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튼의 성서해석 45
아마누엔시스: 성경은 누가 썼는가?
여러분,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 해보지 않으셨나요? ‘바울은 정말 혼자 이 방대한 신학적 논리들을 다 기록했을까?’ 사실, 성경을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바울이 펜을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는 ‘아마누엔시스(Amanuensis)’라는 특별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아마누엔시스란 누구인가?
‘아마누엔시스’는 단순히 받아쓰는 대필자가 아닙니다. 라틴어 어원을 보면 ‘손(manus)’과 ‘관계(ensis)’가 결합된 말이죠. 저는 이 단어를 ‘생각하는 수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고대 사회 대서소의 대필가들이나, 멀리 있는 이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던 이들처럼, 그들은 단순한 기계적 기록자가 아니었습니다. 주인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고, 때로는 더 나은 논리를 제안하는 ‘지적 동역자’였죠. 마치 오늘날 정치인의 철학을 다듬어 문장으로 빚어내는 ‘연설문 비서관’처럼 말입니다.
바울의 서재에 있었던 사람들
바울의 편지에는 더디오, 실라, 디모데 같은 동역자들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내가 혼자 썼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 복음은 우리 공동체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라는 고백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6장 22절에서 "이 편지를 쓰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라고 밝힌 것처럼, 그들은 바울의 선포를 공동체의 언어로 번역해 낸 동역자들이었습니다.
함께 영글어가는 신앙
앞으로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사도는 성령의 감동 가운데 교회를 깊이 그리며 말을 쏟아냅니다. 마치 그들이 자기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곁에는 더디오 같은 아마누엔시스가 조용히 펜을 들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스데네나 디모데도 곁에서 함께 고민하며 동석했을지도 모릅니다. 편지는 그렇게 이어집니다. 때로는 멈추어 대화가 오갔을 것이고, 함께 고민하는 숨소리가 그 방을 채웠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는 그렇게 공동체의 마음과 치열한 숙의 끝에 기록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우리가 진심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우리가 간절히 읽어 내려가는 책들, 그리고 함께 나누는 진실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의 신앙은 조금씩 영글어갑니다. ‘생명의 바다’는 앞으로도 여러분과 함께, 신앙과 삶에 대한 이 건강하고 따뜻한 고민들을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