 막혔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겠습니까?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격동의 세월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꼴 충분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경험으로 만족한데 다시 볼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또 하루 멀어져 간다~ 하는 김광석의 노래가 있듯이 하루 지나면 한 겹, 또 하루 지나면 또 한 겹 마음을 짓눌렀던 책임에서 벗어나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나 즐기면서 여생을 보낼 작정입니다. (근데 그 녀석은 왜 서른 즈음에 이 노래를 부르고 일찍 갔는지… 반취가 참 좋아했는데)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지난여름 컴퓨터가 망가지면서 자료가 다 날아가 버린 이후, 이제는 안 써져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덕화만발 동지 중에 국과수 같은데 연줄이 있으면 도와주시지요. 국과수 시스템이면 데이터복구가 가능할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주말의 망중한을 「라 캄파넬라」에 빠져 있는데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 ‘A’가 자기 친구 ‘B’를 데리고 불쑥 「반취동산」을 찾아왔습니다. 북한산 의상대를 무사히 등정(?)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출출하고 적적하던 차에 마침 잘 왔다는 반가운 생각에 얼른 술상을 차려 마주앉으니 ‘A’가 ‘B’를 소개하며 부탁을 합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휴대폰 부품 만드는 중소기업을 하는데 이번에 공장을 확장이전하면서 사훈(社訓)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B’는 그것을 자기보다 지식이 많다고 여긴 ‘A’에게 지난 달 말까지 하나 지어달라고 열흘 전에 부탁했는데 ‘A’가 그만 날짜는 다 보내고 숙제는 못 한 것입니다. 사훈을 발표하기로 한 ‘B’ 회사의 확장이전파티가 이틀 뒤인데 도저히 아이디어가 없어 반취동산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불쑥 찾아와 막무가내로 근사한 사훈을 내놓으라는 것이니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A’는 당장 생각해내라는 것이었고, ‘B’는 점잖게, 내일 오전까지 FAX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했습니다.
‘B’는 일반적인 경구(警句)였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반취는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그렇게 일반적인 걸 찾는다면 인터넷에도 널려 있고, 액자가게에 가도 견본이 여럿 있지 않느냐. 거기서 고르면 되지 어렵게 친구에게 부탁하고, 그게 안 돼서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찾아왔느냐고 하자 B는 그제야 하하하하 웃으며 털어놨습니다.
“기왕이면 스토리가 있는 사훈을 갖고 싶어 그랬습니다.”
어쨌든 소중한 친구의 부탁이라, 셋이 앉아 소주병을 여덟 개나 비우는 동안 내내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는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없다.」 따위 경구(警句)처럼 보편적인 언어로 삶(일)의 자세를 날카롭게 제시하는 한마디를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명사여야 합니까? 형용사나 동사, 혹은 문장이면 어떻습니까?”
B는 한 시간 여를 함께 하는 사이에 반취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상관없습니다. 반취 선생이 지어주시는 거면 무엇이든 좋을 거 같습니다.”하고 시원하게 말했습니다.
고민 끝에 떠오른 사훈은 “사랑하자.”라는 동사였습니다. 삶이 곧 일이요, 일이 곧 삶이라 할 때, 사랑하자는 말보다 더 간결하고 날카로운 표현은 없어 보였습니다.
반취는 잠시 일어나 성경에서 사랑을 찾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명쾌하게 있었습니다. 「삶(일)은 사랑에 관한 것. 삶(일)에서 사랑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믿음과 기쁨이다, 사랑을 삶(일)의 최고목표로 삼자. 가장 아름다운 것도 사랑하는 삶이다. 이 보다 좋은 사훈은 없다.
생각이 이렇게 굳어지자 반취는 「사랑하자」를 적어 주며 사훈으로 권했습니다.
「社訓/사랑하자」
하고 써 주었는데 순간 두 친구의 얼굴빛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별로로 변했습니다. 말도 없어졌습니다. 마치 그건 너무 흔한 거 아니냐. 정중히 부탁했는데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 하고 항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취는 술잔을 새로 돌리고 나서 「사랑의 해석」이란 일장 사족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세요.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재물보다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을 사랑하면 저절로 현재에 충실하게 됩니다. 밤에 잠이 안 오거나 할 때 생각해 보세요. 성공한다는 것과 삶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인간성의 성숙은 사랑하는 정도와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설이 더 설득적일 수도 있겠군요.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사랑 없는 삶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요? 해악 없이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건 식욕이 있을 때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유익하게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건 사랑이 있을 때뿐입니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할 때는 일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있는 게 바람직할 겁니다.?
사랑이 없으면 목적도 없어집니다. 빛의 초점을 맞추면 불꽃이 일어나듯 사랑이 있고 초점이 맞춰진 삶만큼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어 맞설 수 있는 힘 같은 것이 곧 불가사의할 수도 있는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무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있지만 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가질 수는 없습니다. 모든 걸 바쳐 노력해야 가능합니다. 신비주의가 아닌, 이성적 사람이 되어야 사람다운 사랑은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우리 국민의 소득이 선진국 수준이 되었다면 이제는 「삶이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임을 모두의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웃과 어울리는 능력이 영적인 성숙의 척도입니다.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린 열정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비판하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개발도상국 수준의 사고(思考)로, 결코 성숙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이상에 대한 노력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소박한 개인주의요,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성숙함이란 이런 것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느냐 는 상관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일)에 얼마큼 사랑을 쏟고 있는지가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회사원 모두가 진실은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생활화하도록 해보세요. 진실은 모든 사람이 사랑받아야 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스토리를 원하지 않으셨나요?
그것이 사훈 사랑하자의 스토입니다.
그러자 친구의 친구인 B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반취 손을 잡으며 허리를 90도 굽혀 감동을 표시했습니다. B의 회사 확장이전 자축파티에 초대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았음은 물론입니다.
첫댓글 사랑합니다
사랑은 그냥 사랑이죠!!!
하하하하하하하! < 나이가 드니 정말 편안합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건 나이가 들어서가 아닙니다. 도인이 다 되셨다는 증거이지요!
마음을 허공처럼 비우면 일상ㄴ생활이 헌거로운 것입니다.
반취 선생의 경지가 느껴지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