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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사무엘하 12장 1-15절
제 목 하나님을 업신여긴 다윗[13]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를 죽이라고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긴 엄청난 죄를 짓는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겼기 때문에 암몬자손의 칼로 우리아를 죽였고 그 처를 빼앗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다윗은 기도했을 것이고 하나님은 다윗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얼마든지 해결해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노력했고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겼다는 증거입니다.
밧세바가 죄속에서 잉태한 아기를 낳고 난 후 하나님께서 나단선지자를 불러 다윗에게 죄를 묻도록 비유 하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한 성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자였고, 또 한 사람은 가난해서 오직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 없기 때문에 그 양이 자식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의 품에서 딸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행인이 부자집에 왔는데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법이기 때문에 대접을 해야 되긴 하는데 자기의 양과 소는 아깝다는 생각에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서 나그네를 대접하였습니다.
나단선지자의 말을 여기까지 들은 다윗은 진노하며 5-6절에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것이며 부자가 불쌍한 마음없이 이런 일을 행했으니까 빼앗은 양 대신 가난한 사람에게 네배나 갚아 주어야 할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죄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죄책감도 없이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티를 잘 보는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처를 빼앗은지 일년 가까이 지난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엄청난 죄를 잊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죄인들은 자신의 죄를 잊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죄를 기억하고 계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처리되었다고 생각했고 그 사건을 모두 잊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다윗은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은 부자에게 사배나 갚아주어야 한다고 율법의 잣대로 판결하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고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만나면 자신의 죄가 보이는 것이고, 회개하는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있습니다.
나단은 악한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부었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였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고, 만일 그것이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다윗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윗과 동행하시며 모든 사건과 시간들을 다스리시던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져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그 자리에 계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싶으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으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인간의 욕망과 정욕을 채우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은 다윗과 연관된 모든 것에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울 수 없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삶을 연결하는 다리는 오직 여러분의 믿음뿐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다리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끊어지면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9절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로 삼았도다
인간이 하나님을 업신여길 수 있다는 말씀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믿음의 자리에 세상의 정욕을 채우고, 믿음의 자녀를 내 육신의 정욕 때문에 죽이며, 그의 열매를 빼앗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길 때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나단의 말을 들은 다윗이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갑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는 비유를 들었을 때 다윗은 어떻게 많이 가진 자가 한 마리의 양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을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분노했습니다.
헌데 그 악한 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윗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우리도 죄의 자리에 있을 때는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하지만 그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을 때는 다윗과 같이 자신은 정의롭게 살아온 것처럼 분노할 것입니다.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자랑을 하실 정도로 다윗을 믿으셨던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보시며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도 정말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면 더 아픈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배신이 그 누구보다 더 아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업신여기고 살인을 저질렀던 다윗의 죄가 하나님의 공의때문에 그에게 고난으로 임할 것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첫째는 우리아를 죽인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것이고 둘째는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것처럼 그의 아내들이 다윗이 보는 앞에서 그의 이웃에게 당하는 엄청난 사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다윗은 은밀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앞에서 백주에 그의 아내를 빼앗기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넷째는 다윗에게 맹세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그는 죽지 않겠지만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으면 다윗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되어 하나님을 도리어 비방하는 거리로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지은 죄를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죄목을 모두 나열하시는 것을 보면서 다윗이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살인죄와 간음죄를 지었으면서도 그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회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완전 범죄를 꾀했다는 기쁨이 어쩌면 그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죄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다윗이 충성하며 인내할 때 그 모든 것을 상급으로 주셨듯이 악을 행할 때는 그 모든 죄에 대하여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사람이 다윗이라는 것이 너무 놀랍습니다.
아무리 믿음의 다윗이라 할지라도 죄를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을 보면서 두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인 우리아는 밧세바라는 양 한마리밖에 없기 때문에 무척 사랑했을 것입니다
부자가 양을 힘으로 빼앗았을 때 대항하지 못하고 빼앗긴 것처럼 우리아는 억울한 죽음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보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너무 두렵기도 하고 감사하기만 합니다.
여러분이 믿음안에서 정직하게 살아간다면 한 마리의 양을 빼앗겼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처럼 찾아주실 것입니다.
우리아가 당한 것처럼 은밀하게 진행되어 당하더라도 하나님은 백주에 그 죄를 모두 드러내어 여러분이 억울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안에서 살아간다면 보호자가 계시기 때문에 두려울 것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밖에 있다면 이처럼 작은 죄도 다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사단은 믿음의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그리고 정작 죄를 짓고 나면 성도뿐 아니라 하나님까지 비방을 받도록 세상에 드러내어 조롱합니다.백주에 다윗이 아내를 빼앗기고,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 다윗의 죄가 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며 나단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셨지만 그것은 다윗의 죄를 돌이키도록 돕는 것일 뿐 하나님을 비방거리로 만들고 조롱을 받는 것은 바로 다윗 자신이 초래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죄는 세상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빛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를리 없고, 사랑하는 자녀가 어둠을 안고 있는 것을 원치 않는 하나님께서 빛안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죄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아의 아내가 낳은 아기가 아프기 시작하자 다윗은 금식하며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자신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아기를 살려 주시지 않을까 해서 다윗은 7일을 간절하게 매달렸습니다.
다윗이 금식하는 것이 안타까워 지금까지 다윗을 믿고 충성했던 늙은 신하들이 만류했지만 다윗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이 말을 듣지 않자 함께 금식을 하며 도왔습니다.
7일만에 아기가 죽자 다윗의 신복들이 생각하기를 살아있을 때도 저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아기가 죽었다고 전하면 혹시 왕이 악한 마음을 먹으면 어쩌나 염려했습니다.
하지만 20절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었습니다.
다윗은 신하들이 너무 의아하면서 묻자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까 해서 금식하고 기도했지만 이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나라로 갔기 때문에 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생의 삶과 사후의 세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해 주신다면 살 수 있지만 한번 영혼이 떠나면 절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열매이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세상의 열매는 성도의 마음이 악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시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어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을 낳았는데 솔로몬은 밧세바가 낳은 네 번째 아들입니다.
하지만 24절에 성경은 죽은 아기 다음에 바로 솔로몬이 태어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보내어 여호와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라는 뜻을 가진 여디디야 라고 솔로몬의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사랑하시는 것은 다윗이 밧세바와 사이에 첫 아기를 잃고 믿음으로 돌이켰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을 스스로 하고 계신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윗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안에 쓰임 받는 믿음의 도구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할 것도 낙심할 것도 없이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들이 한번 죄를 범하면 사단은 그 죄를 끝까지 잡아 당당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26-31절에 요압은 암몬자손의 랍바를 쳐서 왕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 성을 점령하면 이 백성들이 내 이름을 높일까 두려우니 왕이 직접 와서 점령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요압의 말대로 랍바로 와서 성을 점령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요압이 다윗을 존경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요압의 교활함이 잘 드러나 있는 사건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이므로 그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승리는 다윗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고 이스라엘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아를 죽이라는 지시를 받고 난 후 요압은 다윗이 두렵지 않았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다윗이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죄에 붙들리게 되면 이렇게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군대가 승리하는 것은 곧 왕의 승리임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다윗을 전쟁터로 와라 가라 하면서 조종하고 있습니다.세상은 성도들이 죄를 짓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술잔을 권하고, 음란의 자리로 이끌면서도 설마 이들이 내 말을 들을까 처음에는 반신반의합니다.
그러다가 성도가 한번 무너지면 그 때부터는 세상사람들은 도리어 믿음을 지키지 못한 성도를 조롱하면서 세상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단은 예수님이 한번 굴복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줄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의 믿음을 가운데 두고 하나님과 사단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다윗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고 늘 믿음의 자리를 지키기 바랍니다.
언제나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유혹을 물리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