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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성경에서 말씀하는 종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종말에 대한 사전적 개념
「세계 및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이나 자연이 최후에는 파멸을 맞이한다고 믿는 종교적 견해」 백과사전
세상 돌아가는 현상을 보면서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안 믿는 사람도 “종말이다”라고 말합니다.
곳곳에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지진과 해일, 전쟁의 소식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 틈을 노리는 사이비 이단들은 예수 재림이 임박했고 자기들에게만 와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떠들어 댑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을 외쳤습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입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5-13)
이 구절을 들어 종말을 말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 노아 때 홍수로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는 “하늘과 땅을 불사르기 위해서 이 지구를 보존하고 계신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지구의 종말은 불로 심판하실 것이며 그 불이 바로 ‘핵’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핵 전쟁이 일어나면 하늘이 풀어지고 땅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며 그 때 예수님이 지상에 강림하셔서 마귀와 그 추종자들을 가둬버리고 이 땅에 천년 왕국을 세우시고 천년이 차기 전에 마귀가 다시 나와서 믿는 자들을 유혹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마귀를 불과 유황 못에 던지면(계20:10) 종말이 끝나고 이 땅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된다” 이것이 기독교의 종말론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이런 종말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맞춰 보면 종말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구유에 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구유에 나셨을까?
사람마다 생각하고 자기의 생각이 마치 성경에서 말씀하는 답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으로”(눅2:7)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혼잡하고 꼭 우리나라 명절에 대이동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도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 마리아는 해산할 날을 찼고 하는 수 없이 숙소가 없어서 가축 우리에 들어가 출산을 해서 “예수님을 구유에 뉘었다” 이것이 문자적인 해석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공생애 사역, 죽으심, 부활까지 단 사건도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왜 예수님은 가축이 사는 곳에서 태어났고 짐승의 밥통인 구유에 뉘우신 것인가는 다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져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생명의 떡이라 말씀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6: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태어나신 곳이 떡집인 이유는 예수님은 생명의 떡으로 오셨기 때문에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은 먹어야 되고 예수님이 뉘우신 곳이 구유인 이유는 짐승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더니 혹자는 성경을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종말을 지구상에 임하는 문자적인 종말로 믿고 있습니다.
1. 개인의 육체의 종말
성경에서 종말은 크게 개인의 종말과 교회의 종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군은 천사들이니” (마13:38-3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13:49-50)
‘세상’은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 끝’은 그 사람의 육체의 종말, 죽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3:19) 말씀하셨습니다.
또 인생을 꽃과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103:15)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시작이 있으면 육체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종말이 오기 전에 돌아오라고 말씀합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 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라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기회를 잃어버린 존재에게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하십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막1:25-26)
예수님은 왜 귀신에게는 이런 말씀하시면 말하는 것 자체를 허하지 않을까요.
물론 귀신에 대해서 여러 가지 교리가 있는데 귀신은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육체가 있는 사람은 세상 끝이 오기 전에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예를 들어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한 사람은 죽기 전까지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한편 강도(우편)는 처음에는 똑같이 비방하다가 죽기 전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에게 자신을 부탁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32)
“달린 행학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회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나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딩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눅23“39-42)
한 편(우편) 강도는 세상 끝이 오기 전에 기회를 잡아 구원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13:49-50에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교회에서 어떻게 설교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의인이요, 불신자는 악인이므로 죽으면 천사가 믿지 않고 죽은 불신자는 지옥에 쳐 넣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자 불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는 논외대상입니다.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이 말씀에서 중요한 부분은 ‘의인 중에서 악인 갈라내어’에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악인 중에서 의인’이 아닙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교회 다니고 예수 믿기만 하면 의인이 됩니까?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교회 다닌다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어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의인이 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서 나왔다’는 것은 하나님 안에 계셨다는 전제이고 ‘나와서 우리에게’ 믿는 각 사람 안에서 의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예수님만 의 자체이지 사람은 의가 아닙니다.
2,000년 전 역사 속으로 오신 예수 믿는 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 오신 예수 인정한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그리스도가 믿는 각 사람 안에 재림하시면 그 사람이 의인이 되는데 여전히 악인도 함께 존재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6:12)
몸에는 죄가 왕노릇 하는 악인 있습니다.
이 악인을 육체가 있을 때 제거하지 않으면 육체가 죽은 후 천사들이 풀무 불에 던져 넣고 악인을 빼내는 작업을 합니다.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으리라”(고전3:15)
교회 다니면 죽어서 홀연히 변화되어 천국에 가다고 전하는 거짓 목사들의 설교가 넘쳐나는 것이 현재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누가 이들을 책임집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 빠진다”(마15:14)말씀하셨습니다.
2. 개인의 신앙의 종말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종교의 범주 안에 넣고 “당신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도 나의 종교는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의 근원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며 ‘신’도 사람이 만든 신을 섬기며 경전도 사람의 의해서 써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종교가 되는 순간 사람이 ‘하나님’을 만들어 버린 것이 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로는 ‘주님’, ‘하나님’이 자기의 주인이라 하지만 전부 자기가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합니다.
이런 신앙의 종말이 와야지만 하나님의 친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금년 부활 주일이 3월31일 이었습니다.
교회마다 현수막을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 주님의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합시다.
이런 사람들이 기독교 종교인들입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난주간에 한 끼 굶는 것을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 말씀합니까?
어떤 교인들중에 고난 주간에 한 끼 금식한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고난과 죽음과 부활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교인들은 일 년에 한 번 고난, 일 년에 한 번 부활절을 지킵니다.
그래서 금 년에 부활절이 지나갔기 때문에 이제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고난과 부활되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이 말씀대로 하지 않는 교인들은 다 기독교 종교인들입니다.
실제 믿는 자들에게는 날마다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연속입니다.
일 년 중 어떤 특정한 날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종말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나’에서 ‘주님’으로, 여기서 나는 아담의 생명을 가진 존재 곧 ‘첫 사람’을 말합니다.
‘첫 사람’, ‘옛 사람’, ‘이전 것’ 전부 같은 개념입니다.
이것이 끝나는 것이 신앙의 종말이며 생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옛 생명’에서 ‘새 생명’으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6:3-6)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십자가의 죽음도 예수님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건만 교회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만 국한시키는 사건으로 설교합니다.
이런 기독교 종교가 끝나야 진정한 교회로 거듭날 수 있고 거기서 하나님의 친아들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옛 사람을 버리는 것이 각 개인의 신앙의 종말인데 이 옛 사람을 버리기 위해서는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옛 사람이 가지고 있던 옛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믿음 안에 들어가고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그 사람 안으로 들어오실 때 그 사람의 심령이 새로운 심령이 되는 것이지 옛 생명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개선하거나 수선하거나 하는 행위들이 종교들이 수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종교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종말이 와야 합니다.
3. 교회의 종말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교회의 종말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교회다운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4-35)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교회를 ‘여자’로 비유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바울은 아담과 여자(하와)를 그리스도와 교회로 비유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결혼해서 교회를 통하여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예수님의 하신 말씀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목사들이 설교를 하면서 기복을 전하고 종교를 전하고 교훈을 전하지 성경에서 요구하는 말씀들은 전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해버린 것이 현재 교회의 실상입니다.
성경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당신이 바로 신(하나님)이다”고 전하는 것이 성경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예수 공로로 천국간다”고 전하는 목사들 때문에 교회의 끝이 왔습니다.
성경 어디에 ‘공로’라는 말이 나옵니까?
초대교회 예수님의 제자들, 특히 바울은 비밀을 전하면서 “믿는 당신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고 그리스도의 몸이다”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설교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내 밖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말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는 각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말씀들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종말이 온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로 교회의 끝이 온 이유는 하나님을 두 분, 세 분을 믿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은 한 분”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 교리가 나옴으로 한 분 하나님을 ‘삼위일체’라는 미명으로 세 분 하나님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7. 성부와 성자와 상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10.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영원한 분이시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세 분이 그 스스로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 교의 진리로 받는 바이다.
25. 이 삼위일체에 있어서 어느 한 분이 앞서거나 뒤에 계신 것이 아니며 더 위대 하거나 덜 위대한 분도 없다.
26. 다만 세 분이 함께 동등하다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존재론적 삼위일체 교리 중
존재론적 삼위일체라는 교리가 나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 받는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6)
기독교는 아버지의 생명을 분배받아서 하나님 아버지의 친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때 전부터 계획하신 창조의 경륜입니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딛1:2)
이 창조의 계획을 삼위일체 교리가 나와 망쳐버린 것을 알지 못하고 기독교의 정통 교리로 채택이 되어 지금까지 이 삼위일체 교리 안에 모든 교회가 예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면서 스스로 계시고 각각 동동한데 누구의 생명을 받아야 됩니까?
어찌 아들이 아버지와 동등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아들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니까 가능하다고요?” 그런 하나님은 성경에 없는 하나님이고 사람이 만든 하나님, 곧 종교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분명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없는 하나님을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의 계명, 전통, 유전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8-9)
교회가 종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귀 자식들만 내놓는 장소로 변질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교회의 종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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