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성과 천진조약
십월지변(十月之變)에 청병이 일병을 쏘아 죽이고 교동에 있는 일본공관에 불을 놓고 공사 죽첨진일랑은 도망하여 인천으로 가서 영국군함에 구원을 받아 일본으로 가서 청병의 포악한 행동을 그냥 둘 수 없다 하여 갑신 11월에 정상형으로 전권대사를 삼아 보병 2대대를 거느리고 경성에 들어와 십월지변에 입은 손해를 물라고 우리 정부에 대하여 교섭이 되었다.
이것은 턱없는 수작이나 저들이 조선 개화당을 선동하여 저의 뜻을 피려다가 조선 사람과 충돌된 것도 아니요 청국병과 충돌이 되어 피차 손해가 있었거늘 이제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위협하며 문책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이다.
소위 수구당에서는 이런 의사로 한마디 답변하지 못하고 소위 한성조약이 성립되었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일본에 사신을 보내어 진사할 것과
일본공관기지와 건축비를 담당할 것 등으로 조약이 성립되었으니 이런 굴욕적 조약이 어디 있는가. 소위 개화당은 이런 수욕을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정상형 보다 먼저 청국에서 오대증(吳大徵)을 보내어 경성에 주둔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 말이 없다가 그 이듬해 을유(乙酉) 3월에 일본에서 이등박문으로 대사를 삼고 서향종도(西鄕從道)로 부사를 삼고 청국에 가서 십월지변에 일본이 받은 손해를 질문하니 청에서는 이홍장 오대증으로 하여금 천진에서 담판할 새 드디어 청일 양국이 조선에 주둔한 군대를 4개월 내에 철퇴할 것과 장래에 조선에 무슨 변이 있어 청일 양국 동병하게 될 때는 양국이 미리 알게 할 것 등이다. 이것이 소위 천진조약이란 것이다.
조선 개혁은 조선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당국이 배후에 있어 조종하다가 필경코 표면으로 충돌까지 되었으니 이것이 모두 조선 사람의 큰 모욕이다. 천진조약의 결과로 양국군대가 다 철퇴하였으나 원세개는 통상전권위원이란 명의로 경성에 남아 있으며 내정간섭이 많았고 민씨네와 서로 결탁하여 모든 일을 주장하였다.
소위 조선 정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이 나라가 청일 양국의 탁견 하는 장소로 만들어 주고 자기들은 그 틈에 왕래하여 아첨하는 모양을 비루하기 짝이 없다. 일측에 붙은 자는 청국이 꺼꾸러지면 하고 청측에 붙은 자는 일본이 꺼꾸러지면 하고 서로 눈총을 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