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당진 왜목마을로 향했다
이순신대로를 거쳐 아산 영인을 거쳐 삽교방조제를 거쳐 한진항을 거쳐 대호방조제를 거쳐....
내 나이 30이었을 때 20여년 산 공주 다음으로 10여년 가까이 제 2의 고향이었던 당진의 주변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옛날의 당진이 아니다
삽교방조제를 거칠 땐 박동혁이 채영신을 맞이했던 그 옛날 맷돌포가 있다가도 시끌벅적 정신없는 한진항이 나타나고
현대제철을 지날 땐 그 옛날 한보철강이 당진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듬뿍 안겨주며 철강 제련의 붉은 철물이 고로를 따라 흘러내리며 철근이나 철판이 되어 연기 자욱히 검은 쇳덩이 돌구르듯 흘러내리던 공장이 우뚝선 현대제철 웅장한 건물들로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조개나 캐고 굴이나 따던 서해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둥 둥 떠 있던 행담도엔 길다란 서해대교가 이어져 쉴새없이 차들이 줄지어 있고
조그만 학교 갈곳없던 우리 처녀총각 선생님 10여 명이 가스렌지 하나들고 바닷가 바위돌 옆에서 대하 구워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장고항 항구 귀퉁이에도 공장의 뿌연 연기가 즐비하게 뿜어져 내리는 그런 장소로 바뀌었다
이젠 화성-홍성 전철이 개통되고 당진 천안 고속도로도 개통되고...
시절은 나날이 변해가는데 나란 인간 세상의 중심은 아직도 어느 시점에서 변함이 없이 한 시대를 그리며 오늘도 버티다 버티다 이렇게 현실을 벗어나고파 당진 왜목으로 달린다
왜목마을은 당진시 최북단에 위치한 서해안의 마을이다. 일출과 일몰, 월출까지 모두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장소로 유명하다.
태안반도 최북단에 위치하여 지형적으로 서해 바다를 양분하면서 가늘고 길게 뻗어나간 특이한 지형을 하고 있다. 인근의 남양만과 아산만이 내륙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왜가리 목처럼 불쑥 튀어나온 모습이라고 해서 왜목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을에서 동남쪽 해상 약 3km에 솟은 노적봉과 장고항 언덕 사이에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듯 문필봉같이 서 있는 바위가 눈길을 끈다. 왜목마을에서 바다 너머로 보이는 이 바위는 자연의 비경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
이 마을에는 여러 숙박시설과 캠핑장, 맛집, 요트세계일주홍보전시관, 해수욕장 등이 있다.
왜목마을은 국도 38호선, 지방도 633호선, 647호선에서 지방도 615호선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와 서산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장고항, 석문체육공원 등이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의 왜목마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시끌거리는 사람의 내음새 없이 꺼져가는, 철지난 바닷가를 걷는 듯한 쓸쓸함만 감도는 왜목마을만 남아있다
금요일도 주말이라면 주말일텐데 이렇게 한산한 항구 황량한 항구만이 반기고 있으니...
불과 윤땡땡정권으로 바뀐지 3년도 안 되었는데 바닷가 데크길엔 바람에 휩쓸려온 모래만이 수북히 한켠에 쌓여있고 발정난 고양이들의 괴이하고 음산한 소리만이 메아리치며 싸늘한 초겨울 바람이 살갗에 애리게 파고드는 그런 장소로 바뀌었다
빛바랜 포토죤 흔들그네에 앉아 바라봬는 서해바다엔 쓸쓸함만 가득하다
정치가 괴이하리만큼 비상식적인 행정부의 행태로 나라의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이곳도 그 여파로 이런 모습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해돋이 명소에서 바라보는 아침일출도 구름사이 보일 듯 말듯...
그래도 여지없이 떠오르는 오늘이란 태양의 한결같음은 하릴없이 또다시 하루의 인생을 살아야한다는 나의 그날을 어쩔수없이 받아들여야 한단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네 인생은 오늘도 계속되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왜목마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