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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갈림길에서”
춘천의 진산이라고 하는 봉의산 북쪽의 소양강 다리를 건너서 화천 쪽으로 가다 보면 춘천농공고가 있는 곳에 동서로 두 마을이 한 길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는데 마장 리와 가라메기마을이다.
신작로에서 가라메기 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개발묘포의 창고가 서 있고 그 옆에는 공동우물이 있어서 마을의 여인들은 이 물을 길어다가 밥을 하고 국을 끓여 먹었다.
이 우물가 길 옆에는 초가집 한 채가 돌아앉아 있는가 하면 울타리를 에워싸고 밤나무 여러 그루가 서 있어서 가을이면 알밤이 수시로 떨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집은 우물보다 낮은 지대에다가 지어서 그런지 매년 여름에 장마만 졌다 하면 부엌까지 물이 차는 바람에 한동안 아궁이에다가 불을 지피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바깥마당에다가 임시로 화독을 걸고 밥을 끓여 먹게 되니 그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집의 주인이 되는 염 치성은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장가를 들었는데 새색시가 얼마나 알뜰하고 살림을 잘 하는지 동네에서는 은근히 그들 부부를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나이까지 그가 혼자 산 것은 열 살 때에 부모님이 당시에 유행하던 전염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불쌍하다면서 그 아이를 거두어 주었기에 사람노릇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외모는 못난이라고 할만치 얼굴은 네모가 지고 눈이 너무 커서 아이 적부터 왕눈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부터 작달막한 키에 몸은 뚱뚱하면서도 힘만은 장사 소리를 들을 만치 세어서 그와의 팔씨름에는 당할 사람이 없었다.
그는 농토라고는 땅이고 논이고 간에 한 평도 없었기에 노동으로 품팔이를 하면서 근근이 잡곡밥으로 연명을 하였다.
농촌에 살다 보니 일이 없을 때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장에 나가 팔아서 쌀을 사먹었다.
염 치성은 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를 않아서 까막눈으로 자랐지만 눈썰미는 좋아서 무엇이건 한번 보게 되면 만들기를 잘 하였다.
농촌에서 흔히 쓰이는 가마니며 멍석 대래키 종드래키며 방안에 까는 지직까지 다 손수 만들어서 쓰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심지어 나무로 만들 수 있는 함지며 쇠귕까지도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쌀 되박이라도 봉당에다가 갖다 놓고 가져가게 되니 먹을 양식은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의 부인은 송아지를 사서 기르고 개와 돼지를 한두 마리씩 키워서 돈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면 그 돈으로 농토를 조금씩 마련을 하였다.
염 치성은 동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는데 한 여름 장마 때 비피해로 곡식이 넘어지게 되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일으켜 세워서 농산물이 손해가 나지 않도록 하였다.
해마다 추석 때가 다가오면 동네 사람들은 덜 여문 벼라도 털어서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본 염치성은 자기도 새로 산 농토에서 수확한 곡식으로 제물을 만들어서 남이 하듯이 조상을 받들어 모시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해마다 추석 무렵이면 어느 학교에서는 가을운동회를 하였는데 그때를 기해서 동네에서는 마을을 대표해서 선수들을 뽑아서 각종 경기에 출전을 시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경기는 청년들의 100m 경기와 가마니 들고 서 있기였다.
그런데 마을마다 청년들이 당당하게 뽑혀서 나오지만 염 치성네 동네에서는 해마다 나가서는 꼴지를 하여 올해는 잘 달리는 선수가 나가야 한다며 선수를 다시 뽑았지만 지난해에 선수가 도로 뽑히었으니 마땅한 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수가 귀하다 보니 올해는 운동회에 한 번도 출전을 해보지 않은 염치 성으로 하여금 나가보라는 말이 들리는 것이다.
염치성은 지금까지 운동회는커녕 누구와 겨뤄서 달리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선수로 나가라고 하니 처음에는 못나겠다고 뻗혔지만 동네의 어르신들이 모두 추천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대답을 한 것이다.
염 치성은 운동회 날 아침 일찍 조반을 먹고 학교엘 가니 운동장 구석진 곳에서는 돼지를 잡아서 마을 어르신들을 대접을 하기 위해서 국을 끓이고 만국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풍금소리가 울리니 아이들은 모두가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염 치성은 처음 와보는 운동회야말로 마을사람들의 큰 잔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운동회의 시작을 알리는 북이 울리자 전교생이 파랗고 하얀 운동모자를 쓰고 짧은 팬티를 입은 채 손을 흔들면서 트랙을 돌며 노래를 부르자 학부형들은 손뼉을 치면서 아이들을 격려하였다.
마침내 어린이들의 경기가 시작되고 달리기를 한 후에 상품을 받아서 아빠 엄마에게 갔다가 드리는 것을 본 염 치성은 그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어서 아이를 낳아서 학교를 보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마침내 청년들의 경기가 시작이 되고 염 치성이 100m 경기에 출전을 하였는데 매일같이 지게만 지고 다닌 그가 막상 총소리가 울려서 달려보니 마음은 금방이라도 앞에 뛰는 사람을 따라 잡을 것 같았지만 다리가 나가지를 않으니 중간에서 휘청거리며 고꾸라지는 바람에 염 치성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창피한 생각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응원을 나온 부인네들은 염 치성이 넘어지자 저런저런 하면서 안타까워하였지만 결국은 꼬바리릃 면치 못하자 올해도 마을의 체면이 서지를 않는다며 모두가 실망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마니 들고 서 있는 경기가 있다면서 어서 나가라는 독촉을 하는 것이었으니 두 번 창피를 당하고 싶지를 않아서 얼른 나서지를 않자 이기고 지는 것은 해봐야 결판이 난다면서 어서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바람에 달리다가 엎어져서 허리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할 수 없이 운동장 가운데 가마니가 놓여 있는 앞으로 나가서 선 것이다.
선수들은 모두가 여덟 명이 나왔는데 방금 전에 달리기를 하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차려 와 동시에 총소리가 울리자 모두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가마니를 들었는데 염 치성이 들어보니 예상외로 거뿐하였다.
타작마당에서는 볏가마니 하나쯤은 거뜬하게 들고 지게로 볏가마니를 진다면 두어 가마니를 넉넉하게 지던 염 치성은 눈을 똑바로 뜨고 가마니를 들고는 옆 사람의 눈치를 살펴보니 조금 있으면 그들은 맥없이 가마니를 놓을 사람들 같았다.
5분이 지나고 나니 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단 세 사람. 7분이 지나자 모두는 아이고 할아버지 하고는 가마니를 내려놓는 것이었으나 염치성만은 눈을 딱 부릅떴다가 감고는 뻗히고 서있자 운동장 주위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 염 치성이 가마니 들기에서 1등이다.”
“ 만세.”
그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 고만 내려 놓으셔도 되겠습니다.” 하는 소리에 염 치성은 눈을 뜨고는 가마니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염 치성은 모처럼 1등을 하여 쌀 반가마니를 상품으로 타게 되자 농악대들이 염 치성을 가운데로 에워싸고는 꽹과리를 두드리면서 맴을 돌리는 것이다.
그 얼마 후에는 면별 대항 청년 씨름대회까지 열리게 되었는데 우승자에게는 송아지 한 바리가 주워진다고 하자 동리에서는 이번에도 염 치성이 나가야 된다고 하여 그가 동네의 대표로 뽑힌 것이다.
그날 학교 운동장에는 면 별로 선발된 씨름 선수들이 50여명이 넘었는데 그들의 체구를 살펴보니 그야말로 황소처럼 덩치가 큰 선수가 있는가 하면 절구통처럼 몸집이 굵은 사람에 키는 구척같이 크지만 삼단처럼 빼빼 꼬여 마른 선수들 하며 염 치성처럼 키가 작은 선수도 몇 명이 섞여 있었으니 씨름이 벌어지면 별별 장면이 다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조별로 예선을 거쳐서 준결승까지 빠 올라온 면모를 살펴보니 황소의 체구를 가진 선수와 빼빼마른 선수 그리고 키가 작은 염 치성을 비롯하여 다부지게 생긴 선수들이 저 나름대로의 기량을 겨루며 올라 온 것이다.
씨름이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자 농악대가 징을 울리면서 씨름장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꽹과리를 울리자 마을별로 환호를 보내는 것이었으니 운동장은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가마솥에 돼지국밥을 끓이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동네의 어르신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하느라 아주먼네들이 분주하였다.
마침내 씨름 경기가 시작이 되자 남여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네 선수가 이기기를 바라면서 씨름장 둘레로 모이게 되니 선수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마침내 경기가 시작이 되고 빠아 올라가다 보니 마지막 결승에 도전하게 된 선수는 황소이상으로 몸집이 큰 선수와 키가 작은 염치 성이 붙게 된 것이다.
두 선수가 씨름장에 들어서자 둘레에 있던 사람들은 ‘’와“하고 탄성을 질렀는데 두 선수의 체구의 차이는 어른과 아이의 대결처럼 보였지만 막상 씨름이 시작이 되자 바로 염 치성이 황소의 안다리를 걸고 넘기자 황소는 그 큰 덩치가 쿵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맥도 없이 나가떨어지니 관중들은 ”와“하고 함성을 지르는 것이다.
한판에 무너진 황소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이번에는 하고는 양 손바닥에 침을 탁탁 뱉고는 다시 샅바를 단단히 거머쥐고 호루라기 신호에 따라 힘을 주는 찬 라에 염 치성이 이번에는 살짝 뒤로 물러서면서 황소를 앞으로 잡아채자 그 덩치 큰 황소는 아까와는 반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얼굴이 모래에 파묻혀 모래가 입과 코로 가득 들어갔으니 승패는 곧 결정이 난 것이다.
이날 송아지 한 바리를 상품으로 타게 되자 양지마을에서는 징을 울리면서 동네로 향하는 것이었으니 마을이 생긴 이래 이렇게 경사가 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 문턱이라고는 가보지도 않던 염 치성이지만 이번을 계기로 그에게는 무슨 일이건 간에
자신을 갖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저녁에 염 치성은 송아지를 타온 김에 동네잔치를 열기 위해서 학교 운동장에다가 가마솥을 걸고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고고 국밥을 만들어서 온 동네 사람들을 대접하니 모두가 좋아하였다. 청년들은 어르신과 동네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에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술잔을 나누었는데 그리고 나서 모두가 헤어진 것은 자정이 가까워서였다.
염 치성은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와서 바깥마당에 서있는 밤나무 밑에 앉아서 전날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어둠속에서 염치 성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 염 치성이지. 이리 와 보라구.”
염 치성은 누구의 목소리인지 분간을 못하고 소리 나는 쪽을 보다가 염 치성과 씨름을 상대하던 황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 어떻게 여기를 찾아오셨소.”
사실 염 치성은 이 황소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에 살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형무소까지 갔다 왔으며 당분간 친척집에 와서 있다가 그날 씨름대회에 처음으로 출전을 하여 염치 성에게 패했던 것이다.
염 치성이 말을 하자 이 황소는 염 치성에게 다가서면서 어깨를 잡더니 한손으로 밀어저치는 바람에 염 치성은 맥도 없이 저만치 나가곤드라지고 만 것이다.
염 치성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누구와 싸움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공격을 당하고 보니 궁둥이가 아파서 일어나지를 못하다가 한참만에야 일어섰지만 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너 앞으로 단단히 조심해. 안 그러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하는 것이아닌가.
염 치성은 이 말을 들으면서 겁이 났지만 술 한 잔을 먹었겠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서 대답을 한 것이다.
“ 뭐야. 너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러고도 온전할 줄 알았냐.”
워낙 빡세게 나가자 상대방이 주춤하는 사이에 염 치성은 씨름을 할 때의 용기를 내서 그의 멱살을 잡는 동시에 머리로 그의 이마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러자 “어이쿠” 하면서 황소는 나가떨어지는데 금방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때에 동네 청년 서너 사람이 다시 술 한 잔을 나누고자 염 치성을 찾아오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발발이 별명을 가진 청년이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지서로 순경을 부르러 뛰어가고 두 청년은 다친 황소의 얼굴을 닦아 주는 것이다.
사실 이날 황소가 염 치성을 찾은 것은 씨름 이야기를 하면서 하우를 하기위해서 왔다가 술김에 저렇게 보잘 것 없는 놈에게 지다니 하고는 성질을 부린 것이 화를 부른 것이다.
나중에 순경이 와서 진상을 보고는 술김에 벌어진 일이니 하우를 하라는 바람에 둘은 손을 잡았는데 이후에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었으니 염 치성이 두 살 위라서 형이 된 것이다.
황소는 그 후 서울에서 자주 의형인 염 치성네 집으로 놀러 왔고 염 치성도 한번인가 서울에 가서 대접을 잘 받고 내려왔는데 그 후에도 염 치성은 농사를 지으면 쌀을 보내고 김장철이면 배추를 보내면서 두 집의 교류는 끈끈하게 이어진 것이다.
염치성이 씨름에서 1등을 하고 송아지를 탄 이후 서로가 품앗이를 할 때마다 힘이 드는 일이 생기면 일꾼들은 염 치성을 불러댔는데 그날도 새벽부터 벼타 작을 하다 보니 한쪽에는 볏가마니가 자꾸 쌓이기만 하였다.
“ 치성아. 여기 볏가마니는 자네가 날라야 하겠어.”
염 치성은 처음에는 군말 없이 볏가마니를 들어서 날랐는데 계속해서 나르다 보니 나중에는 힘이 좀 들었는데도 옆에서는 어서 가마니를 나르지 않는다고 핀잔까지 주는 것이다.
“ 왜 벼 나르는 것을 나에게만 시키는 거야.”
“ 그럼 이 마당에서 염 치성 내놓고 어느 누가 저 무거운 볏가마니를 날라야 한단 말이야.”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하자 또 다른 청년이 말을 거든다.
“ 아무리 보아도 힘을 쓸 만한 사람은 염 치성 자네뿐이니 자네가 할 수밖에 더 있겠나.”
“ 정작 힘이 센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보다도 저기 왕 재호가 더 센 것을 모르는군.”
“ 아니 힘이 센 자가 왕 재호라니 그 게 무슨 말이야 .”
“ 이 많은 사람 중에 애를 제일 많이 낳은 사람이 왕 재호니까 하는 소리지.”
“하하.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한 것 같네.”
“ 자네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그려. 애를 낳은 사람은 마누란데 거기 왜 왕 서방이 들어가느냔 말이야.”
“솔직히 말을 해서 마누라가 저 혼자 애를 낫냐. 힘이 좋은 신랑이 있기에 매년 아이들이 튀어나오는 것이지.”
“ 하기야 그 말을 들으니 일리가 있긴 하네. 하하,”
“ 염 치성이 운동회에 한번 나가더니 어떻게 애 만드는 일까지 생각이 넓어진 게 아니야.”
“ 그렇게 따지고 보니 염 치성보다 왕 서방이 힘이 센 게 맞긴 하네. 염 치성은 아직 아이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는 총각신세나 같지 않아.”
“ 뭔 소리여. 지금은 아이 하나도 없지만 저 사람은 힘이 장사여서 한꺼번에 세 네 명씩은 만들어낼 걸.”
“ 옛기 이 사람들아. 돼지새끼를 낳는 것도 아닌데 세 네 명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구.”
“ 아니야 그것은 모르는 소리야.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다섯 쌍둥이를 낳았다고 하던데.”
“ 그래. 나도 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염 치성이 한꺼번에 다섯 쌍둥이를 낳게 되면 내 손에 장을 짓겠다.”
“ 사람들 하고는 여기가 애 낳는 품평회도 아닌데 왜 그런 소리를 자꾸 하느냐구. 그러지 말고 우리 술 먹는 이야기나 하세 .”
“ 그래 그 말이 옳은 소리야.”
“ 자 자. 고만들 하고 어서 볏단이나 날라 오세.”
타작마당이 한 바탕 힘자랑 이야기로 시작이 되면 하루 종일을 두고 옛날에 산판에서 있었던 이야기며 과붓집 출입하던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판이었다.
염 치성은 한해 농사를 쫓아다니느라 봄부터 가을까지 늘 바쁘게 지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황소 동생 생각이 나서 소식을 알아보았더니 뜻밖에도 황소가 병이 났다는 것이다.
염 치성은 그렇게 건강한 사람이 병이 나다니 하고는 서울로 올라가서 만나보고는 깜짝 놀란 것이니 1년 만에 몸무게 90kg에서 56kg로 빠져 사람을 알아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말을 들어 보니 워낙 몸이 비대하였지만 갑자기 당뇨가 생기더니 체중이 빠지기 시작을 하여 지금은 일어설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불편하다고 하였다.
" 형님을 꽤 오래간만에 만나는 거지요. “
“그러고 보니 일 년은 실히 된 것 같은데. ”
황소가 손을 들어서 염 치성에게 악수를 청하는데 그 몸을 보고는 너무도 안쓰러워서 염치성은 그의 손을 잡자마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동생. 이 어찌된 일인가. 이렇게 사람이 많이 변하다니 의술이 많이 발달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약을 잘못 써서 이런 게 아닌가.”
염 치성은 황소가 너무도 불쌍하여 한동안 눈물을 흘리다가 그의 손을 잡으면서 다시 말을 하였다.
“우리 동네에도 자네처럼 당뇨로 고생하던 사람이 있어 죽는다고 하더니 어느 날부터 회복이 되기 시작을 하면서 3년 만에 살아난 사람이 있으니 내가 가서 연락을 하거든 그 약을 해먹도록 하게.”
염 치성이 내려와서 당뇨병이 나은 사람을 찾아가서 알아보니 그는 이유 없이 눈이 나빠지더니 나중에는 실명까지 당하고 한동안은 실망 속에 폭음을 한 것이 당뇨의 원인이 되었는데 나중에 아내가 여러 가지 약을 제조해서 먹이는 바람에 회복을 하였다는 것이다.
염 치성은 돈이 암만 들어도 그 약을 구해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약재를 가리켜 주는데 그것은 밭에 흔히 나는 쇠비듬으로 그 풀은 오뉴월에 뽑아서 빨랫줄에 널어놓아도 죽지 않는 풀이라고 하였다.
염 치성은 이 약을 해먹이려면 동생을 시골로 내려오게 해야 되겠어서 방 하나를 비우고는 황소로 하여금 집으로 내려오게 한 것이다. 황소는 처음에 어떻게 형님에게 신세를 지느냐면서 죽어도 오지 않겠다는 것을 억지로 설득을 해서 내려오게 하니 그날 밤으로 시골로 내려온 황소는 시골엘 오니 공기가 맑아서 살 것 같다는 말을 제일성으로 하였다.
염 치성은 다음 날부터 쇠비듬 밭을 찾아다니면서 뽑아다가 뿌리 채 깨끗이 씻어서 큰 주전자에다 넣고는 푹 달여서 하루 세 번을 한 대접씩 먹게 하니 황소는 아무 말도 없이 잘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과 같이 황소가 한 달을 먹고 났는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밥맛을 알게 되고 기운이 그렇게 없어서 답답하다 하였는데 차츰 차츰 기운을 차리게 된다는 말을 하더니 반년이 되자 빠졌던 얼굴에 거짓말처럼 살이 붙기 시작을 하는 것이었다.
염 치성도 그렇지만 황소는 자기 몸의 변화가 오는 것을 느끼게 되자 이제는 살고 싶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을 하였다.
염 치성의 성의와 황소의 참을성 있는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자 황소는 이제 죽지 않아도 될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었으니 이를 지켜본 염 치성은 날마다 기쁘고 감사했으며 황소가 내려온 지 2년 만에 몸은 회복기에 들면서 서울로 올라가게 된 것이다.
“형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되나요.”
“ 은혜라고 하였는가. 다시는 밤중에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 형님도 참. 이제야 한 밤중에 찾아오면 어떻고 새벽에 찾아오면 어떻습니까. 동생이 형님 댁을 찾아오는데 말이지요. “
“ 동생 정말 고맙네. 이 시골 사람도 자네로 해서 많이 배웠네. 오래오래 살면서 옛날이야기를 하세 그려.”
“그래요 형님 고맙습니다.”
황소의 눈에서는 어느 결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염 치성은 원래 화천지방의 산골에서 태어났으나 조실부모하는 바람에 천애고아로 이집 저집 아줌마들의 동냥젖으로 겨우 연명하는 것을 보다 못한 주막에서 술 됫박이나 팔면서 살아가는 과부가 데려다가 수양아들 삼아 길렀던 것이다.
염치성은 자라면서 자신의 출생비밀을 안 다음부터 주막의 아줌마를 친 엄마 이상으로 효성을 다하는 것이었으니 어머니는 그것이 대견하여 늘 오지랖 넓게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애가 얼마나 똑똑한지 글쎄 기생방 근처에도 가지를 않았는데 노래 가락을 얼마나 잘 하는지 모르겠어.”
“ 아주머니. 노랫가락은요 아무나 여러 번 듣기만하면 다 부를 수가 있대요.”
“ 그 거짓말 내 앞에서는 하지도 말아. 나는 아무리 들어도 배우지를 못하겠던데.”
“아주머니 그런 게 아니구요. 누구나 다 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배우고자 하지를 않아서 그래요.”
“ 그러니 우리 애가 잘 한다는 말이 아니야.”
그렇게 아주머니가 강하게 나가자 더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으니 동네 여인들이 모두가 까막눈이다 보니 더는 그런데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 내 남적 없이 무얼 알아야 하다못해 면장이라도 한다구 여편네들이 우물에 모이기만 하면 쓸데없이 허튼 소리들이나 하고 있으면 어디다가 쓰겠어. 지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밥만 먹지 말고 눈깔이나 뜰 생각들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냔 말이야, 벽에 방이 붙어도 꺼먼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는 것만 알아 가지고야 어떻게 까다로워지는 세상을 살아가느냐구.”
이렇게 아주머니가 여편네들을 만날 때마다 공자 왈 맹자 왈을 외쳐대니 여편네들은 아주머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 후에 과부는 몸이 좋지 않아서 주막을 고만두고는 가라메기 마을로 이사를 왔던 것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 듯 염치성도 아들 둘에 딸 셋을 낳았으니 젊었을 때에 타작마당에서 한 농담 속에 한꺼번에 아이 서너 명을 낳지는 못하였지만 지금까지 다섯을 낳았으니 힘이 장사여서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염치성의 아이들이 다 성장을 해서 첫딸을 시집을 주어야 할 때가 된 때였다.
때는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사흘 만에 춘천이 인민군에게 함락이 되고 서울 또한 사흘 만에 빼앗기게 되니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남한을 점령한 즉시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한 주민들을 꼼짝 하지 못하도록 저녁마다 공회당으로 모으고는 스탈린이 출현하는 무성영화를 보여주면서 공산당 특유의 회유책을 강구하기 시작을 하였다.
그뿐 아니라 청년들은 따로 청년동맹을 조직토록 하여 일사불란하게 그들의 행동에 조력토록 하였다.
그들의 술책 중에서 특징적인 것을 말한다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낙네는 그들대로 저녁마다 11시까지 어떤 집에 모이도록 하고는 회의를 하였는데 그 내용은 남한을 다 점령하였으니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야 살아 갈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 전 지역이 한꺼번에 공산당의 지배를 받게 되자 동네에는 빨간 완장을 찬 지방 빨갱이들이 우굴 거리면서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지방의 공무원 가족이며 경찰가족과 군인가족들의 가택수색을 시작하였다.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면서 그들은 지금까지 남의 머슴으로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불러 그들에게 완장을 채우고는 부락의 부호로 살던 사람들의 가족을 마을 한가운데로 불러낸 후에 지방 빨갱이들은 그 사람들 앞에서 서류를 꺼내서 낭독을 하였으니 그것이 인민 재판이라는 것이다.
“ 여러 동무들! 지금 이 자리에는 그동안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호의호식하던 무리들을 붙잡아다가 이렇게 인민의 앞에 세웠습니다. 이 자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비평할 사람은 하시라요.”
그러자 군중 속에서 손을 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 이 자들은 인민의 적이요. 김일성원수님을 반대한 자들이니 당장 이 앞에서 몰살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자 대중 앞에 선 자들이 “ 옳소” 하자 모두가 “옳소” 하면서 박수까지 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각본에 따라 부자들의 가족을 죽이기로 결정을 하고 그들로 하여금 구덩이를 파게 한 것이다.
“옳소“ 소리와 동시에 난데없이 죽창을 든 청년들이 서 있던 가족들을 구덩이로 밀어 넣은 다음에는 참아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마구 찔러대니 그 가족들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구르면서 죽어간 것이다.
아! 이토록 잔인한 방법으로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백성들을 살육을 하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이었으니 6.25때 그 얼마나 많은 애국동포들이 죽임을 당했던 것인가.
그때 염 치성도 어느 날 공산당간부의 호출로 불리 켜 나갔는데 그들은 그에게 완장을 채워주면서 민청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달라는 것이었으니 염 치성은 공연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마음이 흥분이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농지 위원이라는 감투가 주어졌는데 그 이후에는 매일같이 민청사무실에 나가서 할 일을 부여받았는데 그의 임무는 농산물에 대한 평가를 하는 업무였다.
이를테면 농산물 즉 벼 조 콩 등의 수확량을 책정하는 임무로서 한 평 당 얼마의 수학이 나는지를 벼 알갱이나 조 알갱이를 일일이 세어서 판정을 내리는 임무였다.
염 치성은 지금까지 농사를 지어도 벼 알갱이를 세는 농사를 해 본적이 없는데 이런 기발한 착상을 한 자체가 농민들의 고혈을 빨기 위해서 철저하게 위장된 감독감시를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공산당의 술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 농민들이 가장 위대한 공산주의자들의 근간이라고 하였지만 노동자 농민을 착취대상으로 하는 것이 공산주의라는 것을 남한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때 염 치성은 저녁마다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기 위해서 민청사무실로 가서 부락마다의 출장 사항을 보고하였지만 그때마다 염 치성은 통계를 잘못했다는 책망을 들어야했다.
사실 그때의 보고 사항은 구두였고 그것이 통하던 시대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민청 위원장이나 위원 되는 사람들은 사실 공부라는 것을 하지 못한 남의 머슴살이를 하던 사람들이었기에 모두가 까막눈에 무식쟁이가 태반이었다.
그들은 남한을 점령하자마자 관 공소에서 최하위 근무를 하던 사람이나 남의 공용되어 있던 사람들을 뽑아서 높은 자리에 앉혔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런 자리에 앉게 되면 사람에 따라서 어떻게 변하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들 개 중에는 물 불가리지 않고 공산당의 앞장을 서서 선전을 하였으니 북한체제가 그들 말대로 남한이 완전히 해방이 된 것으로 착각을 하기에 충분하였던 것이다.
민청사무실에 염 치성이 들어가게 되면 깍듯이 경례를 올려붙이고 보고를 하였는데 그때마다 위원장은 거들먹거리면서 지휘봉을 휙휙 휘두르면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염 치성이 나가는 사무실에는 처음에 평양에서 내려온 고관이 일을 본다고 하였는데 평양도 말의 악센트가 강하여서 정남이가 다 떨어졌다.
한번은 저녁 늦게 사무실로 들어갔더니 그날은 기분이 좋은지 편안한 자세로 앉으라고 하면서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오늘 밤에는 멋지게 저녁파티를 할 테니 염 치성도 참석을 하라면서 강하게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 동무. 일을 하다가 서툴게 구는 자가 있으면 즉결처분을 해도 괜찮으니 그렇게 하라오. 그리고 혹시 일을 하다가 허출한 생각이 나거든 아무 때고 말을 하라오. 무슨 말인지 알았지비. 그 다음 동네를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색시가 있거든 일을 치러도 괜찮다 그 말이야. 하하.”
처음 한 달 동안은 부락을 담당한 민청위원이며 내무서원들이 활발하게 자기들의 선전에 열을 올렸지만 유엔군의 지상군이며 공군이 참전을 하게 되자 낮에는 인민군의 차량이 한 대도 다니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민군을 태운 트럭이 한길에 나타나기만 하면 어느 결에 쌕쌕이가 소리도 없이 날아와서는 집중폭격을 가하고는 날아갔기 때문이다.
전쟁은 보급 물품이 제때에 공급이 되어야 먹고 입는 것에 대해 제한을 받지 않을 텐데 대낮에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수송부대며 차량들이 꼼짝도 하지를 못하였으니 인민군들이 무슨 수로 이 전쟁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그 당시 춘천에서는 집집의 한 사람 씩을 동원하여 춘천역에 보관했던 쌀을 운반하도록 시켰는데 춘천에서 홍천 북방면까지 등짐으로 나르게 하였던 것이다.
한나절에야 춘천을 떠나면 다음날 아침이 되어야 겨우 북방면의 한 지점 (길가의 넓은 묘역)에 쌀을 부리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그때를 돌이켜본다면 전쟁은 이미 공산주의자들이 패할 것이라는 판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소문으로는 인민군이 후퇴를 시작하여 곧 수복이 될 것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을 하자 동네 사람들은 밤저녁에 불도 제대로 켜지 못하면서도 사랑방에 모여서는 남한 방송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매일같이 B29가 공중 높이 떠서는 소양강의 교량을 파괴하기 위해서 폭탄을 떨어트렸다. 그때마다 천지가 진동을 하였으나 다리는 쉽사리 끊이지를 않다가 몇 번 만에야 겨우 성공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가 다 지고 어두워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염 치성네 집 밖에서 망을 보는 것이었다.
염 치성은 그날 일을 마치고 저녁 늦게야 집으로 돌아오는 중인데 그 사람을 만나고는 소스라쳐 놀라고만 것이다.
“ 형님 나예요. 형님이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 아니 동생이 여길 어떻게 왔는가. 몸은 괜찮은가 .”
염 치성을 얼른 그를 방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 형님 지금 무슨 일을 맡으셨습니까.”
그가 너무도 의미심장한 말을 하여 염 치성은 솔직하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려 주자 그는 손바닥을 귀에다 대고 귓속말을 하는데 겨우 들을 수가 있는 말이었다.
“ 형님. 지금 인민군들이 유엔군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국군이 수복을 하게 되니 형님은 어서 민청사무실에서 탈피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 당장이라도 이 집을 떠나셔야 살 수가 있어요. 아셨지요. “
“ 그럼 자네는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인가 .”
“ 저의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이다음에 좋은 시절이 오게 되면 그때 다시 만나요. 형님 덕에 이 동생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난 것에 대해서 늘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말을 하더니 황소는 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서 염 치성의 손에다가 쥐어주고는 급하게 나가려고 하였다.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그래.”
“ 나 지금 일행이 있고 서울로 올라가야 돼요. 형님을 만나지 않고는 안 되겠어서 온 걸요.”
황소는 염 치성을 한번 안아주고는 어둠속으로 급하게 살아지는 것이다.
멍하니 그가 나간 밤길을 바라보다가 방안으로 들어와서 그가 주고 간 것이 무엇인가 하고
뜯어보다가 그는 깜짝 놀란 것이다.
거기에는 황금 열쇠가 하나들어 있었던 것이다.
염 치성은 황소가 왔다간 일이며 그가 주고 간 황금열쇠를 보면서 아무래도 그가 공산당간부로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 여보게 자네 북한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
한번 물어볼 것을 하고 후회를 하였지만 그는 이미 떠나고 없으니 염 치성은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그가 살아진 밤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염 치성은 아내로 하여금 오늘 밤에 간단한 짐을 꾸려가지고 서면으로 가자고 하자 아내는 왜 갑자기 가느냐고 하는 것이다.
“ 어제 밤에 황소의 이야기대로 우리가 사는 길이 피란을 가는 길이라고 하였으니까 가야 돼.”
다음날 염 치성이 출근을 하자 분위기가 사뭇 갈아 앉았는데 위원장이 염 치성을 불러서 다가가자 오늘 저녁에 일이 많으니 집에 갈 생각을 말라는 것이었으니 염 치성은 아내에게 피란보따리를 간단하게 꾸리라고 하였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오늘 저녁에 피란을 나가지 않으면 황소의 말마따나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염치성의 마음은 진정할 수가 없었다.
위원장의 말대로 대원들은 저녁에 철야 근무를 해야 된다면서 다른 날과 달리 저녁상을 사무실에다가 차리는데 거기에는 돼지고기며 막걸리 주전자들이 상위에 잔뜩 차려져 있었다.
얼마 후에 민청위원장이 음식상 가운데 앉고 대원들 20여명이 둘러앉자 위원장이 한 마디를 하였다.
“ 여러 동무들. 나는 오늘 다소 심각한 말을 하려는데 겁을 먹을 것은 없고 다만 전과가 좋지 않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우리가 합심하면 기필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으니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단단히 해주기를 바란다.”
대원들은 “네”하고 대답을 하면서 막걸리를 후루룩 마셨지만 염 치성은 위원장의 말에 신경이 쓰여서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 염 치성. 왜 안색이 걱정스런 표정이냐. 무슨 일이 집에 있는 거냐. 걱정하지 말 라오. 사실은 말이야 너나 나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께 니 너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실컷 하라오 .”
“ 네. 알았습니다.”
“ 아. 그리고 내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농지위원 중에 그 예쁘장한 통계처리 잘 하는 아 있지. 30분 이내로 내 숙소로 보내라오. 내 할 말이 있으니께 니 말이야. 알았지 비.”
염 치성은 그가 말 한대로 사무실로 내려가니 유 애순이 방금 돌아와서 앉아 있는데 술을 한잔 마셔서 그런지 얼굴이 복숭아꽃처럼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 유 동무. 위원장 동무가 빨리 숙소로 올라가 있으라고 하던데. 좋은 일이 있을 모양이지.”
“ 위원장 동무가요. 나 싫어요. 조국을 위해서 내 몸 하나를 희생하라고 하더니 밤새도록 나를 못살게 굴었는데 또 그 짓 할려고 그러겠지요. 나 오늘은 안 갈래요.”
“ 동무. 정신 똑바로 차리라오. 이제 후퇴하게 되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뭐이 아까운 게 있겠냐. 위원장 동무의 명령을 거스르다가 권총 맞아죽지 말고 어서 가봐. 기왕지사 웃으면서 그가 하는 대로 맡기라니까.”
“ 나는 죽어도 그 새끼한테는 안갈 거예요. 저를 살려 주세요.”
염 치성은 우선은 이 시간 이후의 자기의 처신에 대해서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 애순에게도 이 생각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귓속말을 전하였다.
“ 유 애순 동무. 지금 시간이 없으니 우선은 오늘밤에 이 사무실을 떠나서 여울 건너 서면으로 갑시다.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위원장에게 죽지 않으면 비행기 폭격에 죽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요.”
“ 그렇지 않아 저도 그런 생각을 이미 하고 있던 중이에요. 그럼 급한 대로 어서 이 자리를 피하도록 하세요. 내일 밤에 금산 배터에서 뵐게요.”
위원장이 염 치성에게 유 애순을 보내라고 한 후에 숙소로 돌아가려던 순간 난데없이 쌕쌕이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지자 민청위원장은 대원들을 향해서 모두 방공호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비행기 소리가 나자 염 치성은 죽을 사람을 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체 없이 집으로 내달렸으며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손을 잡고는 칠흑같이 어두운 여울물을 건넌 것이다.
이튿날 저녁에 그는 유 애순을 만나기 위해서 금산 배터엘 나가서 사방을 찾아보았으나 그는 어디에도 나타나지를 않았다. 분명히 여기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오지를 않다니. 염 치성은 아무래도 그가 여울물을 건너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입이 바작바작 마르기만 하였다.
‘도대체 왜 나타나지를 않는 거야.’
초승달만이 말없이 서쪽으로 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염 치성의 가슴에는 유 애순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인민군이 대구와 부산을 남겨놓고 낙동강 전선에서 힘겨운 싸움을 유엔군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지 꽤 오래 되었는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민군이 후퇴를 하게 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마침내 9월28일에는 인민군에게 빼앗겼던 수도서울을 국군이 탈환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인민군이 후퇴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무렵부터 저녁마다 춘천농고 운동장에는 후퇴하는 인민군들이 수도 없이 몰려들고 있었는데 들것에 실려 오는 인민군부상병들이 더 많았다.
저녁마다 확성기를 틀어놓은 가운데 17.8세의 여자 인민군의 선전대원들은 전쟁을 패하면
서도 우리는 결코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지만 그 말을 고지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후퇴하던 인민군조차 남한에 남고 싶지만 부모님이 북에 계시니 안 갈수도 없어서
할 수없이 가긴 하지만 이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인 줄 알면서도 간다는 말까지 하였다.
서면으로 피신을 한 염 치성은 며칠이 지난 뒤에 먹을 양식이 떨어져서 부득이 강 건너 집
엘 갔다 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밤이 이슥할 때에 여울물을 건너서 집에 당도하고 보니 어둠
속의 집이지만 금방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집안의 동정을 살피기로 하고 싸리문 앞에 선 것
이다.
그런데 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쳐
놀란 것이니 마루위에는 이번에 동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민청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변
옥재가 여자 한명과 나란히 앉아서 무슨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 치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이자에게 잘못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에서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는 여울물까지 한걸음에 치달려서는 집에 도착을 하니 아내가 깜짝 놀라는 것이
다.
“왜 벌써 왔어요.”
“ 까딱하면 죽을 번 하였어. 민청부위원장을 만나는 바람에 한달음에 달려왔지.”
“어마마. 큰 일 날 뻔 하셨네요."
"큰일이나마나 까딱 잘못하면 영영 당신을 보지 못할 뻔 하였다니까. “
만일에 경우 변 옥재에게 들켰다면 그는 여지없이 구둣발로 짓이김을 당했을 것이다
사실 염 치성은 민청사무실의 일원으로 있으면서도 매일같이 전쟁에 대한 불리한 소식을 듣
긴 하였지만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를 모르고 지내다가 황소를 만나게 되고 그가
중요한 소식을 전해주는 바람에 위험한 소굴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으니 그것이 그가 사는
길이었던 것이다.
우연히 맺어진 인연으로 해서 염 치성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으며 그 인연은 마침내 자기
의 운명까지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니 인간에게 주어진 진정한 사랑의 끝은 어디까
지라고 할 것인가.
염 치성은 그 후 살아가면서 황소의 애틋하던 인간미를 잊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순수한 사
람을 붙잡지 못한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몰랐다.
9월 들어서면서 부터 홍천 쪽에서 포성이 울리고 점차 그 빈도가 자주 있더니 마침내 10월초 새벽을 기해서 춘천에 유엔군과 국군의 선발대가 트럭을 타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들어오는 것이었으니 온 동네사람들은 모두가 태극기를 꺼내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던 것이다.
金 斗 洙
‣ 시조시인. 수필가. 소설가.
‣ 한국소설가협회 운영위원
‣ 월간 문학세계 편집위원
‣ 계간 화백문학 강원회장
‣ 계간 상록수문학 심사위원
‣ 계간 농민문학 감사
‣ 한국공무원문학협회 고문
‣ 韓日親善(日本돗도리縣) 西伯郡 靑少年蹴球交流協會長
소설집 1. 크리스마스이브의 사랑 (15)
2. 첫사랑의 바람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