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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명문으로 빛나는 왕발(王勃)의 「滕王閣序」(등왕각서)
南昌故郡 洪都新府 星分翼軫 地接衡廬
남창고군 홍도신부 성분익진 지접형려
襟三江而帶五湖 控蠻荊而引甌越
금삼강이대오호 공만형이인구월
物華天寶 龍光射斗牛之墟 人傑地靈 徐孺下陳蕃之榻
물화천보 용광사두우지허 인걸지령 서유하진번지탑
雄州霧列 俊彩星馳 臺隍枕夷夏之交 賓主盡東南之美
웅주무열 준채성치 대황침이하지교 빈주진동남지미
남창(南昌)은 옛 고을의 이름이고 홍도(洪都)는 새로운 부(府)의 명칭이다. ‘28수(宿)’ 별자리의 방위로는 익수(翼宿)와 진수(軫宿)로 나뉘어 있고, 땅은 형산(衡山)과 여산(廬山)에 접(接)해 있으며, 형강(荊江), 송강(松江), 절강(浙江)이 옷깃처럼 스쳐 흐르고, 태호(太湖), 파양호(鄱陽湖), 청초호(靑艸湖), 단양호(丹陽湖), 동정호(洞庭湖)로 띠로 둘렀으며, 만형(蠻荊)을 끌어안고 구월(甌越)을 당기고 있다.
만물(萬物)이 아름다운 현상은 하늘이 내린 보배요. 황제(皇帝)의 은덕(恩德)이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까지 미치고,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하였던가? 서유(徐孺)가 진번(陳蕃)의 걸상을 내리게 하였단다.
큰 고을이 줄지어 이어지고 준재(俊才)들이 별처럼 치달리며 누대(樓臺)와 해자(垓字)는 오랑캐와 중국 사이에 걸쳐있는데, 손님과 주인은 모두 동남(東南) 지방의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 공(控): 당길 공. 허(墟): 옛터 허. 황(隍): 해자 황.
* 만형(蠻荊): 홍주가 초(楚)에 연(連)해 있고, 초(楚)는 본디 야만국이었으므로 만형(蠻荊)이라 함.
* 구월(甌越)
: 월(越)나라와 연(連)해 있고, 월(越)나라에 구(甌)라는 천(川)이 있어 구월(甌越)이라 함.
* 물화(物華): 만물의 정화(精華). 아름다운 경물(景物).
* 용광(龍光): 황제의 은덕(恩德). 임금의 은혜(恩惠).
* 서유(徐孺)
: 후한(後漢)의 서치(徐穉). 남창(南昌) 사람으로 유덕(有德)하여 만민(萬民)의 존경을 받았다.
* 하진번지탑(下陳蕃之榻)
: 진번(陳蕃)은 홍주의 태수로 평소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일이 없는데, 다만 서치(徐穉)에게만은 예외로 그의 덕을 흠모하여 특별히 걸상을 준비하여 대접하였다.
* 무열(霧列): 안개가 자욱히 피어나듯 줄지어 성관을 이루고 있음을 이름.
* 동남(東南): 동남에 자리한 홍주(洪州)를 가리킴.
都督閻公之雅望 棨戟遙臨 宇文新州之懿範 襜帷暫駐
도독염공지아망 계극요림 우문신주지의범 첨유잠주
十旬休暇 勝友如雲 千里逢迎 高朋滿座
십순휴가 승우여운 천리봉영 고붕만좌
騰蛟起鳳 孟學士之詞宗 紫電淸霜 王將軍之武庫
등교기봉 맹학사지사종 자전청상 왕장군지무고
家君作宰 路出名區 童子何知 躬逢勝餞
가군작재 노출명구 동자하지 궁봉승전
도독(都督) 염공(閻公)은 고상한 명망으로 의장(儀裝)으로 창극(槍戟)을 갖추고 멀리서 부임하였으며, 새로 예주(澧州)의 태수(太守)가 되어 위의(威儀)를 갖추고 임지로 가던 우문균(宇文均)도 수레를 잠시 멈추었다. 십순(十旬)의 휴가(休假)에 훌륭한 벗들이 구름처럼 모이고 천리 먼 곳까지 맞아주니 뛰어난 벗들로 자리에 가득하다.
문장으로 뛰어난 대가인 맹학사(孟學士)요. 늠름한 기상으로는 왕장군(王將軍) 무고(武庫)로다. 가친(家親)께서 현령(縣令)이 되시어 뵈러가는 길이 명구(名區)인 홍주를 지나게 되었는데 어린 내가 어찌 알았으랴? 몸소 훌륭한 잔치를 만나게 될 줄을...
* 계(棨): 창 계. 첨(襜): 적삼 첨. 유(帷): 휘장 유.
* 첨유(襜帷): 수레의 휘장. 여기서는 수레.
* 십순휴가(十旬休暇)
: 십순은 백(百)일. 관리는 십일에 이틀씩 휴가를 받는데 십순의 휴가는 20일이다.
* 등교기봉(騰蛟起鳳)
: 뛰어오르는 교룡(蛟龍)과 날아오르는 봉황(鳳凰)이라는 뜻으로, 재능(才能)이 많은 사람의 비유.
* 자전청상(紫電淸霜): 절조(節操)가 늠연(凜然)한 것을 이름.
時維九月 序屬三秋 潦水盡而寒潭淸 煙光凝而暮山紫
시유구월 서속삼추 요수진이한담청 연광응이모산자
儼驂騑於上路 訪風景於崇阿 臨帝子之長洲 得仙人之舊館
엄참비어상로 방풍경어숭아 임제자지장주 득선인지구관
層巒聳翠 上出重霄 飛閣流丹 下臨無地
층만용취 상출중소 비각유단 하림무지
鶴汀鳧渚 窮島嶼之縈廻 桂殿蘭宮 列崗巒之體勢
학정부저 궁도서지영회 계전난궁 열강만지체세
때는 구월(九月), 계절은 늦가을로 장마도 끝나고 찬 못물은 맑으며 노을이 엉기니 저문 산은 자주 빛이다. 큰 길에 말들을 매 놓고 자연의 풍광을 찾아 높은 언덕에 올랐다가 등왕이 거닐던 긴 모래섬에 이르러 선인(仙人)의 옛 관사(館舍)를 만났다.
층층(層層)의 산봉우리는 푸르게 솟아 위로 하늘을 찌를 듯 하고 날아갈 듯한 누각에 유려(流麗)한 단청(丹靑)으로 아래로는 땅도 없는 듯하였다.
학이 노니는 모래톱과 오리가 헤엄치는 물가는 크고 작은 섬들로 둘러있고 계수나무 전각(殿閣)과 목란(木蘭) 궁궐(宮闕)은 산세(山勢)를 따라 펼쳐져 있다.
* 요(潦): 장마 요. 엄(儼): 의젓할 엄. 참(驂): 곁마 참. 비(騑): 곁마 비.
披綉闥俯雕甍 山原曠其盈視 川澤盱其駭矚
피수달부조맹 산원광기영시 천택우기해촉
閭閻撲地 鍾鳴鼎食之家 舸艦迷津 靑雀黃龍之舳
여염박지 종명정식지가 가함미진 청작황룡지축
虹銷雨霽 彩徹雲衢 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홍소우제 채철운구 낙하여고목제비 추수공장천일색
漁舟唱晩 響窮彭蠡之濱 雁陣驚寒 聲斷衡陽之浦
어주창만 향궁팽려지빈 안진경한 성단형양지포
화려한 문을 밀치며 조각한 용마루를 굽어보니 산과 들이 아스라이 시야(視野)에 가득하고 시내와 연못을 바라보니 눈을 놀라게 한다. 여염(閭閻)의 집들이 땅을 가득 덮었는데 부귀영화를 누리는 집들이며 큰 배들로 나루가 혼잡한데 푸른 공작과 황룡(黃龍)을 그린 배들이다.
무지개가 사라지고 비가 개니 햇볕이 구름을 뚫는데 지는 노을이 외로운 따오기와 더불어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끝없는 하늘과 한 빛이로다. 고깃배에서 어부(漁父)가 저녁 노래 부르니 울림이 팽려(彭蠡)의 물가에까지 이르고 기러기 떼가 추위에 놀라 소리가 형산(衡山) 남쪽의 포구(浦口)에 그치네.
* 수(綉): 수놓을 수. 부(俯); 구부릴 부. 조(雕): 새길 조. 맹(甍): 용마루 맹. 우(盱): 쳐다볼 우.
해(駭): 놀랄 해. 촉(矚): 볼 촉. 구(衢): 네거리 구. 축(舳): 배의방향 축. 축(軸): 굴대 축.
* 종명정식(鍾鳴鼎食)
: 종을 쳐서 식구를 모아, 솥을 벌여 놓고 식사하다,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다. 부귀영화를 누림.
遙吟俯暢 逸興遄飛 爽籟發而淸風生 纖歌凝而白雲遏
요음부창 일흥천비 상뢰발이청풍생 섬가응이백운알
睢園綠竹 氣凌彭澤之樽 鄴水朱華 光照臨川之筆
휴원녹죽 기릉팽택지준 업수주화 광조임천지필
四美具 二難幷 窮睇眄於中天 極娛遊於暇日
사미구 이난병 궁제면어중천 극오유어가일
멀리 바라보며 읊고 고개 숙여 펼치나니 멋진 흥취가 빠르게 일어나네. 상쾌한 피리소리 울리자 맑은 바람이 일고 고운 노랫소리 울리니 흰 구름도 멈추네.
수원(睢園)의 푸른 대는 기상이 도연명의 술잔을 능가하고, 업수(鄴水)의 붉은 연꽃은 빛이 임천(林川)의 내사(內史)였던 왕희지(王羲之)의 신필(神筆)처럼 빛나도다. 네 가지 아름다움을 갖추고 두 가지 어려움이 어우러졌나니, 곁눈질로 하늘가를 바라보며 지극히 즐거이 여가(餘暇)로 날을 노니노라.
* 천(遄): 빠를 천. 알(遏): 막을 알. 제(睇): 흘끗볼 제. 면(眄): 곁눈질할 면. 가(暇): 겨를 가.
天高地逈 覺宇宙之無窮 興盡悲來 識盈虛之有數
천고지형 각우주지무궁 흥진비래 식영허지유수
望長安於日下 指吳會於雲間 地勢極而南溟深 天柱高而北辰遠
망장안어일하 지오회어운간 지세극이남명심 천주고이북진원
關山難越 誰悲失路之人 萍水相逢 盡是他鄕之客
관산난월 수비실로지인 평수상봉 진시타향지객
懷帝閽而不見 奉宣室以何年
회제혼이불견 봉선실이하년
하늘은 높고 땅은 아득하니, 우주(宇宙)의 무궁(無窮)함을 깨달았고 흥(興)이 다하자 슬픔이 오나니, 차고 비는 운수(運數)가 있음을 알겠노라.
햇볕 아래로 장안(長安)을 바라보다 구름 사이로 오군(吳郡)과 회계현(會稽縣)을 가리키네. 지세(地勢)가 지극(至極)하니 남쪽 바다는 깊고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높으니 북극성(北極星)은 멀다.
산으로 막혀 넘기 어려운데 누가 길 잃은 사람을 슬퍼해 주겠는가? 물에 뜬 부평초처럼 서로 만났는데 모두 타향(他鄕)의 나그네이다. 대궐을 지키는 문지기를 그리워하나 보이지 않고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고사(故事)처럼’선실(宣室)에서 황제를 모시는 것은 이로써 어느 해 되겠는가?
* 형(逈): 멀 형. 평(萍): 부평초 평. 혼(閽): 문지기 혼.
嗚呼 時運不齊 命途多舛 馮唐易老 李廣難封
오호 시운부제 명도다천 풍당이로 이광난봉
屈賈誼於長沙 非無聖主 竄梁鴻於海曲 豈乏明時 所賴君子安貧 達人知命
굴가의어장사 비무성주 찬양홍어해곡 기핍명시 소뢰군자안빈 달인지명
老當益壯 寧知白首之心 窮且益堅 不墜靑雲之志
노당익장 영지백수지심 궁차익견 불추청운지지
酌貪泉而覺爽 處涸轍以猶懽
작탐천이각상 처학철이유환
北海雖賖 扶搖可接 東隅已逝 桑楡非晩
북해수사 부요가접 동우이서 상유비만
孟嘗高潔 空懷報國之心 阮籍猖狂 豈效窮途之哭
맹상고결 공회보국지심 완적창광 기효궁도지곡
아아! 시운(時運)은 고르지 않고 운명(運命)이란 어긋남이 많았나니, 전한(前漢)의 풍당(馮唐)은 ‘90세가 되도록 낮은 낭관(郞官) 벼슬로’ 쉽게 늙어만 갔고, 이광(李廣)은 ‘큰 공을 세웠으나’ 제후(諸侯)에 봉(封)해지기 어려웠으며, 가의(賈誼)는 억울하게 장사(長沙)로 귀양을 가는 굴욕(屈辱)을 당했는데 성군(聖君)이 없어서는 아니었고, 위(魏)의 양홍(梁鴻)이 ‘무제(武帝)에 중용(重用)되었다가 참소를 만나’ 북해(北海)의 양곡(陽曲)으로 유배되었으니, 어찌 밝은 세상이 다하여 그렇게 되었다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믿는 바로, 군자(君子)는 가난을 편히 여기고, 달인(達人)은 천명(天命)을 아는 것이다. 늙을수록 더욱 굳세다 하는데 어찌 흰머리 노인(老人)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궁할수록 더욱 굳세야 하니 청운(靑雲)의 뜻을 잃지 말아야 한다. 탐천(貪泉)을 마시고도 상쾌함을 깨닫고 말라가는 수레바퀴 자국의 고인 물에 갇힌 고기의 신세처럼 곤경에 처하더라도 이로써 오히려 기뻐하리라. 북해(北海)가 비록 멀다하나 바람을 타면 닿을 수 있나니 젊은 시절은 이미 가버렸으나 노년기(老年期)는 아직 늦지 않았다네.
맹상(孟嘗)은 고결하여 부질없이 보국(報國)하는 마음만 품었고 완적(阮籍)은 제멋대로였는데 어찌 막다른 길에서 통곡한 것을 본받겠는가?
* 환(懽): 기뻐할 환. 사(賖): 멀 사.
* 탐천(貪泉)
: 그 물을 마시면 모두 탐욕스러워 진다는 샘. 중국 광둥성(廣東省)에 있었다고 하는데, 진(晉)나라의 오은지(吳隱之)는 이 물을 마시고도 마음이 변하지 않아 그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 학철부어(涸轍鮒魚)
: 수레바퀴 자국의 고여 있는 물에 갇힌 붕어.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곤경이나 궁지에 처했을 때 쓰이는 말인데, 거철부어(車轍鮒魚), 학철(涸轍)로도 쓰인다. <출전은 장자 외물(外物)편>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창한 장자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가난한 생활을 하였다. 어느날 그는 친구인 남하후를 찾아가서 식량을 좀 꾸어달라고 했다. 남하후는 별로 꾸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핑계를 대었다. 빌려주겠네. 며칠만 있으면 세금을 거두게 되는데, 그때 3백 금(金)을 빌려주겠네. 지금 당장 굶어죽을 판인데 며칠 뒤의 거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장자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곳으로 오는데, 누가 나를 부르지 않겠나.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수레바퀴 자국의 고여 있는 물에 붕어 한 마리(涸轍鮒魚)가 있더군. 내가 왜 불렀느냐고 묻자, 붕어는 당장 말라죽을 지경이니 물 한 되만 부어 달라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네. 좋네. 나는 지금 남쪽의 오나라와 월나라 임금을 만나러 가는데, 가는 길에 서강(西江)의 물을 잔뜩 길어다 줄 테니 그때가지 기다리게.
그러자 붕어는 화가 나서 말했네. 나는 물 한 되만 있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말하다니 다 틀렸소. 나중에 마른 고깃간에 가서 날 찾을 거요.
* 동우(東隅)
: 동쪽 모퉁이로 해가 뜨는 곳이고, 상유(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로 이들 나무 끝에 서쪽 해가 남아 있다고 하여 해가 지는 곳을 가리킨다. 따라서 동우(東隅)와 상유(桑楡)는 일로는 처음과 끝이 되고 인생으로는 초년과 노년이 되므로, 옛사람의 글에 다양한 의미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 맹상(孟嘗)
: 후한(後漢) 때 이곳 태수로 부임한 맹상(孟嘗)이 선정을 펼침으로써 합포로부터 떠났던 진주(眞珠)가 다시 돌아와 환주(還珠)군의 위세가 회복되었다고 한다.
* 완적(阮籍):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
* 창광(猖狂): 미친듯이 사납게 날뛰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임.
勃 三尺微命 一介書生
발 삼척미명 일개서생
無路請纓 等終軍之弱冠 有懷投筆 慕宗慤之長風
무로청영 등종군지약관 유회투필 모종각지장풍
舍簪笏於百齡 奉晨昏於萬里 非謝家之寶樹 接孟氏之芳隣
사잠홀어백령 봉신혼어만리 비사가지보수 접맹씨지방린
他日趨庭 叨陪鯉對 今晨捧袂 喜託龍門
타일추정 도배리대 금신봉몌 희탁용문
楊意不逢 撫凌雲而自惜 鍾期旣遇 奏流水以何慙
양의불봉 무능운이자석 종기기우 주유수이하참
나는 삼척(三尺)의 보잘 것 없는 몸으로 한낱 공부하는 서생(書生)이라 ‘남월(南越) 왕을 잡아올’ 고삐를 청할 길이 없으나, 종군(終軍)과 약관(弱冠)의 나이는 같고 붓을 던질 생각도 있으며 종각(宗慤)이 긴 바람을 타고자 한일을 사모한다. 벼슬은 백 살까지 버리더라도 만리 밖에 계신 부모님을 아침저녁으로 모시고자 하며, 사가(謝家)의 보수(寶樹)는 아니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접하려 하였다.
다른 날 정원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며 아버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자 하는데 오늘 아침에 소매를 받쳐 들고 용문에 기탁하니 기쁘구나. 양득의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구름을 타고 넘는 작품만 어루만지며, 홀로 안타까워하다가 종자기 같은 사람을 이미 만났으니 유수(流水)와 같이 연주하나니 이로써 어찌 부끄러울 수 있겠는가?
* 종군(終軍)
: 한(漢)나라 종군(終軍)이 20세의 나이에 무제(武帝)에게 글을 올리기를, “긴 올가미 하나를 주면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와 남월왕(南越王)의 머리를 베어다가 바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 유회투필(有懷投筆)
: 반초(班超)가 붓을 던져 버리고 종군(從軍)한 것을 비유하여 본받을 마음이 있다함.
* 종각(宗慤)
: 자(字)가 원간(幹)입니다. 어릴 적에 숙부 종소문(宗少文)이 장래의 뜻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먼데서 불어오는 센 바람을 타고, 만리의 물결을 헤쳐 나가기가 소원입니다. 원승장풍 파만리랑(願乘長風 波萬里浪). 대업을 이룬다는 뜻.
* 사가지보수(謝家之寶樹)
: 동진의 사현(謝玄)은 숙부인 사안(謝安)의 신임을 받았는데 사안이 일찍이 “사람은 모두 가인(佳人) 재자(才子)를 원하느냐?”고 묻자, 사현은 “예컨대 영지(靈芝)나 난(蘭)과 같은 보배로운 나무는 정원의 계단 아래에 심고 싶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고 대답했다. 이는 바로 '가인재자'를 비유한 말이다.
* 접맹씨지방린(接孟氏之芳隣)
: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말하는 것으로 자식을 위해서 고른다는 뜻이다.
* 타일추정 도배리대(他日趨庭에 叨陪鯉對)
: ‘공자가 일찍이 정원에 있는데 공리(孔鯉)가 빨리 지나갔다. 공자는 그에게 “詩와 禮를 배우라”고 가르쳤다.’는 기록이 논어(論語) 계씨(季氏) 편에 보인다.
* 捧袂(捧袂): 양 소매를 받쳐 들고 절을 하는 것으로 연장자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 용문(龍門)
: 한나라의 이응(李膺)은 명성이 높아 그의 얼굴을 보는 자는 용문에 오르는 등용문(登龍門)과 마찬가지라 하였는데 여기서는 염공(閻公)에 비유한 것이다.
* 양의(楊意): 한 무제 때 수렵견을 관리하는 벼슬인 구감(狗監)이었던 양득의를 말함.
* 능운(凌雲)
: 한 무제는 사마상여의 대인부를 읽으며 감탄하기를 “표표히 구름을 타고 넘는 기상[凌雲之氣]이 있다.”고 하였다.
* 종기(鍾期): 춘추시대 사람 종자기(鍾子期),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 유수(流水)
: 백아(伯牙)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자, 종자기(鍾子期)가 말하기를 “양양(洋洋)한 강물과 같구나.”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 곡을 인용한 것은 오늘 자신이 행운을 얻어 염공이 자신의 뜻을 알아준다는 것을 말한다.
嗚呼 勝地不常 盛筵難再 蘭亭已矣 梓澤丘墟
오호 승지불상 성연난재 난정이의 재택구허
臨別贈言 幸承恩於偉餞 登高作賦 是所望於群公
임별증언 행승은어위전 등고작부 시소망어군공
敢竭鄙誠 恭疏短引 一言均賦 四韻俱成
감갈비성 공소단인 일언균부 사운구성
아아! 명승지에 항상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대한 잔치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 왕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 모임은 이미 지났고, 석숭(石崇)의 금곡원(金谷園)도 폐허(廢墟)가 된지 오래다.
작별(作別)하며 글을 드림은, 다행히 성대한 송별연(送別宴)의 은혜를 입었기에 높은 곳에 올라 글을 짓는 사군자(士君子)이기 때문이며, 이는 참석한 여러 공(公)에게도 바라는 바이다. 감히 모자라지만 정성을 다하여 삼가 짧게 서문(序文)을 지어 한 마디 부(賦)를 고르며 사운(四韻) 시(詩)를 갖추었다.
* 재택(梓澤): 진(晉)나라의 석숭(石崇)이 환락을 누리던 금곡원(金谷園)의 별명.
* 등고작부(登高作賦)
: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높은 곳에 올라 부를 지을 줄 알아야 대부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 공소단인(恭疏短引)
: 공손하게 이 한편의 짧은 서문을 쓰다. 소(疎)는 사건을 책으로 조목별로 진술하다. 단인(短引)은 단서(短序)이다.
* 일언균부(一言均賦)
: 한 글자로 같이 나누어 쓴다. 즉 모든 사람이 똑 같은 각운(脚韻)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균(均)은 부사로 고르게, 부(賦)는 동사로 짓는다는 뜻이다.
* 사운(四韻): 여덟 구로 이루어지며 각 구가 1 운이 된다.
滕王高閣臨江渚 佩玉鳴鑾罷歌舞
등왕고각임강저 패옥명란파가무
畵棟朝飛南浦雲 朱簾暮捲西山雨
화동조비남포운 주렴모권서산우
閑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度幾秋
한운담영일유유 물환성이도기추
閣中帝子今何在 檻外長江空自流
각중제자금하재 함외장강공자류
등왕각(滕王閣)이 높게 강가에 임해 있는데
패옥(佩玉)과 수레방울 소리, 노래와 춤도 사라졌네.
아침에 단청(丹靑) 기둥에 남포(南浦)의 구름이 날고
저녁때 붉은 발을 걷으니 서산(西山)에 비 뿌리네.
한가한 구름, 못에 그림자 드리우고 한낮이 아득한데
사물(事物)이 변하고 세월이 바뀌며 얼마나 세월이 흘렀던가?
누각에 있던 왕자(王子), 등왕(滕王)은 지금 어디 있는가?
난간 밖으로 장강(長江)만 부질없이 스스로 흐르네.
*란(鑾): 천자가 타는 수레의 말고삐에 다는 방울.
*유유(悠悠)
: 아득하게 먼 모양(模樣). 때가 오랜 모양(模樣). 침착(沈着)하고 여유(餘裕)가 있는 모양(模樣). 한가(閑暇)한 모양(模樣). 많은 모양(模樣).
〔작가 소개 〕
왕발(王勃, 647년 ~ 674년)은 자가 자안(子安)이며, 강주 용문 사람이다.
당나라 초기에 과거에 응시하여 급제했으며, 일찍이 괵주참군을 지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돋보였다. 6세부터 문장을 짓는 데 뛰어났으며, 9세 때에는 안사고가 주를 단 〈한서 漢書〉를 읽고 그 오류를 지적했다고 한다. 양형·노조린·낙빈왕과 함께 시문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초당(初唐)4걸’로 일컬어졌다. 그는 노조린 등과 함께 지나치게 화려함을 추구하던 당시의 시풍을 개혁하려고 했다.
그의 시는 개인의 생활을 묘사하는 데 치우쳐 있으며, 정치적인 감개나 은연중에 현실에 대한 불만을 담은 작품도 약간 있다. 시의 풍격은 비교적 맑고 새롭다. 문장은 대부분 변려체로 되어 있으며, 〈등왕각서 滕王閣序〉가 가장 유명하다. 명대에 후인이 집록한 〈왕자안집 王子安集〉이 전해진다.
역대 중국 문장계(文章界)를 이끌었던 사대 명문(四大名文)으로는,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와 함께 왕발의 등왕각서(縢王閣序)를 꼽는다.
왕발은 교지(交趾 ; 지금의 베트남 하노이 부근)로 좌천된 아버지를 뵙고자 675년 7월경에 낙양을 떠나 수로(水路)로 교지까지 간 것으로 보인다. 그 기나긴 여정 중에 9월 9일 무렵 홍주에 도착했다. 때마침 홍주에서 중양절을 맞이해 등왕각 중수(重修)를 기념하는 낙성식(落成式)을 열었는데, 왕발은 우연히 여기에 들렀다가 저 유명한 「滕王閣序」를 지었다.
등왕각서의 정식명칭은 <추일등홍부등왕각전별서(秋日登洪府縢王閣餞別序 : 가을날 홍도부의 등왕각에 올라 작별의 잔치 서문을 쓰다)이며, 등왕각은 바로 이 서문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칠언고시이다.<주 : 인터넷 인용>
〔작품 해설(解說)〕
등왕각(滕王閣)은, 당(唐)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아들 원영(元嬰)이 홍주도독(洪州都督)으로 있을 때에 지은 것으로, 원영이 등왕(滕王)으로 봉작(封爵)되었던 관계로 등왕각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뒤, 당(唐) 고종(高宗) 함형(咸亨) 2년(675)에, 염백서(閻伯嶼)가 홍주(洪州)의 태수(太守)로 부임하여, 이 전각을 수축(修築)하고 9월 9일 등고절(登高節)에 널리 빈객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그 전에 염백서는, 사위 오자장(吳子章)에게 등왕각의 중수(重修)를 기념하는 서(序)를 한 편 지으라 일러 놓고, 연희 자리에서 빈객들에게 사위 자랑을 할 생각이었다. 잔치가 벌어지고 좌중의 흥이 고조되자, 염백서는 계획대로, 등왕각의 중수를 기념하는 글을 지어 달라 빈객들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이미 염백서의 의도를 알고 있던 빈객들은 겸손하게 사양할 뿐, 누구 하나 선뜻 지필(紙筆)을 받으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빈객 중 가장 나이 어린 왕발(王勃)에게 종이와 붓이 가자, 왕발은 사양하지 않고 얼른 그것을 받아들고,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왕발은, 벼슬이 깎여 멀리 교지(交趾:지금의 베트남 하노이 부근)에 가 있는 아버지 왕복치(王福畤)를 찾아가는 길에 종리(鍾離:徐州에 속해 있는 조그만 마을)를 지나다가, 9월 9일에 등왕각에서 잔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참석하여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회의 주인인 염백서는, 어린 왕발의 이 뜻하지 않은 불손한 행동에 노하여, 은밀히 아랫사람을 보내어 왕발의 문장이 하나하나 이루어질 때마다 보고하도록 했다. 왕발의 글은 문장을 이루기가 무섭게 염백서에게 보고되었다. 왕발의 글이 갈수록 빛나는데다가, ‘낙하여고무제비(落霞與孤騖齊飛) 추수공장천일색(秋水共長天一色)’의 구(句)에 이르자, 염백서는 깜짝 놀라 “천재(天才)다!” 하며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염백서는, 왕발에게 글을 끝까지 완성하도록 부탁하고, 잔치가 끝날 때까지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게 했다 한다.
왕발은 자(字)를 자안(子安)이라 하며 초당사걸(初唐四傑)로 꼽히는데, 여섯 살 때부터 글을 지었다고 하는 보기 드문 천재이다. 일찍이 고종(高宗)으로부터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박사(博師)가 되었으나, 여러 왕족들의 우열(優劣)을 닭싸움에 비유하여 투계격문(鬪鷄檄文)을 썼다가 고종의 노여움을 사, 자신은 유배되는 신세가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벼슬이 깎이어 교지(交趾)의 현령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나이 29세에, 아버지의 임지(任地)로 가다 불우하게도 남해(南海)에 빠진 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다. 그가 문장을 지을 때에는, 먹을 듬뿍 갈아 놓은 다음, 술을 마시고 한잠 푹 자고 난 뒤에 단숨에 내려썼다 하는데, 아무리 취중에 쓴 글이라 해도 한 자도 고칠 데가 없어, 사람들은 그를 복고(腹稿: 뱃속에 원고를 품고 있음.)라 하였다.
등왕각서(滕王閣序)는, 홍주(洪州)의 수려한 경관(景觀)을 후세에까지 만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했으며, 이 글 한 편으로, 고조(高祖)의 스물두 번째 아들인 등왕(滕王) 이원영(李元嬰)이 다른 자식들보다 더 알려지게 되었고, 후에 등왕각(滕王閣)을 중수한 염백서는 물론 맥없이 잔치 자리에서 물러 나와야 했던 그의 사위 오자장(吳子章)의 이름까지도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이 글은 왕발의 작품 중에서도 걸작에 드는 것이다. 왕발을 내쳤던 고종(高宗)이 이 서(序)를 읽고 다시 왕발을 부르려 했으나 그 때엔 이미 왕발이 죽고 없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편에 걸쳐 함축. 온고(溫故). 직유(直喩). 암유(暗喩) 등의 기법이 현란하게 사용되어, 왕발의 재기(才氣)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고사(故事)를 교묘히 사용하여, 넉자 여섯 자의 대구(對句)를 겹친 육조풍(六朝風)의 변려문(騈儷文)인데, 약관(弱冠)의 작가가 과연 이것을 지었을까 의심될 정도로 당당한 구문(構文)이다.
다만 전고(典故)를 많이 사용한 탓으로, 문의(文意)가 명료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해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본편(本篇)을 해석함에 있어, 그 미문(美文)의 묘미를 가능한 한 살리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왕발의 재주에는 미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독자는 안광철지배(眼光徹紙背)의 자세로 음미해 주기 바란다.
편말(篇末)의 시(詩)는 율시(律詩)와 비슷하지만, 평측구구(平仄構句)나 압운(押韻)의 상태로 알 수 있듯이 고시(古詩)이다. 단편의 시로 그 해석에 약간 이설(異說)이 있지만, 여정(餘情)이 긴 걸작이다. <주 : 「古文眞寶」文編, 朴一峰 譯著>.
[한글 해설문〕
여기의 한글 해설문은 한조(寒照) 신흥식(申興植)선생의 글을 옮겨왔다. 한조 선생은 道家의 무위사상과 儒家의 도덕이념을 거쳐 佛家의 선(禪)사상에 흠뻑 빠져 평생 공부해 온 분으로서 현재 유마강원(維摩講院)을 운영하고 있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법구경'(法句經), '채근담'(採根譚), '직지'(直指) 등 여러 권의 역서를 갖고 있다. <운영자>