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코스 : 신대2리 정류장 - > 평택 마린항 센타
경기 둘레길을 종주하면서 애로를 느끼기는 것 중의 하나가 교통상황이다. 둘레길은 경기도의 외곽지역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 되어 출발지와 종착지의 교통편이 원활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을지라도 출발지를 찾아가는 것 또한 낯선 지역이 되어 쉽지가 않다.
그리하여 바람이 있다면 경기 둘레길을 종주하고 여행기를 인터넷상에 올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시작점에 이른 경위를 여행기와 함께 올려주어 뒷사람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평택은 젊은 시절 천안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고 박사 냉면집이 너무 유명하여 냉면 맛을 보고자 처음으로 와 본 곳이었고 평택 섶길을 걷고자 두, 세차례 온 지역인데 경기 둘레길을 걷고자 또다시 발걸음이 이르렀다.
소맷자락 스쳐 감도 백겁의 인연이라면 평택은 숙겁의 인연이 맺혀진 곳이라는 생각이 이르니 낯선 지역이 낯익은 고장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영등포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평택에서 내렸다.
1번 출구로 나와 건널목을 건너면서 정면 좌측으로 보이는 독일 보청기 건물 사이에서 버스가 들어가고 나오는 골목길로 진입하여 하나 은행 건너편에 있는 평택역 AKplaza 정류장(번호:15708)에서 1215번 버스에 승차하였다.
섶길을 걸을 때는 15번 버스를 탔는데 지금에는 운행이 종료된 것 같고 그때에는 1시간 간격이었는데 1215번 버스는 배차 간격이 20분이 되어 12시쯤에 도착할 것을 예상하였는데 11시가 조금 지나서 신대 2리에 도착하였다.
오늘도 평택 섶길과 동행한다. 다만 섶길은 2길인 비단길이다. 경기 둘레길을 걷고자 평택지역에 왔으니 아무래도 평택의 길인 섶길과 경기둘레길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것이다. 낯익은 거리가 되어 발걸음이 가볍다. 장 서방네 마을 길이란 명칭을 지닌 것과 같이 예전의 인심 좋은 농촌 지역에 마음씨 좋은 아저씨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임을 느끼게 한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 신대 교차로에 이르기 전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현덕면과 팽성읍 사이 평택호를 횡단하는 연장 1.35km 폭 27m의 교량인 평택 국제 대교에 이른다.
이곳은 강보다 넓은 안성천이 평택항으로 흘러드는 곳인데 평택시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자전거 길이며 서해랑 길이기도 하다. 대교를 걸어가니 바람이 거세어 추위를 느끼게 한다.
시화 방조제를 걸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추위를 느끼면서도 12km를 걸었는데 오늘은 2km도 되지 않는 다리 위에서 추위를 느끼고 있으니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일까?
국제 대교는 다리의 규모에 비하여 차량통행이 한산하였다. 섶길을 걸을때에는 자동차 운행 대수보다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더 많았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대교상에 설치된 안전한 보행로를 통해 다리를 건너 평택호반으로 내려선다. 말끔하게 정비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평택호는 망망대해를 이루고 있다.
언제 보아도 가슴이 뻥 뚫리어 모든 망상이 일망타진 되는 것 같은 장쾌한 마음을 들게 하는 넓고 넓은 대해이기에 보아도 또 보고 싶고 또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이다.
평택호 건너편의 산과 들은 충남 아산시이다. 저 멀리 보이는 희미한 산은 아마도 천안의 진산 광덕산일 것이고 바다 건너 나지막한 산들이 있는 곳은 아산시 인주면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은 경기도 평택시에서 아산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고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에는 아산시(그때는 아산군)에서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을 바라보고 오늘의 감격을 만끽하였을 것이다.
올망졸망 나지막이 솟아있는 산들은 충청지방의 산들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산의 기운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까? 충청지방을 볼 때면 가슴이 벅차다.
더욱이 아산만은 젊은 시절 직장생활을 하면서 쉼 없이 출장을 다니던 곳이었기에 비록 저 산 아래의 마을에는 가보지 않았을지라도 충청지방이란 사실에 찡한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신왕 포구에 이르렀다.
신왕 포구는 조선 시대 수원 광덕현에서 충청도 평택 현이나 아산현으로 건너가는 창구로 예전에는 신흥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당포진’으로 기록됐다. 1974년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팽성읍 노양리 경양포와 아산의 백석포로 건너가는 나루뿐 아니라 안성천 하류의 어항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우리의 선조들의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에 청일전쟁 떼에는 일본군이 군함을 이끌고 와 청나라와 전쟁으로 불바다를 이루었으니 지금의 평화스러움 속에는 피에 맺힌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아산만이다.
방조제가 건설되어 지금에는 신왕 2 배수문이 설치되어 있고 모형등대를 만들어 놓아 포구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있다. 평택호와 잠시 헤어져 신왕리에 이르렀다.
온몸에 느끼는 공기가 도시와는 다르다. 국제 대교를 건널 때의 쌀쌀한 바람도, 평택호의 차가운 바람이 아닌 산자락에는 따사로운 기운이 감돌고 논, 밭은 텅 비어 있다. 산과, 평택호 그리고 들판이 조화를 이룬 청정지역이다.
그리하여 평택 섶길에서는 이곳을 비단길로 이름하였나! 어디 섶길뿐이랴 이곳이 또한 서해랑 길이 아닌가? 맑은 기운을 마시며 산길로 진입하여 마안산으로 향했다.
완만한 산등성이의 길이 되어 마을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혼자 가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면 정다운 길이 된다. 저들은 마을의 뒷동산에 올라 오전 운동을 하는 것이고 길손은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기에 배낭을 둘러맸다.
배낭을 풀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12시가 조금 지난 것이다. 오늘은 가는 길이 다소 멀어 조금의 시간이라도 줄여보고자 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체한다. 삶은 달걀과 빵을 걸어가면서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따지고 보면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다고 걸어가면서 먹을까? 밥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싸 온 것을 먹는 것이기에 벤치에 앉아 먹고 가나 그 시간이 그 시간일 텐데 장거리를 걸어가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미련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스스로의 미련함을 탓하며 마안산에 올랐다. 마안산은 표고 112,8m로 산세가 말의 안장을 닮았다고 하여 산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정상에는 돌탑이 3개가 있다. 섶길을 걷고자 찾아왔을 때는 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가 걸려있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 나는 내가 지은 감옥속에/갇혀있다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대강 생각나는 데로 중얼거리며 외길의 등성이를 따라 내려가는데 ‘서해랑길’ ‘평택섶길’ ‘경기둘레길’을 알리는 표지가가 바람에 나폴거리는 광경이 참으로 멋지게 보였다.
팔각정에 이르러 가는 길은 길손들이 길을 이탈하지 않도록 오른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전환한다. 둘레길 관계자는 길 이탈을 염려하여 정성껏 표지기를 부착하여 놓았다.
마안산을 내려와 대안 4리 마을 회관에 이르렀다. 마을 사람들이 보배로 여기는 수백 년이 된 고목아 여전히 마을을 빛내주고 있었다. 농촌 지역답게 동네 한 모퉁이에는 연자방아를 전시하여 놓았다.
대안 4리에서 광활한 들녘이 펼쳐진다. 추수가 끝난 텅 빈 논을 바라보니 마을에 연자방아를 전시하여 놓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물길과 산길을 걸었으니 들녘을 걷는다.
국제 대교를 건널 때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건물이 없어 찬바람이 또다시 얼굴을 때리지만 공사 중인 서해선 전철 현장을 기점으로 여기며 한발한발 내딛을수록 차가운 바람이 시원함으로 다가왔다.
서해선 전철 공사는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서해선의 출발지는 거주하고 있는 고양시 일산이다. 이 전철이 개통되면 오래전에 계획하였던 내포 문화 숲길을 우선하여 걷고자 하기에 하루빨리 개통되기를 바라면서 기산리에 이르렀다.
마을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온 길을 뒤 돌아보니 드넓었다. 절로 뿌듯한 자긍심이 인다. 작은 봉우리 석화봉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혜초 시비가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평택호 예술공원에 이르러 어디로 가든지 평택호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지정된 길따라 걸어가고자 경기들레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인도하는 우측으로 진입하여 평택호를 다시 만났다. 평택호는 은빛을 발산하고 가로수에는 경기 둘레길 표지기가 바람에 힘차게 펄럭인다.
이곳에서 경기 둘레길은 섶길과 헤어지고 서해랑 길과 하나가 되어 호숫가를 따라 걸어간다. 관광안내소에 이르러 아산만 방조제를 보니 젊은 시절 직원들과 회식 왔을 때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 젊은 시절의 방탕이 오늘의 고통을 잉태한 빼놓을 수 없는 씨앗일 것이다. 30이 갓 넘은 나이에 삶의 설계를 그리지 않고 숭용처를 타고 서해안의 싱싱한 횟집을 찾아다녔던 것은 분명 철모르는 어린아이의 행동이었다.
현충탑 광장에 이르러 경기 둘레길을 가리키는 표지기는 매달려 있는 데 가는 길은 없어 진행 방향을 찾고자 이리저리 헤매도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신호등도 설치되지 않는 자동차 통행이 잦은 서동대로를 무단 횡단하여 서동 대로를 우측에 두고 진행할 때 육교에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육교에서 잠시 길을 이탈한 이유를 살펴보니 둘레길은 현충탑 앞에 이르러 육교를 이용하여 서동대로를 건너야 했는데 육교를 보지 못하고 육교 아래서 서동 대로를 무단 횡단을 한 것이었다.
서동대로를 우측에 두고 잠시 진행하다 길을 건너 서동대로를 좌측에 두고 진행하여 길이 바뀔 것을 암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 둘레길은 서동 대로에서 우측의 골목길로 진입하여 비산 비야 지대를 걸어간다.
물길, 산길, 들녘길을 헤어졌다가 또다시 만나는 길에서 어딘지 낯설지 않지만 그렇다고 낯익은 길은 아닌 들녘길에서 평택 섶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전봇대 매달려 있었다.
평택 섶길 5코스인 원효길과 다시 만난 것이다. 평택호에서 섶길은 농로로 진입하고, 경기 둘레길은 평택호수를 따라 진행하면서 어느 지점에서 원효길과 다시 만날 것인가를 기대하였는데 허허벌판에서 상면한 것이다.
지쳐가는 피곤한 몸에 원효길과 만남에서 새로운 힘이 솟았다. 벌써 종착지에 이른 기분이었다. 신영리에 이르니 섶길을 걸을 때 풀밭에 앉아 잠시 쉬려고 배낭을 내리자 ‘제초제를 뿌렸으니 풀밭에 앉지 말고 평상에 앉으라고 호통을 치던 마을 아주머니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1시간 남짓이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늘 구간은 20km가 조금 넘는 타 구간보다 장거리이고 출발지인 신대2리 정류장까지 진입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여 정오가 임박하여 출발하였기에 혹 어두워져서 종착지에 이르지 않을까 우려를 하여 쉬지 않고 진행했는데 신영리에 이르러 그 우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이제 여유를 부리며 걸어간다. ‘새롭게 번영하라’라는 의미를 지닌 신영리를 지나니 마린항 센타의 건물이 보이며 서해대교도 눈에 띄었다. 직선으로 가면 10여 분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직선으로 마음대로 길을 만들어 갈 수는 없다. 정해진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이곳은 경기 경제자유구역 포승지구이기에 택지를 개발하여 놓았고 건물들이 하나하나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건물은 다 완성되지 않았는데 도로를 먼저 말끔하게 정비하여 놓아 현재는 차량통행이 드문드문하여 신호등을 어기고 운행할 줄 알았는데 신호를 위반하는 차량을 볼 수 없었다.
경기 둘레길도 정비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옆에서 보였던 마린항센타 건물이 걸을수록 자꾸만 뒤로 두고 진행하여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아 지루하게 길손들을 훈련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정해진 길, 경기 둘레길 표지기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서해 대교 육교에 이르러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15번 도로에 이르러 건널목을 건너 마린항 센타에 이르니16시32분이었다.
경기 스탬프함에서 인증도장을 찍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평택역으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서 손님을 태우고 있다. 빨간불이 아니면 도로를 건너 탈 수가 있었는데 신호를 기다리다 그만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버스를 놓쳤기 때문에 다음 차량은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점심도 걸으면서 먹으며 시간을 아껴 진행하여 예상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도착한 것이 일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허탈한 심정으로 고개를 드니 반대편 정류장에 버스가 비상등을 켜고 있었다. 신호등을 확인하니 빨간불이었지만 때마침 진행 중인 차량이 없어 무단 횡단하여 버스에 이르니 평택역은 가지 않지만, 평택 지제역을 거치는 차량이었다.
실망의 한순간에서 기쁨으로 바뀌어 기분 좋게 지제역에 이르러 전철을 타고 영등포역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거주지에 도착하니 오후 9시가 조금 지나갔다. 배가 고파 단골 식당에 이르렀으나 가던 날이 장날이라 수리 중이었고 분식가게 들르니 영업시간을 마치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만 먹고 점심, 저녁을 거른 것이다. 배가 고파 집에 도착하여 라면으로 허기를 메웠다. 경기 둘레길을 걷는 고통이었다. 아니다. 좋아서 하고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 하루 굶는 것이 대수랴!
● 일 시 ; 2023년11월10일 금요일 맑음
● 동 행 : 나홀로
● 행선지
- 11시05분 : 신대2리 정류장
- 12시10분 : 신왕포구 나루터
- 13시00분 : 마안산 정상
- 14시00분 : 평택호 관광 안내소
- 15시20분 ;’ 신영리 마을 회관
- 16시32분 : 평택항 마린 센타
● 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23,1km. ◆ 시간 : 5시간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