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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혜로운 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Gideon
대심방 설교자료 모음(7)
예수님의 사람을 보라
막 10:13-16
김삼환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잘 자라도록 힘써야 하며 믿음의 자녀로 양
육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아이를 잘 기르는 길은 하나님을 잘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며 축복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 나올 때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올 때 우리는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주님의 품
은 사랑의 품입니다. 능력의 품이며 은혜의 품입니다. 겸손히 주님의 품에 안길 때 구원
의 은혜와 신령한 은혜를 받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또 어린아이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주
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축복’이란 말은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복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복은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
로몬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보다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반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놀라운 일은 없습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허랑방탕하고 어두
운 삶을 살았지만, 예수를 잘 믿는 친구를 만남으로써 성경을 읽게 되고, 사업이 잘 되
고, 주지사가 되었으며 끝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영적 부흥 운동
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의 백만장자인 록펠러의 어머니는 어린 록펠러에게 믿음 생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
은 10가지 수칙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①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②목사님을 하나
님 다음으로 잘 섬겨라 ③주일예배를 본 교회에서 드려라 ④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
조 주머니로 하라 ⑤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아라 ⑥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⑦
저녁에 잠자리를 들기 전에 반성하여 기도하라 ⑧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⑨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⑩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이것은 오늘 우
리 시대의 가정에도 매우 합당한 교훈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할 일은 한나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을 잘 경
외하고 믿음에 굳게 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온갖 복을 주
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자녀들과 이웃에게 받은 복을 나누며 격려하며 용기
를 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명성교회목사
하나님의 선물
전 3:10-13
김창인
1. 사모하는 마음 (10-11)
예수께서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마음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길바닥 같은 완
고한 마음, 돌밭 같은 메마른 마음, 가시덤불 같은 꽉 막힌 마음에는 결실이 없습니다.
옥토 같은 기름지고 순수한 마음에서 말씀의 열매는 백 배를 맺습니다. 마음이 깨끗하
면 생각도 생활도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인생에게 주신 노고는 때를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하나님
은 인생의 노고 중에서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모든 고난을 이기어 복되게 하
십니다.
이처럼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생활이
다릅니다. 영원을 위해서 전력투구하기 때문입니다.
2. 선행의 기쁨 (12-)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유대인
들이 송사하려하여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 물으시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선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뻐하며 선한 일을 하셨습니
다.
본문을 보면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하였습니다. 즉 솔로몬은 선을 행할 때 기쁨으로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선행의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3. 수고의 복락 (13-)
이스라엘백성들을 성전에 올라가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수고한대로 먹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그것이 곧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수고한대
로 먹고 누리는 복은 하나님의 선물로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받는 복락입니다.
본문을 보면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
인줄을 또한 알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수고한 만큼 먹고 누리는 복락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정당하게 수고하며 일하는 자에게 복락을 베푸시기 때문
입니다.
광성교회목사
나의 기업이 아름답도다
시16:5-6, 엡1:11-14
김형기
하나님은 그 지으신 뭇 족속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
습니다. 관심과 사랑을 쏟으시고, 은혜 복을 주셔서 당신의 기업으로 조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당신의 선하고 의로운 뜻을 이루시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
의 영광을 만방에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를 저버리고 불순종하며, 죄악
의 길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
는 패역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진노하셔서 이방족속의 손에 이스라엘을 붙이시
고 그 애지중지하시던 기업을 폐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이
방 족속들 중에서 예수를 주로 영접한 자들로 교회를 조성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그 마
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기
업이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는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다 부어 주셔서 이 교회를 충만케 하고, 부요
케 하며, 권세 있게 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인이 찬송은 곧 우리의 찬송이
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내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켜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
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이제 영원토록
살아계신 주님, 전능하시고 부요하시고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업
이 되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은 백성은 복이 있습니다. 그 가문과 나라도 대대로 화평
과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 아들을 통하여 조성하신 교회는 우리의 아
름답고 위대한 기업입니다. 이 기업이 잘되고 흥왕하면 우리 모두가 잘되고 흥왕하게 됩
니다. 나라가 잘되고 민족이 창대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도 잘 되고, 장차 영원한 나라
까지도 상속 받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의 선조들로부터 아름답고 위대한 기업을 물려받았습니다. 우리도 대를 이어
서 이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충성하여 창대함을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주
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될 수 있도록 헌신하면서 사랑이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경주제일교회목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신6:1-9, 마5:43-48, 요일3:17-18
손인웅
우리가 부모나 교사로서 자녀들이나 학생들에게 무엇을(내용), 어떻게(방법) 실제적으
로 교육해야 할 것인지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편의상 교과 내용과 교육방법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첫째로 사랑으로 사랑을 가르칩시다(신6:4-9).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예배드리는 생활을 통해서 가르칩시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
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을 보입시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칩시다.
이웃을 사랑하는 교육은 희생적인 봉사활동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요일3:17-18).
③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칩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희생시키시면서까지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이 세상(요3:16)과 만물
을 화목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생
활을 통해서 생명 사랑의 교육을 해야만 합니다(골1:20).
둘째는 믿음으로 믿음을 가르칩시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사도 신경에 나오는 순서대로입니다. 하나님, 예수
님, 성령님, 교회, 성경, 창조, 죄사함, 부활, 종말, 영생 등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내
용들을 어떻게 자녀들이나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
치는 사람들이 그 모든 내용들을 확실하게 믿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믿음을 실증
해 보여주는 것입니다(약2:21-26).
셋째는 소망으로 소망을 가르칩시다(롬8:24-25).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소망에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적인 삶
을 살아가면서 항상 소망중에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소망에 넘치는 삶
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만 소망에 대한 교육이 가능해 집니다.
넷째로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교육을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가치
관과 의로움에 대한 교육도 병행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의롭게
살아감으로 그리스도적 가치관이 형성되고 의로운 사람으로 자라게 합니다(딤후3:16-
17).
덕수교회목사
그리스도인 청년의 삶
전11:9-10, 딤후2:20-23
이성희
필립 매신저는 “청년기는 마치 고급 양피지와 같아서 그 위에 무엇이든지 새겨 넣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청년기는 기회와 가능성의 시간이다. 청년기의 자세는 기회도 가능
성도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청년기는 모든 것이 새로운 시기이다. 그러나 혈기가
절제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감성이 이성을 이기지 못하게 하고 육체가 영혼을 이기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결심이 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미
래의 일꾼들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 청년의 때는 삶은 어떤 삶인가?
1. 청년의 때를 즐겨라.
성경은 청년에게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라고 한다. 청년
은 인생의 절정기이다. 인생의 절정기를 놓치지 않게 즐겨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인간은 노동 자체만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마음에 원
하는 대로 가고 싶은데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라고 한다. 그러나 무절제한 방탕으로
타락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심판을 전제로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기독교는 지나
친 방종주의나 극단적 금욕주의를 다 배격한다.
2. 근심을 떠나게 하라.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라고 성경은 권한다. 청년들도 미지의 세계에 대
한 근심이 더 많다. 근심이란 말은 분노, 슬픔을 의미하는데 인생의 낙을 누리는데 방해
되는 슬픔의 요소를 제거하라는 뜻이다. 인간을 파괴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상하며 육적
인 쾌락으로 몸을 병들게 한다. 근심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유익하고 생산적인 근심
이 있다. 생산적인 근심을 할 줄 아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쓸모 없는 근심에서
떠나면 생산적인 영적인 근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된
다.
3. 악을 물러나게 하라.
“악으로 물러나게 하라”는 말씀은 육신의 고통이 떠나게 하라는 뜻이다. 인간의 악은
육신의 고통이며 육체적으로 따라 사는 삶이 결국 악이고 그 악의 종국은 고통이다. 지
나친 방종과 타락에 처하지 않도록 자제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청년 시절에는 이성의
유혹을 조심하고, 장년 시절에는 물질의 욕심을 버리고, 노년 시절에는 명예의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이지만 본능대로만 살면 동물과 다름이 없
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한다. 청년 문화가 영혼을 죽게 하는 것
이 많이 있다. 청년들이 미래가 있고 즐길 줄 알며 악을 물리치는 청년이 되자. 연동
교회목사
한 어린이를 통한 축복
요 6:5-13
김갑식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
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 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
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요
6:9-11)
오천이 넘는 장정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나 거둔 오병이어의 기적을 모르는 성
도는 없을 것입니다. 기적의 질에서나 양에서 최고의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런데 이 기적은 기적의 크기에 비해 기적을 불러온 사람은 이름 없는 “한 아이”였다
는 점이 더욱 대조를 이룹니다. 기적에는 남녀노소가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특히 교
회는 어린이의 믿음도 소중히 여길 때에 기적을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한 어
린이를 통한 기적의 의미를 살피고자 합니다.
1. 한 어린이와 오천 장정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장정 오천이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을 소자 한명이 주님
의 은혜로 말미암아 능히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어린이주일이 아니라도 한
어린이의 중요성은 계속 강조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천국이 어린이의 것이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영적인 것은 결코 육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일은 어른과 어린이를
떠나 믿음의 정도와 헌신의 여부에 따라 맡겨져야 할 것입니다.
2. 적은 헌물과 많은 축복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는 지극히 보잘것 없는 어린이의 혼자 먹을 만한 분량의
음식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천명의 장정을 배불리는 음식이되었고, 남아서 열두광주리
나 거두어 드린 분량이 된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결코 양적으로, 눈에 보이는것 만으
로 할 수 있다 없다를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보이는 것외에도 보이지 않
는 믿음의 실체까지를 포함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3. 주님 한분이 만인과 만물 보다도 귀중합니다.
한 어린이나 다섯마리의 물고기 보리떡 다섯개 이러한 것에는 결코 어떠한 능력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미약한 것이라도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붙들렸다는 것
입니다. 주님의 손에서는 아무리 미약하고 미천한 어린아이일찌라도 강하고 귀하게 될
수 있음을 믿어야할 것입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영원히 영원히 오직 여호와
사 26:4
김삼환
이번에 유럽 선교사 대회를 인도하고 오면서 우리나라가 더욱 하나님을 잘 믿고 그 뜻대
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유럽을 비롯하여 온세계
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유럽인들은 매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또 유럽에서는 창조질서를 무시하고 인간 복제까지 시도되고 있는데 이로 인
해 인간의 존엄성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인간들이 감수해야만 하
는 고통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불신앙과 교만과 멸망은 언제나 같이 다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에스겔 31장에는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
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 이 물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는
교만한 나라를 심판하신다는 비유입니다. 교만하면 세계를 지배하는 앗수르, 두로, 애굽
도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우상숭배와 사치와 음란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
으면 영적으로 병듭니다.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을 치료하는 길은 온 민족
이 다시 한번 신앙을 회복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일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
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과 은혜 아래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각양 은혜와
축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구약 잠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여호와
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하셨고, “여호와를 경
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하셨으며, “겸손
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
로 하나님을 잘 믿으면 첫째, 물질의 축복이 옵니다. 둘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와 삶
의 영광이 따라옵니다. 셋째,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삶을 얻는 줄 믿습니
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일에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자
녀가 잘 되고, 물질도 복을 받고, 이름도 존귀하게 되고 하늘과 땅의 온갖 축복이 다 찾
아오는 줄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귀감이 되는 믿음의 가정
행 10:1-5
김창인
1. 경건한 가정 (1-2)
예루살렘교회에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박해로 인하여 사도들 외에는 사마
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져 피난을 갔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성도들은 스데반의 순교현장
을 지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감히 누구나 나서지 못하는 때에 그들이 용감히 나서
서 스데반을 장사했습니다. 경건한 자들이 일을 해내더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고넬뇨의 가정이 등장하는데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
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좋은
예배라는 뜻으로 경외와 구제와 기도를 나타냈습니다. 즉 경건은 생활에까지 이어졌습니
다. 고넬뇨의 가정은 경건하여 믿는 가정에 귀감이 됩니다.
2. 열려진 가정 (3-4상)
성도들의 마음이 열린 경우와 닫힌 경우는 천양지차이입니다. 예를 들면 요나는 선지자
이면서도 닫혀진 자입니다. 니느웨 전도를 죽기 보다 싫어 했습니다. 불순종하기도 하였
지만 나중에는 니느웨 백성들의 구원까지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열린 일꾼이었
기에 세계선교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열림과 닫힘의 차이는 밤과 낮만큼 다릅
니다.
본문을 보면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왔습니
다. 고넬뇨는 그 천사와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고넬뇨의 가정은 하늘을 향해
또는 이웃을 향해 열린 가정이었습니다(행10:24) 그 가정을 통해 큰 역사가 일었습니
다. 열린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3. 열납 된 가정 (4하-5)
한번은 예수께서 외식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주여’라고 말은 잘하
면서도 하나님의 뜻은 내가 알바 아니라는 듯이 살아갑니다. 동시에 교회에 나와서는 열
심히 봉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봉사를 도무지 모르겠다하십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의 기분대로 명예를 위해서 자기들의 이름을 나타내고 영광을 모두 다
받았기에 그들의 신앙생활은 하나도 열납 되지 못했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불
행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
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고넬뇨의 신앙생활 전부가 열납 되었
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뇨의 가정은 하나님께 열납 된 가정의 모델입니다.
광성교회목사
안보고도 믿는 자들
요 20:29
류철랑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
수를 안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중 하나인 도마입니다.
부활하시던 날 저녁때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예수께서 거기 오셨습니다. 그때 마
침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고 하자 도마
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에,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안겠다고 합니다(요
20:25). 여드레 후에 예수님이 도마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만져보고 믿음 없
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며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
는 자들이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보고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있는 자입
니다. 보면 더 잘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메시야라고 하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현실 때문에 예
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기 어렵게 합니다. 하나님을 꼭 보아야 믿겠다는 것
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못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보이
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안보고도 믿습니다. 하나님이 믿게
해주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
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
9) 어떤 사람이 나를 불신하는 것은 나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로
부터 신뢰를 받는 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을
때 하나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빛이 있어도 시력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
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어서 안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고 믿으려 말고 듣고 믿어
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을 보고 믿은 것이 아
닙니다. 그들은 모두 안보고도 믿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바라보며 모험하게 합니다.
결단하게 하고 문제를 향해 도전하게 합니다. 믿음은 비전입니다. 비전은 선견이요, 상
상력, 통찰력입니다. 믿음으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며 삽시다.
부천동광교회목사
달란트 비유의 교훈
시126:5-6, 마25:14-30, 살전3:11-13
손인웅
1. 달란트의 의미
달란트라는 말은 지금은 ‘재능’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특별히 연예인들
을 ‘탈랜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 비유의 목적
예수께서는 종말과 재림에 대한 교훈을 하시는 중에 역사의 종말을 예고하시고 그 이후
에는 반드시 최후의 심판이 있다는 말씀과 주님께서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다시 오신다
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까?
달란트 비유에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재능의 차이에 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똑같은 것
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하 만민중에 ‘나’라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으며,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
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은사를 찾아 개발해야만
합니다.
둘째는 깨달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의 깊은 마음과 의도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주인의 사랑과 자신에 대한 깊은 배려를 깨
닫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과 불공평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주인이 자신에게 맡긴 돈이 한 달란트라고 해서 적다고 생각했다면 큰 잘못입니다. 주인
의 사랑과 배려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주인을 사모하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주
인의 뜻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두려움과 나태와 불만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노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깨닫는대로 올바른 가치관과 적극적인 태도로 최선의 노력을 하면, 갑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열 달란트를 구하시지 않으시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구하지도 않으십니다. 자신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심지도 않고 거두게 된다는 잘못된 신앙을 가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기
뻐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결과의 차이에 대한 교훈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심는대로 거둔다(갈
6:7)’,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는 원리
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덕수교회목사
좋은자녀가 되는 길
출 20:12, 엡 6:1-3
이성희
외국에 입양된 한국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 다시 한국에 와서 뿌리를 찾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
다. 뿌리를 알면서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순종하지도 않고 훈계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모에 대한 구타와 유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주신 부모에 대하여 좋은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태도입니다.
1.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자세
로 대전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옳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
다. 불순종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옳다라는 헬라어는 디카이오스로서 의롭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꼭맞다는 뜻입니다. 순종하다라는 말은 ‘듣는다’
는 뜻의 라틴어 아우디레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에서 바친 사건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이삭도 위대하였습니다. 순종은 예수님의 마음
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2.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공경하는 것은 높은 가격을 매긴다는 뜻입니다. 또 소중히 여긴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
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께 높은 위치를 매겨 놓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하나님께 향하는 자세와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공경이라는 단어가 31번 나
오는데 부모에 대하여 17번 하나님께 대하여 7번 그리고 나머지가 7번 나옵니다. 공경
은 부모님과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복
주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3. 부모님의 훈계를 듣는 것입니다.
잠언 4장 1절은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고 합니
다. 자녀들은 부모의 훈계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꾸지람을 잘 듣지
못합니다. 훈계를 듣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훈계가 없으면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가장 지혜로운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도 내 아버지에
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고 말합니다. 가정의 달
을 맞이하여 부모님께 좋은 자녀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연동교회목사
맛보아 알찌어다
시 34:1-8
김갑식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 하리로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
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1,7-8)
이 시의 편집자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기
록했습니다. 사무엘상 21:10 을 보면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가드왕
아기스
에게로 갔으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봄으로 그 신분을 숨기려고 미치광이 시
늉을 하여 겨우 그 위기를 모면한 비참한 광경을 볼 수있습니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은 이런 상황에서 은혜의 맛을 보았습니다. 본문의 간증
을 통하여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1. 찬송의 맛을 알았습니다.(1절)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찬송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항상 찬송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라고 본문은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
에 거하시는 하나님은 찬송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고 복을 주시며 위기의 상황에서 피
할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시 22:3) 누구보다 찬송을 좋아하던 다윗이었기에 하나님
의 사랑을 입게 되었습니다.
2. 기도의 맛을 알았습니다.(4.6절)
다윗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결코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
은 죄라고했습니다.(삼상12:23) 다윗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았던 것입니
다. 그래서 맛보아 알라고 했으며(8절),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0절)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외적 증거요, 동시에 신앙인의 특권인 것입니다.
3. 소망의 맛을 알았습니다.(5절)
다윗은 주를 앙망하므로 광채를 입었고 이로 인하여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 확신했습니
다. 신앙생활은 은혜로 하는것이며, 또 하나님을 앙망하는데 있습니다. 이사야는 “오
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
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1) 라고 했습
니다.
<백운제일교회목사>
보고 들은 것을 말하라
행 4:19-20
김삼환
최근 광우병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물에게만 광우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원치 아니하는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문화를 파괴하고, 인
간의 풍요로움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건강한 정신, 훌륭한 인격에도 이런 바이
러스가 침투하면 순식간에 사람이 잔인해지고 강퍅해지고 음란해집니다.
가정에도 침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막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막아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좋은 무기를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지라도 어둠의 세
력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완전한 약이며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없도록 개발된 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 세상에 어두움의 세력이 많
고, 악한 세력이 많이 있지만 우리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깨어 기도하면 모든 어
두움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며 항상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
뻐하시는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믿음의 생활은 쉽습니다.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의 손이 가까이 와 계십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내 가까이 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축
복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으며 위대하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
다. 기도하는 사람 옆에는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기독교는 경험의 종교입니다. 보고 듣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보
고 들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예배가 있는 것입니다. 경
험하지 않는 신앙은 힘이 없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으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
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날마다 보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경험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마음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좇아낼 수 있습니
다. 사랑과 화평과 기쁨과 소망과 믿음이 넘치는 삶은 기도를 통하여 옵니다.
우리는 이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전도하면 결과가 참 좋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기도하고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면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할 때에 가정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여 건강
한 가정이 되고, 이 나라가 힘있는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명성교회목사>
즐거움을 갖고 삽시다
시 21:1-4
김창인
1. 응답의 즐거움 (1-2)
이삭은 결혼 20년이 되었어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심각한 문제였고 자녀에 대한 소원이
간절했습니다. 이것은 기도할 문제라 생각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아내 리브가가 잉
태하였습니다. 기도응답의 결과였지만 그 이후에는 기도하지 아니했습니다. 쌍둥이가 태
중에서 싸우고 있음을 아내 리브가가 기도했더니 작은 자가 장자의 축복을 받는다는 응
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기도응답의 결과는 즐거움입니다. 기도응답 이전에 소원을 먼
저 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2절) ‘그가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
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다윗에게 소원을 주셨고 다윗은 그 소원을 갖
고 간구한 결과 응답을 받고 즐거워하였습니다. 응답의 즐거움입니다.
2. 영접의 즐거움 (3-)
예수님의 탕자비유에서 둘째아들이 실패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사랑으
로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맏아들은 동생을 비난하며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접하여 잔치를 하고 모든 것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영접이 탕자에게는 더 없
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영접하사 왕으로 세워 주셨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부모도 그를 축에 끼워 주지 아니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영접하
사 왕으로 세웠습니다. 영접의 즐거움입니다.
3. 영생의 즐거움 (4-)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싫어하고 무서워합니다. 죽음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사람은 없습
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죄인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
다. 그러므로 이제는 죽음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긴 잠을 자는 것 뿐입니다. 주
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죽었던 육신이 잠자다가 깨는 것처럼 다시 살아 영생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영생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라고 하였
습니다. 영영한 장수는 영생을 의미합니다. 영생의 즐거움을 갖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광성교회목사>
작은 전도자
왕하 5:1-10
김형기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
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전에 아람사람
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
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
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용사로서 왕의 신임을 받는 존귀한 자였다. 전에 아람인들
이 떼로 이스라엘 땅에 침입하여 한 여자아이를 사로잡아 갔다. 저들은 그 소녀를 나아
만 장군의 집에 보내어 그 아내의 몸종을 삼았다.
소녀가 나아만이 문둥병자인 것을 알고 나아만의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주인이 사마
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나아만이 소녀로부터 들은 말을 아람 왕에게 고했다. 아람 왕은 많은 예물과 함께 편지
를 써서 이스포로로 잡혀간 한 이스라엘 소녀의 믿음의 말 한 마디, 곧 전도로 이루어
진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해 준다.
1. 하나님은 한 작은 여자아이를 통하여 큰 일을 은밀히 계획하고 준비하셨다. 그녀는
원수 나아만을 불쌍히 여겨서 그의 병이 낫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작은 전도자는
분노와 원한을 사랑으로 갚았던 것이다.
2. 소녀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음을 자랑했다.
종노릇하는 여자아이의 믿음의 말 한 마디가 용사 나아만과 아람 왕의 마음을 움직였
다. 주님이 은밀하게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이다.
3. 이방인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존
경하고 순종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큰 영광을 받으시고, 두 나라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
졌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겉모양이 강하고 존귀해도 실상은 약하고 추하다. 하나님
을 믿는 사람은 겉모양이 작고 미천해 보여도 실상은 저보다 강하고 존귀하다. 주님의
손길은 섬세하다. 내가 심히 작을지라도 전도자가 되면 사랑으로 원수를 이기고, 모든
역경과 큰 환란도 능히 이길 수 있다. 주님이 함께 하셔서 나를 통해서 뜻밖의 큰 일을
이루어 주신다. 성도 여러분, 작은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사랑
과 평화와 생명의 기적을 이루는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경주제일교회목사>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고 그 이후
시16:8-11, 요20:19-29, 고전15:1-11
손인웅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변하였으며, 부활의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놀
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고전15:1-11).
제일 먼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요20:1-18). 참혹하게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절망과 슬픔으로 소망을 잃어버렸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
님을 만난 후에 기쁨과 소망에 넘치는 사람으로 놀랍게 변하였습니다.
둘째는 베드로를 비롯한 열 제자들의 변화였습니다(요20:19-23). 제자들은 부끄럽게도
십자가 앞에서 모두가 실패를 경험하고 실의에 빠진 채 좌절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평안할지어다’하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의심 많던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확신에 넘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요20:24-29).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인도지역에서 선교하다가 순교했다고 합
니다.
넷째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발걸음을 돌이켜 주셨습니다(눅24:13-35). 주께서 함
께 하심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다시 예수살렘으로 돌아와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전
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인생의 방향을 그리스도께
로 바꾸게 됩니다.
다섯째로는, 부활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모이는 부활신앙 공동체로 교회가 탄생하
였습니다. 유대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사 만민의 주가 되게 하셨고, 만국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섯째로, 사울이라는 청년이 유대교에 심취하여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에 모이는 교회
를 박해하여 뿌리를 뽑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변화를 받았습니
다. 그래서 박해자 바울이 변하여 부활하신 주님의 가장 유력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일곱째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안식일 집회를 안식 후 첫
날인 일요일을 주님의 부활의 날로 정하여서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차별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마다 변화를 받아서 땅 끝까지 이르러 부활의 주
님을 증거하다가 혹심한 박해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하지 아니하였다는 것과, 피로 물들
여진 순교의 역사가 바로 주님의 부활을 웅변으로 증거해 주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습니
다.
<덕수교회목사>
죽기 전에 구할 두 가지
잠 30:7-9, 약 3:13-18
이성희
만일에 지금 한 가지만 구하려면 무엇을 구할 것입니까? 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입
니다. 잠언서의 현자는 자신의 구할 것으로 현실적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내
가 살아있는 동안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인가로 내 자신을 평가받습니다. ‘여호와가 누구
냐’라는 질문은 ‘무엇 때문에 여호와가 내게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같은 뜻입니다.
바른 것을 구하여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괴테는 “내가 하나님께 구
할 2대 소원은 청순한 마음과 위대한 사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하소서.
현인의 첫째 소원은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 해달라는 것입니다. 허탄과 거짓말이란 허무
함과 거짓말, 거짓과 거짓말하는 것, 악함과 거짓말 등으로 해석되는 말입니다. 즉 진실
한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
는 사람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자신의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해 달라고 합
니다.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은 허탄한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들의 부어만든 우상은 바
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답니다. 보통 거짓말과 못
된 거짓말과 그리고 통계 숫자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허탄한 것과 거짓된 것이 너무 많
이 있습니다. 이런 때에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이어야 합니
다.
2.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소서.
현인의 둘째 소원은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일수
록 일용할 양식을 갖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에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
식을 주옵시고”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매일의 양식을 달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40년 동안 주신 것은 일용할 양식인 만나였습니다. 만나는 하루의 양식이었고
욕심으로 많이 거둔 자는 벌레가 생겨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직한 방법으로 얻어
진 수입으로 적당하게 사용하면서 사는 생활에 만족하겠다는 것이 현인의 생각이었습니
다. 이러한 자세는 신앙생활의 진수입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합
니다.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하여 도적질한 사람들도 많
이 있습니다. 장발장이 그랬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실수를 피하려면 나의 소원은 무엇인
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매일 소원이 몰려 올 때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
는 것이 필요합니다. <연동교회목사>
누가 의롭습니까?
눅 18:9-14
김갑식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
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
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
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3-14)
본문은 자신을 의롭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을 죄인 취급하였던 바리새인에게 주님이 들
려주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에는 세리보다 의롭게 살려고 했던
바리새인이 훨씬 더 의로운 것은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세리를 바
리새인 보다 더 의롭다고 하셨을까요? 주님이 의로 여기신 이유와 의의 기준을 본문에
서 살피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은 절대적인 의를 강조하십니다.(11절)
바리새인의 기도에 나타난 그의 의는 상대적인 의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바리
새인은 자기가 세리보다 의로우면,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
신이 처한 위치와 환경의 관점에 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적인 기준 속에서 의와 불의를 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은 결과 보다 동기를 보십니다.(13절)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말할 때에 십일조를 드린것과 이레에 두번 금식한 것을 강조하였
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행위의 결과 보다 그 동기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보이기 위한 의인가 아니면 마음 속에서 우러난 의인가에 주님의 관심은 있었습니다. 보
기에는 의로와도 동기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3. 주님은 용서받은 의를 강조하십니다.(14절)
우리가 의인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아 죄를 간과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
니다.(롬3:25)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의롭다고 주장할 육체는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롬3:10 롬3:23) 이런 점에서 오히려 자신이 죄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
로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있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것입니다.(요일
1:8-10) 우리가 의로운 것은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엡2:8)
<백운제일교회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