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408
천자문028
동봉
●弔民伐罪●
위 글자를 우리 발음으로 읽으면
조민벌죄弔民伐罪이지만
중국어 발음으로 읽으면
댜오민파쭈이Diaominfazui입니다
조민벌죄와 댜오민파쭈이가
비슷한 곳이 있습니까
민民자 하나는 발음이 같군요
우리의 한문 발음은
우리나라를 일단 벗어나면
일본 홍콩 베트남 등과
심지어 한문의 종주국인 중국과
타이완Taiwan에서조차
전혀 알아 듣지 못하는 말입니다
일본어는 소리읽기音讀과
새겨읽기訓讀가 있어서
소리읽기는 우리의 한문 발음과
약간 비슷하긴 하지만
이는 소리읽기일 따름이고
새겨읽기 곧 풀어읽기는 전혀 다릅니다
0097조상 조弔/댜오diao
0098백성 민民/민min
0099칠 벌伐/파fa
0100허물 죄罪/쭈이zui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죄 있는 자는 엄히 징치한다."
어제에 이어
이 글을 다시 한 번 보려합니다
0097조상 조弔
조상 조吊자에는 이처럼
입구口자 아래 수건 건巾자를 놓은
조상 조吊자도 있는데
이는 조弔자의 속자俗字입니다
다시 말해서 같은 글자란 뜻이지요
조吊자를 살펴볼까요
이 조상 조吊자는
상복巾을 갖추어 입은 뒤에
곡口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만
내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강원도에서는
집안에 누가 돌아가시면
그 돌아가신 분과 나와의 관계에서
곡哭을 하는 소리가 달라집니다
다 같은 부모님이신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곡이 다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어이 어어이 하고 울면 안 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 앞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울면 안 됩니다
아버지 상을 모신 앞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울 곡을
어머니 영정 앞에서 낼 수는 없습니다
참최례斬衰禮의 적용 범위는
시부모 친정부모 남편 맏아들인데
재최례齋衰禮에 쓸 수 없습니다
재최례가 적용되는 범위는
머리글자에 중衆자나 종從자가
놓여있다면 재최가 맞습니다
상조 용어로 쓸 때는
쇠할 쇠衰자를 '최'로 발음합니다
마찬가지로 재최상을 당했는데
참최례를 가져다 쓸 수 없습니다
강원도는 횡성 원주를 비롯하여
홍천 춘천 등 영서의 문화가 다르고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흐르는
화천 인제 평창 태백 등 마루 문화가 다르며
백두대간 동쪽에 위치한 도시들
삼척 동해 강릉 속초 고성 등
영동의 문화가 다릅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곡하는 법을 일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서 거드셨지요
게다가 큰형님은 나이는 젊었지만
나보다 12년이 위였기에
두 분의 말씀을 다시
아우들에게 풀어 얘기해주곤 했습니다
상을 당해 '복服'을 입고
곡哭하는 게 다르다는 것을 들으며
신기해하기도 어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지요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곡哭이라 하고
소리 없이 우는 것을 읍泣이라 한단다."
곡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의식화된 형태는
적어도《쭈즈지아리朱子家禮》가
전래된 고려 중기 이후의 일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곡은 있었으나
신라나 고려 시대 우는 스타일은
그냥 본능적이고 자연스럽게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곡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가 설 자리를 잃고
예의염치禮義廉恥 등을 비롯해
형식을 중요시여기는
유교儒敎에 바탕을 두면서
상조 문화가 다시 정립되었습니다
이들 내용은《쭈즈지아리》에서 가져와
울음의 형태까지 정해 놓는
박제 문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있을 것은 있어야 합니다
그럼 곡은 언제부터 하며
조문객은 언제부터 받을 수 있을까요
사람이 숨이 멎음과 동시에
곡소리가 울리는 것은 원초적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습렴襲斂이나 소렴小斂을 할 때
또는 대렴大斂 때 곡을 합니다
소렴과 대렴을 한데 묶은 게 습렴입니다
습襲은 '엄습하다' '염하다'인데
'2벌 옷' 또는 '겹옷'이란 뜻입니다
시신에게 겹옷으로 입힘이 습렴이고
입관하여 첫 옷을 입힘이 소렴입니다
상주 측에서는 상복을 입고
처음으로 성복제를 지내고 나서
조문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식에 따른 곡은 이제부터입니다
조문과 문상은 약간 다릅니다
고인故人에게 예를 갖춤이 조弔고
상주에게 슬픔을 물음이 문問이며
상주에게 상喪을 들음이 문聞이고
고인에게 예를 갖춤이 상喪입니다
고인은 사정故이 있는 사람人일 뿐
죽은亡 분者이 아니라는 뜻에서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용어인데
이토록 철학적인 말은 쉽지 않습니다
21세기에서도 쓰는 상조 언어 중
가장 나쁜 용어를 들라면
'미망인未亡人'입니다
미망인이 무슨 뜻입니까
'남편 따라 죽지 않은 사람'입니다
부부는 한마음 한몸이며
양성평등 역사의 줄기인데
아직도 미망인이란 말을 쓰고 있다니
부부에게 함께 쓰이는 용어라면
조금은 이해가 가겠는데
아내에게만 적용된다는 게
이게 말입니까, 망아지입니까?
소렴하고 난 그 다음 날
다시 한 번 옷을 입히는데
이것이 다름아닌 대렴입니다
하지만 3일장을 치르는 요즘의 경우는
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임종한 다음날 소렴하고 성복한 뒤
다시 그 다음 날 대렴한다면
대렴하는 날은 발인하는 날이고
영결식과 겹치는 날입니다
하관下棺하고 매장하는 날이고
화장火葬하여 납골하는 날입니다
지금은 의식의 간소화도 있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한 번에 모든 염을 다 끝냅니다
날짜와 시간이 부족하여
대렴을 따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복제 이후 아침 저녁으로
메와 탕을 올리고 조석곡을 웁니다
조석곡이란 아침저녁으로
상식 때 소리내어 곡을 하거나
소리없이 우는 읍을 말하지요
발인할 때 발인곡을 하고
장지에서
화장장에서
또는 납골당에서
혼백을 모시고 살던 집으로 되돌아올 때
반곡返哭을 하기도 하고
삼우제三虞祭에서는 삼우곡을 합니다
사후 49일 동안
매주 칠칠재를 올리고
49일째에 사십구재를 올립니다
졸곡卒哭제 대신
요즘은 백재百齋를 지냅니다
사후 100일째 되는 날
불전에 올리는 천혼의식이 백재지요
졸곡卒哭이란
삼우재를 지낸 뒤 지내는 제사로서
사후 석 달 뒤 다가오는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가려서 지내는데
이때 졸곡을 한다 해서
졸곡제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졸곡이란 곡哭의 마무리卒입니다
따라서 졸곡제 이후의 제삿날
모든 곡이 사라집니다
슬픔이 격해지면
졸곡 때까지 늘 곡을 하는 무시곡
장례 후 탈상 때까지
그리고 소상 대상 등 제례에서도
그때그때마다 곡을 하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는 평곡이 있고
복받쳐 터져 나오는 애곡이 있습니다
기년복, 곧 기일에 하는 곡으로는
'아이고 아이고'가 있고
'애고 애고'하고 울기도 합니다
이때 곡의 형태는 애곡哀哭입니다
곡하는 대상도 구분이 다양하지요
기년복 이상이라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그리고 형제자매가 모두 해당됩니다
평곡은 '어이 어이' 하고
소리를 내어 곡하는 것으로써
대공大功 이하 복인服人과
친척 조문객들 모두가
망인을 조상할 때 곡하는 방법으로
생각보다 널리 통용되는 곡哭입니다
대공 소공 시마를 비롯하여
이 밖의 모든 곡을 더 세분하면
격식 차릴 경황이 없는 부모님 장례에
푸념을 섞어가며 우는 '제啼'가있고
멍하니 눈물만 흘리는 '읍泣'이 있으며
가슴을 치며 우는 남자의 '벽곡劈哭'
몸부림치며 우는 여인의 '용곡踊哭'
격식을 떠나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우는 것과 같은
응애응애 우는 아곡兒哭' 이 있습니다
이 조상 조弔자의 경우는
앞의 조상 조吊자와는 약간 다릅니다.
이 조상 조弔자에 담긴 뜻은
망자의 시신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시신이 묻혀 있는 곳은
독수리를 비롯하여 야생동물이
앞다투어 다가오므로
활弓에 화살丨을 재어弔 들고 지키는
효성스러움을 표한 글자입니다
옛날 예가 번거로운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예가 없으면
인간의 삶은 헝클어집니다
오는 2월14일 일요일 오전11시
우리절 관음전에서는
불전결혼식이 있습니다
내가 주례를 집전합니다만
예법을 아예 무시하고는
장엄하고 성스러움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0098백성 민民
백성은 온갖 성바치입니다
김씨 박씨 안씨 이씨 정씨 홍씨 등
온갖 성바치를 통틀어 말합니다
이들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요
맞습니다. 여자에게서 왔습니다
'아가씨' '색씨' 하기도 하지만
사후 신위를 모실 때도
남자는 공公이라 부치는 데 대해
결혼한 여자는 안동권씨 여흥민씨 하듯
본관 뒤에 씨氏를 붙였습니다
"자네 성씨가 어찌 되시는가?"
라고 물었을 때 답은 부계 쪽이지요
"네, 전주 이갑니다."
성씨가 어찌 되느냐는 물음에는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씨가
포함되어 있는 질문인데
부계쪽의 '씨' 대신 '가'로 답합니다
어떻게 남 앞에서 씨氏를 붙이느냐
낮추어 '가哥'를 붙여야지 하면서
요즘도 집안의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씨氏'를 못 붙이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여성성의 무시입니다
모계를 뜻하는 씨를 붙이느니
차라리 '가哥'를 쓰자는 것이지요
각시 씨氏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곧 백성 민民자 입니다
또 백성 민자는 졸음 면眠자와 같지요
백성들은 잠이나 퍼 자는
어리석은 이들이라 보았습니다
우민화愚民話 정책에 따라
백성들을 가르치는데 소홀했습니다
아니, 여성 교육에 소홀했습니다
"여자가 글은 배워 뭐해?"가
조선시대의 남존여비의 전형이었지요
옛 분들이
<동몽선습><계몽편>등
교재를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을
깨우치고 길러냈습니다만
정작 아낙네들은 물론 소녀들까지
여인들의 공부길은 철저히 막혔습니다
백성 민民은 잠잘 면眠자에서
눈 목目자를 빼버린 글자입니다
사람에게서 눈의 가치는
상상 밖으로 크고 크고 큽니다
이 총명의 상징인 눈目을
어리석은 백성民과 함께 둠으로써
잠이나 쿨쿨 자는 사람으로
몽매하게 만들어 간 것입니다
백성은 어리석은 사람
잠이나 퍼 자는 무지랭이들
그들은 여자氏와 같은 부류
이들을 깨우치는 것도
남자는 가능한데 여자는 불가능하다니
세종대왕 훈민정음에서의
훈민의 '민'도 몽매한 백성이었고
몽매한 백성은 아낙들이었고
호적에 이름 석 자 올릴 수 없는
그냥 이 땅의 여자들이었습니다
아, 이 땅 여인들의
억울하고도 슬픈 역사여!
남자는 거대한 나무木자가 들어간
기둥棟이고 들보樑라면서
여자는 씨氏를 키워내는 존재면서도
겨우 풀 초草자나 들어간
민초民草들이라니
아! 온갖 여성百姓의 슬픈 역사여!
02/12/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