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숀 탠 글 · 그림 김경연 옮김
매미는 고층 빌딩에서 일한다.
데이터를 입력한다.
십칠 년 동안 아파서 쉬는 날은 없다.
실수도 안 한다.
톡 톡 톡!
십칠 년 동안 승진도 없다.
인사부장은 말한다.
인사부에서는 인간 직원만 관리한다고
매미는 인간이 아니라고.
톡 톡 톡!
매미는 회사 화장실을 쓰면 안 된다.
열두 번 길을 건너
공중화장실로 가야 한다.
그때마다 회사는 임금을 깎는다.
톡 톡 톡!
인간들은 일을 끝내는 법이 없다.
매미는 늘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끝낸다.
아무도 매미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는다.
톡 톡 톡!
인간 동료는 매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못된 짓도 많이 한다.
매미를 바보라고 생각한다.
톡 톡 톡!
매미는 집을 빌릴 형편이 못 된다.
사무실 벽 틈에서 산다.
회사에서는 모른 체한다.
톡 톡 톡!
십칠 년 일한 매미가 은퇴한다.
파티는 없다.
악수도 없다.
상사는 책상을 치우라고 말한다.
톡 톡 톡!
이제 안녕을 고할 때다.
톡 톡 톡!
매미들은 모두 날아서 숲으로 돌아간다.
가끔 인간들을 생각한다.
웃음을 멈출 수 없다.
톡 톡 톡!
기다림의 존재
2019. 09. 백란주
매미는 나무색과 비슷해서 나무에 붙어있을 때는 찾기가 쉽지 않다. 큰 소리로 우는 매미일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한여름 매미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쟁사회였다.
가을밤을 알려주는 귀뚜라미도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만 수컷끼리 영역 다툼을 할 때는 다른 소리를 낸다고 한다.
곤충들도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른 옥타브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애를 쓴다. 숲의 일들도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한 그 무엇이든 그들만의 경쟁을 해야 하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의 법칙인지 모르겠다.
표지에 드리운 회색빛은 콘크리트 벽을 연상하게 한다. 양복 입은 매미의 모습은 아직 미숙한 아이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서 있는 느낌이다. 초록색이 주는 편안함은 잠시 매미를 ‘앳됨’으로 느끼게 했다. 널브러진 종이를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사회초년병일까, 만년대리의 모습일까, 잠시 헷갈렸다. 사회초년병이라 말함이 나는 덜 아픈 느낌이다.
인생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라고 했다. 그런데 내게 인생은 때때로 풀어야 하는 숙제일 때가 많다. 당장 아이들의 취업을 걱정해야 하고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스스로 날개를 달고 숲으로 날아갈 매미가 되리라 믿으면서도 기다림에 대한 연습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6~12년의 애벌레기를 거쳐 성충이 되며, 땅속에서 17년을 버티다 나와서 7~15일이라는 짧은 생을 살고 가는 매미에게 과연 살아야할 신비는 무엇일까.
작가 숀 탠은 아버지를 모티브로 ‘매미’ 캐릭터가 나왔다고 한다. 숀 탠의 아버지는 20대 초반,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이민을 왔다. 처음에는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힘들고 고된 일들을 주로 하였지만, 성실히 일해서 몇 몇 회사에서 건축가로 일했다. 숀 탠은 아버지가 뛰어난 기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실력과 노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차별에 대한 아픔이 ‘매미’책이 되었다.
매미 낱말을 소리 내는 순간 똬리 틀고 있는 단어들이 고개를 든다. 약자, 소외, 차별, 비정규직……. 민주주의라 함이 반드시 공평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공평해야한다는 당위성을 받고자 하는 이 착각을 부인할 수 없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별로 여겨지는 이 불편함도 무시하지 못한다. 수렵생활에서는 사냥을 잘하는 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힘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기에 더 아플 때가 있다. 울타리 안에 들지 못한 약자들의 불만은 그들만의 품평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강자들은 약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함이 어쩌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매미가 보내는 17년의 세월이, 견딤이 되었기에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을 살더라도 인간을 비웃으며 비상할 수 있는 매미의 삶은 매미가 살아야 할 신비로움이었다. 경력이나, 인생의 전환기는 무언가가 시작되는 시기가 아니라 끝나는 시기라고 했듯이 매미가 탈피를 하는 순간, 회사에서 과감히 사직서를 던지는 순간이 모가 되었든 도가 되었든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환기는 ‘끝’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듯이 매미가 나름의 17년을 끝냈기에 매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과정을 견딤은 진화가 되지만, 견디지 못함은 퇴화로 기억된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리 잠자가 벌레가 되었을 때 가족들과 합류하려고 시도하다가 저지당한 횟수와 일치하는 숫자 3, 총 3장으로 되어있음은 작가의 의도적임일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 세 번의 시도는 자신이 할 수 있음에 최선을 다한 횟수라고 말할 수 있다. 가족들은 잠자의 수입에 의존하며 살았다. 자신을 보고 기절하는 어머니, 사과를 던져 상처를 입히는 아버지, 괴물로 인식하는 누이. 가족의 냉대는 결국 잠자를 죽게 만들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자신의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매미가 옥상 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럼에도 돌아갈 숲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자는 믿었던 가족에게 버림받았기에 희망을 꿈꿀 수가 없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어떠어떠함’과 아무 관계없이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하며 오직 그 상대의 존재, 곧 그 대상의 ‘있음’ 그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실현되는 곳이 ‘가정’이라고 이야기 하며 “인간이 인간이기 위하여 가족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잠자 가족에게서 소외 받는 것은 내가 ‘없음’을 확인 받은 것이다. 잠자의 삶이 슬픈 이유다.
70대 할아버지가 피나게 공부해 한의대 붙었는데 ‘합격포기’한 이유를 읽었다.
알파벳도 완전히 익히지 못한 채 수업을 들었던 할아버지는 “나는 공부하는 게 목적이오. 공부해서 한의대에 합격하고 싶습니다.”
주변 어린 학생들은 아무나 갈 수 없는 한의대를 목표로 한 할아버지를 향한, 허황됨에 대한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일 년 반 동안 단 한번도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공부를 하였으며 결국 한의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한의대에 등록하지 않겠다는 할아버지의 진의를 학원 강사는 물었다.
“저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지요. 아무것도 없이 힘들게 살며 자식들을 키워냈습니다. 자식들이 다 크고 이제 조금 여유가 생겨서 제가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었어요. 공부가 하고 싶었던 것이지, 열심히 공부해 한의대에 붙는 게 목표였지 일흔이 넘은 내가 한의대 가봤자 무엇하겠습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학교에 등록하지 않으면 간절히 입학을 기다리는 대기 번호 1번 학생이 대신 들어갈 것 아닙니까. 그 젊은 청년이 나 대신 얼마나 멋진 한의사가 되어주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감정이 좋다, 싫다는 주관적 성향이라면 행동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객관적 잣대에 따른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의 합격소식과 한의대 진학포기는 할아버지의 감정도 행동도 최고였기에 기사를 읽으며 나는 무한감동이었다. 뉴스를 오르내리는 나쁜 소식은 우리에게 탄식을 불러올 뿐, 그 이상의 관심을 갖지는 못한다. 하지만 선행이나 미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누군가에게는 가치 기준이 될 수 있는 소중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되며 닮아가고자 노력한다.
한의사가 목표가 아니고 한의대 합격이 목표였던 할아버지의 뚜렷한 목적의식은 나이어린 학생들의 비웃음도 존경으로 바꿀 수 있게 했다. 어쩌면 매미가 인간들을 비웃고 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매미 스스로 매미다움이 있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기준이 잣대가 되는 삶으로 종속되다보면 어떤 자리에 가더라도 늘 ‘톡 톡 톡’소리에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 ‘톡 톡 톡’을 박차고 나올 용기나 견딜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자는 진화의 출구로 나아가게 된다.
나무와 풀꽃이 아름다운 것은 아주 잠깐 피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1년을 기다려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동의 순간은 언제나 짧다. 부처꽃과의 배롱나무 꽃은 100일 동안이나 피어있지만, 꽃 한 송이는 10일을 넘기지 않는다. 배롱나무 꽃은 다른 나무의 꽃보다 훨씬 오래 피어있기 때문에 백일홍百日紅이라 불린다. 그러나 배롱나무 꽃은 각각의 꽃송이가 피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무궁화 역시 배롱나무처럼 100일 정도 피어있지만, 꽃 한 송이는 단 하루면 진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감동은 그냥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동하기 전까지의 긴 기다림 덕분이다. 아름다운 배롱나무 꽃을 보면서 감동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기다림은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사랑과 희망을 낳는다.
- 강판권, 『나무철학』중에서 -
매미가 꿈꾸는 숲으로 날아가는 것은 각자가 꿈꾸는 작은 소망일 것이다. 매미가 옷을 벗고 붉은 색으로 피어나는 모습은 배롱나무를 닮았다. 배롱나무 꽃잎 혼자서는 그렇게 오래 아름다울 수 없지만 함께 피고지고를 반복하며 이끌어주고 밀어주었기에 백일동안 아름다울 수 있다고 우리는 믿게 된다. 소나무 또한 우리는 사철 푸르다고 하나, 잎 하나가 2~3년 되면 떨어지고 또다시 나서 사철 푸르게 보인다고 한다. 혼자가 아닌 함께여야 하는 이유이다.
17년의 매미는 긴 기다림에서 그리움을 낳고 그리움은 사랑과 희망을 낳았을 것이다. 인생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고 살아야 할 신비임을 점차 깨닫는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이기적인 사회일 것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기다림을 배우고 그리움을 낳으며 사랑과 희망이라는 열매가 존재한다는 것을.
바쇼의 하이쿠를 옮겨 적어본다.
고요하고 평화로이
매미 소리가
바위를 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