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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원문보기 글쓴이: 오소운
아래 글은 지난 해(09. 09. 11) 서울 종로 5가 연동교회에서 열린 <한국찬송가저작자총연합회 창립1주년기념 세미나> 강연 자료를 그대로 올린 것입니다. 이 자료는 아직 책으로는 출판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퍼다가 이용하시는 경우 원형을 유지하시고, 책에 일부라도 인용하시는 경우에는 반드시 출처를 명기해야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오소운)
韓國 讚頌歌의 當面課題
발표자 : 오소운 목사
사이버한국찬송가연구원 원장
[찬송가 블로그]:http://blog.daum.net./osowny
웹사이트에 들어가 ‘오소운 목사’라 치면 뜹니다
▶머리말◀
초대교회로부터 오늘까지 찬송은 수 없이 작사되어 어떤 곡조의 옷을 입고 불려 왔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감동을 받아 예배 시간에 즉석에서 만든 찬송을 자기가 아는 곡조에 맞추어 하나님께 찬양 드렸다. 주후 363년 라오디게아에서 열린 그리스도교총회에서는 제15번째 법령에서 즉흥찬양을 금지하고, 일반인의 찬양도 금지했다. 종교개혁으로 이 금지는 해소되고 나라마다 새 찬송을 작사하여 잘 아는 곡조에 맞춰 온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1779년에 존 웨슬리가 런던에서 출판한《사람들이 감리교도라 일컫는 이들을 위한 찬송모음》에는 모두 1026편의 찬송이 있는데, 곡조는 없고 운율(Meter)만 적어 넣어, 운율만 맞으면 어느 곡으로든 부르도록 하였다. 현대 미국 찬송가에도 신작찬송을 옛 곡조에 맞춰 넣은 게 많다. 혹자는 찬송에는 곡조가 정해져 있다고 잘못 알고 있다. “가사는 몸이요 곡조는 옷이다.” 가사에 어울리면 어떤 곡조로 불러도 상관없는 것이다.《시온의 노래》'Songs of Zion, 1851' 란 찬송가에는 436편의 찬송이 실려 있다. 왼쪽에는 가사 1절과 함께 악보를 싣고, 오른쪽에는 그 곡조로 부를 수 있는 찬송 2~4 편을 가사만 실어 놓았는데, 거기서 몇 가지 보기를 들어본다. 앞의 것이《시온의 노래》, 뒤의 것이《통일 찬송가》다.
1장/이 천지간 만물들아 →1장/만복의 근원 하나님 곡조,
127장/만 입이 내게 있으면→115장/기쁘다 구주 오셨네 곡조,
160장/비바람이 칠 때와 →29장/성도여 다 함께 곡조.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 31:19).
그대로 행한 모세는 레위사람에게 이렇게 명한다.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신 31:24-26)
하나님은 당신께서 하신 일을 ‘노래로 증거하고 말씀으로 증거하라’ 하신다. 복음 전도자들은 이 명령을 따랐다. 1873년, 무디는 작곡가요 성악가인 생키를 자기 전도팀에 초청하여 평생 함께 다니며「말씀으로 증거하고 찬양으로 증거」하였던 것이다. 최초로 만든 ‘설교자와 찬양자의 전도팀’인 그들의 슬로간은 이러했다.
“무디씨는 복음을 설교하고, 생키씨는 복음을 노래할 것입니다.”
(Mr. Moody will preach the Gospel and Mr. Sankey will sing the Gospel.)
무디와 생키의 이런 전도방식은 채프먼 목사와 가수인 알렉산더 팀, 그리고 빌리 선데이와 로드히버 팀으로 이어지고, 20세기에는 빌리 그레이엄과 찬송가 102장을 작곡한 성악가 비버리 쉐어 팀으로 이어졌다.
위대한 음악가이신 하나님
그리스도교는 찬송의 종교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찬양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종교들이 음악을 중요하게 여기어, 제사 때 음악을 사용하지 않는 종교가 없지만, 그리스도교만큼 음악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는 없다. 구약 시대의 대 예언자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술하고 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1. 음악의 창조주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우리 하나님은 위대한 음악가이시며, 우리의 「찬송 중에 거하신다」(시 22:3).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되, 완전히 음악으로 창조하시고, 그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일찍이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J. S. Bach, 1685-1750)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음악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영혼의 소생(蘇生)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만일 이를 등한히 하면 그것은 참 음악이 아니라 사탄적인 소음일 뿐이다.”
참으로 명언이다. 그러니까 「교회음악」 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의」종국적인 목적은 「하나님 찬양과 인간 영혼의 소생」이란 말이다. 이를 만들고 연주하는 인간의 능력은 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사(恩賜)를 재활용하는 기쁨일 따름인 것이다. 바하와 하이든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작품마다 라틴어로 이렇게 썼다. “Sola Deo Gloria”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한 음악으로 찬양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 영혼은 소생시켜주신다. 따라서 찬양대가 정성껏 준비한 찬양을 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는 우리 영혼은 기운을 되찾아, 속칭 「은혜를 받는」것이다. 어떤 찬송가학 교수는 하나님 찬양 때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다」는 말은 비신학적이요 비 성서적이라고 이렇게 비난한다.
“찬양대의 찬양에서 은혜를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 모독이다. 찬양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영광 찬양을 어찌 인간이 가로채려는가?”
2. 만물의 「사랑 노래」
하나님은 지으신 모든 만물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입력해주셨다. 짐승에서부터 곤충에 이르기까지 「사랑 노래」를 주셨다. 우리는 짐승이나 곤충들이 「운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짝을 찾는 「사랑 노래」인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는 이렇게 복을 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2, 28, 9:1).
만물들은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짝을 찾는 사랑 노래를 부르는데, 그들은 태고 적부터, 하나님이 작곡하여 입력해 주신 그 노래를 어제도 불러왔고, 오늘 그리고 내일도 또 부를 것이다.
그들이 부르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고대 음악에서부터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각가지 양식이 다 들어 있음을 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 뻐꾸기
뻐꾸기는 3박자로 노래한다. 가락은 아주 단순한 「솔 미」뿐이고 박자도 단순한 3박자지만 가끔 「뻑뻑꾹」 하고 4박자로 변박자(變拍子)를 하여 멋을 낸다.
나) 매미
매미의 노래를 음악적으로 말하면, 같은 음만으로 반복된 4박자 단순주제에, 가사 역시 단순히 「맴맴맴맴」만을 여러 번 반복하는데, 국민가수 이미자(李美子, 1959~)와 같은 코맹맹이 소리로 부르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몇 번 이 테마를 연주한 후, 끝음에 페르마타(fermata)를 붙여 길게 끌어 아래로 쭉 끌어내려 포르타멘토(portamento)를 하면 1절이 끝나는 것이다. 다 카포(Da Capo)를 하여 다시 똑같은 노래를 몇 번 더 부른다. 연주를 끝낼 때에는 마지막에 코다(Coda)를 붙여 「맹↗…!」 하고 끝음을 높여서는, 숨이 막힐 때까지 간장을 녹이는 듯, 자지러지게 데크레센도를 하며 끈 후, 역시 포르타멘토를 하여 끌어내리면 완전 끝이다. 그리고는 폴짝 날아 다른 곳으로 가서 노래를 한다. 연주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이런 연주형태 때문에 우리는 여름이면 어디서나 매미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 쓰르라미
매미보다 늦게 나타나는 쓰르라미는, 약간 쉰 목소리로 「쓰르~람, 쓰르~람」하고 6박자로 계속 노래하는데, 음은 역시 「솔 미」요, 당김법을 쓴다. 어른 엄지손가락 만 밖에 안 한 이 작은 것이, 날개 짓으로 내는 이 노래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멀리 전달되는지, 몇 킬로 밖에서도 들리니 경탄에 경탄을 금할 길이 없다.
라) 말매미
초가을에 접어들면 나타나는 말매미는, 매미 종류 중 가장 큰놈으로서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만 노래하기 때문에, 온 동네 최고의 개구쟁이가 일년에 한 두 마리 잡을까 말까 한 보기 어려운 매미이다. 이놈은 루이 암스트롱 같이 심하게 목쉰 소리로 「찌이이…」 하고, 음의 변화도 강약도 쉼표도 없이 노래를 한다. 이 말매미 소리는 음악적으로는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보속음(保續音)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다른 곤충들의 노래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더위가 최고조에 달했을 적에 나타나는 이 말매미 소리는, 느티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들으면 기가 막히다.
마) 맹꽁이
여름날 소나기가 지난 후 나타나는 맹꽁이는 반드시 소나기가 내린 흙탕물에서 노래를 한다. 먼저 수 맹꽁이가 콧소리로 「맹~」 하는 소리를 간헐적으로 내면, 여기 저기서 암 맹꽁이들이 모여들어 「꽁~」하고 콧소리로 화답을 한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인간이 사랑을 고백할 때는 콧소리를 낸다. 맹꽁이는 우리나라 창법 중의 하나인 「메기고 받는」노래, 영어로 앤티포날(antiphonal), 곧 대창(對唱)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맹~꽁, 맹~꽁」 하고 메기고 받으며 부르는 사랑 노래가, 흙탕물 속에서 울려 퍼지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구약 시대의 찬송가인 시편은 주로 대창으로 불리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시편 136편이다. 선창자가 감사할 조건을 메기면, 받는 쪽에서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라고 받는 식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런데 맹꽁이는 왜 흙탕물에서만 노래를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 인간들은 평탄할 때에만 찬양하고 역경에 부닥치면 하나님을 원망한다. 광야길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이랬다.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은 맹꽁이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
“順境에만 찬양하지 말고 逆境에도 찬양하여라. 요 맹꽁아!”
바) 소쩍새
천연기념물 제324호인 소쩍새는, 저 높은 고음에서 똑같은 음만 가지고, 풍년이 들어서 ‘솥이 적다’고 「솥적다, 솥적다」하고 4박자의 데스칸트 descant 를 노래한다. 가끔 흉년이라도 들면 「솥이 텅 비었다」고 「솥 텡!」하고 노래한다는데, 그렇게 청아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 두견새
두견(杜鵑)새는 주행성(晝行性) 조류이다. "두견새 우는 밤에……" 라고 읊은 시(詩)에 등장하는 두견새 울음소리는 야행성인 소쩍새를 혼동한 것이다. 많은 시인들의 시적 소재가 되는 두견새는 피를 토하는 듯 슬픔을 노래하는데, 그 전래가사가 재미있고 교훈적이다. 내가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대로 적어본다.
― 옛날 어느 마을에 주색잡기(酒色雑技)에 미친놈이 있었느니라. 틈만 나면 술에 계집질에, 놀음으로 패가망신하자, 예펜네는 목을 매 죽었고 자식은 굶어죽었는데, 술값 뜯으러 왔다가 이 꼴을 본 잡놈은, 망건을 팔아 술사먹구 취해 자빠졌는데, 비가 주룩주룩 오니깐 새깟으루 장독을 덮었더란다. 그런 잡놈두 배고푼 줄은 아는지, 헌 누더기 목에 걸구,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밥 좀 주슈! 밥 좀 주슈!’ 하구 구걸을 다녔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놈이 미워 밥을 안 주자, ‘에이! 나두 죽어버리자’ 하구 소나무에 목을 매 죽었단다. 그 놈이 새가 되어 저렇게 여름 내내 「기집 죽구 자식 죽구~」 하고 울고 있단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행실이 바라야 하나님께 복을 받느니라.
외할머니가 들려주신, 전통 운율인 44조의 노래 가사를 소개한다.
기집죽구 자식죽구, 망건팔아 술사먹구
새깟으루 장독덮구, 헌누더기 목에걸구
이집저집 기웃기웃, 밥좀줍쇼 밥좀줍쇼… 에~이 !
두견새의 이 노래는 「미미. 미솔.」 두 음을 4박자로 부르는 곡조인데 단어마다 당김법을 쓴다.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이 노래는 많은 시인들이 시제(詩題)로 삼고 있다. 특히 노래 끝에 ‘에이!’ 하는 절망적인 탄식 소리의 코다(Coda)가, 애들 말로, 끝내준다.
가을이면 귀뚜라미의 세레나데는 섬돌 밑에서 들리소, 저 높은 하늘에는 기러기들의 행진곡이 「기럭 기럭」하고 들려오고….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만치 많은 짐승과 곤충들이 저마다 자유로이 「사랑 노래」를 부르는데, 지휘자도 없이 청중도 의식 않고, 그 옛날부터 철을 따라 부르는 그 노래가, 들어도 또 들어도 새롭고 아름다우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저 미물들은 하나님이 작곡하시고 창법(唱法)까지 입력해 주신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기 때문에 완전한 다양성 중의 하모니를 이루고 있고, 우리는 이를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 곤충뿐이겠는가. 나는 새들, 기는 짐승들, 헤엄치는 물고기들도 저 나름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며, 땅위의 식물들도, 삼림의 나무들도 음악을 연주하건만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다. 시냇물도 노래하고, 바닷물도 노래한다. 천둥의 장엄한 소리, 폭포의 시원한 소리, 벼락을 치는 짜릿한 소리….
3. 세 종류의 음악
뿐만이 아니다. 지구가 돌아가는 엄청난 소리! 아니, 태양계와 우리 은하계, 또 100억이 넘는다는 모든 은하계 속의 뭇 별들이 돌아가며 내는 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가 없지만, 분명 아름다운 하모니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시 19:1).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요 수학자인 피타고라스와 플라톤(Platon,) 등은 이를 수학과 결부시켜 해석을 하였는데, 초대교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우주 안의 행성들이 조화로운 운동(harmonious movement)을 통하여 우주적인 음악을 연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6세기의 로마의 음악철학자로서 크리스천인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경)는 음악에는 세 종류가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①우주의 음악(musica mundana)
②인간의 음악(musica humana)
③어떤 악기들의 음악(musica instrumentis constituta)
그는 계속해 이런 말을 하였다.
― 첫번째 종류인 우주의 음악은…. 그토록 빠르게 움직이는 천체의 운행에 어찌 소리가 없겠는가.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별들의 운행이 완전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생겨나는 소리도 완전한 하모니가 아니겠는가!
보에티우스는 망원경적으로 「우주의 음악」만 언급하였지만, 나는 현미경적으로 생각하여, 꽃과 나비, 물방울과 아지랑이의 음악을 생각해본다. 나비가 꽃을 찾아다니며 부르는 노래, 꽃이 나비를 반기는 노래, 물방울이 하늘에서 내려오며 부르는 노래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며 부르는 수증기의 찬송, 이는 나 같은 동화 작가의 환상적인 헛소리가 아니다. 과학자들의 말이다.
【에피소드】우주의 음악
존 홉킨스 대학(John Hopkins University)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다가 은퇴한 음악과학자 도널드 햇치 앤드루(Donald Hatch Andrew) 교수는 「원자의 중심부에는 음악적인 소리가 있다」 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의 저서《생명의 교향곡》 'The Symphony of Life'에서 독자들에게, 손톱 끝에서 떼어낸 칼슘 원자 속으로 상상의 여행을 떠나보자고 권하고 있다. 원자 속으로 들어가면, 바이올린의 최고음보다 몇 십 옥타브 높은 소리가 있는데, 이것이 「원자핵의 음악」이라고 한다. 만약 이 소리를 귀담아 듣게 된다면, 그것이 교회의 찬양대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또한 오늘날의 현대 작곡가들이 작곡한 음악처럼 많은 불협화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철학 'Philosophy' 란 말을 처음으로 썼을 뿐 아니라, 이 세계를 「우주」 'Cosmos'라고 부른 최초의 철학자이다. 「코스모스」란 「질서․조화의 세계」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철학을 시작한다. “만물은 다 수가 지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타고라스의 이 「수의 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그 본성에 있어서 수를 본받으며, 수 자체는 자연 전체 가운데 최초의 것이다. 수의 구성 요소들은 곧 모든 사물의 구성 요소들로 간주되며 온 하늘은 곧 하나의 음악적 음계이자 하나의 수(数)이다."
피타고라스에 따르면 이 우주는 조화 즉, 「하모니」라는 것이다. 그에게 음악이란 스스로 운동하는 우주가 발하는 「조화로운 소리」요 수에 불과했다. 그는 그리고 수로 표시된 음계를 발표했는데 이것을 「피타고라스 음계」 'Pythagoras Scale' 라 한다. 우주의 모든 천체들은 크기와 자전․공전 주기가 다 다르며 태초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 어찌 소리가 안 나겠는가? 이 소리가 「천체의 음악」이요, 이 「천체의 음악」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고 피타고라스는 생각한다. 「참 아름다워라」의 작사자 뱁콕 목사의 가사 중 'Music of the spheres' 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피타고라스의 음악철학을 받아들인 성서적인 표현이라 생각된다. 신령한 눈으로 보고 신령한 귀로 들으면, 이 우주 안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 차 있다. 이 피조물 전체의 음악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우주적인 대합창이 되어 온 누리에 울려 퍼질 것이라고, 사도 요한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 나는 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또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하도록 받으십시오.“ (계 5:13).
2. 만물이 찬양할 수 있는가
가) 찬송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이때까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중, 인간만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성경에서 30여종 만물의 이름을 열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시 148편) 하시는 말씀은, 그저 시적(詩的)인 과장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이 천지간 만물들아, 복 주시는 주 여호와,
전능 성부 성자 성령 찬송하고 찬송하세!
이렇게 찬송하면서도 그 말씀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모든 만물에는 생명이 있고 그 생명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지능과 감정과 능력이 있어서, 저 나름의 방법으로 찬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식물도 동물도, 곤충도 미생물도, 우리 몸 속의 혈구(血球), 임파구(淋巴球)까지도 음악을 좋아한다는 게 밝혀진지는 이미 오래다. 그리하여 농장에서, 목장에서, 공장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주고 있다. 이른바 「그린 음악 농법」이란 것이다. 식물, 동물, 곤충, 혈관의 피까지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활성화된다. 그래서 좋은 음악을 들으면 사람은 건강해지고, 식물은 잘 자라 맛있는 열매를 맺고, 닭은 영양가 높은 알을 낳고, 동물들은 새끼도 잘 낳고 젖도 잘 나온다. 태교음악(胎敎音樂)이라 하여 뱃속의 아기에게도 좋은 음악 들려주기 운동이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나쁜 음악을 들으면 이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에피소드】뱃속에서 들은 음악은 태어나서도 기억한다
캐나다의 토론토 교향악단(Toronto Symphony Orchestra) 지휘자 보리스 브로트(Boris Brott, 1944~ ) 씨의 재미난 경험담이다. 언젠가 그는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초청 지휘하게 되어, 처음 보는 악보를 넘기면서 바짝 긴장하여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첼로가 독주를 하는 부분에 다다르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곡이 아주 잘 아는 곡조란 생각이 들면서 악보가 눈에 익어, 자연스레 감정을 넣어가며 연주를 마쳤다는 것이다. 하도 신기하여 첼리스트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경험담을 얘기하자 어머니도 신가해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실은 내가 너를 임신하였을 때 일이란다. 바로 그 곡 중의 첼로 솔로를 내가 하게 되어 무거운 몸으로 매일 몇 시간씩 열심히 연습을 하였는데, 그 때 네가 뱃속에서 그 곡조를 다 듣고, 악보도 보았던 모양이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4. 식물에도 감정이 있다
1968년, 「식물에 미치는 음악의 효과」에 대한 흥미롭고 놀랄만한 실험이 도로시 리털랙(Mrs. Dorothy Retallack) 부인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73년, 미국 덴버 시의 도로시 리털랙 부인은 「음악 소리와 식물」 'The Sound of Music and Plants' 란 소책자를 내었다. 리털랙 부인은 덴버에 있는 콜로라도 여자대학(Colorado Woman's College in Denver)에서 일련의 실험을 하였다. 두 학생의 도움을 받아 한 호박에게는 덴버방송의 클래식 음악만을 들려주게 하고, 다른 하나에는 시끄러운 록(Rock) 음악만을 방송에서 들려주었다. 그러자 호박들이 분명히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슈베르트․및 18세기에서 19세기의 유럽 고전음악을 들려준 쪽은 넝쿨이 라디오 쪽으로 줄기차게 뻗어 나갔고, 어느 놈은 넝쿨로 스피커를, 사랑한다는 듯, 감싸 안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시끄러운 록음악을 들려준 호박 넝쿨은 라디오 쪽에서 멀리 떨어지려는 듯 방향을 돌려 가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호박 넝쿨은 담장을 넘어 도망치기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리털랙 부인은, 옥수수․호박․페튜니아․백일초․금잔화 등을 가지고 다시 실험을 해 보았는데,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록음악만 들려준 쪽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키만 자라더니, 나중에는 형편없이 작은 잎을 내거나, 발육이 아예 중단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주일이 채 못 되어 금잔화는 시들어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과 1.8 미터 떨어진 곳에서 고전음악만 듣고 자란 금잔화는 예쁜 꽃을 피우는 게 아닌가! 이상한 점은 록음악을 들으며 자란 식물들은 실험 첫 주간에는, 고전음악을 들려준 식물보다 훨씬 더 많은 물을 섭취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물은 성장발육에 필요한 물이 아님이 분명했다. 18일째 되는 날 뿌리를 조사해 보았더니, 록음악 쪽의 식물은 뿌리가 엉성하게 나 있고 길이도 2.5센치 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고전음악 쪽의 식물은, 길이는 4배나 길었고, 굵고 서로 엉켜있기까지 하였다. 이 사실이 발표되자 반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송음악을 사용했기 때문에 60사이클 정도의 교류음악 뿐이요, 음악 사이에 나오는 아나운서들의 목소리 같은 변수들을 고려 안 한 것이라며 비평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리털랙 부인은 이번에는 레코드 음악으로 바꿔 보았다. 록 가수 중에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1944~ )․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등 타악기를 많이 쓰는 곡들을 녹음하여 실험을 하였다. 그러자 식물들은 음악의 반대쪽으로 넝쿨을 돌리는 것이었다. 리털랙 부인은 식물을 심은 화분의 방향을 180도 돌려 놓아보았다. 그러자 식물들은 다시 반대방향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었다.
클레브 백스터(Cleve Backster) 박사는 러시아인인데, 미국에 망명해 가서 「거짓말 탐지기」전문가가 된 사람이다. 그가 쓴《식물의 신비한 삶》 'The Secret Life of Plants' 란 책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백스터 박사의《식물의 신비한 삶》에 이런 재미난 실험 기사가 나와 있다. 백스터는 식물이나 그 세포가, 무어라 밝혀낼 수 없는 교신방법으로, 외부로부터의 신호를 알아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볼티모어의《선》 'Sun' 지 기자에게 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훗날 그 기사는《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요약되어 실렸다.
“백스터는 「필로덴드론」 'philodendron' 이라는 식물에다 검류계(検流計)를 연결시키고, 마치 그 기자에게 검류계를 연결시킨 것처럼 말을 걸어, 그의 출생연도를 예 아니오 식으로 대답하라 한다. 사전에 "1925년부터 1931년까지 연도를 차례로 물을 테니, 모두 아니오 라고 대답하시오" 라고 말해놓았다. 그 연도 중에는 그 기자의 출생연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식물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을 보고 유달리 그래프가 높이 올라간 연도를 골라 그 기자의 출생연도를 알아 맞추는 방식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가자가 거짓말을 할 때면 크게 반응을 하여 거짓말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런 실험은 다른 사람들도 해보았다. 뉴욕 주 오렌지버그에 있는 로클랜드 주립병원의 연구주임이며 정신병리학자인 애리스타이드 H. 에서(Aristide H. Esser) 박사와, 뉴워크공과대학 화학교수인 더글러스 딘(Douglas Dean)에 의해 같은 실험이 행해졌다. 그들은 묘목 때부터 정성껏 키워온 필로덴드론을 가져온 한 남자와 그 실험을 하였는데, 거짓말 탐지기를 그 식물에다 연결시키고는 그 주인에게 질문을 하는 방식이었다.
사전에 그 주인에게 몇 가지는 거짓으로 대답하라고 일러두었다. 대답을 들을 때마다 필로덴드론은 반응을 보였는데, 거짓말인 경우에는 크게 반응을 보여 어느 것이 거짓인지를 일목요연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처음 백스터의 실험이 발표되었을 때 조소를 하던 에서 박사도 이런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백스터를 조소하던 모든 말들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백스터 박사는 같은 식물끼리 의사소통도 하고, 자기방어도 하며, 범인을 알아보고, 사람의 마음도 꿰뚫어본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입증하여, 많은 과학자들을 놀라게 한바 있다.
5. 물에도 감정이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물에도 감정이 있다」며, 물의 결정을 찍은 사진첩이 발간되어 화제이다. 물에 각종 음악이나 각 나라 말을 들려주거나, 심지어는 「사랑-미움-감사-불평」등의 글씨를 각국어로 써서 물병에 붙여놓고 영하 25도에서 얼려 200~500배 현미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물의 결정체가 갖가지 모양으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의 결정체가 사랑-기쁨-감사 등 하나님께 속한 언어나 글이나 음악에는 아주 아름다운 6각형의 결정체를 나타내지만, 그 반대의 것에는 결정이 찌그러지거나 산산이 부서진 형태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일-영 양국어로 출판한《물이 전하는 말, 1999》 (水からの伝言 - The Message from Water' 머리말에서, 저자 에모도 마사루(江本 勝, 1943~ )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아빠의 정액과 엄마의 난자에 의해서인데 그것들의 95%가 물로 이뤄졌다. 성인 인간의 몸도 70% 이상이 물로 이뤄져 있고, 따라서 인간은 물로 이뤄진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매일 물을 마시며 물에 둘러싸여서 산다. 지구는 어떤가? 「물의 혹성」이라 불리며 지구 표면의 70%가 물이다. 지구와 인체는 닮은꼴이다. 그 물의 대부분이 바다에 있고, 구름이나 안개로서 지구를 떠도는 물도 있고, 빗물, 지하수, 용천수(湧泉水), 호수 물, 개울 물, 높은 산의 만년설, 또 남극의 얼음도 본래 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물이 좋은 물인가 나쁜 물인가, 또 인간의 몸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라는 것은 연구기관이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분명히 알 수가 없다. 우리가 보는 물은 그게 그거라 생각된다.
― 물에 포함된 정보의 차이를 눈으로 볼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Julia Leigh 와 David Savold 共著인 「아직 과학이 풀지 못한 의문」이란 책을 만났다. 이 책에는 50개 항목의 수수께끼가 있는데, 그 중에 ‘같은 모양을 한 눈(雪)의 결정이 있는가’ 라는 항목이 있었다. 수백만 년 전부터 내리는 눈의 결정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에모도 박사는 물을 얼린 다음, 그 결정체를 200배 현미경을 단 카메라로 찍어 조사하기로 했다. 일본 주요 도시의 개울물, 수돗물, 지하수, 빗물, 용천수 등을 얼려서 그 결정체를 사진으로 찍고, 외국의 물, 만년설, 극의 얼음까지 수집하여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같은 물인데도 경우에 따라 다른 모양을 한 결정체로 나타나더란다. 그래서 각가지 음악을 들려주며 찍어도 보고, 각국어로 글을 써서 붙이고도 찍어 보았는데, 아무 감정도 없는 무생물(無生物)로 알았던 물이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모양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 책을 냈다는 것이다. 즉 좋은 음악을 들었거나, 좋은 말을 들었거나 그런 글을 보았을 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반대의 경우에는 찌그러지거나 일그러진 흉한 모습으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호소한다.
‘오늘도 물에게 고맙다고 하자’ (今日も水にありがとう.)
이 책이 발매되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용기를 얻은 에모도는《물은 답을 알고 있다》 (水は答を知っている, 2001)를 출판하고, 이어 같은 제목으로 2003년에 제2권《水は答を知っている, 2003》을 펴내고 있다.
불신자인 에모도 박사와 무라까미 박사는 「어떤 위대한 존재」(Something Great)가 바로 창조주임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이 창조주의 능력과 솜씨를 「증거」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를 이렇게 증언하였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롬 1:20).
성령의 감동을 받은 다윗은 또 이렇게 노래하였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그 성호(聖號)를 송축하라! (시 103:1).
칼빈은 이 시편의 「내 속에 있는 것들」을 주석하기를,「인간의 생각과 마음 및 그것들의 모든 기능을 가리킨다」라고 풀이했지만,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거기에다 이렇게 추가한다.
“내 몸에 있는 70 퍼센트에 달하는 물과, 60조(兆)나 되는 세포들과, 25 조가 넘는 적혈구와 백혈구, 그리고 수도 없는 각종 세균들까지도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
왜냐 하면 내 속에 있는 「그것들」도 살아있는 생명체요 하나님의 피조물 아닌가. 성경은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께 감사 찬송을 드린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주님, 주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주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며, 주의 성도들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시 145:10).
위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 주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 그러니까 100억이 넘는다는 은하계 우주를 비롯한 모든 우주와, 그 우주 안에 있는 행성들과, 그 행성 안에 있는 동식물 및 광물, 그리고 물․바람․햇볕과, 그것들 안에 있는 미생물들까지, 그리고 주님의 자녀인 우리와, 우리 속에 있는 혈구와 각종 세균들까지, 「주님께 감사 찬송을 드린다」는 말씀이다.
온 천하 만물 우러러 다 주를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저 금빛 나는 밝은 해, 저 은빛 나는 밝은 달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찬송가 33장 1절).
우리는 산새들과 맹수들에게까지 복음을 설교했다는, 성 프랜시스가 시편 148편으로 작사한 6절이나 되는 이 찬송을 가사 그대로 믿으며 찬송하는가. 아니면 입술로만 노래하는가?
3. 하나님의 찬송가 작사․교육 명령
이렇게 찬양을 기뻐하시는 음악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만물에게는 당신이 작곡하신 가사와 곡조를 입력해주셨지만, 당신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녀 된 우리에게는 창의력과 새 마음을 주시고「새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시편의 주제이다.
예배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찬양이다
구약시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는 언제나 찬양이 중심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에서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는 어떠한가? 흔히 예배의 5대 요소를 「찬송-기도-말씀-봉헌-성도의 교제」이렇게 꼽는데, 이 중에서 찬양이 제일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①기도는 감사와 찬양은 간단히 하고 온통 달라는 말 뿐이요,
②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설교는 그 해석이다.
③헌금은 하나님이 주신 것 중 극히 일부분을 드리는 것이요,
④성도의 교제도 하나님의 자녀들끼리의 교제 아닌가.
⑤찬양만이 순수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제물인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찬송과 기도와 말씀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찬송이니라.”
“노래로 증거하고, 말씀으로 증거하라!”
―Sing the Gospel, Preach the Gospel―
모세가 세상 떠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명령을 모세에게 내리셨다. 찬송을 작사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쳐「증거가 되게」하고, 율법을 써서 언약궤 곁에 두어「증거가 되게」하라는 명령이다.
①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 31:19).
② 율법책을 기록하여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 31:26).
하나님을 증거하되,「노래로써 증거하고, 또 말씀으로 증거하라」는 명령이다.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요, 19세기 미국의 대부흥사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와, 복음찬송가의 개척자 아이라 생키(Ira D. Sankey, 1840-1908)이다.
먼저 루터는, 극도로 미신화하고 배금주의와 우상숭배로 썩어버린 가톨릭을 목숨 걸고 개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인 회중들은 성경과 찬송을 박탈당하였으므로, 먼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출판하고, 찬송가를 출판하여 회중들이 찬송을 부르게 함으로써 「말씀과 찬송으로 증거」가 되게 한 것이다.
한편 19세기 미국에서, 황금에 눈이 어두워 미쳐 날뛰는 동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부흥의 횃불을 높이 든 무디는, 생키와 손을 잡고 「설교자와 찬양자의 팀」을 만들어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을 일으켜, 수많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는데, 그들이 포스터에 내건 슬로건은 다음과 같았다.
“무디씨는 복음을 설교하고, 생키씨는 복음을 노래할 것입니다.”
“Mr. Moody will Preach the Gospel, and Mr. Sankey will Sing the Gospel.”
그들은 늘 함께 다니며 전도를 하였는데, 설교자의 설교 제목이 결정되면, 찬양자는 그 내용을 찬송으로 만들어 청중과 함께 불렀다. 거의가 글을 모르는 사람이던 그 시절, 새 노래를 즉석에서 가르치려니「코러스」'Chorus' 란 새로운 음악양식이 생겨났다. 즉 독창자는 미리 청중에게 신작 찬송의 코러스(후렴) 부분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자기가 1절을 부르고는 “다 함께 부릅시다!” 'Sing together!' 하고 외치면, 모두가 독창자와 함께 후렴을 부른다. 이런 식으로 2절, 3절 하고 계속해 부른다. 성전 찬양방식의 부활이요, 우리 전통 노래의 「메기고 받는 노래」, 곧 「맹꽁이식 찬양」 방식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발행한《복음 찬송가》 'Gospel Hymns' 에는 거의 모두 코러스(후렴) 부분이 있고, 우리나라 초기 찬송가들은, 그 방식대로 후렴 부분을「코-라쓰」라고 찬송가책에 표기하다가 후에 후렴으로 고쳤던 것이다.
가. 설교 내용과 찬양 내용은 일치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주일 예배의 설교내용과 찬양대의 찬양 내용의 관계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주장한다.
“찬양은 순수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그 날 설교 내용과 꼭 맞출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찬양으로 증거하고 말씀으로 증거하라」하시지 않았는가? 찬양은 물론 「하나님께 드리는 노래」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노래」인 것이다. 찬양이 먼저인가, 증거가 먼저인가? 당연히 증거가 먼저다.「증거」하여 죄인들을 회개시켜 데려와서 함께 찬양을 해야지, 증거는 않고 이미 믿는 자들만 모여서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따라서 찬양대의 찬송은 「말씀을 증거」하는 설교와 보조를 맞추어「노래로써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도 부합되고, 일찍이 루터나 웨슬리, 그리고 무디나 생키가 보여준 그리스도교 전통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때문에 찬양 지휘자는 설교자와 긴밀히 연락을 하여 같은 내용으로 설교하고 같은 내용으로 찬양하는 것이 옳다.
찬송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찬송가란 과연 무엇인가? 찬송가 정의는 다양하다. 여러 사람의 정의가 있지만, 위대한 지도자들의 정의를 알아본다.
1. 바울의 찬송가 정의
사도 바울은 엡 5장 19절, 골 3장 16절에서 찬송가를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곧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다.
①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②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2. 어거스틴의 찬송가 정의
어거스틴은 소년시절 이방종교인 마니교를 믿으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회개하여 가톨릭의 성인으로 시성(諡聖) 된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십계명에서 제2계명을 삭제하여 우상숭배의 길을 열어 놓았고, 아래에서 보는 대로, 찬송가 정의에서도「성인들에게 찬양을 드리라」고 함으로써, 가톨릭은 성모 마리아에게는 물론 교황이 시성한 「성인」이라는 죽은 사람들에게도 찬양을 드리고, 우상에게 절을 한다. 우리나라 천주교에서는 불교와 손을 잡고 함께 「성가 합창제」를 한다. 홀로 하나님께만 찬양을 드리는 우리 개신교회와는 너무나도 다른 찬양 제도이다.《새전례가톨릭성가집, 1975》에는 마리아 찬양은 물론, 천사, 성인, 복자 찬양이 들어 있다. 170장에는「복자 안드레아 김신부 노래」도 있다.
미국의 찬송가 학자 존 줄리앙(John Julian) 목사의 역작《찬송가학사전》 'A Dictionary of Hymnology' 에는 다음과 같은 어거스틴의 찬송가 정의가 적혀 있다. 영어와 우리말 번역을 함께 싣는다.
…. What, then, is a hymn, and whence originally was the Hymnody of the Western Church derived? "Know ye," Asks St. Augustine, commenting on the 148th Ps. "What a hymn is? It is a song with praise of God. If thou praisest God and singest not, thou utterest no hymn. If thou singest and praisest not God, thou utterest no hymn. A hymn, then, containeth these three things: song(Canticum), praise(Laudem), and that of God. Praise, then, of God in song is called a hymn.
The Septuagint (v.14) has here "humnos pasi tois hosiois autou." Augustine proceeds- "What, then, meaneth this: 'An hymn to all His Saints?' 'Let His Saints receive a hymn. Let His Saints utter a hymn.' (Julian:. p. 640).
…. 어거스틴은 시편 148편을 강해하면서 이렇게 썼다…. 찬송이란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을 찬미하면서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찬송이 아니다. 또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으면서 노래만 한다면 그것도 찬송이 아니다. 따라서 찬송은 다음 세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데, 곧 노래하는 것(Canticum), 찬미하는 것(Lauden),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찬송이란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다.
어거스틴은 계속하여 말한다. “70인역 성경을 보면(14절), ‘훔노스 파시 토이스 호시오이스 아우투’ "humnos pasi tois hosiois autou" 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일까? ‘모든 성인(聖人)들에게 찬양을’ 이라니? 이 말은 ‘모든 성인들이 찬양을 받게 하라’, ‘모든 성인들이 찬양을 하게 하라’는 뜻이 아닌가.”
어거스틴은 우리 구약성경 시편 148편 14절
“모든 성도 곧…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거리로다”
라 번역한 말씀을,
“모든 성인들이 찬양을 받게 하라, 모든 성인들이 찬양을 하게 하라”
라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함으로써, 천주교회는 이 주석을 따라, 성모 마리아에게는 물론, 이른바 성인과 복자들에게도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3. 마틴 루터의 찬송가 정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바울이 말한 찬송(엡 5:19, 골 3: 16)“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강해하기를;
시(Psalmos)=구약의 시편을 말하고
찬미(Humnos)=성경에 있는 찬미
(1) 모세의 찬송(출 15:1-18, 32:1-43)
(2) 드보라의 찬송(삿 5:1-31)
(3) 한나의 찬송(삼상 2: 1-10)
(4) 솔로몬의 찬송
(5) 이사야의 찬송(사 26:1-10)
(6) 마리아의 찬송(눅1: 46-55)=MAGNIFICAT
(7) 사가랴의 찬송(눅 1: 68-79)=BENEDICTUS
(8) 시므온의 찬송(눅 2:29-30)=NUNC DIMITTIS
신령한 노래(Pnewmatikos Adow)=성서 이외의 후대 사람들의 창작이라 했다.
1523년, 마틴 루터는 「신령한 노래」 곧 회중 찬송가 제작의 뜻을 굳히고, 친구인 게오르그 슈팔라틴 목사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나는 예언자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의 모범을 따라, 회중을 위한 독일어 찬송을 만들어서, 노래란 매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게 살아있게 하기를 원합니다.”
루터의 회중 찬송가 정의는, 회중들의 입술로 증거하는, 「살아있는 복음의 소리」 'viva vox evangelii'란 한 마디로 요약된다. 그리하여 그는 37편의 회중 찬송가를 작사 혹은 작곡까지 하여 후대 사람들은 그를 「복음 찬송의 아버지」'The father of evangelical hymnody' 라 부르게 되었다.
4. 칼빈의 찬송가 정의
칼빈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초기에 칼빈은 가톨릭 낸새가 난다며 찬송을 금지했다. 그러나 망명 시절 루터교회에서 회증들이 신작 찬송가를 열성적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신작 찬속가를 허용하되 구약 시편의 찬송을 자국어로 운문화하는 것만을 혀용했다. 완전 타락한 인간은 찬송가 작사할 자격이 없고 성령의 감등으로 기록된 시편을 자국어로 운문화해서 부르자는 것이다. 그리고《제네바 시편가, 1543》를 편집하고 그 서문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진실하고 거룩한 노래가 있어야겠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영광 돌리게 하는 노래가 있어야겠다….”
위의 문장에서 칼빈의 찬송가 정의는 다음 세 마디로 요약된다.
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도록 격려하는 거룩한 노래
②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증거하는 노래
③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는 노래
전 세계 찬송가는 이 세 가지 원칙에 의해 편찬되고 있다.
5. 존 웨슬리의 찬송가 정의
존 웨슬리(1703~1791) 목사는, 1780년에 출판한《감리교 찬송가》머리말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5. (전략) 이 시대 어떤 출판물에 그리스도교를 이처럼 단순 명료하게 증거한 책이 있는가. 신앙의 높이와 깊이, 이론과 실제를 이처럼 극명하게 선포한 책이 어디 있는가…. 또한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의 응답에 대한 확신을 주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화에 이르는, 확실하고 명백한 지시가 이 찬송가 외에 어디 또 있는가?
이 서문에 의거 웨슬리의 찬송가 정의를 간추려본다.
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노래
② 신앙을 선포하는 노래
③ 부르심에 대한 응답의 노래
④ 성화(聖化)에 이르도록 지시하는 노래
표현만 다를 뿐 우리 개신교의 위대한 개혁자들은 다 같은 뜻으로 정의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한국인이 최초로 부른 찬송가
우리나라 사람이 언제 어떤 찬송을 불렀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새문안교회 70년사》에 나온다. 새문안교회의 초대 장로이신 백홍준 장로의 따님으로서 김관근 목사의 부인인 백권성(白淃聖) 여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다.
―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아버지는 만주에서 돌아오시면, 매일 새벽기도를 하시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쥬예수 아이워, 쥬예수 아이워!’ 하고 찬송을 부르셨다.
여기서「쥬예수 아이워」란, 중국어 어린이 찬송가「主耶穌愛我 主耶穌愛我」로서, 영어로 'Yes, Jesus loves me!', 즉「예수 사랑하심은」의 후렴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불려진 찬송은 중국어 찬송 「예수 사랑하심은」이다.
예수의 중국식 이름은「耶穌」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耶蘇라 쓰고 「야소」라고 읽는 것을 보며 답답한 마음 가눌 길 없다. 모든 중국어 성경과 찬송가에는「耶穌」라 쓰고 있다.
「穌」자를 《漢韓大辭典》 (張三植 著)에서 찾아보자.
▶ 穌 : ①쉴 소(息也), ②기뻐할 소(舒悦), ③깨어날 소(死而復生), ④서양 구세주 예수 소(太西救世主曰耶穌).
④는 말할 것도 없고, ① ② ③ 모두가 예수의 이름에 합당한 뜻들이다. 한편 「蘇」자의 풀이를 보자.
▶蘇 : ①차조기 소, ②부소나무 소, ③나무할 소, ④술 소, 실드릴 소, ⑤까무러칠소, ⑥깨어날 소, ⑦나라이름 소, ⑧성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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