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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사다리 타고 오르기
- 수필의 창작 원리와 창의적 글쓰기 비법 -
권대근
수필가, 문학박사
I. 수필은 주제적 양식이다.
모든 문학 장르의 글에 주제가 있지만, 특히 수필은 주제가 생명적이다. 한마디로 수필은 주제적 양식이다. 재제를 통해 주제를 구체화해서 형상화하는 데 수필창작의 비밀이 있다. 주제의식의 구체화란 선택된 소재에 대한 자기 해석의 한 방법으로써, 제재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자기화하는 관점이다. 주제와 구성 그리고 상상은 문학의 3요소다. 특히 수필은 주제와 제재를 기본 요소로 하기 때문에 주제의 구체화는 매우 중요하다. 주제란 한마디로 글의 중심사상이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가의 요지요, 주안점이다. 흔히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쓴다느니, 무형식의 글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붓 가는 대로 쓰고 형식이 없다고 해도 일관된 주제가 있어야 한다. 일관된 주제가 있으면 그 글은 붓 가는 대로 써지는 글이 아니다. 주제의식이 내면화되어 있느냐 외면화되어 있느냐의 차이에 따라 수필이 되기도, 잡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보겠다. 입춘이 지난 어느 햇볕 다사로운 날 공간이 넉넉한 카니발을 타고 문우 몇 사람과 따뜻한 남쪽 마을 남해에 가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해변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횟집에서 싱싱한 회도 먹고, 유람선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자. 이를 소재로 한 편의 수필을 쓸 경우, 주제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그냥 출발에서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여정을 재미있게 리얼하게 쓴다면 그것은 보고서나 기행문은 될지언정 수필이란 문학작품은 되지 않는다. 남해 여행의 과정이 하나의 수필이 되려면, 여정과 여정마다에서 느낀 점을 추출하여 그 중 무엇을 중심사상으로 의미화하여 글을 전개할 것인가. 그 중심이 곧 주제가 된다. 남해 여행은 수필가에게 있어 소재며, 현실이며, 결과다. 먼저, 부산에서 남해까지 갔다오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뇌리에 잡히는 느낌이나 사건을 골라 본다.
1) 한양 프라자 앞에서 느낀 신록의 환희
2) 고속도로를 지나는 과정에서 본 함정 단속 경찰에 대한 불쾌감
3) 가게 일 때문에 못 가지만 마중 나온 문우와의 우정
4) 따뜻한 남쪽,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서정
5) 회를 먹으면서 생각해 본 살생과 죄의식
6) 귀로의 차 안에서 느끼는 봄나들이의 즐거움
7) 몇 년 전에 가본 모습과 달라진 어촌의 쓸쓸한 풍경을
한일어업 협정과 결부시켜 본 일
8) 노량 대교에서 탄 유람선을 통해 비로소 느낀 청정바다의 절규
이상의 몇 가지 사실적 경험을 토대로 작품화함에 있어 주제를 설정한다면 ‘봄나들이’나 ‘ ’남해 서정‘ 등 포괄적인 주제를 설정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좀더 인상적인 경이로움을 나타낸다면 열거된 몇 가지 주안점 중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 낙점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수필가의 주관, 인생관, 가치관에 따르겠지만, 그때 그때의 심경이나 기분에 좌우되기도 한다. 동일한 소재라도 그것을 추리고 얽어매는 시각과 각도에 따라 내용이나 주제가 달라질 수도 있다. 주제는 한 가지만 고집할 수 없고 때에 따라서는 복합적일 수 있지만 가능하면 한 가지로 압축하여 구체화를 이루는 게 글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위해 좋다. 또 주제는 앞의 예와 같이 세분화할 수 있고, 포괄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포괄적인 주제는 관념적, 추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반면에 세부적 주제는 구체적, 실제적임으로 가능하면 세부적 주제를 택하는 게 좋다. 더 쉬운 예를 들면 ‘봄’이라는 제재로 수필을 쓸 때, 주제의식의 구체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생’, ‘희망’, ‘사향’, ‘회고’, ‘출발’ ‘청춘’ 등 유사한 사상이 인접 내통함으로써 주제가 분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의식의 구체화는 ‘소생’이면 ‘소생’, ‘희망’이면 ‘희망’ 어디까지나 어느 하나로 집약되고 응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자아도취에 빠져 주제를 넘고 줏대를 벗어나는 행위란 술에 취한 사람의 제자리걸음 화법 못지않게 나쁘다. 혼잣말이 길어지면 긴장이 풀린다. 어떤 한 작품의 일관된 시각을 ‘주제’라고 한다면, 어떤 한 작가의 모든 또는 대부분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시각을 우리는 그 작가의 철학이나 사상 또는 세계라 한다. 여기에서의 ‘세계’는 다른 말로 작가가 지향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 그리고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미’와도 같은 개념이다. 문학은 작가의 개인적인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만인의 진리를 반영하려는 철학과 달라서, 김양희와 세계과 송명화의 세계와 일치해야 할 필요성을 독자는 요구하지 않는다. 작가 개인의 삶과 경험이 그가 엮어낸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름대로 일관성을 갖추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한 작가의 ‘세계’는 그 작가가 쓴 모든 작품을 줄지어 엮어놓은 기나긴 한 권의 책이라 이해하면 되겠다.
II. 수필의 출발점은 인식이다
1. 인식이란 무엇인가
모든 수필 쓰기의 출발점은 ‘인식하기’다. 올바른 인식이란 무엇인가? 인식이란 1) 모르는 것에서 진실이나 진리를 발견하는 것, 또는 기성의 지식이나 관념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다.
예) 눈물은 푸르다.
예) 이상호의 ‘빙어’
예) W.C.
1) ‘상식’을 넘어서기
우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상식선상에서 글을 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상식적이지 않은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 상식을 넘어선다는 것은 주위의 현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선입견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
예1) 천동설 -> 지동설
일본의 국화 -> 사꾸라 -> 국화가 없다
2) ‘나의 관점’ 넘어서기
나의 관점을 넘어선다는 것은 하나의 관점이 아닌 다양한 관점, 좁은 시각이 아닌 보다 큰 시각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볼 때 ‘소박한’ 나의 관점을 넘어 ‘창조적인’ 나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이때 우리는 근거 없는 웅변이 아닌 근거 있는 논술을 할 수 있다.
예1) 대중문화 수입, 우리나라/프랑스
2. 인식의 본질
1) 사물의 연관성 찾기
인식의 본질은 인간과 사회와 자연, 이 세 영역의 긴밀한 연관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즉 자연의 법칙과 사회의 구성 원리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이 세 영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인식이다.
예) 한강의 기적
2) 무질서 속에서 규칙 찾기
무질서하게 보이는 세계의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인식 능력이다. 이런 사고 방식을 적용하면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과 같은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에서 규칙을 찾아낼 수 있다.
예) 카오스 이론
3) 현상 뒤에 숨은 본질찾기
현상은 사물의 겉모습이다. 반면 본질은 다양한 현상들의 관계와 이면에 숨어 있는 사물의 참모습이다. 참된 인식은 현상이 놓여있는 조건과 현상들의 관계 속에서 사물의 본질을 보는 데로 나아갈 때 얻어진다. 일부 몇 가지 현상만을 본질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예1) 박쥐 -조류/포유류
예2) 한국인의 엽전의식 -주입된 식민지 의식의 소산
4) 원인과 결과의 짝짓기
사물의 연관성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들 사이의 인과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시간의 선후 관계와 다르다. 인과 관계는 사물의 내적인 연관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일면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1)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3. 인식의 방법
1) 비교
비교는 인식의 어머니다. 비교는 사물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교에는 공시적 비교와 통시적 비교가 있다.
예) 한국과 일본의 교육제도 -공시적,
과거의 교육제도와 현재의 교육제도 -통시적
2) 분석하고 종합하기
우리가 처음 인식하는 것은 대상의 일반적인 상이다.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대상을 구성 부분이나 여러 측면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인식은 분석과 종합의 끊임없는 연쇄로 이루어진다.
예) 서울/ 인구, 산업, 교통 사정, 문화 시설, 주택문제, 치안 등으로 나누어 살핌 -구체적인 모습 -다른 도시와 다름(서울의 특성)
3) 일반화하고 한정하기
일반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개별적인 인식에서 일반적인 인식으로 넘어간다. 일반화는 비교할 수 있는 속성들의 확인이면서 종합이면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다. 일반화의 반대 과정은 한정의 과정이다. 일반화와 한정은 인식의 양면이다.
예)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그리고 소나무 ->‘침엽수’라는 개념으로 나아가 는 과정
예) 청소년 범죄 -사회 구조적 모순 때문에 발생, 갈등론적 입장/ 가정의 빈곤, 결손 가정, 입시제도 등에 의해 발생
4) 유추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을 그와 유사한 다른 대상에 적용하는 것을 유추라고 한다. 비교되는 대상에서 비슷한 속성을 더 많이 발견하고 이 속성들은 더 본질적일수록 우리는 더욱 참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 달과 지구 비교
5) 역사적 방법과 논리적 방법
역사적 방법은 시간에 따른 대상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다. 논리적 방법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일반화하여 논리적인 필연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기대와 다른 결과
예) 여성의 지위 역사적 탐구에 숨어 있는 논리 분석 -조선시대 유교의 가부장제
1. 창의적 사고의 원리
수필에서는 창의적인 사고방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익숙한 사물이나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생각들을 글로 써서는 읽는 이에게 흥미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읽는 이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공감을 형성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글에 창의적인 사고가 담겨 있어야 한다.
1)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
사물은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세상 만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사물이든 사건이든 평면적인 것은 없다. 그들은 모두 입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관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 1900년 심리학자 조셉 재스트로우 /미녀와 마녀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의 주의점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있어 주의할 점은 그 인식이 비정상적이거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조건 새롭기만 하다고 해서 창의적인 생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고가 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
모가지가 잘려와서/ 분노하는 우리들을/ 더욱 아름답다고/ 희희낙락 바라보는/ 저 인간들에게/ 우리들은/ 보복하기로 했다. ( )
/ ( ) - 이상호 “꽃의 보복”
2) 고정 관념이나 선입견 깨트리기
창의력의 첫 걸음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고정 관념 깨트리기 혹은 선입견 깨기다. 고정 관념이란 “이것에는 저것”식으로 공식화되어 있는 것을 이른다. 사람이나 장소에 따라 가변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과 무관하게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고정되어 잇는 것은 진부하기 쉽다. 진부한 생각은 진부한 표현을 낳을 뿐이다. 노벨상은 정석의 파파, 즉 고정 관념을 버릴 Ei 탈 수 있다고 한다. 고정 관념의 타파야말로 창의적인 사고의 첫걸음이라 할 것이다.
고정 관념이나 선입견은 진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 가운데 사실과 일치하지 않거나 진실이 아니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
예) 요조 숙녀 춘향
예) 즐거운 태풍 사라호
3) 고정 관념을 깨는 방법
(1) 기존 관념 변형 시키기
말 그대로 기존의 관념을 변형시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변형시키는가이다.
가) 관점 바꾸기
먼저 보는 방향과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실재하는 대상은 오른쪽과 왼쪽처럼 보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만, 눈에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추상적인 사건이나 현상들을 바라볼 때에는 그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예) 여성 전용 상품에서의 남자 모델 출현
나) 창조적 모방
글에서는 이런 기존 관념의 변형이 창조적 모방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글에 내용만 바꾸어 넣는 방식으로 글을 구성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 <청산별곡>다시 쓰기 -외롱외롱 외롱성 외로이 외로
다) 적극적인 변형과 소극적 변형
기존 관념의 변형은 적극적이어야 한다. 소극적 변형으로는 실제적인 효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 남은 음식으로 새 메뉴 개발
(2) 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낯설게 보기란 말 그대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익숙한 것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하라는 것이다. 잘 알기 때문에 혹은 주변에 너무 흔하게 가깝게 있어서 의문을 가지거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예) 여자는 삼 일에 한 번씩 몽딩이로 때려야 한다.
최시병의 “진열장 속의 왕세자”
가) 새롭게 정의하기
대상을 낯설게 보는 유용한 방법 중의 하나가 “새롭게 정의하기”이다. 낱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예) 육교
정의 : 육교는 인생이다.
이유 : 사람의 삶과 같이 성장하는 오르막길이 있고, 그 성장이 멈추어 평평한 때도 있으며 삶을 정지하는 내리막길 또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 유추하기
잘 아는 바와 같이 유추는 두 사물 사이의 유사성에 근거하여 이미 알고 있는 한 사물의 어떤 특성이 유사한 특성을 갖는 다른 사물에도 잇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다. 유추는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무엇과 유사하가를 찾는 과정에서이전에는 생가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가능하게 한다.
예) 이해인의 시 “가을 편지” -불붙는 단풍 숲 이상호의 시 “헌화가” -기침
(4) 인식의 전환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 인식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가) 입장 바꿔 생각하기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상대를 평가하는 것은 관점을 고정화시킴으로써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불가능하게 한다.
예) 김대규의 ‘만연필’
나) 뒤집어 생각하기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대상과 나의 관계에서 내가 상대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인데 비해 이것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예) 김기림의 ‘대합실’
다) 긍정적인 사고 가지기
긍정적인 사고에 의한 자신감의 형성은 그 자체만으로도 창의력을 높이는 발판이 된다. 주변사물이나 상황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생각들로 대처하는 것이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상반된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
예) 폐광 개발
III. 나가며
오늘 이 자리에서 수필 쓰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다. 무비판적으로 수필을 배워온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 되었으리라 본다. 여러분들은 이 강의를 들으며 수필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그 방법을 자세히 알았으리라 믿는다. 필자는 앞으로도 수필 쓰기의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주력할 것이다. 바른 수필관을 정립하여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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